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58 EUROPEAN CUP · FINAL
UNPLAYEDS
- 날짜
- 1958년 5월 28일
- 장소
- 헤이젤 스타디움
- 관중
- 67,000명
- 주심
- 알베르 알스텐
1958년 5월 28일,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Stade du Heysel)에 6만 7천 명이 들어왔다. 지금의 킹 보두앵 스타디움이다. 경기장 바로 위 언덕에는 그해 4월 17일 문을 연 브뤼셀 만국박람회(엑스포 58)의 상징물 아토미움(Atomium)이 서 있었다. 그 은빛 구조물 아래에서 세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이 열렸다.[1][6]
레알 마드리드 CF는 대회가 생긴 뒤 두 번의 결승을 모두 이기고 이 자리에 왔다. 한 시즌 전 스타드 드 랭스에서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를 데려온 데 이어, 1957년에는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벽’이라 불리던 수비수 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우루과이·스페인 수비수, 1929-2026)를 영입했다. 벤치도 바뀌었다. 2연패를 이끈 호세 비야롱가가 떠나고, 1957년 6월 OGC 니스에서 온 아르헨티나 출신 루이스 카르니글리아(Luis Antonio Carniglia;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1917-2001)가 새 감독이 됐다.[4][7] 두 번의 결승에서 트로피를 받았던 주장 미겔 무뇨스는 서른여섯 살이 된 이 시즌 결승 선발 명단에 없었다.[2]
맞은편의 AC 밀란은 1956-57시즌 세리에 A 챔피언 자격으로 나왔다. 스웨덴 삼총사 ‘그레놀리’(Gre-No-Li) 가운데 군나르 그렌은 1953년에, 군나르 노르달은 1956년에 팀을 떠났지만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스웨덴 미드필더, 1922-2007)은 주장 완장을 차고 남아 있었다. 공격에는 우루과이 출신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5-2002)와 아르헨티나 출신 에르네스토 그리요(Ernesto Grillo;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9-1998)가 섰다. 수비의 가운데는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Cesare Maldini; 이탈리아 수비수, 1932-2016)가 지켰다.[2][4]
두 팀은 첫 대회 4강에서 이미 만났다. 그때는 레알이 이겼고, 2년 뒤 이번에는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예선부터 8강까지의 길은 1957-58 유러피언컵 참가팀과 본선에, 결승행을 가른 네 경기는 1957-58 유러피언컵 4강에 정리해 두었다.

킥오프 전: 아토미움 아래의 헤이젤
엑스포의 도시에서 열린 결승
첫 화면은 경기장보다 먼저 하늘을 비춘다. 사람으로 빼곡한 스탠드 위로 아토미움의 구들이 떠 있고, 카메라는 그중 하나와 옆에서 펄럭이는 깃발로 다가간다. UEFA의 경기 기사도 이 결승을 “은빛 아토미움이 헤이젤 스타디움을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해 브뤼셀은 전 세계에서 박람회 관람객이 몰려드는 도시였고, 유럽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도 그 박람회장 바로 옆에서 치러졌다.[1][6]
두 팀은 센터서클 앞에 나란히 섰다. 흰 유니폼이 레알, 어두운 유니폼이 밀란이다. 레알은 두 번의 결승에서 뛴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와 파코 헨토, 엑토르 리알에 코파와 산타마리아를 더했고, 밀란은 리드홀름과 스키아피노, 그리요로 맞섰다. 휘슬은 개최국 벨기에의 알베르 알스텐(Albert Alsteen; 벨기에 주심)이 불었다.[2][3]
전반: 레알의 공격을 막아 낸 솔단
유효 슈팅을 모두 막아 낸 밀란의 골문
UEFA의 경기 기사에 따르면 디펜딩 챔피언은 처음부터 전속력으로 밀어붙였다. 같은 기사는 전반을 “양 팀 모두 기회를 잡은 정신없는 45분”으로 적으면서, 레알의 공격이 밀란 골키퍼 나르치소 솔단(Narciso Soldan; 이탈리아 골키퍼)에게 막혔다고 기록한다. 골문으로 향한 레알의 슈팅은 전반 내내 하나도 솔단을 넘지 못했다.[1]
밀란도 반격했지만 마무리까지 가지 못했고, 전반 45분은 0-0으로 끝났다.[1]
TIME0
SOLDAN STOPPED EVERYTHING · GOALLESS AT THE BREAK
후반 59분: 스키아피노의 선제골
균형을 먼저 깬 쪽은 밀란이었다
후반 59분, 스키아피노의 슈팅이 레알 골망을 흔들었다. 영상에서 밀란의 어두운 유니폼 하나가 흰 유니폼 수비 사이로 파고들어 공을 차고, 화면이 골문 옆으로 넘어가면 공은 이미 골문 안에 있다. UEFA의 경기 기사는 이 골을 레알 골키퍼 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스페인 골키퍼, 1927-1994)를 망연자실하게 만든 선제골로 적는다. 득점 시각은 UEFA 경기 기록으로 59분이고, UEFA의 경기 기사는 60분으로 적는다.[1][2]
두 번의 결승을 모두 이긴 레알이 결승에서 먼저 실점한 것은 파리의 첫 결승 이후 처음이었다. 1954 FIFA 월드컵까지 우루과이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뛴 스키아피노는 이 시즌 밀란 공격의 중심이었다.[4]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중 한 사람이 두 손을 모은 채 경기장을 바라본다.
