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1960-6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4강과 결승: 3번 만난 로마와 히버니언, 올림피코의 2-0

합계 5-5 끝에 로마의 재경기 6-0으로 끝난 히버니언과의 4강, 에레라의 인테르를 2번 이긴 버밍엄, 넉 달 뒤 새 시즌에 열린 결승의 2-2와 2-0까지. 세 번째 페어스컵의 4강 5경기와 결승 2경기, 우승 AS 로마와 준우승 버밍엄 시티, 12골의 만프레디니를 읽는다.
1961년 10월 11일 올림피코에서 페어스컵 트로피를 들고 그라운드를 도는 AS 로마 주장 자코모 로시와 선수들의 흑백 사진 위에 버밍엄 시 문장과 AS 로마 문장을 세로로 얹은 결승 표지
1960-6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결승, 버밍엄 시티와 AS 로마.
1961년 10월 11일 올림피코에서 페어스컵 트로피를 들고 그라운드를 도는 AS 로마 주장 자코모 로시와 선수들
1961년 결승 2차전 뒤의 AS 로마
날개 두 장이 잔을 감싸고 금색 공과 검은 받침 위에 선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트로피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트로피

제3회인터시티스 페어스컵

Coupe Internationale des Villes de Foires

1961년 10월 11일 수요일 오후 3시,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Stadio Olimpico)에는 해가 났다. 결승 2차전이 끝나자 AS 로마의 주장 자코모 로시(Giacomo Losi; 이탈리아 수비수, 1935-2024)가 트로피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1960년 9월에 시작한 대회가 1년 1개월 만에 끝난 날이다. 4강 한 대진이 재경기까지 가면서 결승은 다음 시즌으로 밀렸다. 로마는 이 대회를 우승한 유일한 이탈리아 구단으로 남았다.[1][5]

참가팀과 16강·8강을 다룬 본선 편에 이어, 이 편은 1961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린 4강 다섯 경기와 결승 두 경기를 따라간다. 결승에 오른 버밍엄 시티는 세 대회 연속 4강에 올라 두 대회 연속 결승에 선 팀이었다.

4강 대진과 7경기

4강은 히버니언과 AS 로마, 인테르와 버밍엄 시티의 대진이었다. 두 경기 합계가 같으면 재경기를 치르는 규정은 그대로였고, 결승도 두 팀 안방을 오가는 두 경기 합계로 가렸다.[1][2]

4강·결승 일곱 경기 기록날짜·홈과 원정·득점자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분 날짜 홈 결과 원정 득점
4강 1차전 1961.04.19 히버니언 FC 2-2 AS 로마 히버니언 FC폰타나 46분(자책골), 매클라우드 81분
AS 로마로야코노 17분, 60분
4강 1차전 1961.04.19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2 버밍엄 시티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피르마니 67분
버밍엄 시티 FC해리스 12분, 발레리 41분(자책골)
4강 2차전 1961.04.26 AS 로마 3-3 히버니언 FC AS 로마만프레디니 26분, 60분, 로야코노 72분
히버니언 FC킨로크 31분, 64분, 베이커 81분
4강 2차전 1961.05.03 버밍엄 시티 FC 2-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버밍엄 시티 FC해리스 4분, 62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마시에로 66분
4강 재경기 1961.05.27 AS 로마 6-0 히버니언 FC 만프레디니 1분, 9분, 35분, 57분, 메니켈리 69분, 셀모손 72분
결승 1차전 1961.09.27 버밍엄 시티 FC 2-2 AS 로마 버밍엄 시티 FC헬러웰 78분, 오릿 85분
AS 로마만프레디니 30분, 56분
결승 2차전 1961.10.11 AS 로마 2-0 버밍엄 시티 FC 파머 56분(자책골), 페스트린 90분

날짜·득점 시각·관중은 RSSSF 기록을 따른다. 버밍엄 구단 기록은 4강 1차전 피르마니의 골을 경기 종료 12분 전으로, 2차전 인테르의 골을 마시에로가 아니라 벵트 린드스코그의 25야드 슈팅으로 적는다. 《투토메르카토웹》은 결승 2차전 관중을 5만 명으로 적는다(RSSSF 6만 명).

