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 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푸스발-분데스리가
Fußball-Bundesliga
바이어 04 레버쿠젠
Bayer 04 Leverkusen Fußball GmbH도시보다 먼저 있던 이름
1903년 11월 27일, 프리드리히 바이어 염료공장의 노동자 빌헬름 하우실트와 아우구스트 쿨만은 경영진 앞으로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노동자 170명이 서명한 체육회 창설 청원이었다. 이듬해 7월 1일 ‘바이어 체조·경기회’가 태어났고, 축구부는 1907년 6월 1일 문을 열었다. 놀라운 대목이 있다. 당시 ‘레버쿠젠’은 아직 도시의 이름이 아니었다. 기업가 카를 레버쿠스의 이름을 딴 공장 지구가 먼저 있었고 오늘의 레버쿠젠시는 1930년에야 성립했다. 이곳에서는 구단이 도시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도시와 구단이 한 공장의 시간에서 함께 자라났다.[1]
공장 팀이라는 출신은 이 구단을 작게 보이게도, 남다르게 보이게도 했다. 거대한 회원제 구단의 계보와는 달랐고 독일 축구 안에서 바이어의 지원을 받는다는 시선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1979년 푸스발-분데스리가에 올라온 뒤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았고, 1988년 UEFA컵과 1993년 DFB-포칼을 들어 올렸다. 축구부가 공장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 법인이 된 뒤에도 이름의 ‘04’와 십자가 문양은 출생증명서처럼 남았다.[2]
1988년 UEFA컵 결승은 레버쿠젠의 첫 위대한 기적이었다. 에스파뇰 원정에서 0-3으로 패한 뒤 홈 2차전에서도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후반 12분 틸만이 추격을 시작했고, 63분 괴츠와 81분 차범근의 헤더가 합계 점수를 원점으로 돌렸다. 연장전 뒤 승부차기. 첫 스페인 키커는 골대를 때렸고 뤼디거 폴보른은 네 번째 킥을 막았다. 마지막 키커 로사다는 골문 위로 찼다. ‘세 번 연속 선방’ 같은 후대의 장식 없이도 충분히 극적이었다. 레버쿠젠은 유럽의 우승팀이 되었다.[3]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이 팀은 우승 직전에서 멈추는 법까지 배웠다. 1999-2000시즌 마지막 경기, 운터하힝 원정에서 승점 1만 얻으면 첫 푸스발-분데스리가 우승이었다. 그러나 미하엘 발라크의 자책골로 시작해 0-2로 졌고 바이에른 뮌헨이 골득실로 정상에 섰다. 2001-02시즌에는 푸스발-분데스리가·DFB-포칼·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준우승했다. 독일에서는 Vizekusen, 영어권에서는 Neverkusen이라 불렸다. 조롱이었으되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조롱도 아니었다. 늘 우승 문 앞까지 가는 팀만이 ‘또 2등’이라는 말을 듣는다.[4]
그 명제(命題)가 끝내 참(眞)이 되었다. 2023-24시즌 사비 알론소의 팀은 푸스발-분데스리가 34경기를 한 번도 지지 않고 90점을 쌓아 구단 첫 독일 챔피언이 됐다. 89득점과 24실점, DFB-포칼까지 더한 국내 더블이었다. UEFA 유로파 리그 결승 패배로 공식전 무패 행진은 51경기에서 멈췄지만 ‘레버쿠젠은 끝내 우승하지 못한다’는 오래된 문장은 이미 폐기된 뒤였다.[5]
공장 팀의 탄생 · 1988년의 대역전 · ‘네버쿠젠’ · 무패 챔피언
선정 전술: 시대를 세로로 잇는 3-4-1-2
기본 대형은 3-4-1-2다. 옌스 노보트니가 중앙에서 한 발 물러나 리베로처럼 간격을 읽고, 루시우는 왼쪽에서 공을 몰고 전진한다. 요나단 타는 오른쪽 넓은 공간과 상대의 가장 강한 공격수를 맡는다. 뤼디거 폴보른에게 오늘날의 에데르송처럼 빌드업을 전담시키지는 않는다. 첫 패스의 책임은 세 수비수와 시몬 롤페스가 나눠 갖는다.
롤페스는 후방 앞에서 균형을 잡고 미하엘 발라크는 한 칸 위에서 양쪽 박스를 오간다. 제 호베르투가 왼쪽의 폭과 운반, 베른트 슈나이더가 오른쪽의 크로스와 안쪽 패스를 맡는다. 수비 때는 두 측면 미드필더가 내려와 5-3-2를 만들고, 공을 찾는 순간 발라크와 함께 앞으로 뻗는다. 공격형 미드필더 플로리안 비르츠에게는 정해진 사각형이 없다. 두 줄 사이에서 받아 차범근의 질주와 울프 키르스텐의 문전 움직임을 고른다.
