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 LEGEND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개자(Gazza), 베컴·벨링엄 전 잉글랜드의 아이코닉 스타

게이츠헤드의 소년에서 퍼거슨이 놓친 토트넘의 미드필더로. 이탈리아 90 준결승의 눈물, 1991 FA컵 준결승의 프리킥과 결승의 부상, 로마 더비의 동점골, 레인저스의 2시즌, 유로 96 스코틀랜드전의 발리까지. 월드컵에서 단 번호에 얽힌 사연과 클럽·대회별 스탯, 역대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흰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볼에 바람을 넣은 채 얼굴을 찡그린 폴 개스코인과 잉글랜드 국기, 잉글랜드 아이돌 문구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은 폴 개스코인.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영국 국기
UNITED KINGDOM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잉글랜드 국기
ENGLAND잉글랜드England
UEFA 로고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세 마리 사자와 장미가 그려진 잉글랜드 축구 협회 문장
#FA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별 하나 아래 세 마리 사자가 그려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ENG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England national football team | Three Lions (스리 라이언스; 세 마리 사자)
편집자 평가

바비 찰턴이 떠나고 데이비드 베컴과 주드 벨링엄이 오기 전, 잉글랜드 축구에서 한 사람을 꼽아 시대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 이름은 폴 개스코인이다. 공을 몸에 붙이고 수비 사이를 빠져나가는 재능은 잉글랜드 미드필더 가운데 가장 컸다는 평을 받았다. 그만큼 술과 기행, 부상이 경력을 자주 끊었다. 이탈리아 90 준결승의 눈물로 온 나라의 사랑을 받았고, 1991년 FA컵 결승의 무모한 태클로 스스로 무릎을 망가뜨렸다. 필자는 개스코인을 잉글랜드가 가장 아끼고 가장 아쉬워한 천재로 본다.

폴 개스코인 플레이공을 붙이고 수비 사이를 빠져나가는 미드필더1 / 6

토트넘 홋스퍼의 웸블리, 그리고 이탈리아 90 준결승의 눈물.

삥이FC 폴 개스코인 평가

  1. 잉글랜드 축구의 역대 미드필더를 줄 세우고 가장 재능 있는 한 사람을 고르라면 많은 이가 개스코인을 말한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에서 뛴 시간은 합쳐 여섯 시즌 남짓이다. 그런데도 두 구단의 역대 베스트 11을 짤 때 앨런 시어러나 지미 그리브스 같은 압도적인 공격수 바로 뒤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 짧게 뛰고도 그만큼의 자리를 남긴 선수는 드물다.

  2. 필자는 개스코인을 바비 찰턴(Bobby Charlto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966 월드컵 우승 잉글랜드의 공격수, 1937-2023)과 베컴 사이에 선 잉글랜드의 아이콘으로 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뒤 영국 언론은 그를 둘러싼 열기를 ’개자마니아(Gazzamania)’라고 불렀다. 그해 12월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로 뽑혔다. 축구 선수로는 1966년 바비 무어 이후 처음이었다.

  3. 개스코인의 무기는 공을 가진 다음이었다. 상체로 수비를 막고 발바닥과 바깥발로 공을 끌어 방향을 바꿨다. 위의 영상처럼 수비 둘 사이로 몸을 밀어 넣고도 공을 잃지 않았다.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직접 골문까지 가는 선수였다.

  4. 같은 사람이 술을 사랑했고 사고를 몰고 다녔다. 성실함보다 잔꾀가 앞섰고, 마리오 발로텔리를 떠올릴 만한 기행이 따라다녔다. 1991년 FA컵 결승의 태클은 그 성격이 경기장 안에서 터진 순간이다. 필자가 보기에 개스코인의 경력은 이 무릎에서 꺾였다. 라치오로 간 세리에 A의 세 시즌은 부상과 재활에 묶였고,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에서 이름값을 되찾았다. 라리가 최고였다가 라치오에서 꺾이고 잉글랜드에서 다시 빛을 본 가이스카 멘디에타(Gaizka Mendieta; 발렌시아와 스페인의 미드필더, 1974-)의 길과 닮았다.

