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 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푸스발-분데스리가

Fußball-Bundesliga
FC 바이에른 뮌헨 문장

FC 바이에른 뮌헨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ingetragener Verein

독일 연방 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 1949년 수립된 독일의 공식 국호). 그 동남부에는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 ‘바이에른 자유주’를 뜻하는 공식 명칭)가 있고, 알프스에서 내려온 바람과 이자르강(Isar; 뮌헨을 관통하는 도나우강 수계의 강)이 만나는 곳에 뮌헨(München; 바이에른 자유주의 주도)이 자리한다.

뮌헨은 왕국의 수도였고 예술과 학문의 도시였으며, 나치 운동이 세를 불린 장소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은 거리와 주택, 오래된 건축을 무너뜨렸다. 폐허를 치우고 서독의 경제 중심지로 성장한 도시에서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과 새로운 번영을 과시하는 일이 오랫동안 한 풍경 안에 겹쳤다. 그 복잡한 자의식이 축구장에서 가장 크고 선명한 형태를 얻었다.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ingetragener Verein. 끝의 eingetragener Verein은 독일 법에 따라 등록된 협회라는 뜻이다. 1900년 2월 27일 프란츠 욘(Franz John; 바이에른 창립을 주도한 독일 사진가·축구 행정가, 1872-1952)과 열 명의 동료가 뮌헨의 한 식당에서 만든 작은 구단은 한 세기 뒤 독일 축구의 최대 권력이 되었다.

그 길은 처음부터 곧지 않았다. 1932년 첫 독일 챔피언십을 차지한 팀에는 유대인 회장 쿠르트 란다우어(Kurt Landauer; 바이에른 회장을 네 차례 지낸 유대계 독일 축구 행정가, 1884-1961)와 유대인 감독 리하르트 콘(Richard Kohn; ‘돔비’로 불린 오스트리아 축구감독, 1888-1963)이 있었다. 나치 집권 뒤 란다우어는 수용소를 거쳐 스위스로 망명했고, 구단은 ‘유대인의 클럽’이라는 낙인 아래 밀려났다.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그가 다시 회장직을 맡았다는 사실은 바이언의 역사에 승패표로는 적을 수 없는 깊이를 남긴다.[1]

1963년 푸스발-분데스리가(Fußball-Bundesliga; ‘연방 축구 리그’를 뜻하는 독일 최상위 리그)가 출범했을 때 뮌헨에 주어진 한 자리는 지역 라이벌 TSV 1860 뮌헨에게 돌아갔다. 바이언은 두 시즌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승격한 젊은 팀에는 프란츠 베켄바워, 제프 마이어, 게르트 뮐러가 있었다. 독일 축구의 변두리에 남겨졌던 구단이 유럽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데에는 십 년도 걸리지 않았다.

1974년부터 유러피언컵을 세 차례 연속 들어 올린 왕조, 1980년대의 브라이트니게(Breitnigge; 파울 브라이트너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성을 합친 별칭), 1990년대의 ‘FC 할리우드’와 2001년의 극적인 유럽 정상 복귀, 알리안츠 아레나 시대에 완성된 2013년과 2020년의 트레블. 바이언의 연대기는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도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가장 강한 팀은 유럽에서도 가장 강할 수 있는가.

FUSSBALL-CLUB BAYERN MÜNCHEN e. V.1900-2026

Die Roten · 붉은 유니폼에 포개진 뮌헨과 독일 축구의 126년

열한 자리를 고른 방식

한 시대의 최강 팀을 복원하지 않았다. 바이언의 전체 역사를 한 경기장에 불러 모으는 작업이기에 개인의 위대함만으로 자리를 나눌 수도 없었다. 베켄바워가 전진할 때 후방을 누가 읽는지, 브라이트너와 람의 움직임이 어느 공간을 여는지, 마테우스와 슈바인슈타이거가 공을 잃은 뒤 무엇을 회수하는지까지 생각했다. 전방에서는 리베리의 곡선과 루메니게의 직선, 토마스 뮐러의 공간 감각, 두 위대한 9번의 공존 가능성을 살폈다.

선정 결과는 4-2-2-2에 가까운 비대칭 대형이다. 시대가 다른 선수들을 억지로 현대 전술에 복종시키지는 않았다. 각자가 가장 강했던 성질을 남겨두고, 그 성질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을 자리를 찾았다. 포메이션은 글의 마지막에서 공개한다.

삥이가 당시 원고와 함께 고른 BGMStern des Südens · 남부의 별페이지 안에서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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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누엘 노이어|골키퍼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 상세 정보 디자인

마누엘 노이어(Manuel Peter Neuer; 독일 축구선수·골키퍼, 1986-) 이전에도 골문 밖으로 나오는 수문장은 있었다. 그로시치 줄러와 아마데오 카리소가 오래전에 그 길을 열었고, 레프 야신은 페널티 지역 전체를 지배하는 골키퍼의 권위를 세웠다. 노이어가 바꾼 것은 행동의 존재보다 그 행동이 팀 전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그는 최종 수비선 뒤의 넓은 초원을 자기 구역으로 만들었다. 긴 공이 떨어질 지점을 향해 달려 나가고, 발등으로 걷어낼지 가슴으로 받을지, 짧은 패스로 다시 공격을 시작할지를 한 호흡 안에서 골랐다. 높은 수비선을 세운 바이언과 독일 대표팀은 그 판단 덕분에 전진할 수 있었다. 골키퍼의 위치가 열 명의 출발선을 몇 미터씩 밀어 올린 셈이다.