차범근은 오른쪽 하프스페이스와 뒷공간을 찢고, 키르스텐은 수비수 사이의 가장 짧은 길로 골문을 찾아간다. 한 명은 열린 땅에서 힘을 얻고 한 명은 혼잡한 문전에서 살아난다. 비르츠가 공을 잡는 순간 어느 쪽으로도 답이 생긴다. 이른바 천외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재주가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열한 명이렸다.
1. 골키퍼 - 뤼디거 폴보른

뤼디거 폴보른(Rüdiger Vollborn; 독일 골키퍼, 1963년생)은 레버쿠젠이라는 구단이 푸스발-분데스리가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한 골문에서 지켜봤다. 1982년 유소년팀에서 올라와 공식전 494경기, 그중 푸스발-분데스리가 401경기를 뛰었다. 구단의 푸스발-분데스리가 최다 출전 기록이다. 처음부터 명문이었던 팀의 수문장이 아니라, 이제 막 1부에 적응하던 공장 팀을 유럽 우승팀으로 만드는 데 스스로의 청춘을 다 쓴 골키퍼였다.[6]
폴보른의 자세는 낮고 단단했다. 슈팅을 기다리며 골라인에 붙기보다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 각도를 지웠고, 공중볼에는 주먹을 먼저 세웠다. 현대 골키퍼와 견주면 발밑 전개의 범위는 좁지만 판단이 단순한 덕에 수비수의 다음 행동도 분명해졌다. 잡을 공과 쳐낼 공, 나갈 공과 남을 공을 빠르게 가르는 유형이다. 백패스 규정이 바뀐 1990년대에도 생존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옛날식 골키퍼가 아니었음을 말한다.
그의 한 장면은 역시 1988년 에스파뇰과의 승부차기다. 세 번을 연달아 막았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네 번째 키커 미겔 앙헬의 공을 쳐낸 한 번이면 족하다. 앞서 골대가 한 번, 뒤이어 실축이 한 번 나왔고 폴보른은 그 사이에서 레버쿠젠의 불안을 붙들었다. 1993년 DFB-포칼까지 우승하며 구단의 첫 두 메이저 트로피를 모두 함께했다.
베른트 레노와 레네 아들러는 더 세련된 반사 신경과 빌드업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이 팀의 골문을 폴보른에게 주는 까닭은 기록의 양만이 아니다. 선수 은퇴 뒤 골키퍼 코치, 팬 연락 담당, 구단 역사의 증언자로 남았다. 레버쿠젠이 무엇이었는지를 몸으로 기억하는 이가 레버쿠젠의 골문을 맡는다. 그러하였다지, 오래 지킨 자에게만 보이는 각도가 있는 법이다.
2. 리베로 - 옌스 노보트니

옌스 다니엘 노보트니(Jens Daniel Nowotny; 독일 리베로·중앙 수비수, 1974년생)는 1996년 카를스루에에서 왔고 곧 레버쿠젠 수비의 질서를 맡았다. 여덟 해 동안 주장이었으며 구단 역사상 가장 오래 완장을 찬 선수다. 빠르고 기술적이며 태클이 강했다는 구단의 회고는 세 박자를 모두 짚는다. 발이 느린 최종 수비수도, 몸으로만 버티는 스토퍼도 아니었다.[7]
상대 공격수가 발밑으로 받으려 하면 앞으로 붙었고, 뒷공간을 노리면 먼저 몸을 돌렸다. 최종선에서 반칙으로 시간을 버는 대신 첫 터치를 공격 방향과 반대로 밀어냈다. 공을 빼앗은 뒤에도 급히 걷어내지 않고 짧은 패스로 중원을 찾았다. 이 팀에서 노보트니를 중앙에 둔 이유다. 루시우가 튀어나가고 타가 측면까지 넓게 막을 때, 그는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위험의 순서를 정한다.
2001-02시즌 푸스발-분데스리가·DFB-포칼·UEFA 챔피언스 리그의 세 결승선에는 대개 노보트니의 흔적이 있었다. 다만 가장 큰 무대 직전 십자인대가 끊어져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과 2002 FIFA 월드컵을 놓쳤다. 주장이 결승에 서지 못한 채 팀은 세 대회 모두 두 번째 자리에 멈췄다. 그 부재가 수비수 한 명의 가치까지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훗날 네 번의 무릎 수술을 이겨내고 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노보트니는 우승컵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장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네버쿠젠’ 시대의 얼굴에 가깝다. 가장 강했던 팀을 가장 오래 지휘했으나 마지막 사진에는 자주 빠져 있던 주장. 2024년 구단이 그를 명예 주장으로 세운 것은 늦은 보상이라기보다 기억의 교정이다. 현대 축구에서도 높은 라인 뒤를 읽고 양옆의 공격적 수비수를 조율하는 중앙 수비수로 손색이 없다.
