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 FIFA 월드컵™

1938 FIFA 월드컵 베스트 11: 레오니다스와 이탈리아의 2연패

이탈리아의 월드컵 최초 2연패, 헝가리의 폭발적인 공격, 브라질의 레오니다스가 겹친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을 당대 베스트 11과 함께 다시 읽는다.
이탈리아와 헝가리 선수들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만든 1938 FIFA 월드컵 베스트 11 표지
1938 월드컵 결승 직전 이탈리아와 헝가리. 이 대회는 이탈리아의 최초 2연패와 레오니다스의 등장을 함께 남겼다.

전쟁 전 마지막 월드컵

개최국
프랑스
대회 기간
1938년 6월 4일-19일
본선 참가
15개국
경기 수
18경기 · 84골
우승
이탈리아 2회 연속
득점왕
레오니다스 · 7골

오스트리아는 본선 진출 뒤 독일의 병합으로 대회에서 빠졌고, 스웨덴은 첫 경기를 치르지 않은 채 8강에 올랐다. 재경기가 남아 있던 시대라 무승부로 끝난 스위스-독일전과 브라질-체코슬로바키아전은 승부차기 대신 다시 열렸다. 15개국이 치른 경기가 18경기까지 늘어난 이유다.[1]

최종 순위

순위 국가 전적 득실
우승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두 번째 우승 4승 11득점 5실점
준우승 헝가리 왕국 헝가리 국기 첫 번째 준우승 3승 1패 15득점 5실점
3위 브라질 브라질 국기 첫 번째 4위권 3승 1무 1패 14득점 11실점
4위 스웨덴 스웨덴 국기 첫 번째 4위권 1승 2패 11득점 9실점

이탈리아의 경로는 가벼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노르웨이전은 연장까지 갔고, 8강에서는 개최국 프랑스를 3-1로 꺾었다. 준결승 상대는 레오니다스를 앞세운 브라질, 결승 상대는 세 경기에서 13골을 몰아친 헝가리였다. 그 네 경기를 모두 이겨 1934년에 이어 다시 정상에 섰다.[2]

레오니다스, 피올라, 그리고 헝가리의 두 명

득점 1위레오니다스 다시우바브라질 · 4경기 7골
득점 공동 2위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 4경기 5골
득점 공동 2위샤로시 죄르지 · 젱겔레르 줄러헝가리 · 각 5골

브라질은 우승하지 못했지만 대회의 가장 강렬한 공격수는 레오니다스 다시우바(Leônidas da Silva; 브라질 공격수, 1913-2004)였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포함해 네 골을 넣었고, 체코슬로바키아와의 두 경기와 3·4위전에서도 득점했다. 준결승 이탈리아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는데도 일곱 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1]

그 뒤를 실비오 피올라(Silvio Piola; 이탈리아 센터 포워드, 1913-1996)와 헝가리의 샤로시 죄르지(Sárosi György; 헝가리 공격수, 1912-1993), 젱겔레르 줄러(Zsengellér Gyula; 헝가리 공격수, 1915-1999)가 다섯 골로 따랐다. 결승에서도 피올라는 두 골, 샤로시는 한 골을 넣었다. 젱겔레르는 결승에서 득점하지 못했지만 앞선 세 경기에서 다섯 골을 몰아쳤다. 공격수 네 명의 이름만으로도 이 대회가 왜 별들의 잔치였는지 충분히 설명된다.

1938 월드컵 베스트 11

이 명단은 1938년 대회가 끝난 직후 FIFA가 트로피와 함께 발표한 공식 베스트 11은 아니다. 후대의 월드컵 올스타 데이터에서 공통으로 정리되는 명단이며, 실제 출전과 득점 기록은 대회 경기표와 다시 대조했다.[3]

명단을 읽는 법

대회의 프랑스어 명칭은 1938년 세계축구선수권대회(Championnat du Monde de Football 1938; 1938년 세계축구선수권대회)였다. GK는 골키퍼(goalkeeper), LB·RB는 두 풀백(left·right back), LH·CH·RH는 세 하프(left·centre·right half), OL·IL·CF·IR·OR는 다섯 공격수의 바깥쪽·안쪽·중앙 위치를 뜻한다. 현대식 포메이션으로 억지 번역하기보다, 수비 두 명과 하프 세 명이 뒤를 받치고 공격수 다섯 명이 폭을 채우던 시대의 역할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샤로시 죄르지OL샤로시 죄르지헝가리 · 4경기 5골
지노 콜라우시IL지노 콜라우시이탈리아 · 3경기 4골
레오니다스 다시우바CF레오니다스 다시우바브라질 · 4경기 7골
실비오 피올라IR실비오 피올라이탈리아 · 4경기 5골
젱겔레르 줄러OR젱겔레르 줄러헝가리 · 4경기 5골
우고 로카텔리LH우고 로카텔리이탈리아 · 4경기
미켈레 안드레올로CH미켈레 안드레올로이탈리아 · 4경기
알프레도 포니RH알프레도 포니이탈리아 · 3경기
피에트로 라바LB피에트로 라바이탈리아 · 4경기
도밍구스 다 기아RB도밍구스 다 기아브라질 · 4경기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GK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체코슬로바키아 · 2경기 1실점