  5. 웨인 루니와 해리 케인의 시대에도 잉글랜드 팬들은 스탠리 매슈스나 찰턴, 그리브스보다 게리 리네커와 개스코인의 이름을 더 자주 부른다. 리네커와 개스코인은 1990년 대회를 함께 뛰었고, 텔레비전 앞의 한 세대가 그 둘을 기억한다. 필자는 그 그리움이 트로피보다 장면에서 나온다고 본다. 준결승의 눈물, 웸블리의 프리킥, 스코틀랜드전의 발리가 그 장면이다.

폴 개스코인 프로필

잉글랜드 국기ENGLAND잉글랜드England
본명
Paul John Gascoigne
등록명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
출생
1967년 5월 27일
출생지
잉글랜드 게이츠헤드
신장
178cm
대표 국적
잉글랜드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 세컨드 스트라이커
주요 등번호
8번 · 19번 · 10번
선수 경력
1985-2004년
대표팀
1988-1998년 · 57경기 10골

게이츠헤드의 소년, 뉴캐슬의 8번

개스코인은 1967년 5월 27일 타인강 남쪽의 게이츠헤드에서 태어났다. 강 건너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유소년으로 컸고, 1985년 4월 13일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에 열일곱 살의 교체 선수로 1군에 데뷔했다. 데뷔를 맡긴 감독은 1966년 월드컵 우승 멤버 잭 찰턴(Jack Charlton; 리즈 유나이티드의 수비수이자 바비 찰턴의 형, 1935-2020)이었다.

1985-86 시즌부터 개스코인은 뉴캐슬의 8번을 달았다. 1987-88 시즌에는 리그 35경기에서 6골을 넣었고, 선수들이 뽑는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와 PFA 올해의 팀에 함께 들었다. 뉴캐슬에서의 기록은 공식전 104경기 24골이다.

곱슬머리의 젊은 폴 개스코인이 검정·흰색 세로 줄무늬 뉴캐슬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웃으며 쪼그려 앉은 흑백 사진
뉴캐슬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젊은 개스코인. 고향 구단에서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가 됐다.

퍼거슨이 놓친 남자, 토트넘의 웸블리

1988년 여름 뉴캐슬을 떠날 때 개스코인을 원한 감독 가운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1986-2013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1941-)이 있었다. 퍼거슨은 거래가 끝났다고 믿고 휴가를 떠났고, 그사이 개스코인은 토트넘 홋스퍼를 골랐다. 토트넘은 그의 가족에게 집을 사 주겠다고 했다. 이적료는 영국 구단이 처음 낸 200만 파운드대였다. 퍼거슨은 은퇴한 뒤에도 가장 아쉬운 영입 실패로 개스코인을 꼽는다.

토트넘에서 개스코인은 8번을 달았다. 1990-91 시즌 9월 7일 더비 카운티전에서 해트트릭, 9월 26일 리그컵 하틀풀 유나이티드전에서 네 골을 넣었다. 그 시즌의 이야기는 FA컵에 있다. 옥스퍼드 유나이티드, 포츠머스, 노츠 카운티를 지나며 골을 넣었고, 1991년 4월 14일 웸블리에서 처음 열린 FA컵 준결승 북런던 더비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30야드가 넘는 프리킥을 데이비드 시먼의 골문 구석에 꽂았다. 토트넘은 3-1로 이겼다. 개스코인은 그 대회에서 여섯 골을 넣어 FA컵 득점왕이 됐다.

웸블리 경기장에서 흰 토트넘 유니폼의 선수들이 두 팔을 들고 달려가며 기뻐하고 붉은 아스널 유니폼의 선수들이 서 있는 장면
1991년 4월 14일 웸블리의 FA컵 준결승 아스널전. 개스코인의 프리킥으로 시작한 토트넘의 3-1이었다.