3. 왼쪽 중앙 수비수 - 루시우

루시우마르 페헤이라 다 시우바, 루시우(Lucimar Ferreira da Silva ‘Lúcio’; 브라질 중앙 수비수, 1978년생)는 수비수가 공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시험하던 선수였다. 2001년 인터나시오나우에서 왔고 레버쿠젠에서 122경기 21골을 남겼다. 센터백의 득점치고도 범상치 않다. 그 많은 골은 세트피스의 머리뿐 아니라 직접 공을 운반해 공격수처럼 박스로 들어간 결과였다.[8]
그의 전진은 우아한 산책보다 돌진에 가까웠다. 큰 보폭으로 첫 압박을 지나면 상대 미드필더는 수비수를 막으러 나오느라 자기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 틈에 발라크나 제 호베르투가 돌아서고, 루시우는 패스를 내준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의 전진형 센터백, 이른바 캐리어가 전술 용어가 되기 한참 전 이미 수비선에서 숫자 우위를 만들었다.
2001-02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는 그 기질의 극점이었다. 리버풀과의 8강에서 결정적 골을 넣었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결승에서는 지네딘 지단의 전설적인 발리보다 먼저 헤더 동점골을 넣었다. 결과는 1-2 패배였으나 루시우는 같은 해 브라질 대표로 2002 FIFA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레버쿠젠 소속 선수가 유럽 최고 클럽의 결승과 세계 챔피언의 전 경기를 한 계절에 관통한 셈이다.
위험도 있었다. 공을 잃은 뒤 빈자리는 컸고 그의 충동을 받아줄 수비 구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노보트니를 가운데, 롤페스를 앞에 둔다. 통제가 있을 때 루시우의 모험은 낭비가 아니라 공격 루트가 된다. 역사적으로는 2002년의 야심을, 현대적으로는 후방 압박을 단숨에 깨는 운반을 담당한다.
4. 오른쪽 중앙 수비수 - 요나단 타

요나단 타(Jonathan Tah; 독일 중앙 수비수, 1996년생)는 2015년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레버쿠젠으로 왔다. 열 시즌 동안 공식전 402경기 17골 13도움. 2025년 떠날 때 그는 유망주가 아니라 구단 역사상 출전 상위권에 오른 리더였다. 400번째 경기인 프라이부르크전에서는 종료 직전 동점골까지 넣었다. 숫자와 장면이 마침맞게 겹쳤다.[9]
타의 첫 재산은 체격이지만 진짜 강점은 그 체격을 함부로 쓰지 않는 데 있다. 어깨를 맞대기 전에 공격수의 진행 방향을 바깥으로 몰고, 속도 경쟁이 시작되면 긴 보폭으로 간격을 줄인다. 높은 수비선에서 뒤로 달리는 수비를 오래 해왔기에 넓은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 명의 수비 중 오른쪽을 맡기면 슈나이더가 올라간 뒤의 터치라인까지 처리할 수 있다.
2023-24시즌 무패 우승은 타의 경력과 구단의 오랜 콤플렉스를 함께 바꿨다. 이전의 그는 좋은 팀에서 꾸준히 뛴 강한 수비수였다. 우승 뒤에는 마지막까지 지지 않는 팀의 후방 지휘자가 됐다. 알론소 체제에서 공을 잡는 위치가 넓어졌고, 압박을 끌어들인 다음 중앙 또는 윙백에게 건네는 침착함도 깊어졌다.
토마스 회르스터와 카르스텐 라멜로에게는 더 오래된 공로가 있다. 타를 택한 것은 최근성 때문만이 아니다. 루시우의 모험과 노보트니의 커버 사이에서 대인 방어, 공중볼, 넓은 공간의 회수를 동시에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1988년, 2002년, 2024년의 수비를 한 줄에 세웠을 때 가장 현대적인 버팀목이다.
5. 수비형 미드필더 - 시몬 롤페스

시몬 롤페스(Simon Rolfes; 독일 수비형 미드필더, 1982년생)는 2005년 알레마니아 아헨에서 합류해 열 시즌 동안 공식전 377경기 49골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 주장 완장을 찼고 은퇴 뒤에는 다시 구단으로 돌아와 스포츠 경영을 맡았다. 선수로 팀의 중심을 잡았던 이가 2024년 무패 우승팀의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레버쿠젠의 과거와 현재가 한 사람의 이력 안에서 이어진다.[10]
선수 롤페스는 공을 오래 끌지 않았다. 압박이 오기 전에 몸을 반쯤 열어 다음 패스의 방향을 정했고, 수비 때는 태클 장면보다 패스 길을 먼저 닫았다. 그래서 화면에서는 조용해 보이지만 동료가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다. 이 조합에서는 루시우가 올라간 자리를 메우고 발라크가 박스로 들어간 뒤 중앙을 지킨다.
