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LEGEND

헤랄트 파넨뷔르흐(Gerald Vanenburg)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PSV 트레블을 돌린 바람개비

헤랄트 파넨뷔르흐의 드리블과 플레이 스타일, 아약스에서 PSV 트레블과 유로 1988로 이어진 전성기. 주빌로 이와타까지의 클럽·국대 스탯, 역대 등번호와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주황색 모자를 쓴 헤랄트 파넨뷔르흐가 네덜란드 동료들과 기뻐하는 모습
네덜란드의 바람개비, 헤랄트 파넨뷔르흐.
네덜란드 국기
NEDERLAND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사자 문장
NEDERLANDS ELFTAL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Nederlands voetbalelftal | Oranje(오라녀)
편집자 평가

1988년 네덜란드 축구를 떠올리면 밀란의 오렌지 삼총사가 먼저 나온다. 그 옆으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같은 해 PSV의 트레블과 대표팀의 유럽 제패를 모두 선발로 통과한 헤랄트 파넨뷔르흐가 있다. 발앞에서 공을 잘게 굴리다가 수비수의 무게중심이 쏠리는 순간 빠져나가던 선수. ‘헤랄지뉴’라는 별명이 붙을 만한 개인기를 갖췄으면서도, 아약스와 PSV에서 합쳐 여덟 번의 리그 우승을 쌓았다. 필자가 이 바람개비를 따로 꺼내 놓고 싶은 이유도 그 화려함과 긴 전성기가 한 몸에 있었다는 데 있다.

헤랄트 파넨뷔르흐 플레이발재간에서 마무리까지, 바람개비의 일곱 장면1 / 7

공을 발앞에 둔 채 보폭을 늦춘다. 수비수가 다가오자 방향을 틀어 연속해서 빠져나간다.

삥이FC 헤랄트 파넨뷔르흐 평가

  1. 파넨뷔르흐의 드리블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공을 앞으로 길게 차 놓기 전에 발을 교차하거나 상체를 흔들어 상대가 먼저 반응하게 한다. 수비수가 발을 내밀면 그 옆으로 빠져나가고, 두 번째 수비수가 오면 다시 터치를 줄인다. 영상에서 연속 돌파가 가능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 명을 제친 뒤에도 공이 멀리 도망가지 않으니 다음 대결을 곧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2. 발앞의 기교만큼 뒷공간 침투도 눈에 들어온다. 긴 패스를 따라 수비 뒤로 뛰는 장면에서는 첫 터치부터 전진 방향에 공을 놓는다. 골키퍼가 나오면 한 번 더 꺾거나 머리 위로 띄우며 마무리까지 가져갔다. 아약스에서의 리그 173경기 64골은 이런 공격 가담의 결과이기도 하다. 동료 공격수에게 기회를 주면서 본인도 문전으로 들어갈 줄 알았으니, 상대가 패스만 막고 기다리기도 어려웠다.

  3. PSV에서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1988년 PSV의 트레블을 이끈 감독)를 만났을 때는 함께 움직일 동료들이 갖춰졌다. 빔 키프트(Wim Kieft; 아약스와 PSV에서 함께 뛴 네덜란드 중앙 공격수)가 문전에서 공을 기다렸고, 쇠렌 레르뷔(Søren Lerby; 덴마크 중앙 미드필더)가 중원에서 전개와 전진을 나눠 맡았다. 익숙한 동료들과 다시 만난 파넨뷔르흐는 오른쪽에서 공을 운반하고 안으로 들어와 기회를 만들었다. 1987-88 시즌 리그 11골, 트랜스퍼마크트 집계 17도움이 그 분업 안에서 나왔다.

  4. 그의 1988년은 클럽과 대표팀에서 요구받은 일을 함께 놓아야 더 흥미롭다. PSV는 리그에서 대량 득점으로 상대를 밀어붙였지만, 유러피언컵 후반부에는 원정골과 수비 집중력으로 살아남았다. 대표팀에서는 오른쪽 미드필더로 다섯 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다. 매번 마음껏 드리블할 수 있는 경기만 있었을 리 없다. 전개를 이어 주고 자기 쪽 공간을 맡는 시간을 소화하면서도, 공을 잡았을 때 꺼낼 개인기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5. ‘헤랄지뉴’(Geraldinho; 브라질 선수처럼 공을 다루는 기량을 빗댄 별명)라는 호칭을 듣고 재능에 비해 경력이 아쉬웠던 선수를 상상할 수도 있겠다. 정작 이 선수는 네덜란드 골든 슈를 두 번 받았고, 리그 여덟 번과 국내 컵 다섯 번을 우승했다. 판 바스턴이나 휠릿만큼 세계적인 상징이 되지는 못했어도, 좋은 팀의 주전으로 오래 우승하고 그 와중에 저런 발재간을 남겼다. 필자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보고 싶은 선수다.

