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 코파 아메리카
1920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호세 피엔디베네
비냐델마르에서 우루과이가 브라질을 6-0으로 무너뜨리고 왕좌를 되찾은 1920년, 마에스트로 호세 피엔디베네와 앙헬 로마노의 기록.

제4회 남미축구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de Fútbol 1920대회 기록
- 개최국
- 칠레
- 대회 기간
- 1920년 9월 11일-10월 3일
- 참가국
- 아르헨티나
· 브라질
· 칠레
· 우루과이
- 방식
- 4개국 단일 리그전
- 개최 도시
- 비냐델마르
| 순위 | 국가 | 전적 | 득실 |
|---|---|---|---|
| 1 | 우루과이 |
2승 1무 | 9득점 2실점 |
| 2 | 아르헨티나 |
1승 2무 | 4득점 2실점 |
| 3 | 브라질 |
1승 2패 | 1득점 8실점 |
| 4 | 칠레 |
1무 2패 | 2득점 4실점 |

개인 기록
여담
비냐델마르에서 처음 열린 남미선수권
다섯 번째 남미축구선수권은 칠레에서 처음 열렸다. 경기는 산티아고가 아니라 해안도시 비냐델마르의 스포르팅 경기장에 모였다. 우루과이는 엑토르 스카로네와 1916년 득점왕 이사벨리노 그라딘 없이 원정길에 올랐다. 감독 에르네스토 피골리는 제한된 명단을 피엔디베네의 경기 조율과 로마노의 측면 득점력으로 다시 짰다.[3]
9월 12일 첫 상대 아르헨티나전에서 피엔디베네가 8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후반 바달리니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우루과이 골키퍼 마누엘 벨트란 레냐시는 페드로 칼로미노의 페널티킥을 막았다. 1-1은 우루과이의 유일한 무승부가 됐고, 우승 경쟁에서 잃지 않은 승점 하나의 값이 커졌다.[3]
마지막 날의 역전과 엇갈리는 선수 평가
아르헨티나가 9월 25일 브라질을 2-0으로 꺾으면서 우루과이는 마지막 칠레전에서 이겨야 했다. 개최국이 먼저 득점했지만 로마노가 동점을 만들고 페레스가 역전골을 넣었다. 2승 1무, 9득점 2실점. 6-0이 가장 큰 장면이었다면 우승을 확정한 것은 가장 작은 한 골 차였다.[3]
‘최우수 선수’는 당시 공식 시상명이 아니다. CONMEBOL의 후대 대회사는 피엔디베네를 1920년의 인물로 소개하지만, 우루과이축구협회와 축구사가협회의 상세 회고는 안토니오 우르디나란을 대회 최고의 선수로 평가한다. 여기서는 피엔디베네를 표제 인물로 삼되, 서로 다른 평가를 함께 남긴다.[1][3]
6-0, 왕좌를 되찾는 가장 거친 방식
1920년 9월 18일의 우루과이-브라질전은 전년도 챔피언과 그 이전의 챔피언이 만난 경기였다. 정확한 득점자는 앙헬 로마노 2골, 호세 페레스 2골, 안토니오 우르디나란 1골, 안토니오 캄폴로 1골이다. 종전 원고의 ‘페레스 해트트릭’은 공식 경기 기록과 맞지 않아 바로잡았다.[3] 브라질은 세 경기에서 단 한 골만 넣고 여덟 골을 내줬다. 이 6-0은 지금도 우루과이가 브라질을 상대로 거둔 최다 점수 차 승리로 남아 있다.
점수 차는 2014년 벨루오리존치에서 브라질이 독일에 당한 1-7과 같다. 두 경기의 시대와 무게는 다르지만, 브라질 대표팀 역사에서 여섯 골 차 패배가 얼마나 드문 흉터인지는 이 평행선만으로도 선명해진다.
마에스트로가 골보다 오래 남긴 것
피엔디베네의 대회 득점은 한 골이었다. 그런데 후대의 대회사는 득점왕 둘보다 그를 1920년 우루과이의 ‘인물’로 골랐다. 별명이 설명한다. El Maestro, 마에스트로. 골문 앞의 숫자보다 공격의 방향과 박자를 설계하는 선수였고, 페냐롤에서 보낸 긴 경력과 대표팀의 세 차례 남미 정상은 그 평가의 배경이 됐다.
로마노는 1917년에 이어 두 번째 득점왕이 됐다. 흥미롭게도 두 대회 모두 회고적 최우수 선수의 이름은 동료였다. 로마노가 반복해서 골의 주인이 되는 동안, 스카로네와 피엔디베네가 각 대회의 얼굴로 남았다. 초기 우루과이의 힘은 한 명의 영웅보다 역할이 겹치지 않는 거장들의 집합에 있었다.
칠레의 붉은 셔츠
개최국 칠레는 승리 없이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훗날 더 오래 남을 색을 얻었다. CONMEBOL은 칠레가 이 대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붉은 대표팀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1] 우승은 우루과이의 것이었고, 이미지의 유산은 개최국에 남았다.
출처와 기록 기준
- «Historia de la CONMEBOL Copa América», CONMEBOL.
- «1920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MVP “호세 피엔디베네”», 삥이의 축구 기록.
- «Copa América 1920», AUF·AHIFU.
‘대회 대표 선수’는 당시 공식 MVP 시상식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CONMEBOL은 피엔디베네를 대회의 인물로, AUF·AHIFU는 안토니오 우르디나란을 최고의 선수로 평가한다. 득점왕은 로마노와 페레스의 공동 3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