2012년 홈에서 놓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그의 첫 바이언 시즌을 상처로 닫았다. 이듬해 웸블리에서 트레블을 완성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알제리전의 광대한 배후를 홀로 청소하며 ‘스위퍼 키퍼’라는 말을 세계의 일상어로 만들었다. 2020년 리스본 결승에서는 파리 생제르맹의 마지막 슈팅들을 막아 두 번째 트레블의 문을 닫았다. 2017년부터 주장 완장을 찬 그는 2026년 5월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공식전 597경기, 두 차례 트레블과 13회의 분데스리가 우승이 그때까지 쌓였다.[2]

2. 프란츠 베켄바워|리베로

프란츠 베켄바워 리베로 상세 정보 디자인

프란츠 베켄바워(Franz Anton Beckenbauer; 독일 축구선수·감독·행정가, 1945-2024)의 바이언 입단기는 뮌헨 축구사의 갈림길로 전해진다. 열세 살의 소년은 원래 TSV 1860 뮌헨을 생각했으나 유소년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뺨을 맞은 뒤 바이언으로 향했다. 1958년의 작은 충돌이 독일 최대 구단의 운명을 바꾸었다.[3]

바이에른 뮌헨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끈 자.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이자 감독이며 회장.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감독.

독일 연방 역사를 빛낸 ‘위대한 독일인 100’.

발롱도르 최종 지명 12회, 포디움 5회, 수상 2회.

출전한 모든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에서 베스트 XI 선정.

kicker Rangliste WK 27회, IK 7회, K 3회, B 3회.

세계 축구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수비수이자 가장 위대한 리더.

요한 크라위프와의 세기적 결전,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승리를 이끈 주장.

그 어떤 수식어로도 형용하기 힘든,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여덟 명 가운데 한 명.

이 열거는 과장이 허락된 장식문이 아니다. 한 항목씩 펼치면 바이언의 창단 이후 역사, 서독이 국제사회로 돌아온 과정, 수비 전술의 계보, 발롱도르와 월드컵의 연대기가 각기 한 장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먼저 압축해 세운 까닭은 베켄바워를 열한 자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평하게 소개하는 순간, 이 명단의 역사적 축척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바이언에서 그는 선수가 맡는 한 자리가 아니라 구단의 첫 세계 제패와 이후의 통치 구조를 함께 세운 원점이었다.

그의 리베로(libero; 이탈리아어로 ‘자유로운 사람’, 대인 수비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최후방을 지키고 공격을 시작하는 수비 역할)는 뒤에 남는 안전장치에 머물지 않았다. 상대 공격을 읽어 공을 빼앗은 뒤 몸의 방향을 앞으로 열었고, 짧은 드리블과 패스로 미드필드의 수적 균형을 바꿨다. 수비가 끝난 순간 공은 그의 발에서 새 질서를 얻었다. 가벼운 보폭, 고개를 든 자세, 서두르지 않는 첫 터치가 경기 전체에 품위를 부여했다.

전술을 디자인한 자

그가 완성한 리베로는 수비수·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의 경계를 한 몸 안에서 다시 그린 역할이었다. 전방 압박의 방향을 읽고, 최후방의 안정성을 보장하며, 공을 되찾은 즉시 공격의 첫 문장을 썼다. 정확한 첫 터치와 절제된 드리블, 한 줄을 건너뛰는 패스, 예고 없이 나타나는 전진은 서로 다른 재능의 병렬이 아니었다. 공이 어디로 흘러야 팀 전체가 가장 적게 흔들리는지를 먼저 계산한 하나의 지성이었다.

무릎을 크게 굽히지 않고 내딛는 보폭, 땅을 디딜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선과 허리의 각도, 움직이기 전에 다음 장면을 받아 둔 몸. 그의 드리블은 화려함을 과시하는 장기가 아니라 논리적 필연처럼 보였다. 축구가 삶의 태도가 될 수 있음을, 베켄바워는 수비수에게 좀처럼 허락되지 않던 우아함으로 증명했다.

선수·감독·회장으로 이어진 한 사람의 왕조

바이언의 분데스리가 승격, 1967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974년부터 이어진 유러피언컵 3연패가 모두 그의 시간 안에 놓인다. 서독 대표팀에서는 1972년 UEFA 유로과 1974년 월드컵을 들어 올렸고, 발롱도르를 두 차례 받았다. 참가한 두 차례 UEFA 유로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XI에 들었으며, UEFA 역시 그를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호명한다.[14][15]

감독으로는 1986년 월드컵 준우승 뒤 1990년 우승을 이루었고, 바이언의 지휘봉을 잡아 1994년 분데스리가와 1996년 UEFA컵을 더했다. 회장으로 돌아온 뒤에는 선수 시절 자신이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던 구단의 다음 세기를 설계했다. 선수·감독·행정가의 경력이 한 문장에 들어가는 순간, Der Kaiser는 별명이라기보다 그가 실제로 수행했던 직책의 총칭에 가까워진다.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뒤에도 모든 리베로와 빌드업형 수비수는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가 남긴 잔디 자국 위에서 출발한다. 베켄바워는 공을 막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이 다시 시작되는 장소였고, 바이언이 세계를 향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 문장이었다.

