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Josep Guardiola Sala; 스페인 축구 선수·감독, 1971-)가 100년 전의 WM을 창고에서 꺼내 복원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혀 다른 시대의 감독이 새로운 문제를 풀다가 오래된 전술과 닮은 실루엣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모양은 되돌아왔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이유는 달라졌다.
2023년 6월 10일 이스탄불. 맨체스터 시티가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 직전, 결승전의 한 장면을 멈춰 세우면 낯익고도 이상한 배치가 보인다. 마누엘 아칸지, 후벵 디아스, 네이선 아케가 후방에 남고, 존 스톤스(John Stones; 잉글랜드 수비수, 1994-)는 수비선에서 빠져나와 로드리(Rodrigo Hernández Cascante; 스페인 미드필더, 1996-) 옆에 선다. 그 앞에서는 베르나르두 실바, 케빈 더브라위너, 일카이 귄도안, 잭 그릴리시가 경기장의 폭을 나누며 엘링 홀란을 받친다.
UEFA 기술 관찰진은 이 구조를 볼 소유 시 1-3-2-4-1로 기록했다. 스톤스가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로드리와 두 번째 축을 만들었고, 맨체스터 시티는 그 구조를 토너먼트 내내 반복했다.[1] 골키퍼를 빼고 숫자만 읽으면 3-2-4-1이다. 그런데 네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 가운데 안쪽 둘을 옛 인사이드 포워드(inside forward; 2-3-5에서 중앙 공격수 양옆에 선 공격 역할), 양쪽 둘을 아웃사이드 포워드(outside forward; 2-3-5의 좌우 폭을 맡은 공격 역할)의 자리와 겹쳐 보면 오래된 글자 하나가 떠오른다.
W-M.(W-M formation; 3-2-2-3의 배치를 글자 모양으로 부른 명칭)
필자가 이 장면을 오래 붙든 까닭은 숫자가 우연히 닮아서만은 아니다. 1920년대에는 중원에 있던 선수가 뒤로 내려가 3+2를 만들었고, 2023년에는 수비선에 있던 선수가 앞으로 올라가 같은 외곽선을 만들었다. 같은 도형을 서로 반대 방향의 움직임으로 완성했다는 역설, 바로 거기에서 이 글이 시작된다.
선수의 출발 위치보다 공을 가진 순간의 역할을 비교한 전술판
실바 홀란
중원 → 최종선
최종선 → 중원
1925년 오프사이드 법 개정이 WM을 불러왔다
맨체스터 시티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WM이 왜 생겼는지를 봐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널리 사용된 피라미드(Pyramid; 2-3-5로 배열한 초기 축구의 대표적 포메이션)는 2-3-5였다. 지금의 포지션 이름을 그대로 대입하면 오해하기 쉽다. 당시의 두 풀백은 오늘날처럼 측면을 오르내리는 수비수가 아니라 최후방에 남은 두 사람이었고, 세 명의 하프백은 그 앞에서 상대 공격수와 공을 나누어 맡았다. 공격진은 아웃사이드 포워드 둘, 인사이드 포워드 둘, 센터포워드 하나로 폭과 깊이를 만들었다. 축구계에서 처음으로 국제 표준에 가까워진 포메이션이었다.
1925년 오프사이드 법이 개정되면서 공격수가 온사이드로 인정받기 위해 골라인과 자신 사이에 두어야 할 상대 선수의 수는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었다. 수비 뒤 공간을 공격하기가 쉬워지자, 허버트 채프먼(Herbert Chapman; 잉글랜드 감독, 1878-1934)의 아스널을 비롯한 여러 팀은 센터 하프(centre-half; 2-3-5의 중앙 하프백)를 최종 수비선으로 내리는 해법을 발전시켰다. 뒤의 세 명, 그 앞의 하프백 둘, 인사이드 포워드 둘과 최전방 셋이 3-2-2-3으로 배열되면서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W와 M처럼 보였다. 채프먼 혼자 어느 날 발명한 완성품은 아니었지만, 그 구조를 경기 모델과 성과로 정착시킨 대표 인물이라는 평가는 분명하다.[2]
WM의 목적은 현대의 점유 축구가 아니었다. 센터포워드를 추적할 수비수를 한 명 더 두고, 공을 빼앗은 뒤 인사이드 포워드와 빠른 윙어를 향해 전진하는 길을 정돈하는 데 가까웠다. 세 명의 후방과 두 명의 중원이라는 골격이 같아도, 1920년대 아스널과 2023년 맨체스터 시티가 같은 축구를 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오래된 도형이 한 팀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완성된 장면은 발렌티노 마촐라와 그란데 토리노의 3-2-2-3에서 이어진다. 토리노는 센터 하프의 후퇴만으로 위대해진 것이 아니라, 마촐라와 에치오 로이크가 중원 사각형을 오가며 WM에 서로 다른 속도를 넣었다.
스톤스의 전진이 시티의 전방 5레인을 열었다
펩의 맨체스터 시티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1925년과 달랐다. 상대는 센터포워드 한 명을 막기 위해 수비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티의 중앙 패스를 차단하고 공을 빼앗은 뒤 비어 있는 측면으로 역습하려 했다. 공격 숫자를 늘리면서도 공을 잃는 순간 중앙이 텅 비지 않아야 했다.
