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 유러피언컵

1957-58 유러피언컵 4강: 레알·버셔시, 맨유·밀란의 1차전과 2차전

디스테파노의 세 골로 벌린 베르나베우의 4-0과 네프슈터디온 10만 관중 앞의 0-2, 뮌헨 사고 석 달 뒤 올드 트래퍼드의 2-1과 산 시로의 4-0. 1957-58 유러피언컵 4강 네 경기와 레알 마드리드·AC 밀란이 결승에 오르기까지를 읽는다.
버셔시·레알 마드리드·AC 밀란·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옷을 입은 네 토끼와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문구
세 번째 유러피언컵의 4강, 네 구단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3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7-58

4강 진출팀

구단대표 지역4강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세 번째 4강 진출
버셔시 SC헝가리통산 첫 4강 진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통산 두 번째 4강 진출
AC 밀란이탈리아통산 두 번째 4강 진출

1958년 4월 2일, 마드리드에서 세 번째 유러피언컵 4강이 시작됐다.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와 헝가리 챔피언 버셔시 SC의 1차전이었다. 두 주 뒤 부다페스트에서 2차전이 열렸고, 다른 쪽 대진의 1차전은 그보다 3주 뒤인 5월 8일에야 맨체스터에서 열렸다. [1]

네 팀 가운데 레알은 세 시즌 연속, 맨유는 두 시즌 연속 4강이었다. AC 밀란은 첫 대회 4강에서 레알에 진 뒤 두 번째 4강이었고, 버셔시는 헝가리 구단으로는 처음 유러피언컵 4강에 올랐다. 예선부터 8강까지의 여정은 참가팀·예선·16강과 8강에서 이어진다. [2]

4강 1차전

4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 대 버셔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AC 밀란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데니스 바이올렛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1차전 두 경기의 기록. 위 사진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아래는 데니스 바이올렛. 맨유-밀란 1차전 관중은 UEFA 기록으로 4만 4,480명이며, 영어 위키백과와 이미지는 4만 4,882명으로 적는다. 디자인: 삥이FC.

레알 마드리드 4-0 버셔시 SC: 디스테파노의 세 골

1958년 4월 2일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UEFA 경기 기록에 적힌 관중은 12만 명, 주심은 프랑스의 모리스 기그(Maurice Guigue; 프랑스 주심)였다. 루이스 카르니글리아(Luis Antonio Carniglia;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1917-2001) 감독의 레알은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 라몬 마르살(Ramón Marsal; 스페인 공격수),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8-1991),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로 공격진을 꾸렸다. [1]

버셔시 SC(Vasas Sport Club)는 일로프스키 루돌프(Illovszky Rudolf; 헝가리 감독) 감독 아래 8강까지 초르다시 러요시(Csordás Lajos; 헝가리 공격수, 1932-1968), 실라지 줄러(Szilágyi Gyula; 헝가리 공격수), 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 헝가리 미드필더, 1928-2010)의 골로 올라온 팀이었다. 마드리드에서는 그 공격진이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디스테파노가 9분에 첫 골을 넣었고, 42분에는 페널티킥으로 두 번째 골을 넣었다.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마르살이 세 번째 골을, 50분에 디스테파노가 자기 세 번째 골을 넣었다. 경기 시작 50분 만에 4-0이 됐고 그 뒤로는 점수가 바뀌지 않았다. [1],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1 AC 밀란: 뮌헨 석 달 뒤의 올드 트래퍼드

1958년 5월 8일 ·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맨유가 베오그라드에서 4강 진출을 확정하고 돌아오던 비행기가 뮌헨에서 이륙하지 못한 지 석 달이 지나 있었다. 선수 여덟 명이 세상을 떠났고, 맷 버스비(Sir Alexander Matthew Busby;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1909-1994) 감독은 크게 다쳐 병원에 있었다. 팀은 코치 지미 머피(Jimmy Murphy; 웨일스 출신 코치, 1910-1989)가 이끌었다. 닷새 전인 5월 3일 맨유는 웸블리에서 볼턴 원더러스에 0-2로 져 FA컵 준우승에 그쳤다. [4], [5], [6]

