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LEGEND

주세페 시뇨리(Giuseppe Signori)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마법의 왼발, 무명에서 3번의 득점왕으로

키가 작다는 이유로 인테르 유소년팀을 떠난 소년이 하부 리그를 돌아 제만의 포자에서 공격수가 되고, 라치오에서 3번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1995년 파르마 이적을 막은 팬들, 도움닫기 없는 페널티킥, 볼로냐의 두 번째 전성기까지. 라치오에서 물려받은 번호의 사연과 클럽·대회별 스탯, 역대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디아도라 로고와 이탈리아 축구 연맹 엠블럼이 달린 흰 대표팀 트레이닝 재킷을 입은 젊은 주세페 시뇨리와 이탈리아 국기, 슈퍼스타 문구
이탈리아 대표팀 트레이닝 재킷을 입은 주세페 시뇨리.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이탈리아 국기
ITALIA이탈리아 공화국Repubblica Italiana
UEFA 로고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별 네 개와 삼색 띠 안에 FIGC 글자가 든 이탈리아 축구 연맹 기관 로고
#FIGC이탈리아 축구 연맹Federazione Italiana Giuoco Calcio
파란 별 네 개와 ITALIA 글자, 삼색 방패가 든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ITA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Nazionale di calcio dell'Italia | Azzurri (아주리; 하늘색)
편집자 평가

주세페 시뇨리는 1990년대 세리에 A를 대표하는 공격수 가운데 하나이고, 비안코첼레스티(Biancocelesti; 흰색과 하늘색, SS 라치오의 별칭)의 역대 레전드다. 열여섯 살에 인테르 유소년팀을 떠난 뒤 스물셋에야 세리에 A에 섰을 만큼 무명이 길었지만, 라치오와 볼로냐를 오간 10여 년 동안 정상급 공격수로 뛰었다. 라치오에서 세 번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고, 모두가 꺾였다고 말할 때 볼로냐에서 다시 한 시즌 23골을 넣었다. 필자는 시뇨리를 대기만성이라는 말에 가장 잘 맞는 이탈리아 공격수로 본다.

주세페 시뇨리 플레이수비 사이로 파고드는 마법의 왼발1 / 5

수비 셋을 따돌리고 골키퍼 앞까지 달려가는 시뇨리.

삥이FC 주세페 시뇨리 평가

  1. 시뇨리는 라치오의 역대 레전드다. 파벨 네드베트, 디에고 시메오네, 알레산드로 네스타, 그리고 21세기의 치로 임모빌레와 함께 라치오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다섯 시즌 공식전 127골은 구단 역사에서 손꼽히는 기록이다.

  2. 그를 대기만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데뷔 뒤의 시간에 있다. 인테르 유소년팀을 나온 뒤 레페, 피아첸차, 트렌토의 하부 리그를 돌았고, 피아첸차의 첫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세 경기에만 나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로 시작한 유망주가 아니었다. 그 공격수가 세리에 A에 처음 선 지 두 시즌 만에 득점왕이 됐다.

  3. 시뇨리의 무기는 왼발이다. 왼쪽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들어 골문 반대편 구석으로 감아 차는 슈팅, 수비를 등지고 반 박자 빨리 돌아서는 동작이 위의 영상에 남아 있다. 키 171cm의 공격수가 1990년대 이탈리아의 수비진 사이에서 그렇게 골을 넣었다.

  4. 사람들이 “시뇨리는 꺾였다”고 말했을 때 그는 볼로냐로 가서 첫 시즌 공식전 47경기 23골을 넣었다. 클래스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몸으로 보인 시즌이다. 오늘날 라치오에서 그 발자취를 이은 공격수가 임모빌레다.

주세페 시뇨리 프로필

이탈리아 국기ITALIA이탈리아 공화국Repubblica Italiana
본명
Giuseppe Signori
등록명
주세페 시뇨리(Giuseppe Signori; 애칭 베페 Beppe)
출생
1968년 2월 17일
출생지
이탈리아 알차노롬바르도
신장
171cm
대표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센터 포워드 · 세컨드 스트라이커
주요 등번호
11번 · 10번
선수 경력
1984-2006년
대표팀
1992-1995년 · 28경기 7골

인테르가 놓아준 소년, 하부 리그의 5시즌

시뇨리는 1968년 2월 17일 베르가모 근처의 알차노롬바르도에서 태어났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유소년팀에 있었지만, 인테르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그를 내보냈다. 1984-85 시즌 그는 베르가모 계곡의 작은 구단 UC 레페(Unione Calcio Leffe; 1998년 알비넨세와 합쳐 지금의 UC 알비노레페가 됨)에서 데뷔했다.

1986년 피아첸차 칼초(Piacenza Calcio)로 옮겼지만 첫 시즌은 기회가 적었다. 그 시즌 피아첸차는 세리에 C1에서 우승했다. 1987-88 시즌에는 세리에 C1의 트렌토로 임대돼 29경기 3골을 넣었고, 이듬해 피아첸차로 돌아와 세리에 B 32경기 5골을 넣었다. 왼쪽 윙어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시절이다.

