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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레그로탈리에(Nicola Legrottaglie)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실패 뒤 유벤투스로 돌아온 수비수
치에보에서 아주리에 올랐고 유벤투스에서 추락한 뒤 키엘리니의 파트너로 돌아온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기록의 집계 범위와 박탈된 스쿠데토까지 사실대로 정리한다.
니콜라 레그로탈리에는 이탈리아 역대 센터백의 최상단에 놓이는 선수는 아니다. 다만 2002-03 시즌 치에보에서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떠올라 아주리에 선발됐고, 유벤투스에서 실패한 뒤 임대와 세리에 B를 통과해 다시 주전으로 돌아왔다. 그의 가치는 압도적인 전성기의 크기보다, 빅클럽의 기대에 무너진 선수가 같은 클럽에서 쓸모를 다시 증명한 경력의 굴곡에 있다.
라치오전에서 뒤로 흐른 공을 강하게 때린다. 제공된 짧은 기록 영상은 득점 여부보다 센터백이 전진했을 때의 슈팅 동작을 보여준다.
- 라치오전에서 뒤로 흐른 공을 강하게 때린다. 제공된 짧은 기록 영상은 득점 여부보다 센터백이 전진했을 때의 슈팅 동작을 보여준다.
- 경기장 밖의 레그로탈리에. 짧은 인터뷰 장면에 남은 표정과 말투를 선수 기록과 함께 본다.
삥이FC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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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로탈리에의 최고점은 유벤투스 이적 뒤가 아니라 이적 직전의 치에보였다. 2002-03 세리에 A에서 30경기 4골을 기록했고,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은 치에보에서 뛰던 그를 불러 데뷔 기회를 줬다. 명문 구단의 이름이 선수의 위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작은 구단에서의 한 시즌이 명문 구단과 아주리를 동시에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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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유벤투스는 노쇠하던 수비진의 다음 세대를 위해 그를 영입했다. 그러나 파올로 몬테로(Paolo Montero; 우루과이의 수비수, 1971-)나 치로 페라라(Ciro Ferrara; 이탈리아의 수비수, 1967-)처럼 압박 속에서 수비선을 통제하지 못했고, 첫 시즌의 실수는 기대가 컸던 만큼 더 크게 보였다. 2004년 ‘비도네 도로’ 투표 1위는 공식 축구상이 아니라 라디오 청취자가 뽑은 풍자상이다. 그래도 당시 대중이 이 이적을 얼마나 큰 실패로 받아들였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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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시기는 2007-08 시즌이었다. 장기 부상으로 이탈한 조르즈 안드라드(Jorge Andrade; 포르투갈의 수비수, 1978-)의 자리를 얻었고, 중앙으로 이동한 조르조 키엘리니(Giorgio Chiellini; 이탈리아의 수비수, 1984-)와 짝을 이뤘다. 레그로탈리에는 빠른 뒷공간 수비수라기보다 제공권과 대인 대응, 첫 패스로 키엘리니의 공격적인 전진을 받쳐 주는 쪽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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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경력을
유벤투스 154경기 10골이라고만 쓰면 맞지만 불완전하다. 그 수치는 모든 공식 대회 합계다. 리그만 보면 114경기 8골이고, 그 안에는 세리에 B 10경기가 포함된다. 같은 선수의 기록이 자료마다 달라 보이는 이유는 오류만이 아니라 집계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
공식 세리에 A 우승은 AC 밀란의 2010-11 시즌 한 차례다. 일부 경력표는 유벤투스의 2004-05 시즌도 ‘우승 뒤 박탈’로 병기해 두 개처럼 보이게 하지만, 현재 공식 기록은 그 스쿠데토를 인정하지 않는다. 더구나 레그로탈리에는 그 시즌 유벤투스에서 리그에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1월 볼로냐로 임대됐다. 현장 성적, 사후 판결, 선수의 실제 출전을 나누지 않으면 숫자가 역사를 대신하게 된다.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프로필
- 본명
- Nicola Legrottaglie
- 등록명
- 니콜라 레그로탈리에
- 출생
- 1976년 10월 20일
- 출생지
- 이탈리아 조이아델콜레
- 신장
- 185cm
- 포지션
- 센터백
- 주요 등번호
- 66번 · 33번 · 6번
- 주발
- 오른발
- 대표 국적
- 이탈리아
- A매치
- 16경기 · 1골
본명은 니콜라 레그로탈리에(Nicola Legrottaglie; 이탈리아의 축구선수·센터백, 1976-)다. 풀리아주 바리 광역시에 속한 조이아델콜레에서 태어났고 바리 유소년팀을 거쳤다. 신장은 당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선수 카드와 UEFA 선수 자료가 기록한 185cm를 적용했다. 후대 데이터베이스에는 189cm 또는 190cm로도 적히지만, 선수로 뛰던 시기의 이탈리아 리그 자료를 우선했다.
