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 LEGEND
폴 인스(Paul Ince)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맨유의 '거버너', 잉글랜드 최초의 흑인 주장
웨스트햄에서 자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첫 프리미어 리그 2연패 중원을 지킨 폴 인스. 1990 FA컵 결승의 라이트백, 퍼거슨과의 '거버너' 갈등, 인테르의 UEFA컵 결승, 잉글랜드 최초의 흑인 주장과 로마의 피 묻은 셔츠까지. 클럽·대회별 스탯과 역대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6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오르고 이듬해 더블까지 이룬 1990년대 초, 그 중원의 심장이 폴 인스였다. 태클로 공을 빼앗고, 그 공을 직접 몰고 올라가 마무리까지 했다. '거버너(The Guvnor; 우두머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자신만만했고, 그 자신감 때문에 퍼거슨과 부딪쳤다. 1993년에는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찬 흑인 선수가 됐다. 필자는 인스를 1966년의 노비 스타일스 이후 맨유와 잉글랜드가 다시 얻은 가장 끈질긴 미드필더로 본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테르를 거친 미드필더 폴 인스.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테르를 거친 미드필더 폴 인스.
- 웨스트햄 시절,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질주.
- 그리고 환상적인 골.
- 상대가 붙어도 쉽게 내주지 않는 볼 키핑.
- 최후방 수비 가담부터 최전방 공격 가담까지 오가는 활동 범위.
삥이FC 폴 인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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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의 첫 번째 무기는 태클이다. 상대 미드필더가 공을 받는 순간 몸을 붙이고, 빼앗은 공을 그대로 몰고 전진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말로 묶기에는 공을 가진 다음의 움직임이 너무 공격적이었다. 웨스트햄 시절 리그컵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두 골을 넣어 이름을 알렸고, 맨유에서도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보탰다. 빼앗는 일과 운반하는 일, 마무리하는 일을 한 사람이 다 하는 미드필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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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인스를 노비 스타일스(Norbert Peter “Nobby” Stiles; 1966 월드컵 우승 멤버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1942-2020)에 견주는 이유는 근면함과 투쟁심에 있다. 스타일스가 1966년 잉글랜드와 1968년 맨유에서 상대 에이스를 지우는 역할을 맡았다면, 인스는 1990년대 맨유와 잉글랜드에서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공격까지 거들었다. 시대가 바뀌며 중앙 미드필더에게 요구되는 활동량이 늘었고, 인스는 그 변화에 꼭 맞는 몸과 성격을 가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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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의 1992-93 시즌 리그 우승은 26년 만이었다.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주장, 1957-)이 부상으로 자주 빠지던 시기에 그 공백을 메운 사람이 인스다. 1994년 롭슨이 떠난 뒤에는 로이 킨(Roy Kean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일랜드 출신 미드필더, 1971-)과 짝을 이뤄 중원을 이끌었다. 필자는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1986-201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1941-) 시대 맨유가 첫 황금기를 여는 데 인스의 몫을 결코 작게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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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의 경력에는 갈등의 기록도 길다. 웨스트햄 팬들은 맨유 유니폼 사진 한 장으로 그를 오래 미워했고, 퍼거슨은 그를 ’거물 행세하는 녀석’이라 불렀다. 리버풀로 옮긴 뒤에는 맨유 팬들의 마음도 잃었다. 그런데도 그가 가는 팀마다 곧바로 중원의 주전이 됐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신감이 경기장에서는 팀을 끌고 가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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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인스는 최초의 흑인 주장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1997년 로마에서는 머리가 찢어져 피가 셔츠를 붉게 물들인 채 끝까지 뛰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지켰다. 기록으로는 53경기 2골이지만, 그 숫자보다 그가 대표팀에서 맡은 자리의 무게가 더 크다.
