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 FIFA 월드컵™
1930 FIFA 월드컵 베스트 11: 첫 세계선수권의 얼굴들
우루과이의 초대 월드컵 우승과 아르헨티나의 결승 진출, 미국과 유고슬라비아의 4강을 함께 남긴 1930년. 후대의 월드컵 회고 자료에서 반복해 정리된 베스트 11을 2-3-5의 언어로 다시 읽는다.
첫 번째 월드컵
- 개최국
- 우루과이
- 대회 기간
- 1930년 7월 13일-30일
- 참가국
- 13개국
- 경기 수
- 18경기 · 70골
- 우승
- 우루과이 첫 번째 우승
- 득점왕
- 기예르모 스타빌레 · 8골
월드컵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규모와 절차를 갖춘 대회가 아니었다. 지역 예선 없이 초청으로 참가국을 모았고, 유럽에서는 벨기에·프랑스·루마니아·유고슬라비아 네 나라만 대서양을 건넜다. 열세 팀은 네 조로 나뉘어 조 1위만 준결승에 올랐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미국과 유고슬라비아가 그렇게 마지막 네 자리를 차지했다.[1]
우루과이는 페루와 루마니아를 상대로 무실점 조 1위를 확정한 뒤 유고슬라비아를 6-1로 꺾었다. 결승에서는 아르헨티나에 전반을 1-2로 뒤졌지만, 후반에 페드로 세아·빅토리아노 이리아르테·엑토르 카스트로가 연달아 골을 넣어 4-2로 뒤집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세대가 자국에서 열린 첫 세계선수권까지 차지하면서, 우루과이는 남미의 강호에서 세계 최초의 챔피언으로 이름을 바꿨다.[2]
최종 성적
| 구분 | 국가 | 전적 | 득실 |
|---|---|---|---|
| 우승 | 우루과이 |
4승 | 15득점 3실점 |
| 준우승 | 아르헨티나 |
4승 1패 | 18득점 9실점 |
| 준결승 | 미국 |
2승 1패 | 7득점 6실점 |
| 준결승 | 유고슬라비아 |
2승 1패 | 7득점 7실점 |
3·4위 결정전은 열리지 않았다. 오늘날 FIFA 자료는 조별리그와 준결승 성적을 비교해 미국을 3위로 정리하지만, 두 팀이 순위를 가리는 경기를 치른 것은 아니다.[3]
후대에 남은 베스트 11
1930년 대회에는 오늘날의 골든볼·골든글러브·공식 팀 오브 더 토너먼트 시상 체계가 없었다. 아래 명단은 당시 FIFA가 폐막식에서 발표한 공식 수상자 목록이 아니라, 후대의 월드컵 회고와 통계 데이터베이스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올스타 팀이다. 코파 아메리카 초창기의 ‘최우수 선수’ 기록과 마찬가지로, 제도의 역사를 현재에서 과거로 소급하지 않으면서 후대가 무엇을 대회의 대표 활약으로 기억했는지를 살피는 자료에 가깝다.[4]
명단을 읽는 법
대회의 당대 명칭은 제1회 세계축구선수권대회(1er Campeonato Mundial de Fútbol; 첫 번째 세계축구선수권대회)였다. 아래의 GK는 골키퍼(goalkeeper), FB는 풀백(full-back), RH·CH·LH는 오른쪽·중앙·왼쪽 하프(right·centre·left half), CF는 센터 포워드(centre-forward)를 뜻한다. 오늘날의 포백과 미드필더를 그대로 대입하기보다, 두 풀백 앞에 세 하프가 서고 다섯 공격수가 폭을 나누던 2-3-5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
FW버트 페이트노드미국 · 3경기 4골
FW페드로 세아우루과이 · 4경기 5골
CF기예르모 스타빌레아르헨티나 · 4경기 8골
FW엑토르 스카로네우루과이 · 3경기 1골
FW엑토르 카스트로우루과이 · 2경기 2골
RH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우루과이 · 4경기
CH루이스 몬티아르헨티나 · 5경기 2골
LH알바로 헤스티도우루과이 · 4경기
FB호세 나사시우루과이 · 4경기
FB밀루틴 이브코비치유고슬라비아 · 3경기
GK엔리케 바예스테로스우루과이 · 4경기 3실점이 배치는 열한 명을 당시의 기본 대형인 2-3-5 안에 보여주기 위한 회고적 구성이다. 특히 공격수 다섯 명의 좌우 자리는 매 경기 실제 선발 위치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다. 반면 나사시와 이브코비치를 두 풀백으로, 안드라데·몬티·헤스티도를 세 명의 하프로 놓는 뼈대는 1930년 경기표에 남은 당시 포지션 언어와 맞닿아 있다.[5]