헤랄트 파넨뷔르흐 프로필

네덜란드 국기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문장
본명
Gerald Mervin Vanenburg
등록명
헤랄트 파넨뷔르흐
출생
1964년 3월 5일
출생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신장
172cm
대표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윙포워드 · 측면·공격형 미드필더
후기 경력: 수비수
주요 등번호
7번 · 8번 · 10번 · 5번
별명
바람개비 · 헤랄지뉴
대표팀
1982-1992년 · 42경기 1골
1981년 아약스의 붉고 흰 유니폼을 입은 열일곱 살 헤랄트 파넨뷔르흐의 얼굴
1981년 7월 13일, 아약스 1군에 막 올라온 열일곱 살 파넨뷔르흐. 사진: Nationaal Archief/Anefo(CC0).

본명은 헤랄트 머르빈 파넨뷔르흐(Gerald Mervin Vanenburg).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난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이다. 훗날 아약스와 유벤투스에서 활약한 엣하르 다비츠(Edgar Davids; 네덜란드 중앙 미드필더) 역시 수리남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파넨뷔르흐의 축구를 따라가다 보면, 수비수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몸을 돌리는 특유의 리듬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개비’(Vaantje)와 헤랄지뉴라는 두 별명이 그 움직임에 제법 잘 어울린다.

아약스의 소년, 키프트와 판 바스턴 곁에서

파넨뷔르흐가 아약스 1군 리그 경기에 처음 나선 날은 1981년 4월 5일이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나고 한 달 만에 FC 덴하흐를 상대로 데뷔했다. 아약스 유소년에서 올라온 작은 공격수에게는 공을 다루는 재주와 상대에게 달려들 배짱이 있었고, 곧 오른쪽 공격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1981-82 시즌 리그 13골, 이듬해 17골을 넣었으니, 나이를 감안하지 않아도 꽤 매서운 출발이었다.

1982년 페예노르트전에서 아약스의 헤랄트 파넨뷔르흐가 왼발로 슈팅하는 장면
1982년 11월 28일 더 카위프. 파넨뷔르흐가 페예노르트전의 1-0을 만든다. 사진: Nationaal Archief/Anefo(CC0).

당시 아약스에는 빔 키프트가 있었고, 마르코 판 바스턴(Marco van Basten; 훗날 발롱도르를 세 번 받은 네덜란드 공격수)도 성장하고 있었다. 중앙 공격수가 수비를 붙들고 있으면 파넨뷔르흐에게는 옆에서 공을 몰고 들어갈 틈이 생겼다. 반대로 그가 바깥에서 수비수를 끌어내면 문전의 동료가 움직일 공간이 넓어졌다. 원톱의 골을 돕는 측면 공격수가 직접 두 자릿수 득점까지 해 주는 조합이니, 수비 입장에서는 한쪽에만 인원을 몰아주기 난처했을 법하다.

그 곁에는 프랑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 아약스에서 성장한 네덜란드 미드필더·수비수)가 있었고, 선수로 돌아온 요한 크라위프(Johan Cruijff; 1970년대 네덜란드 축구를 대표한 공격수)도 있었다. 아약스는 1981-82·1982-83 시즌을 연속 우승한 뒤 1984-85 시즌에도 리그를 가져왔다. 이 시기의 파넨뷔르흐를 판 바스턴에게 패스하던 유망주 정도로만 기억하기에는 본인이 만든 골과 출전 시간이 상당하다. 여섯 시즌의 공식전 기록이 209경기 72골이다.

그럼에도 아약스에서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1986년 여름 그는 국내 경쟁 상대인 PSV 에인트호번으로 옮겼다. 훗날 밀란에서 다시 모일 오렌지 삼총사의 경로와도 여기서 갈라진다. 파넨뷔르흐는 네덜란드에 남아, 다른 동료들과 유럽 정상에 오르는 쪽으로 전성기를 이어 갔다.

PSV에서 다시 만난 두 동료

1987년 PSV 에인트호번 유니폼을 입은 헤랄트 파넨뷔르흐의 흑백 인물 사진
1987년 8월 3일의 파넨뷔르흐. PSV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이 그의 경력에서 가장 긴 1년으로 이어졌다. 사진: Bart Molendijk·Nationaal Archief/Anefo(CC0).