피스토이에세·프라토·AC 레자나 1919를 거쳐 모데나의 세리에 C1 우승에 참가했다.
첫 세리에 A 시즌은 13경기, 다음 시즌은 30경기 4골. 두 번째 해에 국가대표가 됐다.
첫 시즌 뒤 파비오 카펠로의 구상에서 밀려 볼로냐와 시에나로 향했다.
잔류와 승격을 거쳐 키엘리니의 파트너가 됐고 UEFA 챔피언스 리그로 돌아왔다.
밀란에서는 부상으로 멈췄지만 카타니아에서 리그 75경기 8골을 더했다.
모데나의 승격 수비수, 치에보의 뒤늦은 주전
레그로탈리에의 프로 경력은 바리 1군이 아니라 임대지에서 시작됐다. 피스토이에세와 프라토에서 세리에 C1을 경험했고, 치에보 이적 뒤에도 자리를 잡지 못해 AC 레자나 1919와 모데나로 다시 떠났다. 전환점은 2000-01 시즌 모데나였다. 지안니 데 비아시(Gianni De Biasi;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956-)의 팀에서 리그 32경기를 뛰며 세리에 C1 A조 우승과 승격을 함께했다. 모데나 구단이 공개한 당시 주전 명단에도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치에보가 처음 세리에 A에 올라 2001-02 시즌 5위를 차지했을 때 레그로탈리에는 리그 13경기 2골을 기록했다. ‘미라콜로 치에보’의 처음부터 절대적인 수비 리더였다고 부르기에는 출전 수가 적다. 그의 개인적 폭발은 한 시즌 뒤였다. 2002-03 시즌 30경기 4골, 2002년 11월 튀르키예전 A매치 데뷔, 2003년 4월 스위스전 헤더 득점이 이어졌다. 치에보의 작은 선수단에서 주전이 된 지 1년 만에 이탈리아 정상급 센터백 후보가 됐다.

700만 유로의 기대와 742만 4천 유로의 회계 기록
유벤투스는 2003년 6월 레그로탈리에를 영입했다. UEFA의 당시 보도는 거래액을 700만 유로로 적었다. 유벤투스 연차보고서의 선수등록권 장부에는 742만 4천 유로가 잡혀 있다. 하나는 이적 발표 때 기사에 쓰인 거래 금액이고, 다른 하나는 구단이 회계상 인식한 선수등록권 원가다. 오래된 이적료를 한 숫자로 단정할 때 자주 생기는 차이다.
당시 유벤투스는 페라라가 36세, 몬테로와 잔루카 페소토(Gianluca Pessotto; 이탈리아의 수비수, 1970-)가 32세였다. 레그로탈리에는 늙어 가는 수비진을 이어받을 26세 국가대표였다. 하지만 2003-04 시즌 리그 21경기 2골이라는 표면 아래에는 위치 선정과 압박 대응의 불안이 있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전에서는 마르첼로 리피(Marcello Lippi;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948-)가 그를 수비진 앞에 세워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Juan Carlos Valerón; 스페인의 공격형 미드필더, 1975-)을 전담하게 했다. 발레론이 계속 위치를 바꾸자 레그로탈리에도 끌려다녔고, 상대의 공간을 줄이려던 장치는 오히려 유벤투스의 대형을 흔들었다.
