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
UEFA 유로 1960 베스트 11: 야신과 마소푸스트, 첫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의 11명
소련이 처음 들어 올린 첫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결승의 연장 골 포네델니크, 파리의 4-5를 뒤집은 유고슬라비아, 레프 야신과 요제프 마소푸스트까지 UEFA가 정한 대회 베스트 팀 11명을 경기 기록과 함께 읽는다.
제1회UEFA 유로
Coupe d’Europe des Nations · France 1960
소련이 처음 우승한 네이션스컵
- 본선 개최국
- 프랑스
- 대회 기간
- 1958년 9월 28일-1960년 7월 10일
- 본선
- 1960년 7월 6일-7월 10일 · 4개국
- 참가
- 17개국
- 경기 수
- 28경기 · 108골(본선 4경기 17골)
- 우승
- 소련
통산 첫 우승
- 득점왕
- 외트·이바노프·포네델니크·갈리치·예르코비치 · 본선 2골
1960년 대회의 공식 이름은 유러피언 네이션스컵(European Nations’ Cup), 프랑스어로는 쿠프 드 뢰로프 데 나시옹(Coupe d’Europe des Nations)이었다. 지금의 UEFA 유로, 정식 이름으로는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의 첫 대회다. 우승 트로피에는 대회를 구상하고 1955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 축구협회 사무총장 앙리 들로네의 이름이 붙었다. [2]
본선 네 나라를 가린 과정은 지금과 달랐다. 1958년 9월 28일 모스크바 루즈니키에서 열린 소련과 헝가리의 16강 1차전부터 두 경기씩 치르는 토너먼트였고, 아일랜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보다 먼저 예선을 치렀다. 서독, 잉글랜드, 이탈리아는 나오지 않았다. 4강부터는 한 경기로 승부를 가렸고, 프랑스가 본선을 열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28경기에서 108골이 나왔다. [1][2]
8강에서는 경기가 열리지 않은 대진이 하나 있었다. 16강에서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와 루이스 수아레스의 골로 폴란드를 넘은 스페인이 소련을 만났다. 프랑코 총통은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이 반대편에 섰던 일을 잊지 않았고, 대표팀의 소련 원정을 막았다. UEFA 사무총장 피에르 들로네가 중립지 경기를 제안했지만 소련이 받지 않았고, 소련은 경기 없이 4강에 올랐다. [2]

7월 6일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의 4강은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이 나온 경기다. 개최국 프랑스가 62분 프랑수아 외트의 두 번째 골로 4-2까지 앞섰다. 75분 토미슬라브 크네즈가 한 골을 따라붙었고, 드라잔 예르코비치가 78분과 79분에 연달아 골을 넣었다. 4분 사이에 세 골이 들어가 4-5. 쥐스트 퐁텐이 부상으로 빠진 프랑스는 2만 6,370명 앞에서 결승을 놓쳤다. 같은 날 마르세유에서는 소련이 발렌틴 이바노프의 두 골과 빅토르 포네델니크의 골로 체코슬로바키아를 3-0으로 이겼다. [1][2]
결승은 7월 10일 밤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렸다. 잉글랜드의 아서 엘리스 주심 아래 1만 7,966명이 지켜봤다. 유고슬라비아가 43분 밀란 갈리치의 골로 앞섰고, 소련은 후반 시작 4분 만에 슬라바 메트레벨리의 골로 따라붙었다. 1-1로 연장에 들어갔고, 113분 포네델니크의 골이 승부를 끝냈다. 소련의 주장은 이고르 네토였다. [1][2][3]
최종 순위
| 순위 | 국가 | 본선 전적 | 득실 |
|---|---|---|---|
| 우승 | 소련 |
2승 | 5득점 1실점 |
| 준우승 | 유고슬라비아 |
1승 1패 | 6득점 6실점 |
| 3위 | 체코슬로바키아 |
1승 1패 | 2득점 3실점 |
| 4위 | 프랑스 |
2패 | 4득점 7실점 |
11명을 읽는 법
1960년 대회에는 당시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이 11명은 UEFA가 1960년부터 1992년까지의 대회에 소급해 정한 대회 베스트 팀(Team of the Tournament)이다. UEFA는 골키퍼 하나, 수비 둘, 미드필더 셋, 공격 다섯으로 묶었다. 우승한 소련이 다섯 명, 준우승한 유고슬라비아가 네 명, 3위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명을 냈고 개최국 프랑스의 선수는 없다. [3][4]
전술판의 역할어는 UEFA 경기 기록의 본선 등번호를 각 팀의 번호 체계로 읽었다. 세 나라 모두 2번이 오른쪽 풀백, 6번이 왼쪽 하프, 7번부터 11번이 오른쪽 끝부터 왼쪽 끝까지의 다섯 공격수였다. 왼쪽 풀백은 소련과 체코슬로바키아가 4번, 유고슬라비아가 3번이었다. 그래서 같은 6번인 네토와 마소푸스트가 모두 LH, 같은 9번인 갈리치와 포네델니크가 모두 CF다. 카드의 위치보다 이름 위의 약어를 그 선수의 역할로 읽으면 된다. GK는 골키퍼, FB는 풀백, LH는 왼쪽 하프, IR·IL은 인사이드 라이트·인사이드 레프트, CF는 센터 포워드, OR·OL은 아웃사이드 라이트·아웃사이드 레프트다. [1]
OL보라 코스티치유고슬라비아 · 2경기
IL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유고슬라비아 · 2경기
CF밀란 갈리치유고슬라비아 · 2경기 2골
CF빅토르 포네델니크소련 · 2경기 2골
OR슬라바 메트레벨리소련 · 2경기 1골
LH요제프 마소푸스트체코슬로바키아 · 2경기
IR발렌틴 이바노프소련 · 2경기 2골
LH이고르 네토소련 · 2경기 · 주장
FB라디슬라프 노바크체코슬로바키아 · 2경기
FB블라디미르 주르코비치유고슬라비아 · 2경기
GK레프 야신소련 · 2경기
소련 · 2경기 1실점