제만의 포자, “안녕, 봄베르”

1989년 시뇨리는 세리에 B의 US 포자(Unione Sportiva Foggia; 지금의 칼초 포자 1920)로 갔다. 감독은 즈데넥 제만(Zdeněk Zeman; 체코 출신 감독, 1947-)이었다. 처음 만난 날 제만은 그에게 “안녕, 봄베르”라고 인사했다. 제만은 시뇨리를 측면에서 빼내 4-3-3의 공격수로 세웠다. 첫 시즌 세리에 B 34경기 15골.

붉은색과 검은색 세로 줄무늬의 포자 유니폼을 입은 세 공격수가 나란히 선 모습
제만의 포자 공격진, 프란체스코 바이아노와 시뇨리, 로베르토 람바우디. 세 사람의 4-3-3이 '제만란디아'를 만들었다.

1990-91 시즌 시뇨리는 프란체스코 바이아노, 로베르토 람바우디와 공격진을 이뤘다. 포자는 세리에 B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으며 우승했고, 바이아노가 22골, 시뇨리가 11골을 넣었다. 이듬해 스물셋의 시뇨리는 처음 세리에 A에 섰다. 32경기 11골을 넣었고, 포자는 승격 첫해 9위로 시즌을 마쳤다. 공격적인 제만의 축구에는 ’제만란디아(Zemanlandia; 제만의 나라)’라는 이름이 붙었다. 포자에서 세 시즌 공식전 106경기 38골이다.

라치오의 11번, 3번의 카포칸노니에레

1992년 여름 시뇨리는 SS 라치오로 갔다. 라치오는 그에게 루벤 소사(Rubén Sosa; 우루과이 공격수, 1966-)가 달던 11번을 줬다. 첫 시즌 세리에 A 32경기에서 26골을 넣어 세리에 A 카포칸노니에레(capocannoniere; 득점왕)가 됐고,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6골로 대회 득점왕이었다. 1993-94 시즌에는 23골로 잔프랑코 촐라를 다섯 골 차로 따돌리고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하늘색 SIGNORI 11 유니폼을 입은 주세페 시뇨리가 웃옷을 벗어 머리 위로 흔들며 경기장을 달리는 뒷모습
11번 유니폼을 입은 라치오의 시뇨리. 루벤 소사에게 물려받은 번호를 다섯 시즌 동안 달았다.

시뇨리의 페널티킥은 도움닫기가 없었다. 공 앞에 서서 한 걸음만 내딛고 찼다. 텔레비전에서 다트 경기를 보다가 떠올린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찬 페널티킥 52개 가운데 44개를 넣었다. 라치오 팬들은 그를 ’베페골(Beppegol)’이라 불렀다.

1995년 6월, 비아 노바로의 4천 명

1995년 6월 라치오의 세르조 크라뇨티 회장은 시뇨리를 파르마에 팔기로 했다. 파르마의 칼리스토 탄치 회장과 합의가 끝났고, 이탈리아 신문들은 “파르마가 시뇨리를 원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자 라치오 팬들이 구단 본부가 있던 비아 노바로로 몰려들었다. 둘째 날이 끝날 무렵 그 앞에 모인 팬은 4천 명에 이르렀고, 크라뇨티를 유다라고 부르는 벽보가 붙었다. 디노 조프 감독도 반대했고, 시뇨리 본인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적은 무산됐다.

하늘색 라치오 유니폼을 입은 주세페 시뇨리 사진 옆에 25 MILIARDI, PARMA VUOLE SIGNORI 제목이 실린 이탈리아 신문 1면을 붙인 이미지
1995년 6월의 신문 1면. 파르마가 시뇨리를 원한다는 소식에 라치오 팬들이 거리로 나섰다.

남은 시뇨리는 1995-96 시즌 24골로 이고르 프로티와 함께 세 번째 득점왕에 올랐고, 라치오의 주장 완장도 찼다. 1997년 여름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오면서 출전 기회가 줄었다. 에릭손은 훗날 “아주 좋은 공격수였지만 함께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1997년 12월 시뇨리는 UC 삼프도리아로 임대됐다. 라치오에서의 기록은 다섯 시즌 반 공식전 195경기 127골이다. 그가 떠난 뒤 라치오는 1998년 코파 이탈리아, 1999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과 UEFA 슈퍼컵, 2000년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맞았다.

볼로냐의 두 번째 전성기

삼프도리아의 반 시즌은 17경기 3골에 그쳤다. 마르코 판바스턴,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공격수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1998년 여름 그는 바조가 떠난 볼로냐 FC 1909로 갔다. 그해 여름 UEFA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했고, 1998-99 시즌 공식전 47경기 23골을 넣었다. 볼로냐는 그 시즌 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에서 모두 4강까지 갔다. UEFA컵 준결승에서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원정 다득점으로 졌다. 바조의 이야기는 로베르토 바조 편에 있다.