이스터 로드의 2-2, 로마의 3-3, 그리고 6-0

히버니언은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떨어뜨리고 4강에 왔다. 그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보비 킨로크(Bobby Kinloch; 스코틀랜드 인사이드 포워드, 1935-2014)는 훗날 경기 뒤의 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선수들이 욕조에서 노래하며 기뻐하는데 해리 스완(Harry Swan; 히버니언 회장) 회장이 들어와, 바르셀로나와 한 경기 더 치를 기회를 날렸다며 킨로크를 나무랐다는 것이다. 원정 다득점 규정이 없던 때라 합계가 같으면 재경기를 한 번 더 치렀고, 재경기는 곧 입장 수입이었다.[4]

스완 회장은 4강에서 그 재경기를 얻었다. 4월 19일 에든버러 이스터 로드(Easter Road)의 1차전에서 로마는 프란시스코 로야코노(Francisco Lojacono;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의 두 골로 두 번 앞섰다. 히버니언은 후반 시작 직후 로마 수비수 알피오 폰타나(Alfio Fontana; 이탈리아 수비수)의 자책골로 한 번, 81분 조니 매클라우드(Johnny MacLeod; 스코틀랜드 윙어)의 골로 또 한 번 따라붙어 2-2를 만들었다. 4월 26일 로마의 2차전은 3-3이었다. 페드로 만프레디니(Pedro Waldemar Manfredini;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35-2019)가 두 골, 로야코노가 한 골을 넣었고, 킨로크가 두 골을 넣은 히버니언은 81분 조 베이커(Joe Baker; 잉글랜드 공격수, 1940-2003)의 골로 다시 합계를 맞췄다. 5-5였다.[1]

재경기는 한 달 뒤인 5월 27일 로마에서 열렸다. 《스코츠먼》(The Scotsman; 에든버러의 일간지)은 재경기를 로마에서 연 일이 논란이었다고 적는다. 킨로크는 그날의 히버니언을 전혀 준비되지 않은 팀으로 기억한다. 만프레디니가 1분과 9분에 골을 넣었고, 35분과 57분에 두 골을 더했다. 잠파올로 메니켈리(Giampaolo Menichelli; 이탈리아 윙어)와 스웨덴의 아르네 셀모손(Arne Selmosson; 스웨덴 공격수, 1931-2002)의 골까지 6-0이었다. 스코틀랜드 구단의 첫 페어스컵은 로마와의 세 번째 경기에서 끝났다.[1][2][4][6]

4강1960-6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히버니언 FC vs AS 로마

히버니언 FC 로고
히버니언 FCHIBERNIAN FC스코틀랜드 국기스코틀랜드
합계5:5재경기로 결정
AS 로마 로고
AS 로마ASSOCIAZIONE SPORTIVA ROMA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4강 1차전
2 : 2
4강 2차전
3 : 3
재경기
0 : 6
결승 진출
AS 로마

히버니언 FC폰타나 46분 자책골, 매클라우드 81분

4강 1차전

AS 로마로야코노 17분 60분

히버니언 FC킨로크 31분 64분, 베이커 81분

4강 2차전

AS 로마만프레디니 26분 60분, 로야코노 72분

히버니언 FC득점 없음

재경기

AS 로마만프레디니 1분 9분 35분 57분, 메니켈리 69분, 셀모손 72분

이스터 로드 2-2, 로마 3-3. 합계 5-5로 5월 27일 로마에서 다시 만났고, 만프레디니가 4골을 넣은 6-0으로 끝났다.