유고슬라비아 · 2경기 · 2번

체코슬로바키아 · 2경기 · 4번

소련 · 2경기 · 주장

체코슬로바키아 · 2경기

소련 · 2경기 2골 · 공동 득점왕

소련 · 2경기 1골 · 결승 동점골

유고슬라비아 · 2경기 2골 · 공동 득점왕

소련 · 2경기 2골 · 결승골

유고슬라비아 · 2경기 · 10번

유고슬라비아 · 2경기 · 8강 3골
골문과 수비
레프 야신(Лев Яшин; 디나모 모스크바와 소련의 골키퍼, 1929-1990)은 본선 두 경기에서 한 골만 내줬다. 마르세유의 체코슬로바키아전은 무실점이었고, 결승에서는 갈리치의 골 하나를 내준 뒤 연장까지 120분을 버텼다. 검은 상의를 입던 이 골키퍼를 UEFA는 축구가 본 가장 뛰어난 골키퍼 가운데 하나로 적는다. 대회 당시 서른 살이었고, 3년 뒤 골키퍼로는 처음 발롱도르를 받는다. [1][3]
블라디미르 주르코비치(Vladimir Đurković; 유고슬라비아 수비수)는 유고슬라비아의 두 경기에 모두 2번 오른쪽 풀백으로 나섰다. 스물두 살이었다. 대회가 끝난 두 달 뒤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뒤에 프랑스의 AS 생테티엔으로 옮겨 우승을 거뒀다. [1][3]
라디슬라프 노바크(Ladislav Novák; 체코슬로바키아 수비수, 1931-2011)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장으로 4강과 3위 결정전에 모두 4번 왼쪽 풀백으로 나섰다. 대표팀 75경기 가운데 71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찼고, 2년 뒤 칠레 월드컵 결승까지 팀을 이끌었다. [1][3]
세 미드필더
이고르 네토(Игорь Нетто; 소련 하프백, 1930-1999)는 소련의 주장이었다. 두 경기 모두 6번 왼쪽 하프로 나섰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소련 대표팀에 두 번째 국제 대회 우승을 안겼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리그를 다섯 번 우승한 하프다. [1][3]
요제프 마소푸스트(Josef Masopust; 체코슬로바키아 미드필더, 1931-2015)도 같은 6번 왼쪽 하프였다. 4강에서 소련에 0-3으로 졌지만 3위 결정전에서 프랑스를 2-0으로 이겼다. 1962년 칠레 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넣었고, 그해 동유럽 선수로는 처음 발롱도르를 받았다. [1][3]
발렌틴 이바노프(Валентин Иванов; 소련 공격수, 1934-2011)는 8번 인사이드 라이트였다. UEFA는 그를 미드필더로 묶었다. 체코슬로바키아와의 4강에서 34분과 56분에 두 골을 넣어 공동 득점왕이 됐고, 16강 헝가리와의 1차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대표팀 59경기에서 26골을 넣은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공격수다. [1][2][3]
다섯 공격수
오른쪽 끝은 슬라바 메트레벨리(სლავა მეტრეველი; 조지아 출신 소련 공격수, 1936-1998)다. 7번을 단 빠른 윙어로, 결승 49분 동점골을 넣었다. 16강 헝가리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1][3]
가운데의 두 9번 가운데 하나는 빅토르 포네델니크(Виктор Понедельник; 소련 공격수)다. 2부 리그 구단 로스토프에서 처음 대표팀에 뽑힌 선수였고, 4강의 세 번째 골과 결승 113분 결승골을 넣었다. 포네델니크는 러시아어로 월요일이라는 뜻이다. 결승은 일요일 밤 9시 30분 파리에서 시작했고, 그의 연장 골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월요일 새벽 1시가 넘어 들어갔다. [1][3]
다른 9번은 밀란 갈리치(Milan Galić; 파르티잔과 유고슬라비아의 공격수, 1938-2014)다. 파리의 4강에서 11분 첫 골, 결승에서 43분 선제골을 넣었다. 두 경기 모두 유고슬라비아의 첫 골이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51경기 37골을 넣었다. [1][3]