볼로냐에서 여섯 시즌 공식전 177경기 84골 34도움을 남겼다. 세리에 A 통산 344경기 188골은 2024년 기준 리그 역대 득점 9위다. 볼로냐를 떠난 뒤 그리스의 이라클리스 FC와 헝가리의 쇼프론에서 한 시즌씩 뛰고 2006년 현역을 마쳤다.

아주리의 28경기

대표팀에서 시뇨리의 자리는 넓지 않았다. 1992년 5월 31일 A매치에 데뷔했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아리고 사키 감독과 함께 갔다. 그와 사키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조별리그 세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고, 대회에서 여섯 경기를 뛰며 도움 두 개를 기록했다. 골은 없었다. 브라질과의 결승에는 나서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승부차기에서 졌다. 1995년 9월 유로 예선이 마지막 A매치였다. 28경기 7골.

역대 클럽·국대 기록

레페 마을 문장UC 레페1984-198620경기 · 1골
피아첸차 칼초 문장피아첸차 칼초1986-198953경기 · 6골
트렌토시 문장AC 트렌토1987-198829경기 · 3골
1990-2000년 칼초 포자 문장US 포자1989-1992106경기 · 38골
3도움
1992년부터 쓰는 SS 라치오 문장SS 라치오1992-1997195경기 · 127골
21도움
1980-1997년 UC 삼프도리아 문장UC 삼프도리아1997-199817경기 · 3골
1도움
1993-2018년 볼로냐 FC 1909 문장볼로냐 FC 19091998-2004177경기 · 84골
34도움
이라클리스 FC 문장이라클리스 FC2004-20057경기 · 1골
쇼프론시 문장MFC 쇼프론2005-200611경기 · 5골
1도움
1991-2003년 이탈리아 축구 연맹 문장이탈리아 대표팀1992-199528경기 · 7골
5도움

클럽은 트랜스퍼마크트의 경기별 기록을 합산한 공식전 수치(2026년 10월 기준)다. 레페의 1984-85 시즌은 트랜스퍼마크트에 경기 기록이 없어 1985-86 시즌만 셌다. 1990년대 이전과 이탈리아 밖 리그의 도움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문장은 시뇨리가 뛰던 시기의 것이다. 피아첸차는 시기를 나눈 문장 자료가 없어 확인되는 문장을, 이라클리스는 옛 문장을 썼고, 구단 문장 자료를 찾지 못한 레페·트렌토·쇼프론은 연고지의 문장으로 대신했다.

대회별 스탯

대회경기골도움
세리에 A34418845
세리에 B100311
세리에 C6250
코파 이탈리아48206
UEFA컵35126
UEFA 인터토토컵651
FIFA 월드컵602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집계다. 세리에 C는 세리에 C1(42경기 4골)과 C2(20경기 1골)를 더한 값이다. 1990년대 이전과 이탈리아 밖 리그의 도움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이 밖의 기록은 A매치 친선 경기 12경기 4골 1도움, 헝가리 1부 리그 10경기 3골 1도움, FIFA 월드컵 예선 7경기 3골 1도움, 그리스 1부 리그 5경기, UEFA 유로 예선 3경기 1도움, 그리스컵 2경기 1골, 이탈리아 순위 결정전 2경기 1골, 헝가리컵 1경기 2골이다. 대회별 합계는 클럽 기록 카드의 공식전 총계와 집계 범위가 달라 그대로 더해지지 않는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AC 트렌토1987-88 시즌11 · 15
US 포자1990-91~1991-92 시즌11
SS 라치오1992-93~1997-98 시즌11 · 9
UC 삼프도리아1997-98 시즌29
볼로냐 FC 19091998-99~2003-04 시즌10
이라클리스 FC2004-05 시즌10
MFC 쇼프론2005-06 시즌10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이탈리아1994 FIFA 월드컵20
이탈리아1992-1995년 A매치 자료11 · 9 · 16 · 18 · 20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번호다. 이탈리아 구단은 1995-96 시즌부터 고정 등번호를 썼고, 그 전에는 경기마다 선발 11명이 자리에 따라 번호를 받았다. 왼쪽 공격수 시뇨리는 그 시절에도 대부분 11번이었다. 레페와 피아첸차, 포자의 1989-90 시즌은 번호가 남은 경기가 없어 적지 않았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세리에 BSerie B

우승: 1990-91

세리에 C1Serie C1

우승: 1986-87

UEFA 인터토토컵UEFA Intertoto Cup

우승: 1998년

FIFA 월드컵FIFA World Cup

준우승: 1994년

주세페 시뇨리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세리에 A 득점왕1992-93 시즌 26골 · 1993-94 시즌 23골 · 1995-96 시즌 24골(이고르 프로티와 공동)
  •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1992-93 시즌 6골 · 1997-98 시즌 6골
  • SS 라치오 공식 레전드구단 홈페이지 「레전드」 선정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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