산 시로의 2-1과 세인트 앤드루스의 2-1

버밍엄은 직전 주말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4로 졌지만, 인테르의 사정은 더 나빴다. 세리에 A 선두를 달리던 인테르는 리그 다섯 경기를 내리 지고 있었다.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Helenio Herrera; 아르헨티나 태생 감독, 1910-1997)는 1년 전 결승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버밍엄을 상대한 사람이다. 길 메릭(Gil Merrick; 잉글랜드 골키퍼, 1922-2010) 감독은 인테르가 유럽 출신 스타 두 명을 집에 보내 쉬게 했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경기 날 쏟아진 뇌우가 딱딱하던 산 시로(Stadio San Siro) 그라운드를 무르게 했다.[3]

4월 19일, 버밍엄은 12분 지미 블룸필드(Jimmy Bloomfield; 잉글랜드 인사이드 포워드, 1934-1983)의 침투 패스를 받은 지미 해리스(Jimmy Harris; 잉글랜드 센터포워드)의 골로 앞섰다. 전반이 끝나기 직전에는 마이크 헬러웰(Mike Hellawell; 잉글랜드 윙어)의 크로스를 걷어 내려던 코스탄초 발레리(Costanzo Balleri; 이탈리아 수비수)가 자기 골문에 머리로 넣었다. 인테르는 후반 에디 피르마니(Eddie Firmani; 남아프리카 출신 공격수, 1933-)의 골로 한 골을 따라갔다. 관중은 2만 2,000명이었다. 메릭은 이탈리아 관중이 버밍엄 골문 뒤에 몰려 앉아 5만 2,000명만큼 소리를 냈는데 대부분 자기 팀 선수들을 향한 야유였다고 했다. 버밍엄 구단은 이 경기 뒤 42년 동안 산 시로에서 이긴 영국 구단이 없었다고 적는다.[1][3]

2차전 이틀 전인 5월 1일, 메릭은 셀틱에서 1만 5,000파운드에 스물세 살 윙어 버티 올드(Bertie Auld; 스코틀랜드 윙어, 1938-2021)를 데려왔다. 올드의 영입 소식이 나오자 세 시간 만에 2차전 표 3,000장이 팔렸다. 5월 3일 세인트 앤드루스(St Andrew’s)에서 올드는 두 골을 모두 만들었다. 4분 올드의 왼발 슈팅을 인테르 골키퍼 로렌초 부폰(Lorenzo Buffon; 이탈리아 골키퍼)이 놓쳤고, 딕 닐(Dick Neal; 잉글랜드 하프백)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해리스가 밀어 넣었다. 62분에는 올드의 프리킥을 해리스가 몸을 던진 헤더로 넣었다. 인테르는 66분 한 골을 따라갔다. 3만 명 가까운 관중 앞에서 버밍엄은 합계 4-2로 두 대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1][3]

4강1960-6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vs 버밍엄 시티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로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합계2:4두 경기 결과
버밍엄 시티 FC 로고
버밍엄 시티 FCBIRMINGHAM CITY F.C.잉글랜드 국기잉글랜드
4강 1차전
1 : 2
4강 2차전
1 : 2
결승 진출
버밍엄 시티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피르마니 67분

4강 1차전

버밍엄 시티 FC해리스 12분, 발레리 41분 자책골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마시에로 66분

4강 2차전

버밍엄 시티 FC해리스 4분 62분

버밍엄이 산 시로와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모두 2-1로 이겼다. 에레라의 인테르를 2번 꺾고 2개 대회 연속 결승에 올랐다.

결승 진출 2개 팀팀별 누적 결승 진출 횟수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단대표 지역결승 진출
버밍엄 시티 FC잉글랜드통산 2번째 결승 진출
AS 로마이탈리아통산 첫 결승 진출

넉 달 뒤의 결승, 세인트 앤드루스의 2-2

결승은 4강 재경기가 끝나고 넉 달 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새 시즌이 시작된 9월 27일에야 열렸다. 버밍엄의 사정은 1년 전보다 나빴다. 개막전에서 풀럼을 이긴 뒤 11경기째 이기지 못해 1부 리그 맨 아래에 있었고, 결승 이틀 전에는 리그컵 재경기에서 3부 리그 스윈던 타운에 0-2로 졌다. 메릭은 아스널 원정 뒤 로마로 날아가 로마가 카타니아를 4-0으로 꺾는 것을 보고 왔다. 그 시즌 로마는 안방 경기를 모두 이겼고 원정 세 경기는 모두 졌다.[3]

