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 · 코파 아메리카

1924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페드로 페트로네

파리 올림픽 금메달 직후 우루과이가 다시 남미를 제패한 1924년, 두 대회 연속 득점왕 페드로 페트로네의 기록.
1924 코파 아메리카와 페드로 페트로네를 기록한 표지
코파 아메리카 트로피

제8회 남미축구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de Fútbol 1924

대회 기록

개최국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대회 기간
1924년 10월 12일-11월 2일
참가국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기 · 칠레 칠레 국기 · 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방식
4개국 단일 리그전
개최 도시
몬테비데오
순위 국가 전적 득실
1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통산 다섯 번째 우승 2승 1무 8득점 1실점
2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기 통산 다섯 번째 준우승 1승 2무 2득점 0실점
3 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1승 1무 1패 4득점 4실점
4 칠레 칠레 국기 3패 1득점 10실점
1924년 우루과이 축구 관련 역사 사진
1924년 우루과이 축구의 한 장면을 담은 역사 사진.

개인 기록

대회 대표 선수페드로 페트로네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득점왕페드로 페트로네4골 ·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득점 2위앙헬 로마노 · 일데폰소 로페스각 2골 · 우루과이 우루과이 국기 · 파라과이 파라과이 국기

여담

파리에서 돌아온 지 넉 달 만의 방어전

우루과이는 1924년 6월 파리 올림픽에서 유고슬라비아·미국·프랑스·네덜란드·스위스를 차례로 꺾고 금메달을 땄다. 유럽에 처음 선보인 짧은 패스와 위치 교환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넉 달 뒤 거의 같은 핵심 명단으로 다시 남미선수권에 나섰다. 1924년 코파는 단순한 국내 개최 대회가 아니라 ‘세계 챔피언’으로 돌아온 팀의 첫 대륙 방어전이었다.[3]

첫 경기 칠레전의 선발에는 마살리, 나사시, 아리스페, 우르디나란, 스카로네, 페트로네, 세아, 로마노가 함께 있었다. 파리 결승의 골을 만들었던 공격 축이 그대로였다. 페트로네는 칠레전 해트트릭과 파라과이전 한 골로 2년 연속 득점왕이 됐다.[4]

마지막 0-0이 보여준 우승 방식

우루과이는 칠레를 5-0, 파라과이를 3-1로 이겨 마지막 아르헨티나전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스카로네와 페드로 싱고네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나사시가 이끄는 수비는 아르헨티나의 테소리에레·비돌리오·온사리·가비노 소사·마누엘 세오아네가 나선 공격을 무득점으로 묶었다. 0-0은 소극적인 우연이 아니라 필요한 결과를 정확히 지킨 경기였다.[4]

전문 기자들은 페트로네를 대회 최고의 선수로 평가했다. 4골의 득점왕이라는 숫자뿐 아니라, 올림픽 5경기 7골 뒤에도 대륙대회에서 결정력을 이어간 연속성이 평가의 핵심이었다. 1923년 코파 3골, 1924년 올림픽 7골, 1924년 코파 4골은 1년 남짓한 시간에 축적된 기록이다.[4]

파라과이가 열기로 했고, 우루과이가 치렀다

원래 개최 순번은 파라과이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회를 감당할 경기장과 교통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전년도 개최국 우루과이가 다시 대회를 맡았다. 이 선택은 우루과이 입장에서 절묘했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국민적 열기가 최고조에 오른 해, 세계를 제패한 대표팀을 자국 관중 앞에서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챔피언은 지치지 않았다

우루과이는 칠레를 5-0, 파라과이를 3-1로 꺾었다. 마지막 아르헨티나전은 0-0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대회 내내 한 골도 내주지 않았지만 두 경기에서 비겨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루과이는 더 많이 공격했고, 필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먼저 확보했다. 1923년 코파 우승, 19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 1924년 코파 우승이 한 줄로 이어졌다.

페트로네, 7골로 연결된 두 해

페트로네는 1923년 세 골에 이어 1924년 네 골을 넣었다. 칠레전에서 해트트릭을 완성했고 파라과이전에서도 골을 보탰다. 두 해 합계 7골, 두 번의 득점왕, 두 번의 우승. 나사시가 뒤에서 권위를 만들었다면 페트로네는 점수판에 그 권위를 번역했다.

앙헬 로마노도 두 골을 더했다. 그는 1916년 첫 대회부터 1924년까지 우루과이의 다섯 차례 우승을 모두 경험한 세대의 연결고리였다. 1920년에는 공동 득점왕, 1924년에는 득점 2위. 스카로네·나사시·페트로네처럼 시대의 얼굴이 바뀌는 동안에도 로마노는 공격의 한 자리를 오래 지켰다.

브라질 없는 대회

전년도 최하위였던 브라질은 1924년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칠레가 돌아와 다시 네 나라의 리그가 됐다. 오늘날처럼 모든 회원국의 참가를 전제로 한 대회가 아니었다. 이동 비용, 협회 사정, 개최 여건에 따라 참가국 수와 구성이 흔들렸다. 초기 코파 아메리카의 연표를 읽을 때 순위표의 빈 나라까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Historia de la CONMEBOL Copa América», CONMEBOL.
  2. «1924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MVP “페드로 페트로네”», 삥이의 축구 기록.
  3. «Juegos Olímpicos 1924», AUF·AHIFU.
  4. «Copa América 1924», AUF·AHIFU.

페트로네의 ‘대회 대표 선수’는 당시 공식 시상식이 아니라 후대의 회고적 선정이다. AUF·AHIFU는 당시 전문 기자단이 그를 대회 최고의 선수로 평가했다고 기록한다. 득점은 4골 단독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