A LETTER FROM BBINGE
나는 왜 축구를 쓰는가
축구를 언제부터 좋아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조금 우습습니다. 세 살 때이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아.
아무튼간, 당시 아버지가 보여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가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세 살짜리의 기억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당시의 제가 경기의 맥락을 이해했을 리 없고, 지금 남아 있는 장면 가운데 얼마가 실제 기억이며 얼마가 훗날 반복해서 본 영상으로 사후 편집된 것인지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제가 제법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축구보다 오래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취향 하나를 오래 붙들고 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선생님들도 공감하시지 않을지요.
처음에는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를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축구를 알기 위해 다른 것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클럽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시의 형성과 산업화를 모른 척하기 어려웠고, 어떤 더비의 적의를 들여다보면 종교와 민족, 계급의 기억이 튀어나왔습니다. 전술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가 인간과 공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궁금해졌고, 선수 한 사람의 이적을 설명하려다 보면 노동시장과 자본, 제도의 문제까지 따라붙었습니다.
그렇게 축구를 핑계 삼아 서방의 역사와 철학을 제법 오래 등정했습니다.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왜 잉글랜드에서는 저런 축구가 생겼고, 왜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미학이 발전했으며, 어째서 어떤 클럽은 성적이 좋지 않은 시기에도 사람들에게 거의 종교에 가까운 충성을 요구하는지.
누군가는 축구를 스물두 명이 공 하나를 쫓아다니는 경기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다만 오래 보고 있으면 그 공 주변에 붙어 있는 것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이 개막하던 다음 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참극, 그러한 역사적 대비.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굶주리던 시대에 지구 반대편의 어느 국가는 결승전이나 다름없던 경기의 패배로 범죄와 자해, 자살, 집단적 광기가 섞인 오열과 패배의 부정에 빠졌다고 전합니다.
물론 진지하게 파고들면 그 가운데에는 후대에 덧붙여졌거나 출처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른바 Maracanaço가 브라질 사회에 남긴 집단적 기억까지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 흥미로운 것은 사실과 전설을 정확히 분리하는 작업을 거친 뒤에도 남아 있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공놀이의 패배가 한 사회에서 국가적 비극의 언어를 빌릴 수 있었을까.
어떤 나라는 세계대전 속에서 민족의 결속을 위해 축구를 이용했고, 어떤 나라는 21세기인 오늘날에도 과거의 울분을 다 벗어내지 못한 채 90분 동안 상대를 찢어 죽일 듯이 뜁니다.
어떤 선수는 FIFA 월드컵 8강에서 탈락할 것 같다는 이유로, 경기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프리킥 벽에 서서 울고 있기도 합니다. 그 선수가 Atlético de Madrid의 주장단이며 현대 축구의 슈퍼스타 가운데 한 명인 José María Giménez라는 사실을 믿으실 수 있으실는지요.
어쩌면 이런 장면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감각이야말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가 몇 분짜리 하이라이트와 숏폼, 이적시장과 개인 수상 경력, 선수의 시장가치와 소셜미디어상의 인기처럼 잘게 분절된 정보의 형태로 소비되는 동안, 한 선수가 왜 특정한 유니폼 앞에서 저토록 비합리적으로 보일 만큼 감정을 소진하는지를 설명할 언어는 오히려 빈약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축구는 선수를 하나의 독립된 커리어로 이해하기에 무척 편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얼마를 받고, 무엇을 우승했고, 몇 골을 넣었으며, 누구보다 위대한지를 끊임없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는 애초부터 개인의 이력서만으로 설명되는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도시, 지역과 계급, 종교와 민족, 오래된 패배와 세대를 건너 전승된 적의까지 한 인간의 유니폼 위에 제멋대로 포개져 왔습니다.
FIFA World Cup™은 그 오래된 감정이 가장 거대한 규모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클럽 축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엠블럼은 한 도시의 산업사를 품고 있고, 어떤 더비에는 당사자조차 직접 겪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으며, 어떤 유니폼을 입는다는 사실은 선수 개인의 커리어보다 훨씬 오래된 서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Giménez가 프리킥 벽에서 울고 있는 광경은 국가대표 축구의 위상을 새삼 찬양해야 이해되는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대 축구가 아무리 거대한 산업이 되고 선수가 아무리 세계적인 개인 브랜드가 되어도, 축구를 만들어온 집단의 기억까지 완전히 개인화하지는 못했다는 장면에 가깝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보면 한 선수가 경기 도중 우는 모습일 뿐입니다.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면, 한 세기가 넘도록 축구에 쌓여온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이 현대적인 한 인간을 통해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됩니다.
'그깟 공놀이' 안에는,
정치도 있고 돈도 있고 지역감정도 있습니다. 민족주의와 종교, 계급과 자본이 있고, 허영과 열등감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는 정권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도구가 되었고, 또 어느 시대에는 국가보다 먼저 존재했던 도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영웅을 만들어내고 다시 폐기하는 대중의 습성도 있습니다. 과거를 낭만화하는 기억의 오류도 있고, 훗날의 기준으로 이전 시대를 함부로 재단하는 오만도 있습니다.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서사 가운데 어떤 것은 사실이고 어떤 것은 신화이며, 때로는 신화가 사실보다 오랫동안 살아남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축구를 읽을 때 경기만으로 좀처럼 끝내지 못합니다.
전술 하나에도 그것이 출현할 만했던 시대적 조건이 있고, 클럽 하나에도 창립 이후 축적된 공동체의 기억이 있습니다. 선수의 기록 역시 숫자만 떼어놓고 보면 간단하지만, 그 숫자가 생산된 리그와 시대와 규칙까지 함께 놓으면 이야기는 금세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그런 복잡함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10대 중후반의 나이, 네이버 어딘가에 축구 이야기를 끄적이며 시작했던 축구학 탐독도 결국 같은 버릇의 연장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슨 거창한 체계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한 선수가 궁금하면 그 선수를 찾아봤고, 읽다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으면 그 시대를 찾아봤습니다. 그 시대를 읽다가 또 모르는 것이 나오면 조금 더 멀리 갔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어느 날에는 축구를 읽겠다며 세계대전을 보고 있었고, 어느 날에는 종교사를 읽었으며, 어느 날에는 정치철학과 경제학 책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축구는 꽤 훌륭한 핑계였습니다.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학문과 시대를 마음껏 넘나들어도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공 하나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 네이버에 썼던 글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시와 비교하면 생각도 여러 번 바뀌었고, 사실이라고 믿었던 이야기가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계속 읽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시 의심하고, 널리 알려진 일화의 원전을 찾아보고, 숫자가 상식과 충돌하면 어느 쪽이 잘못되었는지 들여다봅니다. 새로운 축구를 보면서 옛날 축구를 떠올리기도 하고, 백 년 전의 기록을 읽다가 지금의 축구를 다시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마 이 홈페이지에도 그런 글들이 남을 겁니다.
무엇을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는 제가 무엇을 궁금해했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어디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려 합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보시던 1998 월드컵을 보며 무엇을 느꼈는지는 이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작된 공놀이 하나를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해해보겠다고 이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오래도 왔습니다.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