스톤스의 이동이 두 문제를 동시에 건드렸다. 시티가 후방에서 공을 돌릴 때 그는 로드리 옆으로 올라가 첫 압박선 뒤에 두 번째 패스 선택지를 만들었다. 상대 미드필더 한 명이 로드리를 막아도 중앙 통로가 닫히지 않았고, 두 명이 모두 전진하면 귄도안과 더브라위너가 그 뒤에서 공을 받을 공간이 열렸다. UEFA 기술 관찰진이 이 이동의 목적을 후방 또는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 까닭이다.[3]
동시에 아칸지, 디아스, 아케가 세 명의 잔류 수비를 만들었다. 공격 전개가 끊겼을 때 스톤스와 로드리는 역습이 중앙으로 곧장 들어오는 것을 늦추고, 그 뒤의 세 수비수는 넓어진 공간을 분담했다. UEFA가 전 시즌 시티의 인버티드 풀백(inverted full-back; 측면 수비수가 볼 소유 시 중앙으로 이동하는 역할)을 두고 “추가 패스선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공을 잃었을 때 중앙을 더 빨리 방어하기 위한 장치”라고 분석한 논리가 스톤스의 하이브리드 역할에서 한 단계 더 분명해졌다.[4]
앞의 다섯 자리도 숫자를 채우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릴리시와 베르나르두 실바가 터치라인 가까이 폭을 잡으면 상대 수비 간격이 벌어졌고, 귄도안과 더브라위너는 그 사이의 하프스페이스(half-space; 중앙과 측면 사이의 세로 통로)에서 몸을 돌렸다. 홀란은 중앙 수비수를 골문 쪽에 묶었다. 공은 중앙의 3+2에서 안전하게 출발하지만, 마지막에는 전방 5레인(Five Lanes; 경기장 폭을 다섯 개의 세로 통로로 나누어 점유하는 원리)을 서로 다른 높이로 공격했다. 후방의 안정을 전방의 수적 열세로 사지 않고, 두 구조를 한 번의 스톤스 이동으로 연결한 셈이다.
이스탄불 결승의 3-2-4-1은 어떻게 움직였나
전술판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모든 진실을 한 번에 보여주지도 못한다. 숫자는 한 장면의 질서를 붙잡을 뿐, 그 질서가 만들어지고 풀리는 시간까지 기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시티는 공을 가졌을 때 3-2-4-1을 만들었지만, 낮은 수비 블록(low block; 자기 진영에 수비 간격을 좁혀 세운 대형)에서는 네 명의 센터백 자원을 한 줄에 세울 수 있었다. 스톤스가 다시 내려가면 수비선은 넷이 되었고, 압박의 출발점과 상대 빌드업 방향에 따라 중원의 모양도 달라졌다. 결승전에서는 로드리를 밑에 두고 스톤스와 더브라위너가 좌우, 귄도안이 위를 맡는 다이아몬드가 관찰됐으며, 더브라위너가 부상으로 나간 뒤에는 귄도안의 위치가 다시 바뀌었다.[1]
그러므로 ‘펩의 WM’이라는 표현은 경기 전체를 하나의 포메이션으로 고정하는 이름이 아니라, 볼 소유 국면의 한 구조를 역사적 모양과 비교하는 도구로 써야 한다. WM이라는 글자는 닮았지만, 스톤스는 옛 센터 하프처럼 수비선으로 후퇴해 그 모양을 만든 것이 아니라 수비선에서 중원으로 전진했다. 같은 3-2의 골격을 서로 반대 방향의 이동으로 완성한 셈이다.
상대 센터포워드를 통제하기 위해 중원에서 최종선으로 이동했다.
중앙의 패스선과 수적 우위를 만들기 위해 수비선에서 중원으로 이동했다.
후방 세 명과 그 앞 두 명이라는 외곽선은 같지만, 출발점과 해결하려는 문제는 달랐다.
다뉴브 학파와 펩 사이에 놓인 실제 계보
여기서 다뉴브 학파를 불러오는 이유는 펩의 족보를 억지로 1930년대 빈에 꽂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뉴브 학파(Danubian School; 다뉴브강 주변 중부유럽에서 발전한 짧은 패스와 유동적 위치 교환의 전술 계보)에서 후고 마이슬(Hugo Meisl; 오스트리아 축구 행정가·감독, 1881-1937)과 지미 호건(James Hogan; 잉글랜드 축구 선수·지도자, 1882-1974)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마티아스 신델라르(Matthias Sindelar; 오스트리아 축구 선수·센터포워드, 1903-1939)가 중앙에서 내려와 동료의 침투 공간을 만든 오스트리아 분더팀(Wunderteam; ‘기적의 팀’이라 불린 후고 마이슬 시기의 오스트리아 대표팀), 셰베시 구스타브(Sebes Gusztáv; 헝가리 축구 감독·노동운동가, 1906-1986)의 헝가리에서 더 크게 폭발한 위치 교환은 포지션을 고정된 주소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바뀌는 역할로 읽게 했다. 그 변화의 전체 과정은 헝가리 황금의 팀과 토털 풋볼의 계보에서 이미 길게 다뤘다.
