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 LEGEND

카카(Kaká)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밀란을 유럽 정상으로 이끈 브라질의 10번

밀란의 10번, 2007년 발롱도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너뜨린 질주. 고전적 플레이메이커와 현대적 전환 공격 사이에 섰던 카카를 영상과 역사로 다시 읽는다.
브라질 대표팀의 노란 유니폼을 입은 카카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카카. 썸네일 편집: 삥이FC.
브라질 국기
BRASIL브라질 연방 공화국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브라질 축구협회 문장
SELEÇÃO BRASILEIRA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Seleção Brasileira de Futebol · A Seleção(셀레상)
편집자 평가

카카는 고전적인 10번의 마지막 장면이면서 현대적인 전환 공격의 첫 장면이었다. 지네딘 지단(Zinédine Zidane; 프랑스의 공격형 미드필더, 1972-)처럼 고개를 들고 공간을 읽었지만, 공을 잡은 뒤에는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중거리 주자처럼 속도를 계속 높였다. 2006-0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밀란을 유럽 정상으로 끌고 간 뒤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동시에 차지했다.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세계를 양분하기 직전, 축구와 외모와 대중성을 한 몸에 지녔던 21세기의 첫 슈퍼스타였다.

카카 플레이보폭이 커질수록 수비가 작아지던 여섯 장면1 / 6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 공을 잡은 카카가 전력으로 전진하자 10대의 리오넬 메시가 끝까지 따라가지만 간격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삥이FC 카카 평가

  1. 카카의 드리블은 브라질 선수에게 기대하는 작은 개인기의 연속이 아니었다. 첫 터치로 수비선 사이를 열고, 두 번째부터 보폭을 키워 상대가 방향을 바꾸기 전에 공간을 통과했다. 공을 잡고 속도를 줄이는 10번이 아니라 공을 잡는 순간 경기 전체의 속도를 높이는 10번이었다.

  2.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959-)의 밀란에는 이미 안드레아 피를로(Andrea Pirlo; 이탈리아의 중앙 미드필더, 1979-), 젠나로 가투소(Gennaro Gattuso; 이탈리아의 수비형 미드필더, 1978-), 클라렌스 세도르프(Clarence Seedorf; 네덜란드의 미드필더, 1976-), 후이 코스타(Rui Costa; 포르투갈의 공격형 미드필더, 1972-)가 있었다. 카카는 이 완성된 중원에 자리를 배정받은 선수가 아니라, 팀이 전진하는 방식을 바꾸며 자신의 자리를 새로 만든 선수였다.

  3. 2005년 이스탄불 결승의 패배는 카카의 유럽 경력을 꺾지 못했다. 전반에는 에르난 크레스포(Hernán Crespo; 아르헨티나의 중앙 공격수, 1975-)의 골을 만든 패스로 리버풀을 갈랐고, 2년 뒤에는 대회 10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같은 상대를 결승에서 다시 만나 우승했다. 2007년의 카카는 복수극의 주인공이자 대회 최고의 공격수였다.

  4. 2007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카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포르투갈의 공격수, 1985-)와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1987-)를 앞섰다. 이후 두 선수가 10년 넘게 상을 나눠 가진 탓에 카카는 흔히 ‘메날두 이전 마지막 수상자’로 기억되지만, 정확히는 그 둘의 시대가 이미 시작된 자리에서 정면으로 이긴 선수였다.

  5.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카카는 밀란의 복제품이 아니었다. 무릎과 사타구니 부상, 달라진 전술, 메수트 외질(Mesut Özil; 독일의 공격형 미드필더, 1988-)의 등장이 겹치면서 폭발적인 첫걸음과 연속 질주가 사라졌다. 카카의 전성기가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술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의 축구를 완성하던 신체의 리듬이 먼저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카 프로필

브라질 연방 공화국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
본명
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등록명
카카
출생
1982년 4월 22일
출생지
브라질 가마
신장
186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주요 등번호
22번 · 10번
별명
밀란의 천사

본명은 히카르두 이제크송 두스 산투스 레이치(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 1982-)다. 카카는 거창한 예명이 아니었다. 어린 동생 호드리구 이제크송 두스 산투스 레이치(Rodrigo Izecson dos Santos Leite; 브라질의 축구선수이자 카카의 동생, 1985-)히카르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형을 카카라고 부른 것이 가족 밖으로 퍼졌다. 영어권 중계가 쓰던 ‘리카르도 카카’는 이름과 등록명을 겹친 표현에 가깝다.