폴 인스 프로필
- 본명
- Paul Emerson Carlyle Ince
- 등록명
- 폴 인스(Paul Ince)
- 출생
- 1967년 10월 21일
- 출생지
- 잉글랜드 런던 일퍼드
- 신장
- 178cm
- 대표 국적
- 잉글랜드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주요 등번호
- 8번 · 4번
- 선수 경력
- 1986-2007년
- 대표팀
- 1992-2000년 · 53경기 2골
웨스트햄의 아이, 리버풀을 무너뜨린 두 골
인스는 1967년 런던 동부의 일퍼드에서 태어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며 자랐다.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않던 소년을 존 라이얼(John Lyal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감독, 1940-2006) 감독이 이끌어 1984년 유소년 훈련생으로 받아들였다. 1군 데뷔는 1986년 11월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이다.
1987-88 시즌 인스는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시즌을 끝으로 웨스트햄의 오랜 주장 빌리 본즈(Billy Bonds;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수비수, 1946-)가 은퇴하면서 중원은 자연스럽게 인스에게 넘어왔다. 속도와 체력, 물러서지 않는 태클, 정확한 패스에 강한 슈팅까지 갖춘 스무 살 미드필더였다.
전국에 이름을 알린 경기는 1988년 11월 30일 리그컵 리버풀전이다. 리버풀은 직전 시즌 리그 챔피언이었고 웨스트햄은 리그에서 고전하던 팀이었다. 인스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고 웨스트햄은 4-1로 이겼다. 웨스트햄은 그 시즌 리그컵 준결승까지 올랐지만 리그에서는 강등됐다. 인스는 1988-89 시즌 팬들이 뽑는 올해의 해머(Hammer of the Yea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강등된 팀에 인스가 남을 이유는 많지 않았다. 문제는 떠나는 방식이었다. 이적이 끝나기도 전에 맨유 유니폼을 입은 인스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인스의 회고로는 휴가를 떠나기 전 에이전트의 권유로 미리 찍어 둔 사진이었고, 이적이 발표될 때 쓰기로 했던 것이 엉뚱한 신문에 먼저 나갔다. 웨스트햄 팬들은 분노했고 그 감정은 오래 이어졌다. 메디컬 테스트에서 한 번 막혔던 이적은 1989년 9월 14일, 100만 파운드에 마무리됐다.
맨유 데뷔전은 밀월과의 리그 경기 5-1 승리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1-5로 지면서 맨유 생활은 썩 개운하지 않게 시작됐다. 롭슨과 닐 웹(Neil Webb;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미드필더)이 부상으로 자주 빠진 첫 시즌, 인스는 중원과 수비를 오가며 퍼거슨의 신뢰를 쌓아 갔다.
첫 시즌의 결말은 FA컵이었다. 1990년 5월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결승은 3-3으로 끝나 재경기로 이어졌고, 맨유는 재경기를 1-0으로 이겼다. 인스는 두 경기 모두 등번호 2번을 달고 라이트백으로 나섰다. 노팅엄 포리스트의 유러피언컵 2회 우승 멤버인 비브 앤더슨(Viv Anderson; 노팅엄 포리스트·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트백, 1956-) 대신이었다.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서 뛰고도 재경기의 최우수 선수로 꼽혔다. 퍼거슨이 맨유에서 처음 든 트로피였다.

롭슨의 뒤를 이은 ‘거버너’
이후 맨유의 우승은 빠르게 쌓였다. 1991년 로테르담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을 차지했고, 그해 11월 UEFA 슈퍼컵에서는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1-0으로 이겼다. 1992년에는 노팅엄 포리스트를 꺾고 풋볼 리그컵을 들었다. 그리고 1992-93 시즌, 맨유는 1967년 이후 처음으로 잉글랜드 리그 정상에 올랐다. 새로 출범한 프리미어 리그의 첫 우승 팀이었다.

1993-94 시즌 맨유는 리그 선두를 거의 놓치지 않았고 FA컵까지 더해 더블을 이뤘다. 인스는 이 팀의 중원 사령관이었다.

인스의 별명은 ’거버너’였다. 퍼거슨은 이 별명부터 못마땅해했다. 둘의 관계는 늘 팽팽했고, 퍼거슨은 인스를 ‘보틀러(bottler; 큰 경기에서 겁먹고 무너지는 선수)’, ’빅 타임 찰리(big-time Charlie; 스타 행세를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퍼거슨은 훗날 이 말을 후회했다고 밝혔다.