로마의 벤치에는 루이스 카르니글리아(Luis Antonio Carniglia;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1917-2001)가 앉아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1957-58·1958-59 유러피언컵을 든 감독이다. 세인트 앤드루스에는 2만 1,000명이 들어왔다. 버밍엄이 몰아붙였지만 30분 알베르토 오를란도(Alberto Orlando; 이탈리아 윙어)의 크로스를 만프레디니가 넣었고, 56분 메니켈리의 슈팅이 걷어 내진 공을 만프레디니가 다시 차 넣어 0-2가 됐다. 그 뒤로는 로마 골키퍼 파비오 쿠디치니(Fabio Cudicini; 이탈리아 골키퍼)의 시간이었다. 쿠디치니는 올드와 브라이언 오릿(Bryan Orritt; 웨일스 인사이드 포워드, 1937-2014)의 슈팅을 연달아 막아 냈다. 78분 헬러웰이 왼쪽에서 파고들어 처음 골망을 흔들었고, 해리스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은 뒤 85분 문전 혼전에서 오릿이 2-2를 만들었다. 주심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데이비드슨(Robert Davidson; 스코틀랜드 심판)이었다.[1][3]

그쪽 골키퍼가 엄청난 경기를 했다. 우리가 던진 것을 거의 다 막았다.

Their goalkeeper played a blinder - he stopped nearly everything that was thrown at him!

- 버밍엄 수비수 그레이엄 시선스, 결승 1차전을 돌아보며

올림피코의 2-0

2주 뒤 로마의 2차전에 버밍엄은 올드 없이 나섰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엘름던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고, 지미 싱어(Jimmy Singer; 웨일스 인사이드 포워드, 1937-2010)가 왼쪽 윙에 섰다. 로마는 로야코노와 파올로 페스트린(Paolo Pestrin; 이탈리아 축구선수)을 새로 넣었다. 전반의 가장 큰 장면은 골이 아니었다. 오릿과 메니켈리가 공을 다투다 부딪히자 양쪽 벤치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메릭은 로마 관계자가 오릿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으려다 카르니글리아와 맞섰다. 프랑스 주심 피에르 슈빈트(Pierre Schwinte; 프랑스 심판)는 하프타임에 두 주장을 심판실로 불렀다. 전반은 0-0이었다.[1][3]

56분 그레이엄 시선스(Graham Sissons; 버밍엄 시티 수비수)가 걷어 낸 공이 로야코노의 발 앞에 떨어졌다. 로야코노의 슈팅은 브라이언 파머(Brian Farmer; 버밍엄 시티 수비수)를 맞고 굴절돼 골문으로 들어갔다. 버밍엄은 블룸필드와 오릿, 싱어가 좋은 기회를 놓쳤고, 90분 페스트린의 골로 승부가 끝났다. 합계 4-2. 버밍엄은 두 대회 연속 결승에서 졌다.[1][3][5]

더 나은 축구를 한 팀이 이겼다. 그래도 우리는 비기거나,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길 수도 있었다.

The better footballing side won but we still could have got a draw or even a win, silly as it sounds.

- 버밍엄 감독 길 메릭, 올림피코의 경기 뒤

결승1960-61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버밍엄 시티 FC vs AS 로마

버밍엄 시티 FC 로고
버밍엄 시티 FCBIRMINGHAM CITY F.C.잉글랜드 국기잉글랜드
합계2:4두 경기 결과
AS 로마 로고
AS 로마ASSOCIAZIONE SPORTIVA ROMA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결승 1차전
2 : 2
결승 2차전
0 : 2
우승
AS 로마

버밍엄 시티 FC헬러웰 78분, 오릿 85분

결승 1차전

AS 로마만프레디니 30분 56분

버밍엄 시티 FC득점 없음

결승 2차전

AS 로마파머 56분 자책골, 페스트린 90분

세인트 앤드루스 2-2, 올림피코 2-0. 로마가 이탈리아 구단으로 처음 페어스컵을 들었다.