그가 단순한 홀딩 미드필더만은 아니었다. 왼발 중거리 슈팅과 박스 바깥의 두 번째 공에 강했고, 시즌마다 쏠쏠한 득점을 더했다. 후방에서 패스를 돌리다 전진할 길이 닫히면 직접 한 칸 올라가 상대 미드필더를 끌어냈다. 현대식 6번의 기준으로 보아도 압박 회피, 수비 전환, 중거리 위협을 고루 갖췄다.
에메르송과 라르스 벤더도 더 강한 압박과 활동량을 보탤 수 있다. 그러나 이 팀에는 주장들의 주장, 즉 성격이 강한 수비와 공격 사이에서 경기의 온도를 낮출 선수가 필요하다. 롤페스는 가장 큰 목소리보다 가장 먼저 생기는 빈칸으로 질서를 세운다. 그리고 그가 훗날 만든 우승팀은, 선수 시절의 그 질서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였다.
6. 중앙 미드필더 - 미하엘 발라크

미하엘 발라크(Michael Ballack; 독일 중앙 미드필더, 1976년생)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우승 멤버로 이름을 알렸지만 세계적 미드필더가 된 곳은 레버쿠젠이었다. 1999년 합류한 뒤 크리스토프 다움과 클라우스 토프묄러 아래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2001-02시즌에는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우수 미드필더에 선정됐다. 구단이 말하듯 레버쿠젠에서 ‘발라크’라는 선수의 완성형이 만들어졌다.[11]
양발 패스, 제공권, 중거리 슈팅, 박스 침투. 나열하면 만능이라는 낱말로 끝나기 쉽지만 발라크의 핵심은 도착 시점이었다. 공격수가 수비수를 끌고 나간 뒤 비어 있는 골대 정면으로 늦게 들어왔고, 크로스가 반대편으로 흐를 때 이미 헤더 자세를 만들었다. 공을 갖지 않은 몇 초가 득점 장면의 절반이었다.
그의 레버쿠젠 서사는 준우승과 분리하기 어렵다. 운터하힝의 자책골은 2000년의 비극을 열었고, 2002년에는 푸스발-분데스리가 막판의 실족과 DFB-포칼 결승 패배, 지단의 발리로 끝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모두 겪었다. 그러나 같은 해 독일 대표팀을 2002 FIFA 월드컵 결승으로 이끈 준결승 결승골도 그의 것이었다. 경고 누적으로 정작 결승에는 뛰지 못했다. 정상 문턱의 영광과 결핍이 늘 함께 다녔다.
이 팀의 발라크는 홀로 지배하는 10번이 아니다. 롤페스 옆에서 전진 시점을 고르고 비르츠가 만든 공간으로 들어가는 박스 투 박스다. 공격이 막히면 높이와 중거리로 다른 문제를 내며, 수비 때는 중원의 몸싸움을 받는다. 사비 알론소의 유기적인 미드필드에도 그대로 번역될 능력이다. 우승컵이 그의 레버쿠젠 경력을 규정하지 못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축구를 레버쿠젠에서 보여줬다는 사실이 먼저다.
7. 왼쪽 미드필더 - 제 호베르투

주제 호베르투 다 시우바 주니오르, 제 호베르투(José Roberto da Silva Júnior ‘Zé Roberto’; 브라질 왼쪽 미드필더, 1974년생)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뒤 1998년 레버쿠젠으로 왔다. 구단 공식 기록으로 149경기 18골. 숫자만 보면 화려함이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왼쪽 측면에서 공을 받는 순간 경기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12]
첫 터치로 수비수와 거리를 만들고, 상체의 방향과 반대로 공을 밀어냈다. 발재간은 상대를 놀리는 장식이 아니라 전진할 각을 여는 기술이었다. 측면에 붙어 풀백을 끌어낸 뒤 안으로 좁혀 발라크와 짧게 주고받을 수도 있었고, 직접 엔드라인까지 가 낮은 크로스를 넣을 수도 있었다. 한 선수가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의 일을 겸했다.
2001-02시즌 공격은 제 호베르투의 왼발에서 자주 열렸다. 발라크가 박스로 들어갈 시간을 벌고, 베른트 슈나이더가 반대편에서 자유롭게 공을 받게 했다. 레버쿠젠이 리버풀을 상대로 유럽의 강호와 같은 속도로 공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탈압박이 있었다. 이후 바이에른에서도 오래 정상급을 유지했으나, 유럽 무대에서 자신을 다시 만든 시기는 레버쿠젠이었다.