인시, 여기 거버너는 한 명뿐이야. 그게 너는 아니지.
There's only one guvnor around here, Incey, and it ain't you.
- 알렉스 퍼거슨이 폴 인스에게
1994-95 시즌은 빈손으로 끝났다. 맨유는 리그 마지막 날 하필 웨스트햄 원정에서 비겨 블랙번 로버스에 우승을 내줬고, 이어진 FA컵 결승에서도 에버턴에 졌다. 그해 6월 퍼거슨은 인스를 인테르에 750만 파운드에 팔았다. 당시 잉글랜드 구단이 얽힌 이적료 가운데 손꼽히는 금액이었다. 많은 팬은 축구나 돈보다 둘의 관계가 이적의 진짜 이유라고 봤다. 인스는 맨유에서 공식전 281경기 29골을 남겼다.
인테르의 두 시즌과 UEFA컵 결승
인테르 이적은 마시모 모라티(Massimo Moratti;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회장, 1945-) 회장 체제 초기의 큰 영입이었다. 첫 시즌은 출발이 더뎌 시즌 도중 잉글랜드 복귀설까지 돌았지만, 인스는 리그 네 경기를 빼고 모두 뛰며 자리를 잡았다. 팀은 7위에 그쳤다.

1996-97 시즌에는 세리에 A 24경기 6골을 넣었고 인테르는 3위로 올라섰다. UEFA컵에서는 결승까지 갔다. 인스는 3라운드 보아비스타 원정에서 골을 넣었다. 샬케 04(FC Gelsenkirchen-Schalke 04)와의 결승 1차전은 출전 정지로 뛰지 못했고, 인테르는 원정에서 0-1로 졌다. 홈 2차전에는 돌아와 이반 사모라노(Iván Zamorano; 칠레 출신 인테르 공격수, 1967-)의 골로 1-0을 만들었지만 승부차기에서 1-4로 졌다.
모라티 회장은 계약 기간이 2년 반이나 남은 인스에게 더 좋은 조건의 재계약을 제안했다. 인스는 가족 문제로 이탈리아 생활을 접기로 했다. 공식전 73경기 13골. 세리에 A에서 잉글랜드 미드필더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한 두 시즌이었다.
잉글랜드 최초의 흑인 주장, 로마의 피 묻은 셔츠
인스는 1992년 9월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로 데뷔했다. 일곱 번째 A매치였던 1993년 6월 미국 원정에서는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 당시 잉글랜드 주장인 미드필더, 1966-)과 토니 애덤스(Tony Adams; 아스널과 잉글랜드의 수비수, 1966-)가 빠진 자리에서 주장 완장을 찼다.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선수가 주장을 맡은 경기였다.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0-2로 졌지만, 그날의 완장은 경기 결과와 별개로 남았다. 대표팀 두 골은 모두 1993년 11월 산마리노전 7-1 승리에서 나왔다.
UEFA 유로 1996에서 인스는 테리 베너블스(Terry Venables;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1943-2023) 감독 아래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 잉글랜드의 공격형 미드필더, 1967-)의 ’보디가드’로 불렸다. 인스가 공을 빼앗고 상대를 막아 주면 개스코인이 마음껏 공을 다뤘다. 네덜란드를 4-1로 꺾은 경기에서는 페널티킥을 얻어 냈지만 경고 누적으로 8강 스페인전에 나서지 못했다. 독일과의 준결승에는 돌아왔고, 경기는 1-1 뒤 승부차기에서 끝났다. 인스는 키커로 나서지 않았고 승부차기 내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1997년 10월 11일 로마 올림피코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1998 월드컵 예선 최종전. 비기기만 해도 본선에 가는 잉글랜드의 주장은 인스였다. 경기 중 머리가 찢어진 인스는 붕대를 감고 다시 들어갔고, 흰 셔츠는 피에 젖어 붉게 변했다. 1989년 스웨덴전의 테리 버처(Terry Butcher; 잉글랜드의 수비수, 1958-)를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다. 경기는 0-0으로 끝났고 잉글랜드는 본선에 직행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네 경기를 모두 뛰었다. 아르헨티나와의 16강은 승부차기로 갔고, 이번에는 인스도 키커로 나섰으나 골키퍼 카를로스 로아(Carlos Roa; 아르헨티나 골키퍼, 1969-)에게 막혔다. UEFA 유로 2000에서도 조별리그 세 경기에 모두 나섰지만 잉글랜드는 두 번 지고 탈락했다. 이 대회가 인스의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가 됐다. A매치 53경기 2골, 그중 일곱 번 주장 완장을 찼다.