5월 18일 노팅엄 포리스트와의 결승에서 개스코인은 시작부터 흥분해 있었다. 경기 초반 개리 찰스에게 무릎 높이로 들어간 태클이 자기 무릎의 십자인대를 끊었다. 그는 17분 만에 실려 나갔고, 토트넘은 2-1로 이겨 FA컵을 들었다. 라치오 이적은 이미 거의 끝나 있었는데, 이 부상으로 한 해 늦어졌다. 토트넘 기록은 공식전 112경기 33골이다.

홀스텐 로고가 박힌 흰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은 폴 개스코인이 두 팔을 높이 들고 웃는 흑백 사진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은 개스코인. 세 시즌 동안 공식전 33골을 넣었다.

이탈리아 90의 19번과 눈물

잉글랜드 대표 데뷔는 1988년 9월 14일 웸블리의 덴마크전이었다. 교체로 들어가 5분을 뛰었다. 첫 골은 1989년 4월 26일 알바니아와의 월드컵 예선 5-0에서 넣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바비 롭슨 감독은 그를 데려갔고, 개스코인은 19번을 달고 잉글랜드의 여섯 경기를 모두 뛰었다.

조별리그 이집트전에서는 그의 프리킥을 마크 라이트가 머리로 넣어 1-0으로 이겼다. 16강 벨기에전 연장 119분에는 그가 띄운 프리킥을 데이비드 플랫이 발리로 넣었다. 7월 4일 토리노의 서독과의 준결승은 연장으로 갔다. 연장 9분 개스코인은 토마스 베르톨트에게 반칙해 이 대회 두 번째 경고를 받았다. 잉글랜드가 결승에 가도 그는 뛸 수 없게 됐다. 눈물이 고인 그를 보며 게리 리네커는 벤치에 손짓으로 “그와 얘기 좀 해 달라”고 했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졌고, 1990 FIFA 월드컵을 4위로 마쳤다.

잉글랜드의 흰 유니폼을 입은 폴 개스코인이 셔츠 깃을 두 손으로 끌어올려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모습
1990년 7월 4일 토리노, 서독과의 준결승. 셔츠로 입을 가린 이 모습이 잉글랜드 축구의 한 시대를 남겼다.

그 눈물이 개스코인을 온 나라의 스타로 만들었다. 그해 12월 발표된 발롱도르에서 로타어 마테우스, 살바토레 스킬라치, 안드레아스 브레메에 이어 4위에 올랐다. 1위 표는 없었지만 19명의 기자가 그를 다섯 명 안에 적었다. 마테우스의 이야기는 로타어 마테우스 편에 있다.

로마 더비의 머리

1992년 개스코인은 1년을 재활한 무릎으로 SS 라치오에 갔다. 이적료는 550만 파운드였다. 디노 조프 감독의 라치오에서 첫 로마 더비는 11월 29일 올림피코에서 열렸다. 로마가 48분 주세페 잔니니의 골로 앞섰고, 86분 주세페 시뇨리가 35미터 거리에서 띄운 프리킥을 개스코인이 로마 수비수들 위로 뛰어올라 머리로 넣었다. 1-1. 그는 쿠르바 노르드 앞으로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갔고, 그리고 울었다. 라치오 팬들에게 그 동점골은 지금도 개스코인의 이름과 같다.

관중이 가득 찬 올림피코에서 하늘색 라치오 유니폼과 짙은 붉은 로마 유니폼의 선수들이 공중볼을 다투는 장면
1992년 11월 29일 라치오와 로마의 더비. 86분 개스코인의 헤더가 1-1을 만들었다.

라치오에서 보낸 세 시즌은 길지 않았다. 부상이 이어졌고, 세리에 A는 43경기에서 6골이었다. 공식전 47경기 6골. 라치오에서 단 번호는 10번이었다.

아이브록스의 2시즌

1995년 7월 레인저스의 월터 스미스(Walter Smith; 레인저스와 에버턴의 감독, 1948-2021) 감독은 로마 교외의 개스코인 집까지 직접 찾아갔다. 첼시와 리즈 유나이티드가 먼저 움직였지만, 개스코인은 430만 파운드에 레인저스로 갔다.

