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 · 코파 아메리카
1937 코파 아메리카 최우수 선수: 비센테 데라마타
6개 나라가 모인 최대 규모의 대회, 브라질과의 연장 결승에서 17세 비센테 데라마타가 2골로 아르헨티나의 다섯 번째 우승을 결정한 1937년의 기록.


제14회남미축구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1937
이해 대회의 당대 원문 명칭은 확인하지 못해 공식 약칭만 적었다.
대회 기록
- 개최국
- 아르헨티나
- 대회 기간
- 1936년 12월 27일-1937년 2월 1일
- 참가국
- 아르헨티나
· 브라질
· 우루과이
· 파라과이
· 칠레
· 페루
- 방식
- 6개국 단일 리그 후 우승 결정전
- 개최 도시
- 부에노스아이레스
최종 순위
| 순위 | 국가 | 전적 | 득실 |
|---|---|---|---|
| 1 | 아르헨티나 |
리그 4승 1패·결정전 승 | 리그 12득점 5실점 |
| 2 | 브라질 |
리그 4승 1패·결정전 패 | 리그 17득점 9실점 |
| 3 | 우루과이 |
2승 3패 | 11득점 14실점 |
| 4 | 파라과이 |
2승 3패 | 8득점 16실점 |
| 5 | 칠레 |
1승 1무 3패 | 12득점 13실점 |
| 6 | 페루 |
1승 1무 3패 | 7득점 10실점 |
개인 기록
여담
6개 나라와 겨울이 아닌 여름의 장기전
대회는 1936년 12월에 시작해 이듬해 2월까지 이어졌다. 당시 최다인 여섯 나라가 한 번씩 맞붙어 각 팀이 다섯 경기를 치렀다. 기존 네 나라 대회보다 경기 수와 변수 모두 크게 늘었다. 브라질은 다섯 경기에서 17골을 넣었고, 칠레의 라울 토로는 7골로 득점왕이 됐다.[1]
아르헨티나도 순탄하지 않았다. 칠레·파라과이·페루를 이긴 뒤 우루과이에 2-3으로 졌다. 마지막 브라질전에서 엔리케 가르시아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면서 두 팀은 승점 8로 같아졌다. 당시 규정은 득실차를 따지지 않았으므로 별도의 우승 결정전이 필요했다.
90분의 교착과 40분의 중단
2월 1일 가스오메트로 데 보에도에 약 8만 명이 모였다. 정규시간은 0-0으로 끝났다. 경기 막판 관중과 심판 판정을 둘러싼 혼란으로 약 40분간 중단됐고, 재개 뒤 연장으로 넘어갔다. 이미 두 팀 모두 여러 교체를 사용하며 전열을 바꾼 상태였다.[2]
아르헨티나는 프란시스코 바라요 대신 17세 데라마타를 투입했다. 그는 연장 109분과 112분에 연속골을 넣었다. 단 세 분이 한 달 넘게 이어진 대회의 우승국을 갈랐다.
열일곱 살이 만든 2골의 크기
데라마타의 대회 득점은 결정전의 두 골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표제 인물로 삼을 이유는 분명하다.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와 가장 결정적인 골을 넣은 선수는 같지 않았다. 리그 전체를 지배한 스타들 사이에서 가장 어린 교체 선수가 우승의 마지막 장면을 차지했다.[3]
이 대회는 그의 출발점이었다. 데라마타는 인데펜디엔테에서 아르세니오 에리코·안토니오 사스트레와 공격진을 이루며 1938·1939년 리그 우승으로 이어갔다. 1937년의 연장 두 골이 한 시대를 대표할 공격수의 첫 국제무대 기록이 됐다.
우승국 밖에서 빛난 라울 토로
칠레는 1승 1무 3패로 5위였지만 12골을 넣었다. 라울 토로는 7골로 대회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팀 순위와 개인 득점이 크게 갈라진 것은 단일 리그의 공격적 성격을 보여준다. 브라질의 17골, 칠레의 12골, 우루과이의 11골이 쏟아졌지만 우승은 마지막 경기에서 두 골만 허용하지 않은 아르헨티나가 가져갔다.
출처와 기록 기준
- «Southamerican Championship 1937», RSSSF.
- «1937: la vuelta a la gloria para Argentina», AFA.
- «A 40 años del fallecimiento de Vicente de la Mata», AFA.
- «Vicente De la Mata.jpg», Wikimedia Commons, 공공영역.
- 머리 그림: «Sudamericano1937 entregacopa»,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트로피 사진: «Copa América de Fútbol», CONMEBOL 박물관(루케) 소장 원본, Hazaña17 촬영,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대회 대표 선수’는 공식 MVP 트로피의 수상 기록이 아니라 우승 결정전의 역사적 비중을 기준으로 한 표제 선정이다. 득점왕은 라울 토로 7골로 별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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