이날 선발 열한 명 가운데 골키퍼 해리 그레그(Harry Gregg; 북아일랜드 골키퍼, 1932-2020), 수비수 빌 폴크스(Bill Foulkes; 잉글랜드 수비수, 1932-2013), 윙어 케니 모건스(Kenny Morgans; 웨일스 윙어, 1939-2012), 공격수 데니스 바이올렛(Dennis Sydney Viollet; 잉글랜드 공격수, 1933-1999) 네 명이 사고에서 살아남은 선수였다. 사고 직후 애스턴 빌라에서 급히 데려온 스탠 크라우더(Stan Crowther; 잉글랜드 하프백, 1935-2014)와 블랙풀에서 온 어니 테일러(Ernie Taylor; 잉글랜드 인사이드 포워드, 1925-1985)가 중원에 섰다. 테일러는 1953년 스탠리 매슈스와 함께 블랙풀에서 FA컵을 우승한 선수다. 바비 찰턴의 이름은 이날 명단에 없었다. [1], [6], [7]

주세페 비아니(Giuseppe Viani; 이탈리아 감독, 1909-1969) 감독의 AC 밀란이 먼저 골을 넣었다. 24분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5-2002)의 골이었다. 맨유는 39분 바이올렛의 골로 따라잡았고, 80분 테일러가 페널티킥을 넣어 2-1로 뒤집었다. 주심은 덴마크의 레오 헬게(Leo Helge; 덴마크 주심)였다. 사고 뒤 새로 짠 팀이 유럽 무대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1]

4강 2차전

4강 2차전 버셔시 대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분자크 데죄, 후안 스키아피노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2차전 두 경기의 기록. 위 사진은 분자크 데죄, 아래는 후안 스키아피노. 버셔시-레알 2차전의 날짜·경기장·주심·관중은 이미지에 밀란-맨유 경기 정보가 들어가 있으며, 실제로는 1958년 4월 16일 부다페스트 네프슈터디온, 주심 피에르 슈빈트(프랑스), 관중 10만 명이다. 이미지의 초르다스 러요시는 초르다시 러요시로 읽는다. 디자인: 삥이FC.

버셔시 SC 2-0 레알 마드리드: 네프슈터디온 10만 관중의 두 골

1958년 4월 16일 · 네프슈터디온,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의 네프슈터디온(Népstadion)에 10만 명이 모였다. 버셔시는 네 골을 뒤집어야 했다. 25분 분자크가 선제골을 넣었고, 53분 초르다시가 페널티킥으로 두 번째 골을 넣었다. 레알은 이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합계 4-2로 결승에 올랐다. 주심은 프랑스의 피에르 슈빈트(Pierre Schwinte; 프랑스 주심)였다. [1], [8]

초르다시는 이 골로 시즌 여덟 번째 골을 넣었다. 예선의 CDNA 소피아전 세 골, 16강 영 보이스전 세 골, 8강 아약스전 한 골에 이은 골이다. 1956년 혁명으로 리그를 끝내지 못한 나라의 챔피언이 이듬해 봄 한 바퀴짜리 리그로 자격을 얻어 4강까지 왔고, 마지막 경기에서 디펜딩 챔피언에게 이번 대회 첫 패배를 안겼다. [3]

AC 밀란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분 만에 되돌린 합계

1958년 5월 14일 · 스타디오 산 시로, 밀라노

밀라노의 산 시로(Stadio San Siro)에서는 경기 시작 2분 만에 스키아피노가 골을 넣어 합계를 2-2로 맞췄다. 후반 들어 51분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스웨덴 미드필더, 1922-2007)의 페널티킥, 67분 잔카를로 다노바(Giancarlo Danova; 이탈리아 공격수)의 골, 76분 스키아피노의 두 번째 골이 이어졌다. 주심은 서독의 알베르트 두슈(Albert Dusch; 서독 주심)였고, UEFA 기록상 관중은 6만 명이다. [1]

