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 · 코파 아메리카
1929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마누엘 페레이라
암스테르담의 패배를 안고 돌아온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으로 네 번째 남미 정상에 오른 1929년, 주장 마누엘 페레이라가 이끈 우승을 기록한다.

제12회 남미축구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de Football 1929대회 기록
- 개최국
- 아르헨티나
- 대회 기간
- 1929년 11월 1-17일
- 참가국
- 아르헨티나
· 파라과이
· 우루과이
· 페루
- 방식
- 4개국 단일 리그전
- 개최 도시
- 부에노스아이레스
최종 순위
| 순위 | 국가 | 전적 | 득실 |
|---|---|---|---|
| 1 | 아르헨티나 |
3승 | 9득점 1실점 |
| 2 | 파라과이 |
2승 1패 | 9득점 4실점 |
| 3 | 우루과이 |
1승 2패 | 4득점 6실점 |
| 4 | 페루 |
3패 | 1득점 12실점 |
개인 기록
여담
암스테르담의 결승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만났다
1928년 남미선수권은 열리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암스테르담 올림픽에 참가했고, 두 나라는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퉜다. 재경기까지 이어진 승부의 승자는 우루과이였다. 1929년 남미선수권 마지막 경기가 두 나라의 맞대결로 남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그 패배를 되돌려 받을 무대가 됐다.[1]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3-0, 파라과이를 4-1로 꺾었다. 우루과이는 첫 경기에서 파라과이에 0-3으로 무너졌지만 페루를 4-1로 이겼다. 마지막 날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를 꺾으면 순위는 다시 얽힐 수 있었다. 경기의 이름은 리그 최종전이었으나 기억의 성격은 결승에 가까웠다.
‘놀로’ 페레이라가 잡은 경기의 방향
페레이라는 파라과이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는 전반 14분,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 왼발 슛으로 선제골을 만들었다. 마리오 에바리스토가 추가골을 넣어 2-0. 아르헨티나는 세 경기를 모두 이기고 한 골만 내주며 우승했다.[2]
그의 역할은 골 수보다 넓었다. 중앙에서 동료의 움직임을 읽고 공격의 속도를 정했으며, 주장과 전술적 안내자의 경계를 함께 맡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얻은 ‘올림픽 조종사’라는 별명은 슈팅보다 경기 전체를 운전한다는 의미였다. 1929년은 그 별명이 대표팀 우승의 구조로 이어진 대회였다.[3]
득점왕은 준우승국에서 나왔다
대회 최다 득점자는 파라과이의 아우렐리오 곤살레스였다. 그는 우루과이를 3-0으로 꺾은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고, 페루전에서도 득점을 쌓아 5골을 기록했다. 파라과이는 1922년에 이어 다시 준우승했다. 우승국의 조직과 준우승국의 골잡이가 서로 다른 개인 기록을 가져간 대회였다.
네 번째 우승, 그리고 첫 월드컵으로
아르헨티나의 우승은 1925·1927·1929로 이어지는 1920년대 후반의 세 번째 정상이었다. 세오아네에서 페레이라로 공격의 중심이 이동했지만, 카를로스 페우셀레와 마리오 에바리스토 같은 새 자원이 폭을 넓혔다. 이듬해 우루과이에서 열린 첫 FIFA 월드컵에서도 페레이라는 주장을 맡았다.
1929년은 한 시대의 끝이기도 했다. 남미선수권은 이후 6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다음 공식 대륙대회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다시 만났을 때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둘러싼 경쟁이 두 협회의 관계까지 바꾼 뒤였다.
출처와 기록 기준
- «Southamerican Championship 1929», RSSSF.
- «Campeones de América, una vez más», AFA.
- «Nolo Ferreira, figura y leyenda de nuestro fútbol», AFA.
- «Manuel-ferreira.jpg», Wikimedia Commons, 공공영역.
‘대회 대표 선수’는 당시 별도의 공식 MVP 트로피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AFA의 경기 회고와 주장·득점·전술적 비중을 종합해 페레이라를 표제 인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