그의 유년기는 브라질 스타의 전형과도 달랐다. 아버지는 토목기사, 어머니는 교사였고 가족은 카카가 어릴 때 상파울루로 옮겼다. 축구에만 매달려 생계를 바꾸어야 했던 소년이 아니라 교육과 스포츠를 함께 선택할 수 있었던 중산층 가정의 아이였다. 그래서 카카의 말투와 태도, 광고 시장에서의 이미지까지 다른 브라질 스타와 구별됐다.

수영장 바닥에서 다시 일어난 소년

18세였던 2000년, 카카는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목 부위 척추를 다쳤다. 이후 이 사고는 신앙과 결합해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기적’으로 널리 전해졌다. 다만 공개된 회고는 사고의 중대성과 빠른 회복을 말할 뿐, 후대에 덧붙은 모든 극적인 세부를 의료기록처럼 확정해 주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회복한 다음 해인 2001년 상파울루 FC(São Paulo Futebol Clube; 브라질 상파울루의 축구단) 1군에 데뷔했고,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Torneio Rio-São Paulo; 히우지자네이루주와 상파울루주 구단이 겨룬 대회) 결승에서 보타포구 FR(Botafogo de Futebol e Regatas;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의 축구단)를 상대로 결정적인 두 골을 넣으며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이다.

카카가 골을 넣은 뒤 두 손가락을 하늘로 올린 세리머니도 이 사고 이후의 신앙과 연결됐다. 그러나 그를 종교적 이미지 하나로만 읽으면 선수의 실제 능력을 놓친다. 상파울루의 카카는 이미 186cm의 큰 체격으로 중앙을 달리고, 마지막 패스와 중거리 슛을 함께 꺼내는 보기 드문 유형이었다.

2002년, 우승팀의 막내에서 다음 세대의 얼굴로

2006 FIFA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와 대화하는 카카
2006 FIFA 월드컵의 카카, 아드리아누,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이름값으로는 화려했지만 ‘마법의 사중주’는 팀의 균형까지 보장하지 못했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Luiz Felipe Scolari; 브라질의 축구 감독, 1948-)는 만 20세의 카카를 2002 한일 FIFA 월드컵 명단에 넣었다. 출전은 코스타리카전의 짧은 시간뿐이었다. 호나우두(Ronaldo; 브라질의 중앙 공격수, 1976-), 히바우두(Rivaldo;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 1972-), 호나우지뉴(Ronaldinho;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 1980-)가 공격을 이끌던 우승팀에서 카카는 아직 주역이 아니라 다음 시대를 기다리는 막내였다.

그로부터 4년 뒤 독일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호나우두·호나우지뉴·아드리아누(Adriano; 브라질의 중앙 공격수, 1982-)와 함께 이른바 마법의 사중주(Quarteto Mágico; 2006년 브라질의 네 공격수를 가리킨 별칭)를 이뤘고 크로아티아전 결승골도 넣었다. 하지만 이름값을 한꺼번에 세운 브라질은 균형을 잃고 프랑스에 막혔다. 카카 개인의 질주와 스타 군단의 조합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세 골을 도우며 대회 공동 도움 선두에 올랐지만, 브라질은 다시 8강에서 멈췄다.

밀라넬로 첫 훈련, 안첼로티의 예상이 무너지다

상파울루 FC 유니폼을 입고 골 세리머니를 하는 젊은 카카
밀라노로 향하기 전 상파울루 FC에서 이름을 알린 카카.

AC 밀란은 2003년 상파울루에서 카카를 영입했다. 이미 후이 코스타라는 세계적인 10번이 있었기에 브라질에서 온 스물한 살은 미래를 위한 선수처럼 보였다. 안첼로티도 얌전한 얼굴에 안경을 쓴 청년을 처음 보고 학생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러나 밀라넬로(Milanello; AC 밀란의 훈련장) 첫 훈련에서 공을 잡고 달리는 모습을 본 순간 판단은 끝났다. 시즌 개막 한 달 뒤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 AC 밀란과 인테르의 밀라노 더비)에서 골을 넣었고, 후이 코스타의 뒤가 아니라 앞에서 뛰기 시작했다.