3. 파울 브라이트너|왼쪽 풀백

파울 브라이트너 레프트백 상세 정보 디자인

파울 브라이트너(Paul Breitner; 독일 축구선수·수비수·미드필더, 1951-)는 반듯한 영웅상이 품기 어려운 사람이다. 긴 머리와 수염, 체제와 권위를 향한 날 선 발언, 마오쩌둥의 초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 그를 1970년대 서독의 논쟁 한가운데 세웠다. 그 소란을 걷어내고 경기만 보아도 여전히 평범한 풀백은 남지 않는다.

우도 라테크가 1970년 바이언에 데려온 젊은 브라이트너는 왼쪽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들어왔고, 강한 오른발 슈팅과 긴 패스로 공격의 방향을 정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세 시즌을 거쳐 1978년 뮌헨에 돌아왔을 때에는 완전한 중앙 미드필더가 되어 있었다. 루메니게와 결성한 브라이트니게는 베켄바워·뮐러 세대가 떠난 뒤 생긴 공백을 메웠다. 바이언 공식 명예의 전당이 그를 Der Stratege, 곧 ‘전략가’로 부르는 까닭이다.[4]

1974년 월드컵 결승의 페널티킥, 1982년 결승의 득점으로 그는 서로 다른 두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은 드문 선수에도 들었다. 이 명단에서는 전성기 후반의 중앙 지휘 능력을 품은 왼쪽 풀백으로 세운다. 측면을 달리는 동시에 마테우스 옆으로 들어와 빌드업을 돕는 역할이다. 자유와 질서 사이에서 늘 논쟁을 일으킨 사람이기에 가능한 배치이기도 하다.

4. 필리프 람|오른쪽 풀백

필리프 람 라이트백 상세 정보 디자인

필리프 람(Philipp Lahm; 독일 축구선수·풀백·미드필더, 1983-)의 플레이에는 낭비되는 동작이 드물었다. 상대가 공을 받기 전에 몸의 각도를 정하고, 패스가 도착하면 다음 선택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었다. 작은 체격을 약점으로 만들 장면 자체를 줄였으니, 태클의 힘보다 판단의 선행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뮌헨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바이언 유소년팀에 들어온 그는 슈투트가르트 임대 뒤 양쪽 풀백을 오갔다. 주제프 과르디올라가 중앙 미드필더로 옮겼을 때에도 새로운 포지션을 배우는 시간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측면에서 익힌 시야가 중앙에서 더 많은 방향을 얻었다. 패스의 길이보다 어느 발에 보내느냐를 생각했고, 압박을 피한 뒤 동료의 다음 선택까지 편하게 했다.

2012년 ‘피날레 다호암’(Finale dahoam; 바이에른 방언으로 ‘안방 결승’을 뜻하는 2012년 뮌헨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의 별칭)에서 무너진 주장은 이듬해 웸블리에서 빅이어를 가장 먼저 들어 올렸다. 2014년에는 독일 대표팀 주장으로 월드컵을 품었다. 바이언 공식전 517경기와 21개의 우승, 퇴장 없이 마친 경력은 ‘미스터 신뢰’라는 별칭에 숫자를 붙인다.[5]

5. 로타어 마테우스|중앙 미드필더

로타어 마테우스 중앙 미드필더 상세 정보 디자인

로타어 마테우스(Lothar Herbert Matthäus; 독일 축구선수·미드필더·리베로, 1961-)는 한 경기 안에서 가장 먼 거리를 가장 많은 책임과 함께 이동했다. 상대의 중심을 압박하고 공을 빼앗은 다음 직접 전진했으며, 페널티 지역 앞에서는 양발의 중거리 슈팅을 꺼냈다. 속도와 지구력, 패스와 대인 방어가 한 몸에 모였고, 경기의 온도가 오를수록 존재감도 커졌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성장한 그는 1984년 바이언으로 왔고, 인테르에서 세리에 A와 UEFA컵을 정복한 뒤 1992년 돌아왔다. 두 번째 바이언 시기에는 아킬레스건 부상을 통과하며 리베로로 변신했다. 젊은 시절의 폭발력을 잃어가는 대신 경기 전체를 내려다보는 위치를 얻었다. 한 선수의 몸 안에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최후방 지휘관의 역사가 이어졌다.

바이언에서 일곱 차례 분데스리가와 1996년 UEFA컵을 우승했고, 1990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 주장으로 발롱도르를 받았다. 공식 명예의 전당은 그를 Der Leitwolf,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늑대라 부른다. 2000년 3월 올림피아슈타디온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관중이 일제히 일어섰던 장면에는 그의 거친 리더십과 열두 시즌의 시간이 함께 담겼다.[6]

6.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중앙 미드필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중앙 미드필더 상세 정보 디자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Bastian Schweinsteiger; 독일 축구선수·중앙 미드필더, 1984-)는 측면의 재기 넘치는 소년으로 1군에 올라왔다. 루이 판할이 그를 중앙으로 옮긴 뒤 바이언의 박동은 31번의 발끝에서 고르게 뛰었다. 수비선 앞에서 공을 받고, 압박을 등진 채 방향을 바꾸며, 전진한 풀백의 빈자리까지 메웠다.