1995-96 시즌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리그 8연패를 노렸다. 1996년 4월 28일 아이브록스의 애버딘전에서 개스코인은 혼자 세 골을 넣어 3-1을 만들었고, 그 경기로 우승이 정해졌다. 5월 18일 스코티시컵 결승에서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을 5-1로 이겨 더블을 이뤘다. 그해 개스코인은 스코틀랜드 선수 협회와 기자 협회가 주는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받았다.

머리를 탈색한 폴 개스코인이 맥이완스 라거 로고의 파란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공을 든 채 빈 파란 관중석에 앉아 손을 드는 모습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은 개스코인. 두 시즌 동안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을 두 번 했다.

1996-97 시즌에는 11월 24일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에서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을 상대로 두 골을 넣어 4-3 승리를 이끌었다. 리그도 우승해 레인저스는 9연패를 채웠다. 레인저스에서의 기록은 공식전 104경기 38골이고, 개스코인은 지금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있다.

유로 96, 웸블리의 발리

1996년 6월 잉글랜드는 안방에서 유로를 열었다. 개스코인은 8번을 달고 다섯 경기를 모두 뛰었다. 6월 15일 웸블리의 스코틀랜드전, 잉글랜드가 앨런 시어러의 골로 1-0으로 앞선 뒤 개스코인이 공을 띄워 콜린 헨드리의 머리 위로 넘기고, 떨어지는 공을 발리로 앤디 고람의 골문에 넣었다. 그리고 잔디에 드러누워 입을 벌렸고, 시어러와 스티브 맥마나먼, 제이미 레드냅이 물병을 짜 그의 입에 부었다. 대회 전 홍콩의 밤을 흉내 낸 ‘치과 의자’ 세리머니다.

웸블리 잔디에 누운 폴 개스코인 주위로 흰 잉글랜드 유니폼의 동료들이 몸을 숙여 물병을 짜는 장면
1996년 6월 15일 웸블리의 스코틀랜드전. 골을 넣은 개스코인에게 동료들이 물을 부어 주는 세리머니.

잉글랜드는 네덜란드를 4-1로 이기고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넘었다. 독일과의 준결승은 다시 승부차기에서 졌다. 1990년과 1996년, 잉글랜드가 결승 문턱까지 간 두 번의 대회에 모두 개스코인이 있었다. 대표팀 마지막 경기는 1998년 5월 29일 카사블랑카의 벨기에전이다. 며칠 뒤 스페인 라망가의 대표팀 훈련지에서 글렌 호들 감독은 그를 1998 프랑스 월드컵 명단에서 뺐다. 개스코인은 호텔 방을 부수며 화를 냈고, 다시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A매치 57경기 10골.

미들즈브러에서 보스턴까지

1998년 3월 개스코인은 2부 리그의 미들즈브러로 옮겼다.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주장이던 브라이언 롭슨이었다. 이적 직후 3월 29일 웸블리의 리그컵 결승에 교체로 들어갔지만 미들즈브러는 연장 끝에 첼시에 0-2로 졌고, 그 시즌 미들즈브러는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갔다. 2000년 여름에는 레인저스의 스미스 감독이 맡고 있던 에버턴으로 갔다. 에버턴에서는 18번을 달았다.

2002년 3월 번리 FC에서 여섯 경기를 뛴 뒤, 2003년에는 중국 2부 리그의 간쑤 톈마에서 네 경기 두 골을 넣었다. 중국에서 뛴 첫 외국인 축구 스타였다. 2004년 4부 리그 보스턴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겸 코치로 다섯 경기를 뛰고 현역을 마쳤다. 그해 서른일곱 살이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1983-198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문장뉴캐슬 유나이티드 FC1985-1988104경기 · 24골
1도움
1983-1995년 토트넘 홋스퍼 FC 문장토트넘 홋스퍼 FC1988-1992112경기 · 33골
9도움
1992년부터 쓰는 SS 라치오 문장SS 라치오1992-199547경기 · 6골
3도움
1994-2003년 레인저스 FC 문장레인저스 FC1995-1998104경기 · 38골
11도움
1987-2007년 미들즈브러 FC 문장미들즈브러 FC1998-200048경기 · 4골
1도움
2000-2013년 에버턴 FC 문장에버턴 FC2000-200237경기 · 1골
4도움
1987-2009년 번리 FC 문장번리 FC20026경기
중화인민공화국 국기간쑤 톈마20034경기 · 2골
1987년부터 쓴 보스턴 유나이티드 FC 문장보스턴 유나이티드 FC20045경기 · 1도움
별이 달리기 전의 세 사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잉글랜드 대표팀1988-199857경기 · 10골
11도움