피를로가 후방에서 방향을 정하고 가투소가 공간을 지우며 세도르프가 왼쪽에서 연결하면, 카카는 그 위의 빈 곳에서 전진했다. 당시 세리에 A의 수비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을 받으면 등을 지게 만들려 했다. 카카는 등을 대고 싸우는 대신 몸을 돌린 첫 순간에 압박선을 벗어났다. 2003-04 시즌 밀란은 세리에 A 정상에 올랐고 카카는 리그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됐다.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

AC 밀란 유니폼을 입고 두 팔을 들어 올린 카카
2005년 이스탄불의 패배를 지나 2007년 아테네에서 유럽 정상에 오른 카카.

2005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전반, 카카는 리버풀 수비 사이로 돌아선 뒤 크레스포에게 믿기 어려울 만큼 정확한 스루패스를 보냈다. 밀란은 3-0으로 앞섰지만 후반 여섯 분 사이 세 골을 내주고 승부차기에서 졌다. 카카 최고의 패스 가운데 하나는 축구사에서 가장 유명한 역전패의 일부가 됐다.

두 시즌 뒤 카카는 자신의 힘으로 결승까지 돌아왔다. 셀틱과의 16강 연장전에서는 중앙을 혼자 돌파해 결승골을 넣었고, 바이에른 뮌헨을 지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났다. 올드 트래퍼드 1차전의 첫 골은 수비 뒤로 빠져나간 뒤 왼발로 마무리했다. 두 번째 골은 더 기묘했다. 머리로 공을 넘기며 가브리엘 에인세(Gabriel Heinze;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1978-)와 파트리스 에브라(Patrice Evra; 프랑스의 왼쪽 풀백, 1981-)가 서로 부딪치게 만든 다음, 떨어지는 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수비수 둘을 제친 장면이 아니라 둘의 움직임을 하나의 장애물로 이용한 장면이었다.

밀란은 1차전을 2-3으로 졌지만 산 시로(Stadio San Siro; AC 밀란과 인테르의 홈 경기장)에서 3-0으로 뒤집었다. 결승에서는 다시 리버풀을 만나 2-1로 이겼다. 카카는 10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고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를 차례로 받았다. 2007년은 상이 카카를 유명하게 만든 해가 아니라, 유럽 최고의 무대에서 이미 증명한 선수를 상들이 뒤따라간 해였다.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2007년

AC 밀란 유니폼을 입고 2007년 발롱도르 트로피를 든 카카
2007년 발롱도르를 든 카카.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와 UEFA 클럽 올해의 선수도 차지했다.

카카를 ‘메시와 호날두 이전의 마지막 발롱도르’라고만 부르면 시간의 순서가 흐려진다. 2007년 투표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2위, 메시는 3위였다. 두 사람은 아직 등장 전이 아니었다. 이미 세계 최고 후보였고, 카카가 같은 투표에서 둘을 앞섰다. 이후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발롱도르는 호날두와 메시만 나눠 가졌다.

카카의 스타성은 경기장 밖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먼저 맞았다. 2012년 그는 트위터에서 팔로워 1,000만 명을 넘긴 최초의 스포츠 선수로 보도됐다. 전통 매체의 표지와 TV 광고를 넘어 선수가 직접 수천만 명에게 말을 거는 시대였다. 단정한 이미지, 세계적으로 읽히는 짧은 등록명, 브라질·이탈리아·스페인을 가로지른 경력이 그 변화와 맞아떨어졌다.

1억 파운드의 밤, 밀란 창문 앞에 나타난 유니폼

2009년 1월 맨체스터 시티는 카카 영입에 당시 축구계를 뒤흔든 거액을 준비했다. 보도된 액수와 조건은 매체마다 달랐지만, 거래가 성사됐다면 세계 이적료 기록을 크게 바꿀 협상이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밀라노의 팬들은 카카의 집 주변에 모여 잔류를 외쳤고, 카카는 창문에 나타나 밀란 유니폼을 들어 보였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당시 AC 밀란 구단주, 1936-2023)는 곧 선수가 돈보다 밀란을 택했다고 발표했다.