201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승부차기에서 그의 슈팅은 골대를 때렸다. 고향의 경기장에서 우승컵을 내준 장면은 오래 남았고, 선수는 그 기억을 피해 가지 않았다. 2013년에는 더 낮고 단단한 중심이 되어 트레블을 완성했다. 우승의 장면만으로는 슈바인슈타이거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무너진 다음 해에 같은 대회를 처음부터 다시 건너간 시간이 그의 축구를 완성했다.

2014년 월드컵 결승의 연장전,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부딪칠 때마다 얼굴과 몸에 상처가 늘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중앙을 지켰고, 독일은 마리오 괴체의 골 뒤 네 번째 별을 달았다. 바이언 1군 공식전 500경기, 68골, 여덟 차례 분데스리가와 2013년 트레블. 팬들이 붙인 Fußballgott는 직역하면 ‘축구의 신’이다. 초월적인 재능보다 오래 견딘 충성에 바친 이름이었다.[7]

7. 프랑크 리베리|왼쪽 윙어

프랑크 리베리 레프트윙 상세 정보 디자인

프랑크 리베리(Franck Henry Pierre Ribéry; 프랑스 축구선수·왼쪽 윙어, 1983-)가 2007년 뮌헨에 왔을 때 바이언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조차 놓친 상태였다. 그는 낯선 리그의 적응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낮은 무게중심으로 왼쪽을 파고들고, 수비수의 발이 굳는 순간 안쪽과 바깥쪽 가운데 더 아픈 길을 골랐다. 관중은 첫 시즌부터 그를 ‘카이저 프랑크’라 불렀다.

왼쪽의 리베리와 오른쪽의 아르연 로번이 만든 로베리(Robbery; Robben과 Ribéry를 합친 바이언의 양쪽 윙어 듀오 별칭)는 2010년대 바이언의 공격 문법이었다. 리베리는 터치라인에서 시작해 하프스페이스로 들어왔고, 다비드 알라바가 바깥을 질주할 길을 열었다. 공을 잃은 뒤에는 격한 감정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축구에서는 기술과 분노, 장난기와 집요함이 좀처럼 분리되지 않았다.

2013년 UEFA 올해의 선수, 트레블, 그해 발롱도르 3위. 열두 시즌 동안 공식전 425경기 124골과 23개의 우승을 남겼다. 분데스리가 273경기 92도움은 세부 기록 집계 이후 비독일인 최다 기록으로 소개된다.[8] 얼굴의 흉터보다 먼저 드리블의 궤적이 떠오르게 된 시간이었다.

8.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오른쪽 공격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라이트윙 상세 정보 디자인

카를하인츠 루메니게(Karl-Heinz Rummenigge; 독일 축구선수·공격수·행정가, 1955-)는 1974년 이름 없는 열여덟 살로 입단했다.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의 왕조가 절정에 있던 시기였으니, 훗날 그는 그 도전을 ‘가미카제 임무’라고 회고했다. 두 번째 시즌부터 주전이 되었고, 선배들이 떠난 뒤에는 팀의 얼굴이 되었다.

초기의 무기는 속도였다. 오른쪽에서 길게 전진한 뒤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경력이 쌓이면서 양발 슈팅과 연계, 페널티 지역의 움직임을 더했다. 브라이트너가 중앙에서 경기의 방향을 틀면 루메니게가 마지막 직선을 그었다. 브라이트니게가 이끈 바이언은 1980년과 1981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루메니게는 같은 두 해에 발롱도르를 받았다.

바이언 분데스리가 310경기 162골, 세 차례 득점왕, 두 차례 유러피언컵과 1976년 인터콘티넨털컵. 1984년 인테르로 떠난 뒤 1991년 구단 경영진으로 돌아왔고, 2002년부터 2021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 AG의 이사회를 이끌었다.[9] 선수로 왕조의 끝을 지킨 공격수는 행정가가 되어 알리안츠 아레나와 세계화의 시대를 열었다.

9. 토마스 뮐러|공간 해석가

토마스 뮐러 세컨드 스트라이커 상세 정보 디자인

토마스 뮐러(Thomas Müller; 독일 축구선수·공격수, 1989-)는 자기 역할을 Raumdeuter라 이름 붙였다. Raum은 공간, Deuter는 해석하는 사람을 뜻하니 ‘공간 해석가’가 된다. 빠른 드리블이나 정교한 몸동작으로 상대를 이기기보다, 수비수가 잠시 잊은 장소를 먼저 발견했다.

그의 움직임은 공을 가진 선수의 선택지를 늘렸다. 센터백과 풀백 사이로 빠졌다가 크로스가 올라오기 직전 반대편으로 돌아왔고, 최전방이 내려오면 비워진 자리를 채웠다. 때로는 공을 어설프게 다루는 듯 보였으나 다음 장면에는 득점이나 도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전술판의 선으로 고정하기 어려운 성질이 오히려 여러 감독의 축구를 연결했다.