인사이드 레프트는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Dragoslav Šekularac; 유고슬라비아 공격수, 1937-2019)다. UEFA 경기 기록은 두 경기 모두 10번으로 적는다. 1950년대에 이미 상대를 놀리듯 공을 다루던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스타였고, 8강 포르투갈과의 2차전에서 8분 첫 골을 넣었다. [1][3]
왼쪽 끝은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유고슬라비아 왼쪽 윙어, 1930-2011)다. 본선에서는 골이 없었다. 유고슬라비아를 프랑스로 보낸 것은 8강의 그였다. 리스본 원정 1-2 패배에서 81분 만회골, 베오그라드 2차전 5-1에서 50분과 88분에 두 골을 넣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리그 최다 득점자로 남은 왼발이다. 1957-58 유러피언컵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1][3]
명단 밖의 이름들
공동 득점왕 다섯 가운데 둘이 명단 밖에 남았다. 개최국 프랑스의 프랑수아 외트는 파리 4강에서 43분과 62분에 두 골을 넣었고, 유고슬라비아의 드라잔 예르코비치는 같은 경기 78분과 79분 골로 역전을 마무리했다. 예선까지 넓히면 체코슬로바키아의 티투스 부베르니크, 프랑스의 쥐스트 퐁텐과 장 뱅상이 다섯 골씩으로 가장 많았다. 퐁텐은 부상으로 본선에 서지 못했다. [1][2]
명단은 소련 다섯(야신·네토·이바노프·메트레벨리·포네델니크), 유고슬라비아 넷(주르코비치·갈리치·셰쿨라라츠·코스티치), 체코슬로바키아 둘(노바크·마소푸스트)이다. 결승의 두 나라가 아홉 자리를 채웠고, 4강에서 소련에 진 체코슬로바키아가 수비와 중원에 한 명씩 남겼다. 파리의 4-5를 만든 개최국 프랑스는 공동 득점왕 외트를 내고도 이 명단에 한 사람도 올리지 못했다.
출처와 기록 기준
- 「European Nations’ Cup 1958-60 matches and line-ups」, UEFA 경기 데이터. 30개 대진(기권 2경기 포함)의 날짜·경기장·득점, 본선 네 경기의 선발 명단과 등번호·생년월일.
- 「European Championship 1960」, RSSSF. 경기별 득점 시각·주심·관중, 스페인 기권 경위, 예선 포함 득점자 목록.
- 「EURO 1960 Team of the Tournament」, UEFA. 11명의 포지션 묶음과 경력.
- 「European Championships - UEFA Teams of Tournament」, RSSSF. UEFA 대회 베스트 팀 목록.
11명은 UEFA가 소급해 정한 대회 베스트 팀이다. 경기 수와 득점은 UEFA 경기 데이터를 기준으로 RSSSF와 대조했고, 역할어는 UEFA 기록의 본선 등번호를 각 팀의 번호 체계로 읽었다. RSSSF는 결승의 유고슬라비아 7번과 10번을 셰쿨라라츠와 젤코 마투시로 UEFA와 반대로 적는다. 공식 도움 통계는 없어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사진: 레프 야신·요제프 마소푸스트 삥이FC 「나만의 GOAT」,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 《에스타디오》 표지(인물관 셰쿨라라츠 편), 보라 코스티치 1957-58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편, 이고르 네토 Anefo(1961년 3월 6일, Henk Lindeboom, CC BY-SA 3.0 nl), 블라디미르 주르코비치 Anefo(1968년 8월 11일, CC0), 밀란 갈리치 Anefo(1966년 5월 11일, Ron Kroon, CC BY-SA 3.0 nl), 슬라바 메트레벨리 1966년 파니니 스티커(퍼블릭 도메인, 이상 Wikimedia Commons), 발렌틴 이바노프·빅토르 포네델니크·라디슬라프 노바크 worldfootb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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