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 유러피언컵

1957-58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디스테파노·코파·헨토, 그리고 초르다시와 코스티치

공식 선정이 없던 세 번째 유러피언컵을 48경기의 출전 명단과 등번호로 다시 읽었다. 3연패의 레알 마드리드와 준우승팀 밀란, 4강의 버셔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8강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고른 삥이FC 회고 베스트 11.
유러피언컵 트로피 배경의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Best XI 문구와, 줄무늬 유니폼의 밀란 선수와 흰 유니폼의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공을 다투는 경기 사진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디자인: 삥이FC.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3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7-58

공식 베스트 11이 없던 세 번째 대회

대회 기간
1957년 9월 4일-1958년 5월 28일
참가
24개 구단
경기 수
48경기 · 189골
우승
레알 마드리드 CF 스페인 1945-1977년 국기
준우승
AC 밀란 이탈리아 국기
4강
버셔시 SC 헝가리 국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잉글랜드 국기
득점왕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스페인 1945-1977년 국기 · 레알 마드리드 · 10골
득점 2위
보라 코스티치 유고슬라비아 국기 · 츠르베나 즈베즈다 · 9골
득점 3위
초르다시 러요시 헝가리 국기 · 버셔시 · 8골
도움 순위
공식 집계 없음

득점 순위는 UEFA 경기 데이터와 RSSSF 경기별 기록이 일치하는 값이며, 공동 4위는 6골의 분자크 데죄와 에르네스토 그리요다. 도움은 이 시즌은 물론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전체 순위는 1957-58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에 정리했다. [1][2]

세 번째 유러피언컵도 트로피 하나만 남기고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브뤼셀 헤이젤에서 밀란을 연장 끝에 3-2로 꺾고 대회가 생긴 뒤 세 번의 결승을 모두 이겼다. 그해에도 대회를 대표할 열한 명의 명단은 누구도 발표하지 않았다. 예선부터 8강까지는 1957-58 유러피언컵 본편, 준결승 네 경기는 4강 편, 헤이젤의 결승은 결승 하이라이트에서 이어진다.

한 시즌 전에는 득점 상위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센터 포워드여서, 필자가 디스테파노를 오른쪽 하프로 내려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 시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득점 1위 디스테파노는 레알의 일곱 경기에서 모두 9번, 2위 코스티치는 여섯 경기 가운데 네 경기에서 10번, 3위 초르다시는 버셔시의 여덟 경기에서 모두 8번을 달았다. 세 사람이 센터 포워드와 두 인사이드에 한 명씩 들어간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칙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UEFA가 공개한 48경기의 선발 명단에서 선수마다 어떤 번호를 달았는지 모았고, 고정 등번호가 없던 시절이라 그날의 번호를 그날의 역할로 읽었다. 그다음 UEFA와 RSSSF의 득점 기록, 골키퍼의 실점을 겹쳐 누가 어느 자리에서 대회의 흐름을 틀었는지 따졌다. [1][2]

열한 명을 읽는 법

전형은 당시 유럽 구단들이 쓰던 WM(WM formation; 수비 3명, 하프 2명, 인사이드 2명과 전방 3명이 W와 M 모양을 이루는 전형)을 따랐다. GK는 골키퍼, FB는 풀백, CH는 센터 하프, RH·LH는 오른쪽·왼쪽 하프, OL·IL·CF·IR·OR는 아웃사이드 레프트·인사이드 레프트·센터 포워드·인사이드 라이트·아웃사이드 라이트다. 앞선 두 시즌과 같이 현대의 포지션으로 바꾸지 않고 당대 역할어를 그대로 둔다.

아래 전술판은 서로 다른 다섯 구단의 선수를 한 화면에 세운 회고적 배열이다. 레알은 한 시즌 전처럼 스페인식으로 3번이 가운데 수비를 맡았다. 결승 명단도 오른쪽 풀백 아티엔사, 가운데 산타마리아, 왼쪽 풀백 레스메스 순서로 적혀 있다. 그래서 레알의 3번 산타마리아가 센터 하프 자리에 선다. [1][2]

파코 헨토OL파코 헨토레알 · 6경기 3골
보라 코스티치IL보라 코스티치츠르베나 즈베즈다 · 6경기 9골
알프레도 디스테파노CF알프레도 디스테파노레알 · 7경기 10골
초르다시 러요시IR초르다시 러요시버셔시 · 8경기 8골
레몽 코파OR레몽 코파레알 · 7경기 3골
던컨 에드워즈LH던컨 에드워즈맨유 · 5경기
마리오 베르가마스키RH마리오 베르가마스키밀란 · 9경기 2골
로저 번FB로저 번맨유 · 6경기
호세 산타마리아CH호세 산타마리아레알 · 7경기
빌 폴크스FB빌 폴크스맨유 · 8경기
후안 알론소GK후안 알론소레알 · 4경기
후안 알론소
GK · 골키퍼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4경기 4실점 · 무실점 2회