리버풀과 미들즈브러, 울버햄프턴에서 이어 간 경력
1997년 7월 인스는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행선지가 하필 맨유의 라이벌 리버풀이었다. 첫 시즌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1998년 5월에는 막 우승을 확정한 아스널을 4-0으로 꺾는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3위를 지켰다. 이듬해에는 트레블로 가던 맨유를 상대로 2-2 동점골을 넣었다. 인스는 두 시즌 동안 공식전 81경기 17골 11도움을 남겼고, 2013년 리버풀 구단이 진행한 ‘콥을 뒤흔든 100인’ 투표에서 75위에 올랐다. 1999년 여름 제라르 울리에(Gérard Houllier; 리버풀 감독, 1947-2020) 감독과 갈등을 빚은 끝에 팀을 떠났다.

다음 팀 미들즈브러의 감독은 맨유 시절 중원 짝이던 롭슨이었다. 인스는 세 시즌 동안 공식전 104경기를 뛰었다. 2002년에는 2부 리그의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로 옮겨 첫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프리미어 리그로 올려놓았다. 맨유 동료였던 데니스 어윈(Denis Irwi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일랜드 출신 수비수, 1965-)도 함께였다. 울버햄프턴에서 네 시즌 127경기를 뛰었고, 이후 스윈던 타운에서 선수 겸 코치로, 매클즈필드 타운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다 2007년 서른아홉 살에 현역을 마쳤다.
감독이 된 인스는 2008년 6월 블랙번 로버스를 맡았다.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 구단을 지휘한 첫 영국인 흑인 감독이었다. 대표팀 완장에 이어 감독석에서도 처음의 기록을 남겼다. 웨스트햄의 아이에서 맨유의 거버너로, 다시 잉글랜드의 첫 흑인 주장으로 이어진 인스의 경력은 1990년대 잉글랜드 축구가 지나온 길을 한 사람 안에 담고 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1986-198986경기 · 11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989-1995281경기 · 29골19도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95-199773경기 · 13골4도움
리버풀 FC1997-199981경기 · 17골11도움
미들즈브러 FC1999-2002104경기 · 9골4도움
5도움
스윈던 타운 FC20063경기 · 1도움
매클즈필드 타운 FC20071경기
잉글랜드 대표팀1992-200053경기 · 2골10도움
클럽은 트랜스퍼마크트의 경기별 기록을 합산한 공식전 수치(2026년 10월 기준)이며 채리티 실드와 UEFA 슈퍼컵, 승격 플레이오프를 포함한다. 1990년대 이전 도움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문장은 인스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대회별 스탯
| 대회 | 경기 | 골 | 도움 |
|---|---|---|---|
| 잉글랜드 1부 리그 | 467 | 55 | 31 |
| FA컵 | 52 | 5 | 2 |
| 풋볼 리그컵 | 46 | 8 | 0 |
| 세리에 A | 54 | 10 | 2 |
| 코파 이탈리아 | 9 | 2 | 1 |
| UEFA 챔피언스 리그 | 9 | 0 | 0 |
| UEFA컵 | 18 | 2 | 3 |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 10 | 0 | 0 |
| FIFA 월드컵 | 4 | 0 | 1 |
| UEFA 유로 | 7 | 0 | 3 |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집계다. 잉글랜드 1부 리그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1986-87~1991-92 시즌, 161경기 13골 2도움)과 프리미어 리그(1992-93~2003-04 시즌, 306경기 42골 29도움)를 더한 값이다. FIFA 월드컵은 예선을 포함하면 19경기 2골 4도움, UEFA 유로는 예선과 플레이오프를 포함하면 10경기 3도움이다. 이 밖에 2부 리그 83경기 8골 3도움, 채리티 실드 3경기 1골 1도움, UEFA 슈퍼컵 1경기를 뛰었다.