그 장면은 영원한 잔류 선언처럼 남았지만 다섯 달 뒤 상황이 바뀌었다. 밀란은 재정 문제 속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협상했고, 카카는 2009년 여름 마드리드로 떠났다. 맨체스터 시티를 거절한 낭만과 레알 이적은 모순이라기보다, 선수의 선택과 구단의 필요가 서로 다른 시간에 움직였던 이적시장의 기록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
레알 마드리드의 두 거물 영입이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카.

카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Karim Benzema; 프랑스의 중앙 공격수, 1987-), 샤비 알론소(Xabi Alonso; 스페인의 중앙 미드필더, 1981-)와 함께 플로렌티노 페레스(Florentino Pérez; 스페인의 기업인이자 레알 마드리드 회장, 1947-)의 두 번째 갈락티코스(Los Galácticos; 세계적인 스타들을 모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을 가리킨 표현) 시대를 열었다. 첫 시즌에도 득점과 도움을 만들었지만 밀란에서 보이던 폭발력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2010년 월드컵 뒤 왼쪽 무릎 수술을 받으며 여러 달을 쉬었고, 복귀 뒤에도 사타구니와 근육 문제가 반복됐다.

조제 모리뉴(José Mourinho; 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1963-) 체제에서는 더 어린 메수트 외질이 공격형 미드필더의 중심이 됐다. 좁은 공간의 패스와 판단은 남아 있었지만, 카카를 특별하게 만들던 긴 가속을 매 경기 반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레알 시절을 의지 부족이나 단순한 ‘먹튀’로 부르는 평가는 선수의 핵심 도구가 무엇이었는지 놓친다. 그는 기술을 잊은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가장 위협적으로 만들던 속도를 잃었다. 그럼에도 네 시즌 동안 공식전 120경기 29골을 남기고 라리가(La Liga; 스페인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와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 스페인 국왕컵) 우승에 함께했다.

밀란으로 돌아온 22번, 그리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주장

2013년 카카는 이적료 없이 밀란으로 돌아왔다. 전성기의 자신을 복원하지는 못했지만, 2013-14 세리에 A에서 30경기 7골을 기록하며 통산 밀란 100골을 넘겼다. 과거의 향기를 빌려 박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 팀이 흔들리던 시즌에 다시 주장 완장을 차고 실제 득점을 보탰다.

이후 신생 구단 올랜도 시티 SC(Orlando City Soccer Club;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축구단)의 첫 지정 선수(Designated Player; MLS 구단이 연봉 총액 한도 밖에서 고액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제도)이자 주장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2015년 메이저 리그 사커(Major League Soccer; 미국과 캐나다의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 올스타전에서는 MVP에 선정됐다. 상파울루에서 시작해 밀라노와 마드리드를 거친 10번은 미국에서 축구를 알리는 얼굴로 마지막 역할을 맡고 2017년 은퇴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상파울루 FC 문장상파울루 FC2001-2003 · 2014155경기 · 51골
AC 밀란 문장AC 밀란2003-2009 · 2013-14307경기 · 104골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레알 마드리드2009-2013120경기 · 29골
올랜도 시티 SC 문장올랜도 시티2015-201778경기 · 25골
브라질 대표팀 문장브라질 대표팀2002-201692경기 · 29골

클럽 통산 기록은 대회·친선 경기와 도움 집계 범위에 따라 자료별 차이가 커서, 공식 구단 자료로 확인되는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전 수치를 우선했다. 브라질 대표팀의 마지막 출전은 2016년이며 2017년은 선수 은퇴 연도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시즌등번호
상파울루 FC2000-01~2002-03 · 2013-148
AC 밀란2003-04~2008-09 · 2013-1422
레알 마드리드 CF2009-10~2013-148
올랜도 시티 SC2014-15~2016-1710

브라질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기간등번호
브라질2001-201610 · 7 · 8 · 16 · 22 · 23

등번호는 트랜스퍼마크트에 등록된 시즌별 기록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굵은 숫자는 해당 팀에서 가장 오래 사용했거나 상징성이 가장 큰 대표 등번호이며, 대표팀 등번호는 대회와 소집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대표 우승 경력

BRAZILFIFA 월드컵2002년 우승팀의 막내
AC MILANUEFA 챔피언스 리그2005년 준우승 · 2007년 우승
2007발롱도르호날두와 메시를 앞선 세계 1위
FIFA 월드컵FIFA World Cup

우승: 2002

8강: 2006, 2010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FIFA Confederations Cup