빌 폴크스
FB · 풀백빌 폴크스William Anthony Foulke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문장 · 8경기 · 등번호 2번

호세 산타마리아
CH · 센터 하프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 무실점 3회

로저 번
FB · 풀백로저 번Roger William Byrn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문장 · 6경기 · 등번호 3번

마리오 베르가마스키
RH · 라이트 하프마리오 베르가마스키Mario Bergamaschi

AC 밀란 AC 밀란 문장 · 9경기 2골

던컨 에드워즈
LH · 레프트 하프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문장 · 5경기 · 등번호 6번

레몽 코파
OR · 아웃사이드 라이트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3골

초르다시 러요시
IR · 인사이드 라이트초르다시 러요시Csordás Lajos

버셔시 SC 버셔시 SC 문장 · 8경기 8골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CF · 센터 포워드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10골 · 득점왕

보라 코스티치
IL · 인사이드 레프트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문장 · 6경기 9골

파코 헨토
OL · 아웃사이드 레프트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6경기 3골

골문과 최후방

골문은 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스페인 골키퍼, 1927-1994)에게 맡겼다. 레알은 16강 두 경기와 8강 세비야 원정을 아르헨티나 출신 로헬리오 도밍게스(Rogelio Antonio Domínguez; 아르헨티나 골키퍼)에게 맡겼고, 알론소는 8강 1차전부터 골문에 섰다. 세비야를 8-0, 버셔시를 4-0으로 이긴 두 경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았고, 부다페스트의 0-2와 브뤼셀의 연장 결승까지 네 경기에서 네 골을 내줬다. 레알이 대회에서 가장 무거운 경기를 치른 4강과 결승의 골문은 모두 그의 자리였다. [1]

가장 많이 뛴 골키퍼는 밀란의 로렌초 부폰(Lorenzo Buffon; 이탈리아 골키퍼)이다. 일곱 경기에서 열 골을 내줬고 결승에는 나서지 않았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블라디미르 베아라는 여섯 경기에서 아홉 골을 내줬다. 경기당 실점과 결승의 무게를 함께 놓으면 알론소 쪽으로 기운다. [1]

그 앞의 중앙에는 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우루과이·스페인 수비수, 1929-2026)가 선다. 1957년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온 이 수비수는 레알의 일곱 경기에 모두 3번으로 나섰다. 레알은 그가 선 일곱 경기에서 일곱 골을 내줬고, 앤트워프와의 16강 2차전, 세비야와의 8강 1차전, 버셔시와의 4강 1차전은 무실점이었다. 꾸준한 수비로 ‘벽’이라는 별명을 얻은 선수다. 4년 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우루과이 대표로 뛰었고, 그 대회의 기록은 1954 FIFA 월드컵 베스트 11에 적어 두었다. [1]

오른쪽 풀백은 빌 폴크스(William Anthony Foulkes; 잉글랜드 수비수, 1932-2013)다. 맨유가 치른 여덟 경기에 모두 2번으로 나선 사람은 그 하나뿐이다. 1958년 2월 6일 뮌헨 공항 사고에서 그는 머리에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고, 세상을 떠난 로저 번 대신 곧바로 주장을 맡았다. 석 달 뒤 밀란과의 4강 두 경기에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해리 그레그, 케니 모건스, 데니스 바이올렛과 함께 나섰다. 예선 첫 경기부터 4강 2차전까지 맨유의 모든 경기를 뛴 선수는 그 하나다. [1][3]

왼쪽 풀백은 로저 번(Roger William Byrne; 잉글랜드 풀백, 1929-1958)이다. 맨유의 첫 여섯 경기에 모두 3번으로 나섰다. 섐록 로버스와의 예선 원정 6-0과 두클라 프라하와의 16강 홈경기 3-0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8강 두 경기까지 주장으로 뛰었다. 베오그라드의 3-3이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 이튿날 뮌헨에서 그는 스물여덟 살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가 그를 이 자리에 세운 근거는 사고 전 여섯 경기의 활약이다. 한 시즌 전 편에 이어 두 번째로 이 명단에 들어간다. [1][4]