클럽은 트랜스퍼마크트의 경기별 기록을 합산한 공식전 수치(2026년 10월 기준)이며 레인저스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을 포함한다. 레인저스의 스코틀랜드 리그 기록만 보면 74경기 29골이다. 간쑤 톈마는 트랜스퍼마크트에 경기 기록이 없어 AFP 보도의 4경기 2골을 적었다. 1990년대 이전 도움과 토트넘의 FA컵 출전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문장은 개스코인이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며, 간쑤 톈마는 당시 문장 자료가 없어 중국 국기로 대신했다.

대회별 스탯

대회경기골도움
잉글랜드 1부 리그2504412
FA컵1693
풋볼 리그컵2990
세리에 A4363
코파 이탈리아400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74290
스코티시컵832
스코티시 리그컵747
UEFA 챔피언스 리그1322
UEFA컵200
FIFA 월드컵602
UEFA 유로511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집계다. 잉글랜드 1부 리그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1984-85~1990-91 시즌, 184경기 39골 10도움)과 프리미어 리그(1998-99~2001-02 시즌, 66경기 5골 2도움)를 더한 값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는 예선 5경기를 포함한다. FIFA 월드컵은 예선을 포함하면 22경기 7골 4도움이다. 이 밖에 2부 리그 13경기, 4부 리그 4경기 1도움, A매치 친선 경기 29경기 2골 6도움, UEFA 유로 예선 1경기를 뛰었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1984-85~1987-88 시즌8 · 12
토트넘 홋스퍼 FC1988-89~1990-91 시즌8 · 9 · 12
SS 라치오1992-93~1994-95 시즌10 · 16
레인저스 FC1995-96~1996-97 시즌8
미들즈브러 FC1998-99~1999-2000 시즌8
에버턴 FC2000-01~2001-02 시즌18
번리 FC2001-02 시즌34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잉글랜드1990 FIFA 월드컵19
잉글랜드UEFA 유로 19968
잉글랜드1988-1998년 A매치 자료8 · 14 · 15 · 16 · 19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번호다. 잉글랜드 구단은 1993-94 시즌, 스코틀랜드 구단은 1999-2000 시즌부터 고정 등번호를 썼고, 그 전에는 경기마다 포지션에 따라 번호를 받았다. 토트넘의 1988-89 시즌, 레인저스의 1997-98 시즌, 미들즈브러의 1997-98 시즌은 번호가 남은 경기가 적거나 없어 기록된 번호만 적었다. 간쑤 톈마와 보스턴 유나이티드의 번호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FA컵FA Cup

우승: 1990-91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Scottish Premier Division

우승 2회: 1995-96, 1996-97

스코티시컵Scottish Cup

우승: 1995-96

스코티시 리그컵Scottish League Cup

우승: 1996-97

풋볼 리그컵Football League Cup

준우승: 1997-98

FIFA 월드컵FIFA World Cup

4위: 1990년

UEFA 유로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4강: 1996년

폴 개스코인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발롱도르1990년 4위
  •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1990년
  •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1987-88 시즌
  • PFA 올해의 팀1987-88 · 1990-91 시즌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1995-96 시즌 · 스코틀랜드 선수 협회 선정
  •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1995-96 시즌
  • FA컵 득점왕1990-91 시즌 · 6골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2002년 · 국립 축구 박물관
  •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 헌액레인저스 FC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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