알레한드로 그리말도는 2024년 우승에 더 직접적인 숫자를 남겼다. 그래도 서로 다른 시대를 합친 팀에서 제 호베르투의 범용성이 한 발 앞선다. 수비 때 윙백으로 내려올 체력, 공격 때 중앙으로 들어올 기술, 역습 때 공을 오래 운반할 속도가 모두 있다. 오늘의 전술 언어로 바꿔도 설명이 줄지 않는 왼쪽이다.
8. 오른쪽 미드필더 - 베른트 슈나이더

베른트 슈나이더(Bernd Schneider; 독일 오른쪽 미드필더, 1973년생)에게는 ‘하얀 브라질리언’이라는 별명이 따랐다. 199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뒤 열 시즌을 뛰었고, 마지막에는 레버쿠젠의 명예 주장으로 남았다. 오른쪽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때로는 풀백까지 맡았으나 어디서든 공을 다루는 결은 같았다.[13]
슈나이더의 크로스는 무조건 높지 않았다. 수비수의 무릎과 골키퍼의 손 사이로 휘어 들어가는 공, 먼 쪽 발라크의 이마를 겨냥한 공, 박스 바깥으로 되돌리는 공을 구분했다. 공을 안쪽에 놓으면 왼발 패스도 자연스러웠다. 속도로 풀백을 완전히 떼어놓지 못한 날에도 방향 전환과 킥의 질로 공격을 계속 만들 수 있었다.
2001-02시즌 레버쿠젠의 세 번의 준우승과 독일 대표팀의 2002 FIFA 월드컵 결승을 모두 뛰었다. 그 대회 독일의 결승 선발에는 슈나이더와 발라크를 포함해 레버쿠젠 선수 다섯 명이 들어갔다. 클럽 한 팀의 중원과 공격 방식이 대표팀의 뼈대가 된 보기 드문 시기였다. 우승을 놓친 팀이면서 동시에 한 나라의 축구를 공급한 팀이기도 했다.
카림 벨라라비와 제레미 프림퐁은 더 폭발적인 직선 속도를 갖는다. 슈나이더를 고른 까닭은 이 조합에 필요한 오른쪽의 문법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타가 바깥을 막으면 슈나이더는 높이 올라가고, 비르츠가 오른쪽으로 흐르면 안쪽 통로를 비운다. 좁은 공간의 패스와 긴 크로스를 같은 자세에서 보낼 수 있으니 상대는 먼저 답을 정하지 못한다.
9. 공격형 미드필더 - 플로리안 비르츠

플로리안 비르츠(Florian Wirtz; 독일 공격형 미드필더, 2003년생)는 2020년 쾰른 유소년팀에서 레버쿠젠으로 건너왔다. 열여섯 살의 재능은 곧 구단 최연소 푸스발-분데스리가 출전자가 되었고, 다섯 해 반 만에 세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떠났다. 2024년 푸스발-분데스리가·DFB-포칼 더블과 DFL-슈퍼컵, 2025년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 짧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화를 남긴 시간이었다.[14][17]
비르츠는 공을 받기 전에 수비수의 시선을 옮긴다. 중앙에 서 있다가 패스가 출발하는 순간 반대 어깨 뒤로 움직이고, 첫 터치로 다시 골문을 향한다. 그래서 드리블의 거리가 길지 않아도 두 명을 지나간 효과가 난다. 짧은 패스를 반복하다 박스 안 동료의 발 앞으로 찔러 넣는 마지막 공, 수비가 뒤로 물러서면 직접 감아 차는 슈팅이 이어진다.
2022년 십자인대 파열은 이른 전성기를 끊을 듯했다. 그러나 복귀 뒤 경기 읽는 속도와 몸싸움 회피가 더 정교해졌다. 2023-24시즌 알론소의 3-4-2-1에서 알렉스 그리말도, 빅터 보니페이스, 요나스 호프만과 위치를 바꾸며 무패 우승의 창조성을 담당했다. 과거의 레버쿠젠이 막판의 압박에 흔들렸다면 비르츠는 종료 직전에도 공을 달라고 손을 든 세대였다.
카이 하베르츠와 율드라이 바슈튀르크도 이 자리를 탐낼 만하다. 비르츠에게 돌아가는 표는 재능의 최신판이어서가 아니다. 레버쿠젠이 마침내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한 방식, 즉 중앙과 측면의 경계를 지우는 축구를 가장 선명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 팀에서 그는 차범근에게 달릴 시간을, 키르스텐에게 한 걸음짜리 슈팅 공간을 준다.