2008년 데뷔 뒤 2025년까지 공식전 756경기로 구단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250골과 223도움, 13회의 분데스리가, 2013년과 2020년 두 차례 트레블이 한 구단에서 이어졌다.[10] 게르트 뮐러의 성을 물려받았으나 같은 방식으로 골을 넣지 않았고, 베켄바워의 우아함도 리베리의 폭발력도 닮지 않았다. 바이에른 시골에서 올라온 소년은 끝내 누구와도 닮지 않은 채 바이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사람이 되었다.

10.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센터 포워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센터 포워드 상세 정보 디자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Robert Lewandowski; 폴란드 축구선수·센터 포워드, 1988-)의 득점은 우연이 끼어들 틈을 줄이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첫 터치로 슈팅 각도를 만들고, 양발과 머리 가운데 가장 짧은 해결책을 골랐으며, 수비수의 시야 밖에서 한 걸음 먼저 출발했다. 체격과 기술은 철저한 훈련 아래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2015년 9월 22일 볼프스부르크전의 후반 교체 투입은 그 정밀도가 폭발한 밤이다. 51분부터 60분 사이 다섯 골. 페널티 지역의 마무리, 중거리 슈팅, 가위차기가 아홉 분 안에 이어졌다. 기록은 기이할 만큼 빠르지만 장면마다 다른 해법이 담겼다.

2019-20시즌에는 분데스리가 34골, DFB-포칼 6골, UEFA 챔피언스 리그 15골로 세 대회 득점왕과 트레블을 함께 차지했다. 다음 시즌 리그 41골을 넣어 게르트 뮐러의 40골 기록을 49년 만에 넘어섰다. 바이언 공식전 375경기 344골, 여덟 시즌 동안 평균에 가까운 표현을 거부하는 득점 속도였다.[11] 마지막 41번째 골 뒤 ‘4ever Gerd’ 셔츠를 뮐러의 아내 우시에게 건넨 장면은 기록의 경신과 계승을 같은 화면에 남겼다.

11. 게르트 뮐러|센터 포워드

게르트 뮐러 센터 포워드 상세 정보 디자인

게르트 뮐러(Gerhard Müller; 독일 축구선수·센터 포워드, 1945-2021)의 몸은 고전적인 미학과 거리가 있었다. 낮은 중심, 굵은 허벅지, 짧은 보폭. 그 구조는 페널티 지역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였다. 등을 진 채 몸을 돌리고, 넘어지면서 발끝을 내밀며, 공이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골문 구석을 찾았다.

바이언의 두 번째 신.
신은 어떻게 침묵 속에서 골을 넣는가.

그에게 공간은 넓이보다 시간이었다. 수비수와 골키퍼가 공의 다음 위치를 이해하기 전, 짧은 찰나에 발을 갖다 댔다. 아름다운 자세를 완성할 필요가 없었고 슈팅을 위한 별도의 준비 동작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독일어에는 그의 이름을 동사로 만든 müllern이라는 표현까지 생겼다. 어떻게든 공을 골문 안에 넣는 행위를 뜻했다.

공을 받기 전부터 슈팅의 방향을 정했고, 몸은 반대를 말하면서 발끝만 골문을 향했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수비수가 닫았다고 믿은 찰나에 자물쇠를 열었다. 몸을 뒤로 빼면서도 슈팅했고, 공을 멈추지 않은 채 방향을 바꿨으며, 수비가 준비 동작을 읽기도 전에 결과를 남겼다. 골의 모양보다 골이 태어나는 시간을 지배한 공격수였다.

1964년 바이언에 입단한 뒤 공식전 607경기 566골, 분데스리가 365골, 일곱 차례 리그 득점왕을 기록했다. 1970년 월드컵 10골과 발롱도르, UEFA 유로 1972, 1974년 월드컵 결승골, 바이언의 유러피언컵 3연패가 그의 득점 위에서 이어졌다.[12] 베켄바워가 훗날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낡은 목조 건물에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가 바이언을 알게 된 순간마다 골문 가까이에 뮐러가 있었다.

기록은 언젠가 경신된다. 실제로 단일 시즌 40골은 레반도프스키의 41골 앞에서 49년 만에 물러났다. 뮐러가 대체되지 않는 까닭은 숫자의 영구성에 있지 않다. 바이언이 지역의 강호에서 유럽의 제국으로 건너가던 모든 결정적 장면에 그의 득점이 놓였고, 그 뒤로 ‘바이언의 9번’이라는 말 자체가 골을 의무로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골을 넣은 선수를 넘어 축구에서 결과가 생기는 방식을 하나의 인격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알코올 의존으로 삶이 무너졌던 시기에는 옛 동료와 구단이 손을 내밀었다. 회복한 뒤 유소년팀 코치로 돌아와 다음 세대의 공격수들을 도왔다. 득점이 그의 언어였다면 바이언은 그 언어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준 집이었다. 그가 바이언에 남긴 것은 트로피보다 무겁고 독일에 남긴 것은 승리보다 깊다. ‘두 번째 신’이라는 오래된 표현에는 566골뿐 아니라 무너진 사람을 다시 가족 안으로 데려온 구단의 기억까지 함께 들어 있다.