2004년 말 이탈리아 라디오 2의 프로그램 《카테르스포르트》가 진행한 비도네 도로(Bidone d’Oro; 세리에 A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선수를 청취자 투표로 뽑았던 풍자상)에서 그는 1,280표, 전체의 17.45%로 1위가 됐다.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알레산드로 델피에로를 근소하게 앞섰다. 이것을 정식 개인 수상처럼 자랑스럽게 나열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처럼 지우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유벤투스 첫해의 실패가 대중문화 속 조롱으로 굳어진 사건이었다.
카펠로의 0경기와 박탈된 스쿠데토를 어떻게 셀 것인가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1946-)가 부임한 2004-05 시즌, 레그로탈리에는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출전 0경기에 그쳤고 2005년 1월 볼로냐로 임대됐다. 다음 2005-06 시즌은 시에나에서 리그 28경기를 뛰었다. 이 두 시즌은 유벤투스의 칼초폴리 판결과 겹치기 때문에 ‘소속팀 우승’과 ‘선수 개인 우승’을 더욱 세밀하게 나눠야 한다.
현장에서 이긴 기록과 공식 우승 기록은 같지 않다
아래 세 칸을 함께 읽어야 레그로탈리에의 우승 횟수를 과장하거나 당시 경기 결과를 지우지 않는다.
유벤투스가 리그 1위로 시즌을 마쳤고 우승 트로피와 메달도 받았다.
이후 FIGC 판결로 스쿠데토가 박탈됐다. 현재 공식 우승팀은 없다.
유벤투스 리그 0경기 뒤 1월 볼로냐 임대. 일부 경력표는 ‘우승 후 박탈’로 병기하지만 공식 개인 우승에는 넣지 않는다.
유벤투스가 다시 리그 1위로 시즌을 마쳤다.
유벤투스의 우승이 박탈됐고 스쿠데토는 인테르에 배정됐다.
시즌 전체를 시에나 임대로 뛰었다. 유벤투스의 현장 1위와 별개로 그의 개인 우승 경력으로 셀 근거가 없다.
역사적 합의와 현재 공식 기록은 유벤투스의 두 시즌을 정식 스쿠데토로 세지 않는다. 그렇다고 38경기를 치러 두 차례 1위로 마친 현장 결과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필요도 없다. 가장 정확한 표기는 현장 1위 뒤 박탈과 공식 우승 불인정을 한 문장 안에 함께 두는 것이다.
세리에 B 잔류 뒤 찾아온 두 번째 유벤투스
레그로탈리에는 2006년 여름 유벤투스로 돌아왔다.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됐고 승점 9점 감점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리그 10경기에 출전했다. 부폰, 델피에로, 네드베드, 트레제게처럼 강등 뒤에도 남은 중심 선수와 같은 비중은 아니었지만, 승격 시즌을 안에서 통과했다는 사실이 다음 기회를 만들었다.
2007년 여름 유벤투스는 안드라드를 영입했고 레그로탈리에의 이적도 검토했다. 그러나 안드라드가 무릎뼈를 다치면서 순서가 바뀌었다. 키엘리니가 시즌 4라운드부터 중앙으로 이동해 레그로탈리에와 짝을 이룬 뒤, 유벤투스는 이어진 리그 14경기에서 10골만 내줬다. 레그로탈리에는 2007-08 세리에 A 33경기에서 뛰었다. 유벤투스 첫 시즌과 같은 선수였지만, 옆의 수비수와 팀의 요구가 달라지자 평가도 달라졌다.