두 하프

오른쪽 하프는 준우승팀의 마리오 베르가마스키(Mario Bergamaschi; 이탈리아 하프백)다. 밀란이 재경기를 포함해 치른 열 경기 가운데 아홉 경기에 나섰고, 여섯 번을 4번, 세 번을 6번으로 뛰었다. 빠진 경기는 레인저스와의 16강 홈경기 하나뿐이다. 두 골이 모두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 라피트와의 예선 재경기 4-2 승리에서 41분에 골을 넣었고, 8강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는 0-1로 끌려가던 경기의 90분에 동점골을 넣어 1-1을 만들었다. 밀란은 산 시로의 2차전을 4-1로 이기고 4강에 올랐다. 맨유와의 4강 두 경기와 결승에서도 4번을 달았다. [1]

왼쪽 하프는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잉글랜드 하프백, 1936-1958)다. 맨유의 다섯 경기에 모두 6번으로 나섰다. 그가 뛴 다섯 경기에서 맨유는 다섯 골만 내줬고, 섐록 로버스 원정과 두클라와의 홈경기는 무실점이었다. 한 시즌 전 편에서 필자가 맨유의 실력적 리더로 꼽은 그 선수다. 베오그라드의 3-3 뒤 뮌헨 사고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보름 뒤인 2월 21일 스물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버스비의 아이들 전체는 맨유 버스비 베스트 11에서 이어진다. [1][5]

다섯 공격

오른쪽 끝은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다. 레알의 일곱 경기 가운데 여섯 경기에서 7번, 세비야 원정 한 경기에서 8번을 달았다. 한 시즌 전 7번·8번·10번을 오가던 그가 이번에는 오른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앤트워프와의 16강 2차전에서 한 골, 세비야와의 8강 1차전 8-0에서 두 골을 넣었다. 기록지 밖의 무게는 결승에서 드러났다. UEFA의 경기 기사에 따르면 79분 리알의 동점골은 코파의 크로스에서, 107분 헨토의 결승골은 코파의 패스에서 나왔다. 결승 장면은 결승 하이라이트에 영상으로 옮겨 두었다. [1][6]

그 안쪽 인사이드 라이트는 초르다시 러요시(Csordás Lajos; 헝가리 공격수, 1932-1968)다. 버셔시의 여덟 경기에 모두 8번으로 나서 여덟 골을 넣었다. 예선 CDNA 소피아와의 홈경기에서 세 골, 16강 영 보이스 원정에서 90분 동점골, 부다페스트의 2차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아약스와의 8강 2차전과 레알과의 4강 2차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레알이 이 시즌 처음 골을 넣지 못하고 진 부다페스트의 2-0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이 그의 페널티킥이었다. 처음 4강에 오른 헝가리 구단의 공격을 분자크 데죄와 둘이서 이끌었다. [1][2]

한가운데는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센터 포워드, 1926-2014)다. 레알의 일곱 경기에 모두 9번으로 나서 열 골을 넣었다. 대회 세 번째 시즌에 처음 나온 두 자릿수 골이다. 앤트워프 원정에서 두 골, 세비야와의 8강 1차전에서 네 골, 버셔시와의 4강 1차전에서 세 골을 넣었고, 결승에서는 0-1로 뒤진 74분에 동점골을 넣었다. 이 골로 그는 유러피언컵 결승 세 번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한 시즌 전에는 하프로 내려 세웠던 선수를 이번에는 기록지대로 9번 자리에 둔다. [1][2]

인사이드 레프트는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유고슬라비아 공격수, 1930-2011)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서 네 경기를 10번, 한 경기씩을 9번과 11번으로 뛰며 아홉 골을 넣었다. 스타드 뒤들랑주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여섯 골, 노르셰핑 원정에서 90분 동점골, 그리고 맨유와의 8강 2차전에서 두 골을 넣었다. 0-3으로 뒤진 베오그라드의 경기를 3-3까지 끌어올린 두 골이었다. 한 시즌 전에는 왼쪽 끝을 두고 헨토와 저울질하다 명단 밖에 남겨 둔 선수인데, 이번에는 10번 자리에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그는 지금도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리그 통산 최다 득점자다. [1][7]

마지막 자리, 왼쪽 끝은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다. 레알의 여섯 경기에 11번으로 나서 세 골을 넣었다. 앤트워프와의 16강 2차전 89분, 세비야와의 8강 1차전 81분, 그리고 결승의 107분이다. 연장 후반, 코파의 패스를 받은 그가 체사레 말디니와 알피오 폰타나를 제치고 낮게 찬 공이 레알의 세 번째 트로피를 결정했다. 한 해 전 베르나베우에서 사르티를 넘긴 로빙슛에 이어 두 해 연속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 [1][6]