마침내, 한 경기장에 선 열한 명

공을 가진 순간에는 브라이트너가 안쪽으로 들어와 마테우스·슈바인슈타이거와 중앙을 만든다. 람은 오른쪽의 높이를 조절하고 베켄바워는 공을 몰고 전진한다. 리베리가 왼쪽에서 수비를 끌어당기면 루메니게가 반대편과 중앙을 오가고, 토마스 뮐러는 두 스트라이커 주변의 빈칸을 읽는다. 레반도프스키가 연계와 압박을 맡는 동안 게르트 뮐러는 가장 짧은 득점의 순간을 기다린다. 높은 최종선 뒤에는 노이어가 서 있다.

모든 세대를 한 전술에 가둘 수는 없다. 1970년대의 잔디와 2020년의 압박 강도도 같지 않다. 이 포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은 가상의 경기 결과보다 바이언이 126년 동안 길러낸 역할의 계보다. 리베로, 공격형 풀백, 전천후 미드필더, 공간 해석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9번이 붉은 유니폼 안에서 서로를 이어받았다.

삥이가 디자인한 바이언 축구 역대 베스트 XI 선정 표제 노이어, 베켄바워, 브라이트너, 람, 마테우스, 슈바인슈타이거, 리베리, 루메니게, 토마스 뮐러, 레반도프스키, 게르트 뮐러로 구성한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베스트 11 올리버 칸, 제프 마이어,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아르연 로번 등을 포함한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2군 명단 시대와 포지션별로 정리한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기타 후보 명단
표제에서 베스트 11 포메이션, 2군과 기타 후보까지 한 세계로 이어지는 삥이의 바이언 편집 디자인.

이미지 밖에서 다시 읽는 2군과 기타 후보

최종 포메이션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들의 위계를 낮추지는 않는다. 시대별 전술과 열한 자리의 조화를 우선한 결과이며, 아래 명단은 이미지 안의 이름을 검색 가능한 텍스트로 다시 기록한 것이다. 한국어 이름 뒤에는 원어명과 주 포지션을 병기하고, 바이언에서 각자가 남긴 성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2군 명단

  • 제프 마이어Josef Dieter “Sepp” Maier · 골키퍼

    1970년대 첫 유럽 왕조의 골문을 지킨 ‘안칭의 고양이’.

  • 올리버 칸Oliver Rolf Kahn · 골키퍼

    2001년 유럽 정상 복귀를 투지와 존재감으로 끌어낸 주장.

  •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Hans-Georg Schwarzenbeck · 중앙 수비수

    베켄바워의 전진 뒤를 지키며 첫 왕조의 균형을 완성한 수비수.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Klaus Augenthaler · 중앙 수비수·리베로

    1980년대 후방을 통솔하고 주장 완장을 이어받은 리베로.

  • 제롬 보아텡Jérôme Agyenim Boateng · 중앙 수비수

    긴 전진 패스로 2013년과 2020년의 축구를 연결한 수비수.

  • 빅상트 리자라쥐Bixente Lizarazu · 왼쪽 풀백

    측면의 속도와 수비 균형으로 2001년 유럽 제패를 뒷받침했다.

  • 다비드 알라바David Olatukunbo Alaba · 왼쪽 풀백·중앙 수비수

    풀백과 중앙을 오가며 두 차례 트레블의 전술적 폭을 넓혔다.

  • 베른트 뒤른베르거Bernd Dürnberger · 수비형 미드필더·풀백

    화려한 왕조의 여러 빈칸을 묵묵히 메운 다목적 선수.

  • 요주아 키미히Joshua Walter Kimmich · 수비형 미드필더·오른쪽 풀백

    패스의 방향과 압박의 시작점을 함께 책임진 21세기 지휘자.

  • 프란츠 로트Franz Roth · 중앙 미드필더

    큰 결승마다 득점해 ‘황소’라는 별칭을 유럽 무대에 새겼다.

  • 울리 회네스Ulrich “Uli” Hoeneß · 공격형 미드필더·공격수

    선수로 첫 왕조를 질주하고 경영자로 현대 바이언의 규모를 세웠다.

  • 슈테판 에펜베르크Stefan Effenberg · 중앙 미드필더

    2001년 팀을 유럽 정상으로 밀어 올린 강렬한 주장.

  • 디터 브레닝거Dieter Brenninger · 왼쪽 윙어

    분데스리가 승격기와 첫 국내 우승기의 측면을 달린 공격수.

  • 아르연 로번Arjen Robben · 오른쪽 윙어

    왼발로 접어 들어가는 한 궤적을 2013년 트레블의 결승골로 완성했다.

  • 디터 회네스Dieter Hoeneß · 센터 포워드

    1980년대 제공권과 투쟁심으로 최전방을 버틴 스트라이커.

기타 후보 명단

  • 장마리 파프Jean-Marie Pfaff · 골키퍼

    1980년대 바이언의 골문에 곡예 같은 반사 신경을 더했다.