PSV 이적 첫 시즌에도 리그 우승은 따라왔다. 하지만 이후의 트레블을 이해하려면 1987년의 선수 구성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키프트와, 바이에른 뮌헨·AS 모나코를 거친 레르뷔가 PSV에 합류했다. 두 사람 모두 1983년 아약스를 떠났던 동료다. 파넨뷔르흐로서는 넉 해 전까지 함께 뛰던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한꺼번에 다시 만난 것이다.

여기에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았다. 로날트 쿠만(Ronald Koeman; 후방 전개와 득점을 겸한 네덜란드 수비수)은 뒤에서 긴 패스를 보내고 직접 공격에도 가담했으며, 레르뷔는 그 앞의 중원을 오갔다. 키프트는 문전에서 마무리를 맡았다. 파넨뷔르흐가 혼자 먼 거리를 운반해야만 공격이 시작되는 구성이 아니었으므로, 상대 진영에서 공을 받았을 때 다음 동작을 고를 여유도 커졌다.

특히 키프트와의 재회가 반갑다. 측면에서 수비 한 명을 넘어섰을 때 문전의 동료가 어디로 들어올지 아는 관계라면, 드리블 뒤에 공을 오래 붙들 이유가 줄어든다. 수비수가 자신에게 붙으면 패스하고, 키프트를 따라 물러나면 직접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파넨뷔르흐의 발재간이 키프트의 문전 움직임과 만났을 때,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그만큼 까다로워졌다.

1987-88 시즌 파넨뷔르흐는 리그 34경기에 모두 출전해 11골을 넣었다. PSVWeb의 전 대회 집계는 49경기 12골이다. 리그 도움은 트랜스퍼마크트 기준 17개로 해당 시즌 1위. 골을 넣는 윙어와 기회를 만드는 미드필더의 일이 겹쳐 있던 선수답게, 공격의 입구와 끝에 모두 흔적을 남겼다.

1988년 트레블, 다섯 번의 무승부를 건너서

PSV는 그 시즌 네덜란드 리그와 KNVB 베이커(KNVB Beker; 네덜란드 축구 협회 컵대회)를 우승했다. 컵 결승에서는 로다 JC를 연장 끝에 3-2로 꺾었다. 리그에서는 골이 쏟아졌지만, 유러피언컵의 마지막 길은 훨씬 팽팽했다. 8강부터 결승까지 다섯 경기가 전부 무승부였다는 기록부터가 그렇다.

1988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흰색 PSV 유니폼을 입은 헤랄트 파넨뷔르흐가 벤피카 선수를 마주한 장면
1988년 5월 25일 슈투트가르트. 파넨뷔르흐는 벤피카와의 결승 120분을 뛰고 PSV의 네 번째 승부차기까지 넣었다. 사진: Pro Shots.

보르도와의 8강, 레알 마드리드와의 준결승은 각각 원정 1-1·홈 0-0으로 통과했다. 지금은 사라진 원정골 규정이 두 번 모두 PSV의 손을 들어 줬다. 파넨뷔르흐의 개인기만 묶어 보면 이런 팀의 색깔이 조금 의외일 수도 있다. 실제 유럽 무대에서는 앞선에서 한 번 공을 지켜 주는 일, 무리하게 잃지 않고 동료에게 연결하는 일의 무게가 커졌다. 한 번의 실점으로 탈락할 수 있는 경기에서 그 역시 90분의 상당 부분을 이런 싸움에 썼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벤피카와의 결승도 연장까지 0-0이었다. 승부차기에서 파넨뷔르흐는 PSV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했다. 양 팀이 다섯 명씩 모두 넣은 뒤, 여섯 번째 순서에서 한스 판 브뢰켈런(Hans van Breukelen; PSV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골키퍼)이 벤피카의 킥을 막았다. 리그·국내 컵·유러피언컵을 같은 시즌에 차지한 트레블이 그렇게 완성됐다.

파넨뷔르흐에게는 상대를 연속해서 제치는 장면도 있고, 120분을 버틴 결승에서 자기 순서의 페널티킥을 넣는 장면도 있다. 개인기 영상으로 처음 만났다면 후자의 기억은 조금 늦게 따라올 것이다. 히딩크는 유러피언컵 아홉 경기에 그를 모두 기용했고, 파넨뷔르흐는 가장 긴장되는 마지막 순서까지 자기 몫을 해냈다.