2-3-5의 다섯 공격수는 단순히 득점 순위대로 세운 줄이 아니다. 샤로시와 젱겔레르가 헝가리의 양쪽을 잡고, 결승에서 네 골을 합작한 콜라우시와 피올라가 레오니다스 곁에 선다. 중앙의 레오니다스는 이 대회 최다 득점자이자 브라질이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오른 공격의 중심이었다.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GK · 골키퍼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František Plánička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국기 · 2경기 1실점

피에트로 라바
FB · 레프트백피에트로 라바Pietro Rava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4경기

도밍구스 다 기아
FB · 라이트백도밍구스 다 기아Domingos Antônio da Guia

브라질 브라질 국기 · 4경기

우고 로카텔리
LH · 레프트 하프우고 로카텔리Ugo Locatelli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4경기

미켈레 안드레올로
CH · 센터 하프미켈레 안드레올로Michele Andreolo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4경기

알프레도 포니
RH · 라이트 하프알프레도 포니Alfredo Foni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3경기

샤로시 죄르지
OL · 아웃사이드 레프트샤로시 죄르지Sárosi György

헝가리 헝가리 국기 · 4경기 5골

지노 콜라우시
IL · 인사이드 레프트지노 콜라우시Luigi “Gino” Colaussi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3경기 4골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CF · 센터 포워드레오니다스 다시우바Leônidas da Silva

브라질 브라질 국기 · 4경기 7골

실비오 피올라
IR · 인사이드 라이트실비오 피올라Silvio Piola

이탈리아 이탈리아 왕국 민간기 · 4경기 5골

젱겔레르 줄러
OR · 아웃사이드 라이트젱겔레르 줄러Zsengellér Gyula

헝가리 헝가리 국기 · 4경기 5골

플라니치카가 끝까지 지킨 골문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František Plánička; 체코슬로바키아 골키퍼, 1904-1996)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두 경기를 지켰다. 브라질과의 8강 첫 경기는 거친 충돌과 퇴장이 이어져 ‘보르도의 전투’로 불린다. 플라니치카는 부상을 입고도 연장까지 골문을 지켰지만 재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두 경기만으로 베스트 11에 남은 이유는 출전 수가 아니라 그 경기에서 보여준 존재감에 있다.[1]

우승팀이 채운 중원

라바, 로카텔리, 안드레올로, 포니까지 이탈리아 선수 네 명이 수비와 하프 라인을 채운다. 여기에 공격의 콜라우시와 피올라를 더하면 베스트 11 가운데 이탈리아 선수가 여섯 명이다. 주세페 메아차가 명단에서 빠졌다는 점이 오히려 이 팀의 성격을 선명하게 만든다. 이름값을 다시 세는 명단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치른 네 경기를 가장 강하게 남긴 선수들을 모은 명단이다.

도밍구스 다 기아(Domingos Antônio da Guia; 브라질 풀백, 1912-2000)는 우승팀의 수비 사이에 들어간 유일한 브라질 수비수다. 브라질이 폴란드와 11골을 주고받고 체코슬로바키아와 두 번 싸우는 동안, 그는 공격적인 대회의 흐름 속에서도 수비수가 기술로 경기를 풀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결승전으로 이어지는 여섯 이름

이 베스트 11 가운데 라바, 로카텔리, 안드레올로, 포니, 콜라우시, 피올라는 헝가리와의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다. 반대편에는 샤로시 죄르지와 젱겔레르 줄러가 있었다. 열한 명 중 여덟 명이 마지막 경기 한 장면에 모인 셈이다.

결승은 콜라우시의 두 골, 피올라의 두 골, 샤로시의 추격골까지 베스트 11 선수들이 직접 점수를 움직였다. 이 명단을 읽은 뒤 4-2 결승전을 다시 보면, 선수 이름과 실제 움직임이 곧바로 연결된다. 이 글과 1938 결승전 H/L을 같은 기록 묶음으로 연결한 이유다.

여담: 우승팀과 대회의 얼굴은 같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우승과 2연패를 가져갔지만 대회의 얼굴을 한 명만 고르라면 레오니다스를 빼기 어렵다. 헝가리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샤로시와 젱겔레르 두 명을 공격진에 남겼다. 체코슬로바키아는 8강에서 멈췄지만 플라니치카가 골문을 차지했다.

그래서 1938년의 베스트 11은 우승팀의 복사본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완성도, 헝가리의 폭발력, 브라질의 새로운 공격 감각, 플라니치카의 버티기가 한 화면에 겹친다. 전쟁 전 마지막 월드컵은 그렇게 서로 다른 축구의 방향을 보여주고 12년 동안 멈췄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World Cup 1938 finals”, RSSSF. 경기 결과·라인업·출전·득점 기록.
  2. “Dominant Azzurri retain their crown”, FIFA. 이탈리아의 대회 경로와 최초 2연패.
  3. “FIFA World Cup All-Star Team”, FBref. 후대에 정리된 1938 올스타 명단.
  4. “1938 FIFA 프랑스 월드컵 당대 베스트 11”, 삥이N스포츠_Official. 최초 구성과 표지·선수 사진.

1938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공식 FIFA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따라서 명단의 성격과 실제 대회 기록을 분리해 적었으며, 네이버 원문의 젱겔레르 줄러 6골 표기는 대회 본선 득점 기록에 맞춰 5골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