10. 센터 포워드 - 차범근

차범근(車範根; 대한민국 센터 포워드, 1953년생)은 1983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레버쿠젠으로 왔다. 이미 독일에서 UEFA컵과 DFB-포칼을 들어 올린 공격수였지만, 레버쿠젠에서는 아직 유럽의 주요 트로피가 없던 팀을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구단이 그를 회고할 때 ‘가장 중요한 골’로 1988년 에스파뇰전 헤더를 먼저 꼽는 까닭이다.[15]
차범근의 힘은 멈춰 선 몸보다 달리는 몸에서 커졌다. 넓은 보폭으로 수비수 옆을 통과하고, 접촉을 받은 뒤에도 상체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양발 슈팅이 가능해 수비수가 한쪽으로 몰기 어려웠으며 공을 길게 차놓고 따라가는 단순한 질주만 한 것도 아니었다. 동료에게 내주고 곧장 뒷공간으로 다시 들어가는 벽 패스,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대각선 움직임이 위력의 근간이었다.
1988년 5월 18일, 합계 2-3으로 뒤진 후반 36분. 크리스티안 슈라이어가 왼쪽에서 올린 공을 차범근이 수비수 사이에서 머리로 돌려놓았다. 연장전의 골이 아니었고 그 한 골로 즉시 우승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0-3의 절벽을 3-3으로 바꿔 승부차기까지 데려간 마지막 골이었다. 차범근은 훗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골”이라고 했다. 과장하지 않은 정확한 시각과 점수만으로도 한국 축구사의 한 장면이다.
현대의 팀에 데려오면 차범근은 고정된 9번보다 오른쪽을 함께 쓰는 전방 공격수가 된다. 슈나이더가 공을 잡을 때 바깥에서 안으로 달리고, 비르츠가 돌아서면 센터백과 풀백 사이를 먼저 친다. 강한 전방 압박과 전환 질주까지 감당할 몸도 있었다. 한국 팬에게는 썸네일의 얼굴이지만, 선정의 논리는 국적이 아니다. 레버쿠젠의 첫 유럽 우승을 가능하게 한 결정력과 공격의 폭이 표를 얻었다.
11. 센터 포워드 - 울프 키르스텐

울프 키르스텐(Ulf Kirsten; 독일 센터 포워드, 1965년생)은 독일 통일 뒤 디나모 드레스덴에서 건너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레버쿠젠 한 팀에서 뛰었다. 공식전 446경기 238골, 푸스발-분데스리가 득점왕 세 차례. 1993년 DFB-포칼 결승에서는 헤르타 BSC 2군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구단의 첫 국내 메이저 트로피를 가져왔다.[16]
키르스텐은 172cm의 키로 장신 센터백 사이를 살았다. 공중볼을 힘으로 이기기보다 낙하지점을 먼저 잡았고, 박스 안에서는 큰 동작 없이 발목으로 슈팅을 끝냈다. 동료의 슛이 수비수에게 맞고 방향이 바뀌는 순간, 골키퍼가 한 번 쳐내는 순간을 기다렸다. ‘어떻게 거기 있었느냐’는 질문이 반복되는 공격수였다. 답은 우연보다 준비에 가까웠다.
그의 가치는 득점에만 갇히지 않는다. 전방에서 수비수와 싸우고 측면으로 빠져 동료가 들어올 길을 열었다. 투박해 보이는 날에도 팀의 공격은 그를 기준으로 형태를 잡았다. 1990년대의 준우승과 2002년의 세 준우승을 모두 통과했으며, 구단이 화려한 신흥 강호가 되는 동안 가장 오래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키르스텐을 ‘신’이라 높이고 다른 열 명을 신하로 만들 필요는 없다. 차범근은 달릴 공간을 만들고, 비르츠는 패스 각을 열며, 발라크는 뒤에서 박스로 들어온다. 키르스텐은 그 모든 움직임이 만든 마지막 1m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는 13년과 238골, 전술적으로는 가장 짧은 시간에 슈팅을 완성하는 문전 감각. 그 두 문장이면 위계 없이도 자리가 충분하다.
마침내, 한 경기장에 선 열한 명
공을 가진 순간에는 루시우가 왼쪽에서 공을 몰고 전진하고, 요나단 타가 오른쪽의 넓은 공간을 지킨다. 노보트니는 두 사람의 뒤에서 위험의 순서를 정하며, 롤페스는 수비선 앞을 닫고 발라크가 박스로 들어갈 시간을 번다. 제 호베르투와 슈나이더가 양쪽 폭과 안쪽 통로를 번갈아 쓰면 비르츠가 그 사이에서 마지막 패스를 고른다. 차범근은 수비 뒤를 향해 달리고, 키르스텐은 그 움직임이 만든 가장 짧은 슈팅의 자리를 차지한다. 높은 최종선 뒤에는 폴보른이 서 있다.