그러나 과르디올라에게 확인 가능한 직접 계보는 요한 크라위프(Hendrik Johannes Cruijff; 네덜란드 축구 선수·감독, 1947-2016)다. 펩 자신도 크라위프를 가장 큰 영향으로 꼽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하는 많은 일을 다른 감독과 경기에서 계속 배운다고 말했다.[5] 크라위프의 바르셀로나에서 피벗(pivot; 수비선 앞에서 패스의 방향과 경기의 균형을 조절하는 중앙 역할)으로 성장한 선수 경험, 공을 통해 경기의 의미와 리듬을 지배하려는 철학, 리뉘스 미헐스(Marinus Jacobus Hendricus Michels; 네덜란드 축구 선수·감독, 1928-2005)와 아약스에서 이어진 네덜란드식 공간 이해는 다뉴브 학파보다 훨씬 직접적인 연결이다.[6] 다뉴브 학파는 펩의 족보에 억지로 끼워 넣을 이름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전술사의 선행 장면으로 읽어야 한다.
다뉴브에서 맨체스터까지 하나의 곧은 혈통이 흐른다고 말하면 역사는 간단해지지만 사실은 흐려진다. 더 정확한 연결은 ‘사람’보다 ‘질문’에 있다. 중앙 공격수가 내려오면 누가 그 공간으로 들어갈 것인가. 한 선수가 자리를 비울 때 동료는 어떤 거리를 잡아야 하는가. 공격 숫자를 늘린 뒤 공을 잃으면 누가 중앙을 지킬 것인가. 시대마다 규칙과 선수는 달랐지만, 감독들은 비슷한 질문 앞에서 위치를 다시 움직였다.
2022-23 트레블이 남긴 3+2의 통찰
2022-23 시즌의 맨체스터 시티는 홀란이라는 명확한 9번을 영입한 팀이었다. 이전처럼 중앙 공격수를 비워 두는 폴스 나인(false nine; 중앙 공격수가 아래로 이동해 패스 연결과 공간 창출을 맡는 현대 전술 용어)만으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홀란이 수비선을 뒤로 누르는 동안, 스톤스가 중원으로 올라와 로드리와 균형을 만들고 네 명의 공격형 선수가 그 사이를 점유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첫 우승과 잉글랜드 구단 사상 두 번째 트레블은 이 구조가 남긴 가장 큰 결과였다.[7] 그리하였으니 2022-23 시즌은 과르디올라의 시티가 전술과 결과를 한꺼번에 움켜쥔 화양연화라 불러도 좋겠다.
그러니 펩을 현대 축구의 모든 것을 혼자 발명한 감독으로 떠받들 필요도 없고, 오래된 전술을 세련되게 복사한 사람으로 낮출 필요도 없다. 그의 능력은 과거의 답안을 외우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물려받은 원칙을 현재의 선수와 상대, 규칙과 압박 환경에 맞춰 다시 배열하는 데 있다.
필자가 이 비교에서 얻은 결론은 하나다. 포메이션은 선수들이 선 자리를 기록하지만, 전술은 그들이 왜 그곳에 도착했는지를 설명한다. 전술의 천외천(天外天)은 세상에 없던 숫자를 그리는 데 있지 않다. 같은 숫자라도 선수의 재능과 상대의 압박, 공을 잃은 뒤의 위험에 맞춰 전혀 다른 운동으로 바꾸는 데 있다.
WM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센터 하프가 내려가 만들어졌던 오래된 3+2의 외곽선이, 한 세기 뒤 센터백이 올라가는 순간 다시 나타났다. 축구 전술은 직선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오래전에 사라진 모양이 전혀 다른 이유로 되돌아오고,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포메이션의 숫자보다 움직임의 원인을 보게 된다.
출처와 기록주
- 「In the Zone: Man City 1-0 Inter performance analysis」, UEFA. 결승전의 1-3-2-4-1, 스톤스의 중원 이동과 미드필드 다이아몬드 분석.
- 「Herbert Chapman Hall Of Fame profile」, National Football Museum. 2-3-5가 지배적이던 시기의 채프먼과 3-2-2-3 WM 구조.
- 「UEFA Super Cup: Talking tactics」, UEFA. 스톤스가 로드리 옆으로 이동한 구조와 후방·중원의 수적 우위.
- 「UEFA Champions League Technical Report: Five at the back … and the front too」, UEFA. 시티의 전방 5레인과 인버티드 풀백이 공을 잃은 뒤 중앙을 보호하는 기능.
- 「Guardiola: I am always picking up new ideas」, Manchester City FC. 크라위프를 가장 큰 영향으로 꼽으면서도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운다는 과르디올라의 설명.
- 「The Cruyff Way」, Manchester City FC. 선수 시절부터 이어진 크라위프와 과르디올라의 직접적인 전술·철학 관계.
- 「Man City: Meet the Champions League winners」, UEFA. 2022-23 맨체스터 시티의 첫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트레블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