우루과이 · 4경기 3실점

우루과이 · 4경기 · 주장

유고슬라비아 · 3경기 · 주장

우루과이 · 4경기

아르헨티나 · 5경기 2골

우루과이 · 4경기

미국 · 3경기 4골

우루과이 · 4경기 5골

아르헨티나 · 4경기 8골

우루과이 · 3경기 1골

우루과이 · 2경기 2골
골문과 두 명의 풀백
엔리케 바예스테로스(Enrique Pedro Ballestrero Griffo; 우루과이 골키퍼, 1905~1969)는 우루과이의 네 경기를 모두 지켰다.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실점하지 않았고, 준결승과 결승을 포함한 대회 전체 실점은 세 골이었다. 첫 월드컵의 골키퍼를 고를 때 우승과 전 경기 출전, 조별리그 무실점이라는 세 기준이 한 사람에게 모인다.
호세 나사시(José Nasazzi Yarza; 우루과이 수비수, 1901~1968)는 오른쪽 풀백이자 주장이었다. FIFA의 결승 회고는 그의 지휘와 후방에서 팀을 끌어올린 힘을 우루과이 승리의 핵심으로 짚는다. 1923·1924 코파 아메리카와 1924·1928 올림픽을 거친 주장이 첫 월드컵 트로피까지 들었다는 사실은, 이 대회가 갑자기 출현한 기적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있던 우루과이 세대의 마지막 증명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6]
그의 옆에는 우승팀의 다른 수비수가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주장 밀루틴 이브코비치(Milutin Ivković; 유고슬라비아 수비수·의사, 1906~1943)가 남았다. 유고슬라비아는 브라질·볼리비아를 꺾고 유럽 팀 가운데 유일하게 준결승에 진출했다. 우루과이에 1-6으로 패한 결말만으로는, 첫 두 경기에서 한 골만 내주며 조 1위를 만든 후방의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2-3-5의 중심선
호세 레안드로 안드라데(José Leandro Andrade; 우루과이 하프백, 1901-1957)와 알바로 헤스티도(Álvaro Antonio Gestido Pose; 우루과이 레프트 하프, 1907-1957)는 우루과이의 오른쪽과 왼쪽 하프를 맡았다. 현대식 표에서 헤스티도가 수비수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1930년 경기표의 언어로는 레프트 하프였다. 풀백 둘 앞에서 세 명의 하프가 수비와 공격의 접속을 맡던 시대였기에, 오늘날의 ‘수비수/미드필더’ 두 칸만으로는 그의 위치를 온전히 번역하기 어렵다.
그 사이의 센터 하프는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몬티(Luis Felipe Monti; 아르헨티나·이탈리아 하프백, 1901~1983)다. 몬티는 아르헨티나의 다섯 경기를 모두 뛰고 두 골을 넣었다. 프랑스전의 유일한 골과 미국과의 준결승 선제골이 그의 발에서 나왔다. 공격수들이 18골을 쌓는 동안 중앙에서 경기의 충돌을 감당한 선수였고, 네 해 뒤에는 이탈리아 대표로 다시 월드컵 결승에 서게 된다.
여덟 골과 첫 해트트릭
기예르모 스타빌레(Guillermo Stábile; 아르헨티나 공격수, 1905~1966)는 첫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마누엘 페레이라가 부재한 멕시코전에서 기회를 얻어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이후 세 경기에서 다섯 골을 더 넣었다. 네 경기 8골. 결승전의 전반 역전골까지 포함한 이 기록은 그를 초대 월드컵 득점왕으로 만들었다.[7]
그러나 월드컵 최초의 해트트릭은 스타빌레보다 이틀 먼저 세 골을 넣은 버트 페이트노드(Bertrand Arthur Patenaude; 미국 공격수, 1909~1974)의 기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파라과이전 세 골의 두 번째 득점자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FIFA는 후대의 증거 검토를 거쳐 페이트노드의 해트트릭을 인정했다. 미국은 두 경기 연속 3-0 승리로 준결승에 올랐고, 페이트노드는 세 경기 4골을 남겼다.[8]