1988년의 유럽 우승팀, 2001-02시즌의 세 준우승팀, 2023-24시즌의 무패 챔피언을 하나의 전술에 그대로 가둘 수는 없다. 이 포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은 가상의 경기 결과보다 레버쿠젠 120여 년을 관통한 역할의 계보다. 낮은 골문 수비, 전진하는 센터백, 공수의 경계를 넘는 미드필더, 공간 해석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해결사가 검정과 빨강 안에서 서로의 시대를 이어받았다.
이미지 밖에서 다시 읽는 2군과 강력한 경쟁자
최종 포메이션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들의 위계를 낮추지는 않는다. 시대별 전술과 열한 자리의 조화를 우선한 결과이며, 아래 명단은 편집물 안의 이름을 검색 가능한 텍스트로 다시 기록한 것이다. 한국어 이름 뒤에는 원어명과 주 포지션을 병기하고, 레버쿠젠에서 각자가 남긴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 한스외르크 부트Hans-Jörg Butt · 골키퍼
페널티킥 득점과 안정된 선방을 함께 남긴 2002년 결승팀의 수문장.
- 토마스 회르스터Thomas Hörster · 중앙 수비수
오랜 재임과 단단한 대인 방어로 1988년 UEFA컵 우승의 후방을 지켰다.
- 카르스텐 라멜로Carsten Ramelow · 중앙 수비수
수비와 중원을 오가며 2002년의 압박과 빌드업을 연결했다.
- 알레한드로 그리말도Alejandro Grimaldo · 왼쪽 윙백
정교한 왼발과 안쪽 침투로 2024년 무패 우승의 공격 출구가 됐다.
- 보리스 지브코비치Boris Živković · 오른쪽 수비수
2002년 유럽 결승기의 수비 밸런스와 측면 전개를 책임졌다.
- 제레미 프림퐁Jeremie Frimpong · 오른쪽 윙백
폭발적인 침투와 득점력으로 알론소 체제의 오른쪽을 공격수처럼 사용했다.
- 에메르송Emerson · 수비형 미드필더
강한 볼 탈취와 전진 능력으로 1990년대 후반 중원의 수준을 높였다.
- 라르스 벤더Lars Bender · 수비형 미드필더
주장으로서 압박, 커버, 희생을 반복하며 2010년대의 기준을 세웠다.
- 곤살로 카스트로Gonzalo Castro · 중앙 미드필더
유소년 출신의 다재다능함으로 양 측면과 중앙을 모두 메웠다.
- 율드라이 바슈튀르크Yıldıray Baştürk · 공격형 미드필더
좁은 공간의 드리블과 연계로 2001-02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을 이끌었다.
- 손흥민왼쪽 공격수
양발 슈팅과 뒷공간 질주로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남긴 한국인 공격수.
- 카림 벨라라비Karim Bellarabi · 오른쪽 공격수
직선적인 속도와 강한 전방 압박으로 2010년대 공격의 온도를 높였다.
- 헤르베르트 바스Herbert Waas · 센터 포워드
1980년대 전방에서 연계와 득점을 맡아 첫 유럽 우승의 기반을 닦았다.
- 슈테판 키슬링Stefan Kießling · 센터 포워드
헌신적인 포스트 플레이와 득점왕 시즌으로 2000년대 이후의 상징이 됐다.
- 파트리크 시크Patrik Schick · 센터 포워드
왼발 결정력과 박스 장악으로 현대 레버쿠젠의 골문 앞을 책임졌다.
3군과 주요 후보
- 레네 아들러René Adler · 골키퍼
폭발적인 반사 신경으로 유소년팀에서 독일 대표팀까지 올라간 재능.
- 베른트 레노Bernd Leno · 골키퍼
젊은 나이에 주전을 차지해 안정된 선방과 발밑 전개를 오래 제공했다.
- 로베르트 코바치Robert Kovač · 중앙 수비수
침착한 커버와 대인 방어로 2002년 전후의 후방을 받쳤다.
- 디에고 플라센테Diego Placente · 왼쪽 수비수
왕성한 왕복과 안정된 볼 처리로 2002년의 왼쪽을 지켰다.
- 조르지뉴Jorginho · 오른쪽 수비수
공격적인 오버래핑과 기술로 1988년 우승 전후 측면을 넓혔다.
- 그라니트 자카Granit Xhaka · 수비형 미드필더
패스 방향과 경기의 감정을 통제하며 2024년 무패 우승의 중앙을 세웠다.
- 안제이 분촐Andrzej Buncol · 중앙 미드필더
왕성한 활동량과 전진으로 1988년 UEFA컵 우승기의 중원을 움직였다.
- 아르투로 비달Arturo Vidal · 중앙 미드필더
충돌과 침투를 즐기는 전천후 능력으로 세계적 미드필더의 싹을 틔웠다.
- 크리스티안 슈라이어Christian Schreier · 공격형 미드필더
1988년 결승의 크로스와 공격 전개로 대역전의 마지막 고리를 만들었다.