역대 등번호
클럽
| 소속팀 | 확인 기간 | 등번호 |
|---|---|---|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 1986-87~1988-89 시즌 | 11 · 9 · 12 · 6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1989-90~1994-95 시즌 | 8 · 2 · 7 · 12 |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95-96~1996-97 시즌 | 8 |
| 리버풀 FC | 1997-98~1998-99 시즌 | 17 |
| 미들즈브러 FC | 1999-2000~2001-02 시즌 | 9 |
|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 | 2002-03~2005-06 시즌 | 8 · 23 |
국가대표팀
| 대표팀 | 확인 대회·기간 | 등번호 |
|---|---|---|
| 잉글랜드 | UEFA 유로 1996 | 4 |
| 잉글랜드 | 1998 FIFA 월드컵 | 4 |
| 잉글랜드 | UEFA 유로 2000 | 14 |
| 잉글랜드 | 1992-2000년 A매치 자료 | 11 · 8 · 4 |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번호다. 잉글랜드 구단은 1993-94 시즌부터 고정 등번호를 썼고, 그 전에는 경기마다 포지션에 따라 번호를 받았다. 웨스트햄과 맨유 초기 번호는 기록이 남은 경기만 적었으며, 1990 FA컵 결승과 재경기의 2번은 라이트백으로 나선 번호다. 스윈던 타운과 매클즈필드 타운의 번호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우승 2회: 1992-93, 1993-94
우승 2회: 1989-90, 1993-94
준우승: 1994-95
우승: 1991-92
준우승: 1990-91, 1993-94
우승 3회: 1990(공동), 1993, 1994
우승: 1990-91
우승: 1991년
준우승: 1996-97
우승: 2002-03
우승: 1997년
4강: 1996년
조별리그: 2000년
16강: 1998년
폴 인스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PFA 올해의 팀1992-93 · 1993-94 · 1994-95 시즌 프리미어 리그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1994년 10월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올해의 해머1988-89 시즌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맷 버스비 경 올해의 선수1992-93 시즌
- 리버풀 FC 콥을 뒤흔든 100인 75위2013년 · 리버풀 팬 투표
- 프리미어 리그 출범 10주년 국내 선수 부문 베스트 111992-93~2001-02 시즌 선정
참고 자료
- 트랜스퍼마크트: Paul Ince 상세 기록: 클럽·대회별 경기·골·도움, 경기별 등번호와 주장 여부(1988년 11월 30일 리버풀전 두 골, 1990 FA컵 결승 2번, A매치 주장 일곱 경기).
- 위키백과: Paul Ince: 웨스트햄 입단과 데뷔, 맨유 이적 사진 논란과 이적료, 1990 FA컵 결승 라이트백 기용과 재경기 최우수 선수, 퍼거슨의 '보틀러'·'빅 타임 찰리'·'거버너' 발언, 인테르의 UEFA컵 결승, 잉글랜드 최초의 흑인 주장, 로마 이탈리아전, 블랙번 감독 선임과 우승·개인 수상 목록.
- 잉글랜드 축구 협회: England v Italy, five of the most memorable meetings: 1997년 로마 이탈리아전 사진과 경기 회고.
- 리버풀 FC: 100 Players Who Shook The Kop 전체 순위(2013년 7월): 인스의 75위.
- 본문 사진: talkSPORT(웨스트햄) · Irish Mirror(퍼거슨과 인스) · FourFourTwo(컵위너스컵) · The Irish Times(블랙번전) · Planet Football(인테르) · Football365(리버풀) 게재본.
- 유튜브 Classic Man Utd Videos and Clips: Man Utd 5 v Millwall 1 1989/90 Division One: 인스의 맨유 데뷔전 하이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