우승팀 공격의 세 얼굴
페드로 세아(José Pedro Cea; 우루과이 공격수, 1900~1970)는 우루과이의 네 경기에 모두 출전해 다섯 골을 넣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결승 후반 13분에는 1-2를 2-2로 돌리는 동점골을 넣었다. 한 경기의 폭발력과 대회 전체의 연속성, 결승의 전환점이 한 선수에게 겹친다.
엑토르 스카로네(Héctor Pedro Scarone Beretta; 우루과이 공격수, 1898~1967)는 루마니아전에서 한 골을 넣었다. 득점만 보면 다른 후보보다 작지만, 그는 1917 코파 아메리카부터 1924·1928 올림픽까지 우루과이 공격의 시간을 연결한 인물이었다. FIFA는 1930년 결승에 이르는 우루과이의 대표 활약을 돌아보며 나사시·안드라데·세아와 함께 스카로네를 꼽는다.[6]
엑토르 카스트로(Héctor Castro; 우루과이 공격수, 1904~1960)는 두 경기만 뛰었지만 두 골이 대회의 처음과 끝에 놓였다. 페루와의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월드컵 첫 골을 넣었고, 결승 89분에는 헤더로 4-2를 만들었다. 출전 시간보다 장면의 무게가 더 컸던 선택이다.
여담: 남미의 대회에서 세계의 대회로
이 열한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우루과이 선수다. 아르헨티나가 두 명, 미국과 유고슬라비아가 한 명씩을 보탠다. 지역별 균형을 맞춘 명단이라기보다 결승에 오른 두 팀, 그중에서도 네 경기 전승을 거둔 우루과이에 무게를 둔 회고다. 동시에 미국의 첫 해트트릭과 유고슬라비아의 유럽 유일 4강을 한 자리씩 남겨, 첫 월드컵이 라플라타강 양안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흔적도 보존한다.
우루과이의 일곱 명 가운데 나사시·안드라데·세아·스카로네·카스트로는 이미 올림픽과 코파 아메리카에서 세계무대 이전의 시간을 만들었다.[9] 그래서 1930년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라기보다, 남미 대회와 올림픽에서 축적된 한 세대가 새로 만들어진 대회의 첫 페이지를 차지한 순간에 가깝다. 코파 아메리카 초대 우승팀이 FIFA 월드컵 초대 우승팀이 되었다. 대회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세계 챔피언의 첫 얼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
출처와 기록 기준
- 「World Cup winners from 1930 to 1978」, FIFA.
- 「Las Copas Mundiales que ganó Uruguay」, FIFA.
- 「Das furiose WM-Debüt der USA」, FIFA.
- 「FIFA World Cup All-Star Team」, FBref. 삥이의 축구 기록 원문 및 후대 회고 자료에서 반복되는 명단과 대조했다.
- 「World Cup 1930 finals」, RSSSF.
- 「Uruguay pega el primer grito sagrado」, FIFA.
- 「El argentino Stábile hace historia」, FIFA.
- 「Stats & trivia: Concacaf nations at the FIFA World Cup」, FIFA.
- 「Uruguay light Olympic flame」, FIFA.
베스트 11은 1930년 대회 당시 공식 시상식에서 수여된 명단으로 보지 않는다. 후대 자료에서 같은 열한 명이 반복되는 사실과 실제 대회 출전·득점 기록을 분리해 검증했으며, 2-3-5의 세부 공격 위치는 명단을 시각화하기 위한 회고적 배열임을 본문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