오렌지 삼총사 옆, 유로 1988의 7번

클럽의 축제가 끝나자 대표팀의 여름이 시작됐다. 리뉘스 미헐스(Rinus Michels; UEFA 유로 1988 우승 당시 네덜란드 감독)가 이끈 네덜란드에서 파넨뷔르흐는 7번을 달았다. 판 바스턴과 뤼트 휠릿(Ruud Gullit; 당시 AC 밀란에서 뛰던 네덜란드 공격수·미드필더)이 앞에 있었고, 그 뒤의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를 파넨뷔르흐가 맡았다. 레이카르트는 대표팀에서 중앙 수비를 맡았다. 같은 재능 있는 선수들도 이 대회에서는 각자의 위치가 제법 또렷했다.

유로 1988 잉글랜드전을 앞두고 네덜란드 대표팀 선발 선수들이 나란히 선 모습
1988년 6월 15일 잉글랜드전 킥오프 전. 휠릿 바로 옆 7번이 파넨뷔르흐다. 그는 우승까지 다섯 경기 모두 선발로 나왔다. 사진: Rob Bogaerts·Nationaal Archief/Anefo(CC0).

네덜란드는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이어 잉글랜드를 3-1, 아일랜드를 1-0으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으며, 개최국 서독에는 2-1 역전승을 거뒀다. 결승에서 다시 만난 소련을 2-0으로 이기기까지 파넨뷔르흐는 다섯 경기 모두 선발로 나왔다. 판 바스턴의 골과 휠릿의 존재감이 워낙 컸지만, 우승팀의 오른쪽은 대회 내내 그의 자리였다.

PSV에서 함께 우승한 판 브뢰켈런, 쿠만, 베리 판 아를러(Berry van Aerle; PSV 출신의 네덜란드 오른쪽 수비수), 키프트도 이 명단에 있었다. 밀란의 세 선수가 세계적인 얼굴이었다면, PSV 선수들은 클럽에서 완성한 성공을 대표팀으로 이어 온 집단이었다. 파넨뷔르흐는 양쪽의 동료들을 잘 아는 연결점에 서 있었다. 아약스에서 함께 성장한 얼굴들과 PSV에서 막 트레블을 거둔 얼굴들이 한 대표팀에 모였으니, 그에게 1988년은 여러 시절의 동료와 동시에 결실을 본 해였을 것이다.

반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이집트와의 첫 경기 한 번만 뛰었다. 대표팀 전체도 1988년의 흐름을 재현하지 못하고 16강에서 서독에 패했다. 파넨뷔르흐의 A매치 경력은 1982년부터 1992년까지 42경기 1골. 득점 수만 보면 클럽에서의 인상과 차이가 크지만, 대표팀에서 맡은 오른쪽 미드필더의 역할과 유로 우승 당시의 출전을 함께 보면 납득할 만한 간격이다.

두 번의 골든 슈, 그리고 일본에서 낮아진 위치

1988년과 1989년에는 네덜란드 골든 슈(Gouden Schoen; 《더 텔레흐라프》와 《풋발 인터나시오날》의 평가를 바탕으로 선정한 시즌 최우수 선수상)를 연속 수상했다. 이름 때문에 득점왕에게 주는 상으로 혼동하기 쉽지만, 이 경우는 시즌 활약에 대한 평가상이다. 당시에는 별도의 ‘올해의 축구선수’ 상도 존재해 1988년 쿠만, 1989년 호마리우가 그 상을 받았다. 파넨뷔르흐가 받은 두 개의 골든 슈는 그들과 나란히 자신의 활약을 인정받은 결과다.

PSV에서는 1993년까지 뛰며 다섯 번의 리그 우승을 거뒀다. 한때는 은퇴 뒤 필립스나 PSV에서 일하는 길까지 약속받았지만, 팀의 중심이 된 뒤의 생활은 우승 횟수만큼 순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PSV 서포터 협회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훗날 AS 로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고, 자신과 호마리우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겠다던 구단의 선수 보강에도 불만을 가졌다. 결국 계약을 정리한 뒤 1993년 여름 네덜란드를 떠났다.

주빌로 이와타의 하늘색 10번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헤랄트 파넨뷔르흐
주빌로 이와타의 10번 파넨뷔르흐. 일본에서는 공격수의 발재간을 지닌 선수가 최종 수비선까지 내려가 팀의 시간을 벌었다. 사진: web Sportiva.

스물아홉 살의 행선지는 주빌로 이와타(ジュビロ磐田; 야마하 발동기 축구부를 전신으로 하는 일본 구단)였다. 합류 당시에는 아직 J리그 승격 전이었고, 이듬해부터 일본 최상위 리그에서 뛰었다. 유럽 정상에 섰던 선수의 경력이 일본 프로축구 출범기의 한 구단과 겹치는 대목이다.

