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FIFA WORLD CUP · FINAL ROUND
- 날짜
- 1950년 7월 16일
- 장소
- 마라카낭
- 전반
- 0-0
- 최종
- 2-1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최악의 비극’을 하나 고르라면 많은 사람은 이 경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나는 이 경기를 볼 때마다 조금 다른 감정도 든다. 이미 우승했다고 믿은 20만의 확신 앞에서, 우루과이는 끝까지 축구를 했다. 브라질에는 비극이었지만 우루과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통쾌한 역전극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경기는 토너먼트 결승전이 아니었다. 4개 팀이 치른 최종 리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래도 우승컵이 걸린 마지막 한 판이었고,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그래서 역사에는 그냥 ‘1950 월드컵 결승전’처럼 남았다.[1]
우승 축제가 먼저 시작된 날
브라질은 최종 리그에서 스웨덴을 7-1, 스페인을 6-1로 두들겼다.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2-2로 비겼고 스웨덴에도 가까스로 3-2 역전승을 거뒀다. 흐름만 보면 누가 봐도 브라질이었다. 경기 전날 신문은 브라질을 챔피언이라 불렀고, 경기장 안팎은 결승보다 대관식에 가까웠다.[2]
유료 관중은 공식적으로 17만 3,850명. 선수와 기자, 경기장 안으로 몰려든 인원까지 합친 추산은 약 20만 명이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그 모두가 같은 결말을 기다렸다는 사실이다.[1]
그리고 이 월드컵은 우리 역사와도 기묘하게 겹친다. 대회 개막전이 열린 1950년 6월 24일 오후 3시는 한국 시각으로 6월 25일 새벽 3시였다. 브라질과 멕시코가 후반전을 치를 무렵,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시작됐다. 이 마지막 경기가 열린 7월 16일에는 국군과 미군이 금강 방어선에서 물러나던 때였다.[5][6] 지구 반대편에서는 축구 때문에 세상이 무너진다고 느꼈고, 이곳에서는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프리아사가 마라카낭을 열었다
전반을 0-0으로 버틴 우루과이의 골문이 후반 시작 2분 만에 열렸다. 프리아사가 오른쪽에서 파고들어 슈팅했고, 브라질이 마침내 1-0으로 앞섰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던 브라질이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골이 들어가자 우루과이 주장 오브둘리오 바렐라는 공을 들고 주심에게 오프사이드를 주장했다. 훗날 그는 정당한 골임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판정을 뒤집기보다 브라질의 함성을 가라앉히고 동료들이 평정을 되찾을 시간을 벌기 위한 항의였다. 경기 재개 전, 바렐라는 동료들에게 “이제 우리가 이길 시간”이라고 말했다.[2]
스키아피노가 침묵을 시작했다
선제골 이후에도 물러서지 않은 우루과이는 후반 21분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기지아가 오른쪽에서 낮게 내준 공을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가 강하게 마무리했다. 브라질은 여전히 이 점수로 우승할 수 있었지만, 마라카낭의 공기는 환호에서 불안으로 바뀌었다.
A DRAW STILL CROWNS BRAZIL · 24 MINUTES LEFT
브라질의 파상공세
동점 뒤 브라질은 다시 우루과이 골문을 몰아쳤다. 시쿠가 몸을 돌려 내준 공을 자이르가 넘어지며 슈팅으로 연결했다. 들어갔다면 마라카낭은 곧바로 축제장으로 돌아갔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두 번째 골은 나오지 않았다.
기지아가 비극을 완성했다
11분을 남기고 기지아가 다시 오른쪽을 달렸다. 앞선 동점골 때는 중앙으로 공을 보냈다. 그래서 브라질 골키퍼 바르보자는 이번에도 크로스를 예상하고 몸을 움직였다. 기지아는 그 틈을 보고 가까운 쪽 골대로 직접 찼다. 공은 바르보자와 골대 사이, 믿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공간을 통과했다.[2]
한 골을 향한 마지막 공세
브라질에는 동점골 하나면 충분했다. 남은 11분 동안 파상공세가 이어졌지만 공은 골문 위로 뜨거나 우루과이 수비에 막혔다. 마침내 종료 휘슬이 울리자 우루과이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두 번째 세계 제패를 확인했다.
그러나 세상은 야속한 법. 브라질이 필요했던 단 한 골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브라질은 90분 중 79분을 우승한 상태로 보냈고, 마지막 11분 때문에 우승컵을 잃었다.
환희와 눈물이 뒤섞인 마라카낭
종료 휘슬 뒤 우루과이 선수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스키아피노는 훗날 “브라질 사람들보다 내가 더 울었다”고 회상했다. 계획된 시상식은 제대로 열리지 못했고, FIFA 회장 쥘 리메는 혼란 속에서 우루과이에 건넬 트로피를 준비했다.[9]
우루과이의 승리
URUGUAY · WORLD CHAMPIONS 1930 · 1950
URUGUAY
경기가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은 비극
이 패배는 ‘마라카나수(Maracanaço)’, 마라카낭의 충격으로 불리게 됐다. 브라질은 이 경기에서 입은 흰색 유니폼을 더 이상 대표팀의 상징으로 쓰지 않았다. 다만 흔히 전해지는 것처럼 유니폼을 불태운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953년 새 유니폼 공모를 거쳐 노란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가 선택됐고, 1954년부터 우리가 아는 브라질의 색이 됐다.[7][8]
골키퍼 바르보자는 오랫동안 패배의 희생양이 됐다. 한 경기가 한 사람의 남은 인생을 얼마나 잔인하게 따라다닐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결승골의 주인공 기지아는 곧바로 유럽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1953년까지 페냐롤에서 뛰고 AS 로마로 이적했다.[4]
20만 명이 기다린 결말을 단 한 사람이 바꿨다. 그래서 이 경기는 브라질의 비극인 동시에, 축구가 미리 정해진 대관식을 거부한 날이기도 하다.
영상과 기록 출처
- RSSSF, World Cup 1950 finals and attendance records
- FIFA, Uruguay v Brazil 1950: the Maracanazo
- ESPN, Obdulio Varela and the 1950 final
- AS Roma Hall of Fame, Alcides Ghiggia
- HISTORY, Korean War begins
-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The Kum River Line
- Placar, 브라질 대표팀 흰색 유니폼의 역사
- BBC Sport, Aldyr Garcia Schlee and Brazil's yellow shirt
- FIFA, La caótica coronación de Uruguay en el Maracaná. 쥘 리메의 트로피 전달과 스키아피노의 경기 후 회고.
- 원문: 1950 FIFA 월드컵 결승전 - 마라카낭의 비극 · 본문의 18개 영상은 원문 GIF 배열을 같은 순서로 변환한 FIFA 기록 영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