  • 콘라트 하이트캄프Konrad Heidkamp · 중앙 수비수

    1932년 바이언의 첫 독일 챔피언십을 이끈 주장.

  • 사뮈엘 쿠푸르Samuel Osei Kuffour · 중앙 수비수

    1990년대 후반과 2001년 유럽 제패를 관통한 힘과 속도의 수비수.

  • 파트리크 안데르손Patrik Jonas Andersson · 중앙 수비수

    2001년 리그 최종전의 마지막 순간을 우승으로 바꾼 수비수.

  • 루시우Lucimar Ferreira da Silva · 중앙 수비수

    공을 몰고 전진하는 힘으로 2000년대 후방에 공격성을 입혔다.

  • 마츠 후멜스Mats Julian Hummels · 중앙 수비수

    유소년 시절과 전성기 후반을 바이언에서 보낸 빌드업형 수비수.

  • 뤼카 에르난데스Lucas François Bernard Hernandez · 중앙 수비수·왼쪽 풀백

    대인 수비와 다재다능함으로 2020년 전관왕의 수비 폭을 넓혔다.

  • 한스 플뤼글러Johannes Christian Pflügler · 왼쪽 풀백

    1980년대 후반 왕조의 왼쪽을 오래 지킨 원클럽 수비수.

  • 후안 베르나트Juan Bernat Velasco · 왼쪽 풀백

    짧은 패스와 전진성으로 과르디올라 시대의 측면을 지원했다.

  • 윌리 사뇰Willy David Frédéric Sagnol · 오른쪽 풀백

    정확한 크로스와 안정적인 수비로 2000년대 오른쪽을 맡았다.

  • 하피냐Márcio Rafael Ferreira de Souza · 오른쪽 풀백

    주전과 교체의 경계를 받아들이며 긴 우승 시대를 지탱했다.

  • 뱅자맹 파바르Benjamin Jacques Marcel Pavard · 오른쪽 풀백·중앙 수비수

    후방의 여러 자리를 오가며 2020년 전관왕에 기여했다.

  • 하비 마르티네스Javier Martínez Aginaga · 수비형 미드필더·중앙 수비수

    2013년 중원을 단단하게 만들고 2020년까지 두 트레블을 연결했다.

  • 샤비 알론소Xabier Alonso Olano · 수비형 미드필더

    긴 패스와 경기 조절로 과르디올라 시대 후방 빌드업을 지휘했다.

  • 오언 하그리브스Owen Lee Hargreaves · 중앙 미드필더

    활동량과 압박으로 2001년 유럽 정상 등극에 젊은 에너지를 보탰다.

  • 미하엘 발라크Michael Ballack · 중앙 미드필더

    득점력과 제공권을 갖춘 2000년대 중반의 중심.

  • 토니 크로스Toni Kroos · 중앙 미드필더

    바이언 유소년에서 성장해 2013년 트레블 세대의 패스 질서를 만들었다.

  • 티아고 알칸타라Thiago Alcântara do Nascimento · 중앙 미드필더

    좁은 공간의 탈압박과 창조성으로 2020년 유럽 제패를 조율했다.

  • 코랑탱 톨리소Corentin Tolisso · 중앙 미드필더

    중원 여러 역할과 득점 가담으로 전관왕 시대의 깊이를 더했다.

  • 레온 고레츠카Leon Christoph Goretzka · 중앙 미드필더

    전진과 압박, 페널티 지역 침투로 2020년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 제 호베르투José Roberto da Silva Júnior · 왼쪽 미드필더

    측면과 중앙을 오간 기술로 2000년대 공격의 연결점을 만들었다.

  • 하산 살리하미지치Hasan Salihamidžić · 오른쪽 미드필더

    끝없는 활동량으로 2001년 우승 세대의 측면과 중원을 메웠다.

  • 메흐메트 숄Mehmet Tobias Scholl · 공격형 미드필더

    창조적 패스와 킥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를 이어 준 기술자.

  • 루카스 포돌스키Lukas Josef Podolski · 왼쪽 윙어·공격수

    강한 왼발과 직선적인 돌파를 남긴 독일 대표 공격수.

  • 킹슬레 코망Kingsley Junior Coman · 왼쪽 윙어

    2020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골로 유럽 제패를 확정했다.

  • 파울루 세르지우Paulo Sérgio Silvestre do Nascimento · 오른쪽 윙어

    브라질 특유의 기술과 활동량으로 2001년 공격진을 보완했다.

  • 라이너 올하우저Rainer Ohlhauser · 센터 포워드

    승격기와 초기 분데스리가에서 폭발적인 득점을 맡은 공격수.

  • 위르겐 클린스만Jürgen Klinsmann · 센터 포워드

    1990년대 ‘FC 할리우드’의 소란 속에서도 골을 책임졌다.

  • 지오바니 에우베르Giovane Élber de Souza · 센터 포워드

    유쾌한 움직임과 안정적인 득점으로 2001년 세대의 최전방을 이끌었다.

  • 로이 마카이Roy Rudolphus Makaay · 센터 포워드

    간결한 움직임과 빠른 슈팅으로 2000년대 중반 골을 축적했다.

  • 로케 산타 크루스Roque Luis Santa Cruz Cantero · 센터 포워드

    젊은 재능과 제공권으로 2000년대 초 공격진의 선택지를 넓혔다.