우승 AS 로마, 준우승 버밍엄 시티

우승·준우승페어스컵 누적 우승·준우승 횟수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단대표 지역대회 우승
AS 로마이탈리아통산 첫 페어스컵 우승
구단대표 지역대회 준우승
버밍엄 시티 FC잉글랜드통산 2번째 페어스컵 준우승

로마는 처음 나선 결승에서 처음 페어스컵을 들었다. 두 대회 연속 결승에 선 버밍엄은 두 번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지난 대회 8강에서 로마를 떨어뜨린 위니옹을 이번 16강에서 다시 만나 이긴 것이 로마의 출발이었다.[1]

순위선수클럽출신득점
1위페드로 만프레디니Pedro Waldemar ManfrediniAS 로마아르헨티나12골
공동 2위에디 피르마니Eddie Firmani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남아프리카 연방5골
공동 2위프란시스코 로야코노Francisco LojaconoAS 로마아르헨티나5골
공동 4위조 베이커Joe Baker히버니언 FC잉글랜드4골
공동 4위조니 고든Johnny Gordon버밍엄 시티 FC잉글랜드4골
공동 4위지미 해리스Jimmy Harris버밍엄 시티 FC잉글랜드4골
공동 4위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CF 바르셀로나헝가리4골
공동 8위마우로 비치클리Mauro Bicicli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탈리아3골
공동 8위마리오 코르소Mario Corso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탈리아3골
공동 8위벵트 린드스코그Bengt Lindskog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스웨덴3골
공동 8위지미 싱어Jimmy Singer버밍엄 시티 FC웨일스3골
공동 8위보비 킨로크Bobby Kinloch히버니언 FC스코틀랜드3골
공동 8위에이빈 클라우센Ejvind Clausen키외벤하운스 볼클루브덴마크3골
공동 8위예르겐 라운Jørgen Ravn키외벤하운스 볼클루브덴마크3골
공동 8위바운 페테르센Vagn Petersen키외벤하운스 볼클루브덴마크3골
공동 8위예른 쇠렌센Jørn Sørensen키외벤하운스 볼클루브덴마크3골
공동 8위브라니슬라브 미하일로비치Branislav Mihajlović베오그라드 XI유고슬라비아3골

득점 순위는 RSSSF 경기별 기록에서 한 골씩 센 값이며 RSSSF 득점자 표와 같다. KB와 바젤 XI의 2차전 3-3은 득점 시각 없이 득점자만 남아 있어 그대로 더했다. 자책골 여섯 골은 넣지 않았다. 출전 경기 수는 경기별 명단이 모두 남지 않아 싣지 않는다.

득점 1위는 12골의 만프레디니다. 1라운드 위니옹전에서 한 골, 8강 쾰른 XI와의 세 경기에서 세 골, 4강 히버니언과의 세 경기에서 여섯 골, 결승 1차전에서 두 골을 넣어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기록했다. RSSSF가 집계한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세 대회의 통산 득점 순위에서도 12골로 가장 위에 있다. 공동 2위는 5골의 피르마니와 로야코노다. 31경기에서 144골이 나왔다.[1]

필자는 이 우승에서 로마가 치른 경기 수를 본다. 로마는 1라운드 두 경기, 8강 세 경기, 4강 세 경기, 결승 두 경기로 모두 10경기를 치렀다. 대회에 나선 15팀 가운데 가장 많다. 쾰른 XI와 히버니언을 상대로 두 번 합계 동률이 나왔고, 두 번 모두 로마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4-1과 6-0으로 이겼다. 원정 다득점도 승부차기도 없던 규정은 동률을 만든 팀에게 한 경기를 더 요구했고, 로마는 그 추가 경기를 안방에서 치렀다. 만프레디니의 12골 가운데 여섯 골이 이 두 재경기에서 나왔다. 히버니언의 스완 회장이 바랐던 재경기는 그 경기장이 어디냐에 따라 입장 수입이 되기도 하고 대회의 끝이 되기도 했다.

참고 자료

문장 자료: Logopedia(버밍엄 시티 1936-1970, 인테르 1960-1963, AS 로마 1960-1961, CF 바르셀로나 1960-1974) · Wikimedia Commons(베오그라드 도시 문장,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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