맨유는 1차전과 같은 열한 명으로 나섰다. 밀란은 1차전과 달리 오른쪽 윙에 다노바를 세웠고, 그 다노바가 세 번째 골을 넣었다. 합계 5-2. 사고 뒤 석 달 동안 FA컵 결승과 유러피언컵 4강까지 버틴 맨유의 시즌은 밀라노에서 끝났다. [1]

결승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

1957-58 유러피언컵 · 4강

레알 마드리드 CF vs 버셔시 SC

레알 마드리드 CF 로고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스페인 국기스페인
합계4:2두 경기 결과
버셔시 SC 로고
버셔시 SCVASAS SC헝가리 국기헝가리
4강 1차전
4 : 0
4강 2차전
0 : 2
결승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디스테파노 9분 42분(PK) 50분, 마르살 46분

4강 1차전

버셔시 SC득점 없음

레알 마드리드 CF득점 없음

4강 2차전

버셔시 SC분자크 25분, 초르다시 53분(PK)

베르나베우의 4-0을 들고 간 레알이 네프슈터디온 10만 관중 앞에서 0-2로 버텼다.

1957-58 유러피언컵 · 4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vs AC 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MANCHESTER UNITED FC잉글랜드 국기잉글랜드
합계2:5두 경기 결과
AC 밀란 로고
AC 밀란AC MILAN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4강 1차전
2 : 1
4강 2차전
0 : 4
결승 진출
AC 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바이올렛 39분, E. 테일러 80분(PK)

4강 1차전

AC 밀란스키아피노 24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득점 없음

4강 2차전

AC 밀란스키아피노 2분 76분, 리드홀름 51분(PK), 다노바 67분

올드 트래퍼드에서 뒤집은 맨유가 산 시로에서 네 골을 내줬다.

대진 카드의 1·2차전 스코어는 왼쪽 구단부터 표시한다. 실제 2차전 홈팀은 버셔시 SC와 AC 밀란이다.

4강 네 경기 기록날짜·홈과 원정·득점자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분 날짜 홈 결과 원정 득점
4강 1차전 1958.04.02 레알 마드리드 CF 4-0 버셔시 SC 디스테파노 9분, 42분(PK), 50분, 마르살 46분
4강 1차전 1958.05.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1 AC 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바이올렛 39분, E. 테일러 80분(PK)
AC 밀란스키아피노 24분
4강 2차전 1958.04.16 버셔시 SC 2-0 레알 마드리드 CF 분자크 25분, 초르다시 53분(PK)
4강 2차전 1958.05.14 AC 밀란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스키아피노 2분, 76분, 리드홀름 51분(PK), 다노바 67분

득점 시각은 UEFA 경기 데이터를 따른다. RSSSF는 디스테파노 43분, 마르살 47분, 분자크 30분, 스키아피노 3분·77분, 리드홀름 52분으로 적는다. 도판의 득점 시각은 UEFA 기록과 같다. 버셔시-레알 2차전 날짜는 UEFA 기록과 영어·헝가리어 위키백과의 4월 16일을 따랐으며, RSSSF는 4월 14일로 적는다.

레알은 부다페스트에서 이 시즌 처음으로 골을 넣지 못한 경기를 치렀지만, 마드리드의 네 골 차가 그대로 결승행이 됐다. 밀란은 원정에서 지고 돌아와 홈에서 네 골을 넣었다. 두 대진 모두 첫 경기의 홈팀이 두 번째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1]

1958년 5월 28일, 결승은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레알에게는 세 번째 결승이고, 밀란에게는 첫 유러피언컵 결승이다. 첫 대회 4강에서 만났던 두 팀이 이번에는 결승에서 다시 만난다. [2], [3]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