2008-09 시즌에는 세리에 A 26경기와 UEFA 챔피언스 리그 6경기에 출전했다. 유벤투스가 2년 만에 유럽 무대로 돌아온 FC 아르트메디아 페트르잘카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는 후반 45분 헤더로 4-0의 마지막 골을 넣었다. 조별리그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도 33번으로 선발 출전했고 유벤투스는 2-0으로 이겼다. 이 시기는 올타임 레전드의 지배라기보다, 유럽의 강팀을 상대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주전 수비수로 회복한 시간이었다.
그의 장점은 공중볼에서 가장 선명했다. 2008년 BATE 보리소프전에서 머리를 다쳐 교체된 직후, UEFA 경기 보고서는 유벤투스가 그의 높이를 잃고 먼 쪽 크로스에 다시 실점했다고 적었다. 다만 제공권이 곧 완전한 수비를 뜻하지는 않았다. 수비선이 높아지고 넓은 뒷공간을 혼자 감당해야 할 때에는 방향 전환과 속도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한 경기로 끝난 밀란, 주전으로 끝낸 카타니아
파비오 칸나바로의 복귀와 레오나르도 보누치(Leonardo Bonucci; 이탈리아의 수비수, 1987-)의 합류는 다시 출전 시간을 줄였다. 2010-11 시즌 전반기 유벤투스 리그 출전은 5경기였다. 2011년 1월 마지막 날 AC 밀란으로 자유 이적했지만, 다음 날 라치오전에서 다니엘레 보네라 대신 교체로 들어간 뒤 리보르 코자크(Libor Kozák; 체코의 공격수, 1989-)의 무릎에 머리를 맞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경기가 밀란에서의 유일한 리그 출전이 됐다.
밀란은 2010-11 세리에 A를 우승했다. 레그로탈리에의 공식 경력에도 이 스쿠데토가 남는다. 그러나 한 경기 39분을 뛴 선수를 우승의 주역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우승 선수단의 일원과 우승을 만든 핵심 선수 사이의 간격까지 적는 것이 이 선수의 실제 크기를 보존하는 방법이다.

카타니아에서는 다시 역할이 커졌다. 2011-12 시즌 리그 31경기 5골을 시작으로 세 시즌 동안 75경기 8골을 기록했다. 2012-13 시즌 카타니아는 세리에 A 8위로 구단 최고 순위를 만들었다. 마지막 2013-14 시즌에는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고 시즌 뒤 은퇴했다. 유벤투스에서 밀려난 34세 수비수가 한 경기만 뛰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칠리아에서 주전 세 시즌을 더 보낸 뒤 끝낸 경력이다.
이탈리아 대표팀 16경기 1골
레그로탈리에는 2002년 11월 튀르키예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세 번째 출전이었던 2003년 4월 스위스전에서는 파브리치오 미콜리(Fabrizio Miccoli; 이탈리아의 공격수, 1979-)의 코너킥을 헤더로 연결해 유일한 국가대표 골을 넣었다. 치에보 소속으로 아주리에 들어간 이 시점이 개인 경력의 가장 가파른 상승 구간이었다.
유벤투스 첫 시즌 뒤 UEFA 유로 2004 최종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2008년 8월 키엘리니의 부상 대체로 약 4년 만에 대표팀에 돌아왔고,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명단에도 포함됐다. 최종 기록은 16경기 1골이다. 아주리의 한 시대를 지배한 센터백이 아니라, 전성기와 복귀기의 두 구간에서 대표팀 경쟁력을 확인받은 선수였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AS 바리1994-1998공식전 0경기
AC 피스토이에세 · 임대1996-1997공식전 33경기 · 3골
AC 프라토 · 임대1997-1998공식전 30경기
AC 키에보베로나1998-2003공식전 74경기 · 6골
모데나 FC · 임대2000-2001확인 공식전 32경기 · 1골
볼로냐 FC 1909 · 임대2005공식전 11경기
칼초 카타니아2011-2014공식전 79경기 · 8골카드는 유소년 경력을 제외한 모든 성인 소속 클럽과 이탈리아 대표팀을 빠짐없이 담았다. 클럽은 정규 리그뿐 아니라 승격 플레이오프, 코파 이탈리아와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 유럽 대항전, 수페르코파를 포함한 공식전을 집계했다. 시즌·대회별 내역이 공개된 집계가 범위를 가장 구체적으로 밝히므로 공식전 통산 448경기 29골을 대표값으로 적용했다. (자료 편차: 트랜스퍼마르크트는 447경기 29골로 한 경기 적고, 카타니아도 시즌별 합계는 79경기지만 일부 회고 자료에는 80경기로 적혀 전체 기록에 1경기 차이가 있다.) 모데나의 2000-01 시즌은 구단이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와 수페르코파를 치렀으나 선수별 출전 자료가 완전하지 않아, 카드에는 확인 가능한 32경기 1골을 적었다.