명단 밖에 남은 이름들

가장 아쉬운 쪽은 밀란이다. 준우승팀에서 한 명만 들어갔다. 에르네스토 그리요(Ernesto Grillo;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9-1998)는 여덟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어 공동 4위에 올랐고,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5-2002)는 다섯 골 가운데 네 골을 4강과 결승에서 넣었다. 두 사람 모두 10번을 가장 많이 달았는데, 그 자리에는 아홉 골의 코스티치가 서 있었다. 수비의 체사레 말디니(Cesare Maldini; 이탈리아 수비수, 1932-2016)는 여덟 경기에서 2번을 다섯 번, 5번을 세 번 달았고, 에로스 베랄두(Eros Beraldo; 이탈리아 수비수)는 아홉 경기 가운데 여섯 경기를 3번으로 뛰었다. 두 자리 모두 대회를 끝까지 치른 폴크스와, 맨유의 앞선 여섯 경기를 지킨 번과 저울질했다. [1]

레알에서는 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스페인 미드필더, 1930-2012)가 끝까지 남았다. 일곱 경기에 모두 6번으로 나선 유일한 레알 하프다. 버셔시의 베렌디 팔(Berendi Pál; 헝가리 하프백)도 여덟 경기에 모두 6번으로 나서 한 골을 넣었다. 왼쪽 하프에 에드워즈를 세우면서 두 사람을 모두 뺐다. 버셔시의 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 헝가리 미드필더, 1928-2010)는 여섯 골로 공동 4위였지만 10번 자리에서 코스티치를 넘지 못했다. [1]

맨유의 에디 콜먼(Edward Colman; 잉글랜드 라이트 하프, 1936-1958)은 사고 전 다섯 경기에서 4번을 달았고, 올드 트래퍼드의 8강 1차전에서 81분 결승골을 넣어 2-1 승리를 만들었다. 오른쪽 하프에는 대회를 끝까지 뛴 베르가마스키가 섰다. 콜먼도 뮌헨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1]

그렇게 추리고 나니 레알에서 다섯 명, 맨유에서 세 명, 밀란과 버셔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한 명씩이 남았다. 4강에 오른 네 팀이 모두 명단에 들어갔고, 득점 1위부터 3위까지가 모두 공격 다섯 자리에 섰다. 세 번째 유러피언컵은 레알의 3연패로 끝났다. 그 대회에서 레알을 이긴 유일한 팀은 부다페스트의 버셔시였고, 8강에서 맨유와 여섯 골을 주고받은 베오그라드의 3-3이 버스비의 아이들이 함께 치른 마지막 경기였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7/58 matches and line-ups」, UEFA 경기 데이터. 48경기의 선발 명단, 선수별 등번호, 득점과 실점.
  2. 「European Champions’ Cup 1957-58 - Details」, RSSSF. 경기별 득점자.
  3. 「Bill Foulkes」, Wikipedia. 1957-58 오른쪽 풀백, 뮌헨 사고의 부상과 사고 직후 주장 승계.
  4. 「Roger Byrne」, Wikipedia. 주장 경력과 뮌헨 사고.
  5. 「Duncan Edwards」, Wikipedia. 1958년 2월 21일 사고 부상으로 사망, 스물한 살.
  6. 「Madrid make it three in a row in Brussels」, UEFA. 결승에서 코파의 크로스와 리알의 동점골, 코파의 패스와 헨토의 결승골.
  7. 「Bora Kostić」, Wikipedia. 츠르베나 즈베즈다 리그 통산 최다 득점(158골).

1957-58 시즌에는 공식 대회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열한 명은 삥이FC가 2026년 선정한 회고 명단이다. 출전 경기와 실점·무실점은 UEFA 경기 데이터의 선발 명단과 경기 결과, 득점은 UEFA와 RSSSF가 일치하는 기록을 기준으로 하며 공식 도움 통계는 없어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역할어는 선수가 가장 많이 단 등번호와 당시 구단의 번호 체계를 따랐고, 이번 명단에는 등번호와 다른 자리에 세운 선수가 없다. 헝가리 선수의 한글명은 헝가리어 순서에 따라 성-이름 순으로 표기했다. 마리오 베르가마스키 사진은 Wikimedia Commons 소장 1957-58 AC 밀란 단체 사진(퍼블릭 도메인)에서, 빌 폴크스·호세 산타마리아 사진은 삥이FC 축쿼드 선수 카드에서 얼굴 부분을 잘라 썼다. 초르다시 러요시 사진은 헝가리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 시절 초상, 보라 코스티치 사진은 츠르베나 즈베즈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 시절 초상이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레몽 코파·파코 헨토·로저 번·던컨 에드워즈 사진은 1956-57 편, 후안 알론소 사진은 1955-56 편과 같은 이미지다. 선수 카드의 구단 문장은 국적과 혼동되지 않도록 1957-58 유러피언컵 본편과 같은 시대의 구단 자산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