일본에서의 파넨뷔르흐는 공격수 시절보다 낮은 위치에서도 공을 다뤘다. 주빌로의 역대 선수 명부에는 수비수로 등재돼 있다. 앞선에서 수비수를 제칠 때 쓰던 첫 터치와 방향 전환은 후방에서 압박을 벗어나 공을 전개할 때에도 쓸 수 있었다. 아약스 유니폼을 입고 골키퍼를 넘기던 영상과, 수비수로 적힌 일본의 선수 명부를 나란히 놓으면 꽤 긴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1996년을 끝으로 일본을 떠난 뒤에는 고향의 FC 위트레흐트, 프랑스의 AS 칸(Association Sportive de Cannes Football), 독일의 TSV 1860 뮌헨(Turn- und Sportverein München von 1860)에서 뛰었다. 독일에서도 수비수로 활약하며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훗날 아약스의 기술 훈련 지도자로 돌아온 그는 압박 속에서 공을 제대로 받아 두는 능력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의 돌파와 말년의 후방 전개를 모두 거친 선수라, 첫 터치 이야기에 붙는 무게도 조금 다르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AFC 아약스 문장AFC 아약스1980-1986209경기 · 72골
PSV 에인트호번 문장PSV 에인트호번1986-1993259경기 · 66골
주빌로 이와타 문장주빌로 이와타1993-1996105경기 · 18골
1994-1996년 공식전
FC 위트레흐트 문장FC 위트레흐트19979경기 · 2골
AS 칸 문장AS 칸1997-199828경기 · 6골
TSV 1860 뮌헨 문장TSV 1860 뮌헨1998-200046경기 · 2골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문장네덜란드 대표팀1982-199242경기 · 1골

클럽은 공식전,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아약스의 리그 데뷔는 1980-81 시즌인 1981년 4월이다. 주빌로 카드는 구단 공식 명부의 1994-1996년 기록으로, 리그 86경기 14골·리그컵 16경기 3골·천황배 3경기 1골을 합산했다. 승격 전인 1993년 야마하 시절의 리그컵 4경기 2골은 이 수치에 포함하지 않는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AFC 아약스1980-81~1985-86 시즌8 · 7 · 11 · 12 · 14
PSV 에인트호번1986-87~1992-93 시즌8 · 10 · 16
주빌로 이와타1993-1996년 경기 자료10 · 7 · 12 · 14 · 15
FC 위트레흐트1997년자료 제한
AS 칸1997-98 시즌32
TSV 1860 뮌헨1998-99~1999-2000 시즌5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네덜란드UEFA 유로 19887
네덜란드1990 FIFA 월드컵8
네덜란드1982-1991년 등번호 자료6 · 7 · 8 · 10 · 12 · 13
네덜란드 U-201983 FIFA 세계청소년선수권8

트랜스퍼마크트의 시즌별 등번호와 대회 등록 명단 기준이다. 초기 경력에는 경기별 번호 배정이 포함되며, 일본의 달력 연도와 유럽식 시즌 표기는 일치하지 않는다. 위트레흐트는 확인 가능한 등번호 이력에 자료가 없어 특정 번호를 단정하지 않았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에레디비시Eredivisie

우승 8회: 1981-82, 1982-83, 1984-85, 1986-87, 1987-88, 1988-89, 1990-91, 1991-92

준우승: 1980-81, 1985-86, 1989-90, 1992-93

KNVB 베이커KNVB Beker · 네덜란드 협회 컵

우승 5회: 1982-83, 1985-86, 1987-88, 1988-89, 1989-90

준우승: 1980-81

네덜란드 슈퍼컵Nederlandse Supercup · 현재의 요한 크라위프 스할

우승: 1992년

유러피언컵European Cup

우승: 1987-88

유러피언 슈퍼컵European Super Cup

준우승: 1988년

인터콘티넨털컵Intercontinental Cup

준우승: 1988년

UEFA 유로UEFA European Championship

우승: 1988년

J리그 야마자키 나비스코컵Jリーグヤマザキナビスコカップ · 현재의 J리그컵

준우승: 1994년

헤랄트 파넨뷔르흐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네덜란드 골든 슈1987-88 · 1988-89 시즌네덜란드 언론 평가에 따른 시즌 최우수 선수상
  • 에레디비시 도움왕1987-88 시즌 · 17도움 (트랜스퍼마크트 집계)
  • FIFA 세계청소년선수권 베스트 111983년 · 현재의 FIFA U-20 월드컵
  • KNVB 소니 실내축구대회 최우수 선수1984년아약스 소속으로 출전한 암스테르담 대회
  • AFC 아약스 클럽 판 1001983년 9월 24일 · 아약스 공식전 209경기만 19세 203일에 공식전 100경기 도달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