역대 등번호
클럽
| 소속팀 | 확인 시즌 | 등번호 |
|---|---|---|
| AC 키에보베로나 | 1999-2000 · 2001-2003 | 4 · 66 |
| 모데나 FC | 2000-01 | 6 |
| 유벤투스 FC | 2003-04 · 2004-05 · 2006-11 | 23 · 6 · 30 · 33 |
| 볼로냐 FC 1909 | 2004-05 | 21 |
| AC 시에나 | 2005-06 | 66 |
| AC 밀란 | 2010-11 | 66 |
| 칼초 카타니아 | 2011-2014 | 6 |
국가대표팀
| 대표팀 | 확인 기간 | 등번호 |
|---|---|---|
| 이탈리아 | 2002-2009년 경기 자료 | 14 · 13 · 6 · 4 |
유벤투스에서 가장 오래 쓴 번호는 33번이며, 치에보와 시에나·밀란에서는 66번, 카타니아에서는 6번을 사용했다. 같은 2010-11 시즌 밀란 자료에 33번과 66번이 함께 남아 있지만 UEFA 대회 선수 명단과 실제 경기 기록에서는 66번이 확인된다.
대표 우승 경력
우승: 2000-01 · 모데나
우승: 2001 · 모데나
우승: 2003 · 유벤투스
우승: 2006-07 · 유벤투스
우승: 2010-11 · AC 밀란
별도 병기: 2004-05 · 유벤투스, 현장 우승 뒤 박탈
준우승: 2003-04 · 유벤투스
니콜라 레그로탈리에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비도네 도로Rai Radio 2 청취자 선정 풍자상2004년 · 1위
비도네 도로 이후의 선수
레그로탈리에를 기억하는 두 개의 숫자는 비도네 도로 1위와 유벤투스 154경기다. 첫 숫자만 남기면 실패한 영입이고, 두 번째 숫자만 남기면 오랫동안 주전이었던 구단 레전드처럼 보인다. 실제 경력은 그 사이에 있다. 유벤투스의 첫 시즌과 마지막 시즌 사이에는 볼로냐·시에나 임대, 세리에 B 10경기, 키엘리니와의 주전 시즌, 다시 벤치로 밀린 시간이 모두 들어 있다.
그는 신앙이 자신의 생활과 경기 태도를 바꿨다고 공개적으로 반복해 말했다. 2008년 재계약 당시에도 자신의 ‘재탄생’을 신앙과 연결했다. 다만 사생활의 금욕 기간을 선수 평가의 중심으로 소비할 이유는 없다. 확인 가능한 당사자의 말은 그의 복귀를 스스로 어떻게 해석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두고, 경기장에서의 재평가는 출전과 전술 변화로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레그로탈리에는 시대를 대표한 절대적인 센터백은 아니었다. 치에보에서 한 차례 정상급으로 올라섰고, 유벤투스에서 크게 실패했으며, 같은 유벤투스에서 유럽 무대를 맡을 수 있는 선발 수비수로 돌아왔다. 한 선수의 커리어가 언제나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2000년대 세리에 A의 조연이다.
참고 자료
- UEFA: Legrottaglie relishing Juve move: 2003년 이적료 700만 유로, 치에보 2002-03 리그 30경기 4골, 아주리 데뷔와 득점.