  • 제바스티안 다이슬러Sebastian Toni Deisler · 공격형 미드필더

    짧았던 전성기에도 독일 축구가 기대한 창조성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 마리오 고메스Mario Gómez García · 센터 포워드

    페널티 지역의 위치 선정으로 2010년대 초 득점을 쌓았다.

  • 이비차 올리치Ivica Olić · 센터 포워드

    멈추지 않는 압박과 큰 경기 득점으로 2010년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 루카 토니Luca Toni · 센터 포워드

    제공권과 마무리로 2007-08시즌 국내 더블의 중심에 섰다.

  • 미로슬라프 클로제Miroslav Josef Klose · 센터 포워드

    연계와 제공권으로 전방의 질서를 만든 독일 대표팀의 기록적 공격수.

  • 마리오 만주키치Mario Mandžukić · 센터 포워드

    강한 압박과 희생으로 2013년 트레블의 첫 수비수가 되었다.

  • 롤란트 볼파르트Roland Wohlfarth · 센터 포워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두 차례 리그 득점왕에 오른 해결사.

  • 해리 케인Harry Edward Kane · 센터 포워드

    정교한 마무리와 연계로 입단 직후부터 득점 기준을 새로 세웠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FC 바이에른 공식 역사·쿠르트 란다우어 자료
  2. FC 바이에른: 마누엘 노이어 2027년 계약 연장과 공식 기록
  3.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프란츠 베켄바워
  4.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파울 브라이트너
  5.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필리프 람
  6.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로타어 마테우스
  7.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8. FC 바이에른: 프랑크 리베리의 425경기·124골과 등번호 7의 유산
  9.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0. FC 바이에른: 토마스 뮐러의 최종 구단 기록
  11. FC 바이에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바이언 375경기 344골
  12. FC 바이에른 명예의 전당: 게르트 뮐러
  13. 썸네일 바탕 사진: Johannes Plenio, Allianz Arena in Red light, CC0 1.0
  14. UEFA: EURO 1972 대회 베스트 XI와 베켄바워의 국제적 위상
  15. UEFA: EURO 1976 대회 베스트 XI와 베켄바워의 100번째 A매치
  16. 푸스발-분데스리가 공식 상징 원본과 권리 정보

이 글이 만들어진 방식

이 글은 2025년 네이버에 공개한 원고와 완성 편집물을 1차 저본으로 삼고, 2026년 8월 21일 현재의 구단 공식 기록·대회 주관단체 자료·선수별 명예의 전당을 다시 대조해 만든 개정판이다. 열한 명은 통산 기록의 단순 합계로 뽑지 않았다. 바이언에서의 전성기 크기, 구단사에 남긴 전술적 변화, 국가대표와 유럽대항전의 위상, 서로 다른 시대의 역할이 한 대형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함께 평가했다. 선수별 서술도 약력을 바꾸어 적는 데 머물지 않고, 기록이 바이언과 독일 축구사의 어느 장면에서 의미를 얻는지 해석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선수별 세 장의 편집물에는 인물 선정, 사진 탐색, 시대별 기록 조사, 별칭과 원어 표기, 색채 설계, 정보 위계, 프레임과 배경, 수상·우승 내역의 배열이 함께 들어 있다. 표제에서 포메이션, 2군과 기타 후보로 이어지는 마지막 네 장 역시 별개의 첨부 이미지가 아니라 한 세계를 전제로 기획한 연속 시각물이다. 이 기존 편집물은 모두 박성호(삥이)가 Adobe Photoshop에서 한 장씩 직접 제작했으며,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았다. 선수 선정·자료 조사·비교 기준·본문 서술·정보 배열·시각 구성과 완성 편집 디자인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

이미지와 권리에 관한 편집 원칙

완성 편집물에 포함된 선수 사진은 인물을 식별하고 그 선수의 경기사적 의미를 비평·교육·정보 전달하기 위한 문맥 안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원사진을 독립 감상물이나 다운로드 자료로 재배포하지 않으며, 사진 위에 기록·해설·선정 논리·새로운 정보 위계와 시각 구성을 결합했다. 이러한 편집적 창작성과 원사진의 권리는 서로 다른 층위이므로, 본 사이트는 자체 기여를 분명히 밝히되 원사진에 관한 권리까지 소유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2026년 사이트 개정판에 새로 추가한 대표 썸네일 한 장은 CC0로 공개된 알리안츠 아레나 사진을 바탕으로, 삥이FC가 구도·색채·상징과 노출 금지 요소를 설계하고 AI 기반 이미지 편집 도구를 활용해 재구성했다. 이 표지 제작 방식은 2025년의 선수별 편집물·포메이션·후보 명단과 무관하다. 구단·리그 문장은 해당 대상을 식별하고 설명하기 위한 편집 문맥에서만 사용하며, 공식 후원이나 제휴를 뜻하지 않는다. 명백한 오류, 정정 요청 또는 구체적인 권리 근거를 갖춘 삭제 요청이 접수되면 해당 URL과 자료를 확인해 교체·수정·비공개 여부를 판단한다. 문의 절차는 사이트의 문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