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 코파 아메리카

1923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호세 나사시

우루과이가 전승 우승과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함께 얻은 1923년, 주장 호세 나사시와 득점왕 페드로 페트로네의 시작.
1923 코파 아메리카와 호세 나사시를 기록한 표지
1923년 남미축구선수권대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주장이 악수하는 모습
1923년 대회 아르헨티나-브라질전 주장 악수
1917년 제작 이후 그대로인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의 은잔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

제7회남미축구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1923

당대 명칭은 1926년 칠레 잡지 《로스 스포츠》의 회고로만 전해 공식 약칭만 적었다.

대회 기록

개최국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대회 기간
1923년 10월 29일-12월 2일
참가국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기 · 브라질 브라질 국기 · 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방식
4개국 단일 리그전
개최 도시
몬테비데오
순위 국가 전적 득실
1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통산 4번째 우승 3승 6득점 1실점
2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기 통산 4번째 준우승 2승 1패 6득점 6실점
3 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1승 2패 4득점 6실점
4 브라질 브라질 국기 3패 2득점 5실점
우루과이 대표팀 주장 호세 나사시의 역사적 사진
우루과이 축구의 첫 황금기를 대표한 주장 호세 나사시.

개인 기록

대회 대표 선수호세 나사시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공동 득점왕페드로 페트로네3골 ·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공동 득점왕비센테 아기레3골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기

여담

대표팀을 통째로 바꾼 17명의 명단

우루과이는 1923년을 앞두고 국내 축구의 분열과 세대교체를 동시에 겪었다. 협회 밖으로 이탈한 구단의 유명 선수들은 뽑을 수 없었고, 선발위원회는 네 개 연습팀을 꾸린 뒤 17명으로 명단을 압축했다. 경험자 파스쿠알 솜마·앙헬 로마노·엑토르 스카로네 곁에 호세 나사시, 페드로 세아, 알프레도 기에라, 호세 비달, 페드로 페트로네가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3]

그중 나사시는 11월 4일 파라과이전에서 대표팀에 데뷔했다. 첫 A매치부터 수비의 중심이 된 그는 브라질전 2-1, 아르헨티나전 2-0까지 세 경기를 모두 뛰었다. 그의 국가대표 경력은 이 대회 첫날부터 시작됐다.[4]

한 주에 한 경기, 5주의 긴 대회

대회는 원래 10월 초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아르헨티나가 자국 리그 종료를 이유로 연기를 요청했고, 브라질은 10월 18일에야 참가를 확정했다. 칠레는 불참했고 페루도 대표단 구성의 문제를 들어 참가를 미뤘다. 네 나라, 여섯 경기뿐이었지만 매주 일요일 한 경기씩 치러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이어졌다.[3]

우루과이는 파라과이를 2-0, 브라질을 2-1로 이긴 뒤 마지막 아르헨티나전에서 페트로네와 솜마의 골로 2-0 승리했다. 세 경기 6득점 1실점. 순위표의 짧은 숫자 뒤에는 한 달 넘게 이어진 기다림과, 처음 함께 뛴 선수들이 매 경기 확신을 쌓은 과정이 있었다.

6골의 팀에서 수비수가 얼굴이 된 이유

우루과이는 파라과이를 2-0, 브라질을 2-1, 아르헨티나를 2-0으로 꺾었다. 늘 두 골을 넣었고 세 경기 중 두 경기에서 골문을 닫았다. 공격의 폭발보다 반복 가능한 통제가 우승을 만들었다. 회고적 최우수 선수로 나사시가 남은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수비수였고 주장이었으며, 팀의 리듬을 뒤에서 정한 인물이었다.

이때 나사시는 아직 1930년 월드컵 트로피를 든 노련한 영웅이 아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주장이었다. 1923년의 우승은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금메달, 1930년 초대 월드컵 우승으로 이어질 권위가 처음 대륙 전체에 찍힌 장면이었다.

페트로네의 첫 번째 3골

공격수 페드로 페트로네는 파라과이전 한 골과 브라질전 두 골로 공동 득점왕이 됐다. 다음 해에는 네 골로 단독 득점왕까지 이어간다. 1923년과 1924년을 연달아 놓으면, 우루과이의 전성기는 나사시의 수비와 페트로네의 득점이 양쪽 기둥처럼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코파 우승이 파리행 표가 되다

1923년 대회는 1924 파리 올림픽의 남미 예선 역할도 했다. 우승한 우루과이는 대서양을 건넜고, 유럽이 거의 알지 못하던 짧은 패스와 유연한 움직임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결승에서는 스위스를 3-0으로 꺾었다. 코파 아메리카의 지역 패권이 세계무대의 충격으로 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반년도 되지 않았다.

칠레는 1921년에 이어 다시 불참했다. 원문에서는 ‘어차피 참가해도 졸전’이라고 웃어넘겼지만, 그 빈칸 뒤에는 당시 협회의 재정과 장거리 이동, 국내 축구 운영 문제가 함께 놓여 있었다. 대회표의 불참 표시는 실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Historia de la CONMEBOL Copa América», CONMEBOL.
  2. «Copa América 1923», AUF·AHIFU.
  3. «José Nasazzi», AUF.
  4. 머리 그림: «Argentina vs. Brasil - El Gráfico 230»,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트로피 사진: «Copa América de Fútbol», CONMEBOL 박물관(루케) 소장 원본, Hazaña17 촬영,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José Nasazzi의 성은 우루과이 스페인어 발음을 검토해 ‘나사시’로 적는다. ‘대회 대표 선수’는 후대의 회고적 선정이다.

댓글

광고·욕설·도배·연락처 홍보는 지웁니다. 링크가 들어간 댓글은 확인한 뒤 공개됩니다.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