- Juventus: Annual Financial Report 2006/07: 선수등록권 장부가액 742만 4천 유로와 계약 기간.
- UEFA: Legrottaglie leaves Juve: 2004-05 시즌 리그 출전 없이 볼로냐로 임대된 경위.
- UEFA: Determined Depor ditch Juventus: 발레론 전담 수비와 데포르티보전 전술 맥락.
- UEFA: Ranieri perde Chiellini: 2007-08 시즌 키엘리니와 중앙 수비 조합을 이룬 뒤 14경기 10실점.
- UEFA: Top ten unsung heroes: 조르즈 안드라드의 부상 뒤 얻은 기회와 유벤투스 복귀 평가.
- UEFA: Juventus prove too strong for Artmedia: 2008년 유럽 복귀전의 레그로탈리에 헤더 득점.
- UEFA: Iaquinta spoils BATE celebrations: 레그로탈리에 교체 뒤 제공권 공백이 드러난 경기 흐름.
- UEFA: Legrottaglie arrives to strengthen Milan defence: 유벤투스에서 밀란으로의 자유 이적과 대표팀 16경기.
- Sky Sport: Milan, Legrottaglie dimesso: 밀란 데뷔 라치오전의 머리 부상과 병원 이송.
- FIGC: Assegnazione Scudetto 2006 all'Inter: 2005-06 스쿠데토의 인테르 배정과 유벤투스 이의 제기 처리.
- FIGC: Calciopoli decision: 2004-05 스쿠데토 박탈과 2005-06 우승 불인정의 판결 기록.
- La Gazzetta dello Sport: Nicola Legrottaglie 2007/08: 185cm·73kg, 출생지, 시즌별 리그 출전 기록.
- Carriere Calciatori: Nicola Legrottaglie: 이탈리아 리그 시즌별 출전과 득점 교차검증.
- 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 Nicola Legrottaglie 시즌·대회별 기록표: 리그, 플레이오프, 국내 컵, 유럽 대항전과 수페르코파를 분리한 공식전 448경기 29골 집계.
- Transfermarkt: Nicola Legrottaglie 상세 기록: 대회별 공식전 447경기 29골과 자료 간 한 경기 편차 교차검증.
- Sky Sport: Catania의 주요 선수 기록: 카타니아 공식전 79경기 집계 교차검증.
- Corriere della Sera: Il Bidone d'Oro a Legrottaglie: 2004년 투표 방식, 7,334표의 전체 표본과 최종 순위.
- Modena FC: Storia: 2000-01 세리에 C1 A조 우승과 당시 주전 명단.
- Lega Pro: Supercoppa Serie C albo d'oro: 모데나의 2000-01 수페르코파 우승.
- 90min: Chievo Verona dei miracoli: 치에보 시절 본문 사진.
- UEFA: Stylish Juve earn Ranieri praise: 대표 이미지의 경기와 레그로탈리에·키엘리니 득점 장면.
- Goal: Legrottaglie nello staff di Rastelli: 카타니아 시절 본문 사진.
- Wikipedia: AC ChievoVerona: 선수 경력 카드의 치에보 문장.
- Wikipedia: Juventus FC: 선수 경력 카드의 유벤투스 문장.
- Wikimedia Commons: Logo CATANIA FC: 선수 경력 카드의 카타니아 문장.
- Wikimedia: Logo SSC Bari 2018: 선수 경력 카드의 바리 문장.
- Wikipedia: FC Pistoiese SSD: 선수 경력 카드의 피스토이에세 문장.
- Wikimedia: AC Prato Logo: 선수 경력 카드의 프라토 문장.
- Wikipedia: AC Reggiana 1919: 선수 경력 카드의 AC 레자나 1919 문장.
- Wikipedia: Modena FC 2018: 선수 경력 카드의 모데나 문장.
- 위키미디어: 볼로냐 FC 1909 로고: 선수 경력 카드의 볼로냐 문장.
- Wikipedia: Siena FC SSD: 선수 경력 카드의 시에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