우승: 2005, 2009

UEFA 챔피언스 리그UEFA Champions League

우승: 2006-07

준우승: 2004-05

FIFA 클럽 월드컵FIFA Club World Cup

우승: 2007

UEFA 슈퍼컵UEFA Super Cup

우승: 2003, 2007

세리에 ASerie A

우승: 2003-04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Supercoppa Italiana

우승: 2004

라리가La Liga

우승: 2011-12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

우승: 2010-11

카카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국가 수훈

브라질 국가공로훈장 · 공로메달Medalha da Ordem Nacional do Mérito · 2002년

  • 마라카낭 명예의 전당 헌액2008년
  •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2010년
  • 발롱도르2004년 15위 · 2005년 9위 · 2006년 11위 · 2007년 1위 · 2008년 8위 · 2009년 6위
  • 옹즈도르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올해의 선수2007년
  • 옹즈 드 옹즈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112007년
  • 삼바도르유럽에서 활약한 브라질 올해의 선수2008년
  • FIFA 올해의 선수국제축구연맹 선정2004년 10위 · 2005년 8위 · 2006년 7위 · 2007년 1위 · 2008년 4위 · 2009년 4위
  • FIFPro 올해의 선수국제축구선수협회 선정2007년
  • FIFPro 월드 11국제축구선수협회 선정 세계 베스트 112006년 · 2007년 · 2008년
  • CONMEBOL 올해의 베스트 11남미축구연맹 선정2002년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선수유럽축구연맹 클럽 부문 최우수 선수2007년 (2006-07 시즌)
  • UEFA 올해의 공격수유럽축구연맹 클럽 부문2007년 (2006-07 시즌)
  • UEFA 올해의 미드필더유럽축구연맹 클럽 부문2005년 (2004-05 시즌)
  • UEFA 시즌 베스트 11유럽축구연맹 선정2006년 · 2007년 · 2009년
  • 포포투 올해의 선수영국 축구 전문지 FourFourTwo 선정2007년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영국 축구 전문지 World Soccer 선정2007년
  • 타임 100미국 시사주간지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8년 · 2009년
  • IFFHS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2007년
  • FIFA 월드컵 도움왕2010년 · 3도움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대회 최우수 선수2009년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 112009년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 최우수 선수결승전 Man of the Match2009년
  • CONCACAF 골드컵 베스트 11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 주관 대회2003년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2007년 (2006-07 시즌) · 10골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2005년 (2004-05 시즌) · 5도움 / 2012년 (2011-12 시즌) · 5도움
  • 볼라 지 오루Bola de Ouro · 브라질 세리에 A 최우수 선수2002년
  • 볼라 지 프라타Bola de Prata · 브라질 세리에 A 베스트 112002년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2004년 · 2007년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2004년 · 2006년 · 2007년
  • 세리에 A 도움왕2005년 (2004-05 시즌) · 13도움
  • 메이저 리그 사커 올스타MLS 올스타 선정2015년 · 2016년 · 2017년
  • 메이저 리그 사커 올스타전 MVPMLS 올스타전 최우수 선수2015년

오늘날 카카는 어떻게 평가받는가

카카는 지단 이후의 고전적 10번과 메시·호날두 시대의 득점형 에이스 사이에 있었다. 중앙에서 경기를 읽었지만 공을 오래 소유하지 않았고, 섬세한 패스를 가졌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빈 공간을 향한 직선 주행이었다. 오늘날의 언어로 분류하면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기의 볼 운반자,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한 몸에 겹친 선수다.

그의 전성기가 짧았다는 평가는 절반만 맞다. 세계 최고 수준의 폭발력은 밀란 후반기에 정점을 찍고 레알에서 급격히 약해졌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팀의 막내, 세리에 A 우승의 신인, 이스탄불의 패자, 아테네의 득점왕, 발롱도르 수상자, 흔들리던 밀란으로 돌아온 주장, 미국 신생 구단의 얼굴까지 경력의 장면은 길고 다양하다.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전의 슈퍼스타라는 말은 카카의 위치를 쉽게 설명한다. 하지만 더 정확한 문장은 이것이다. 두 사람의 시대가 이미 문 앞에 와 있던 2007년, 그 문을 한 해 더 지키고 세계 최고에 오른 선수. 그가 카카였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