- 율리안 브란트Julian Brandt ·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과 중앙을 유영하는 터치로 젊은 공격진의 창조성을 맡았다.
- 카이 하베르츠Kai Havertz · 공격형 미드필더
큰 체격과 섬세한 기술을 결합해 십대부터 공격의 중심이 됐다.
- 트란퀼로 바르네타Tranquillo Barnetta · 왼쪽 미드필더
양발 킥과 왕성한 이동으로 2000년대 중반 공격의 연결을 맡았다.
- 파울루 세르지우Paulo Sérgio · 오른쪽 공격수
속도와 결정력으로 1990년대 초 레버쿠젠의 공격 수준을 끌어올렸다.
- 안드레아스 톰Andreas Thom · 센터 포워드
동독 출신의 영리한 움직임과 기술로 통일 전후의 공격을 이었다.
- 올리버 노이빌Oliver Neuville · 센터 포워드
빠른 침투와 연계로 2002년 결승팀의 전방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Dimitar Berbatov · 센터 포워드
부드러운 첫 터치와 느긋한 마무리로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 루카스 알라리오Lucas Alario · 센터 포워드
박스 안 위치 선정과 간결한 슈팅으로 꾸준히 골을 보탰다.
- 빅터 보니페이스Victor Boniface · 센터 포워드
힘, 운반, 연계를 겸하며 2024년 무패 우승 공격의 첫 기준점이 됐다.
출처와 기록 기준
- 바이어 04: 1903년 노동자 170명의 청원과 1904년 구단 창립
- 바이어 04: 창단부터 2024년까지 120년 연표
- 바이어 04: 1988년 UEFA컵 결승 2차전과 승부차기
- 바이어 04: 1999-2000시즌 운터하힝의 마지막 경기
- 바이어 04: 2023-24시즌 첫 푸스발-분데스리가 우승과 무패 기록
- 바이어 04: 뤼디거 폴보른의 출전 기록과 구단 내 역할
- 바이어 04: 옌스 노보트니 명예 주장 선정과 선수 평가
- 바이어 04: 루시우 122경기 21골과 2002년 유럽 무대
- 바이어 04: 요나단 타의 10년, 402경기와 작별
- 바이어 04: 시몬 롤페스의 선수·주장·경영자 경력
-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완성된 미하엘 발라크
- 바이어 04: 제 호베르투의 149경기와 기술적 유산
- 바이어 04: 베른트 슈나이더의 10년과 ‘하얀 브라질리언’
- 바이어 04: 플로리안 비르츠의 다섯 해 반과 리버풀 이적
- 바이어 04: 차범근이 회고한 1988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골’
- 바이어 04: 울프 키르스텐의 446경기 238골과 1993년 결승골
- 독일축구협회: 플로리안 비르츠, 2025년 독일 올해의 남자 축구선수
- UEFA: 2001-02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공식 경기 기록
- 차범근 표지 사진: Nationaal Archief/Anefo, CC BY-SA 3.0 NL
- 바이아레나 표지 배경: Partonez, CC BY-SA 4.0
- 바이어 04 레버쿠젠 문장 원본과 파일 정보
이 글이 만들어진 방식
이 글은 박성호(삥이)가 2025년에 작성한 레버쿠젠 역대 베스트 11 원고와 완성 편집물을 1차 저본으로 삼고, 2026년 8월 21일 현재 바이어 04와 UEFA의 공식 기록을 다시 대조해 확장한 개정판이다. 선수 선택과 3-4-1-2 구상은 원저자의 판단을 잇되, 1988년 결승에서 차범근의 득점 시각과 폴보른의 승부차기, 2024년 우승 이후 달라진 선수 경력처럼 사실이 바뀌었거나 잘못 전해진 부분은 공식 자료에 맞춰 바로잡았다.
선수마다 구단에서의 일화, 플레이스타일, 역사적 가치, 현대 전술에서의 쓰임과 경쟁자보다 앞선 이유를 한 흐름에 담았다. 어느 한 사람을 초월적 존재로 세우지 않았다. 차범근은 표지의 강한 입구이고 키르스텐은 최다 득점자이며 비르츠는 첫 리그 우승기의 창조자다. 각자의 문장은 각자의 크기로 끝난다.
선수별 세로 편집물과 1·2·3군 시각물은 박성호(삥이)가 Adobe Photoshop에서 직접 제작한 기존 작품이며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이트용 대표 썸네일도 생성형 AI 없이 Nationaal Archief/Anefo의 1979년 차범근 초상, Partonez의 바이아레나 사진, 기존 구단 문장을 크롭·색보정·합성하고 타이포그래피를 더했다. 썸네일은 CC BY-SA 4.0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저자·원문·라이선스 표시와 변경 사실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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