후반 74분: 디스테파노의 대답
역습으로 되갚은 레알
레알의 대답은 오른쪽에서 시작됐다. 첫 영상의 7번은 코파다. 밀란 수비수 셋이 그를 둘러싸지만 코파는 공을 발에서 떼지 않고 페널티 지역 쪽으로 끌고 들어간다. 74분, 빠른 역습이 밀란 페널티 지역까지 이어졌고 디스테파노(Alfredo Stéfan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센터 포워드, 1926-2014)가 흘러나온 공을 잡아 솔단을 넘겼다. 전반 내내 레알을 막던 골키퍼가 처음 뚫렸다.[1][2]
디스테파노는 1956년 파리에서 0-2를 1-2로 줄이는 14분 만회골을, 1957년 베르나베우에서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었다. 브뤼셀의 동점골로 그는 유러피언컵 결승 세 번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후반 77분: 그리요가 다시 앞서다
동점 3분 만에 다시 밀란
동점이 되자 경기가 한꺼번에 열렸다. 첫 영상에서 밀란의 7번 잔카를로 다노바(Giancarlo Danova; 이탈리아 공격수)가 레알 수비 사이를 빠져나가 골문으로 달려들고, 레알 골키퍼 알론소가 몸을 던져 공을 막는다.[2]
밀란은 멈추지 않았다. 디스테파노의 동점골 3분 뒤인 77분, 그리요가 다시 밀란을 앞세웠다. 16강 1차전 아이브록스에서 두 골을 넣으며 레인저스를 무너뜨렸던 공격수다. 두 번째 영상은 초조하게 입을 벌린 관중의 얼굴로 시작해 레알 골문 앞으로 넘어가지만, 슈팅이 골망에 닿는 순간은 화면에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선수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골문 앞만 보인다. 득점 시각은 UEFA 경기 기록으로 77분이며, RSSSF와 UEFA의 경기 기사는 78분으로 적는다.[1][2][3]
후반 79분: 코파의 크로스, 리알의 로빙슛
다시 2분 만에 따라붙다
이번에도 레알은 오래 끌려가지 않았다. 첫 영상에서 흰 유니폼의 선수가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밀란 수비수와 마주 선다. 이날 레알의 오른쪽은 등번호 7번 코파의 자리였다.[2] UEFA의 경기 기사에 따르면 그리요의 골 직후 코파가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8-1991)이 받아 침착하게 공을 내려놓고, 솔단을 속이는 로빙슛으로 2-2를 만들었다.[1]
74분 레알의 동점골, 77분 밀란의 추가골, 79분 레알의 다시 동점골. 5분 사이에 세 골이 오갔다. 리알은 1956년 파리 결승에서도 79분에 레알의 네 번째 골이자 결승골을 넣었다. 2년 뒤 같은 79분에 이번에는 팀을 연장으로 데려가는 골을 넣었다.[2]
MIN2
TWICE BEHIND, TWICE LEVEL · EXTRA TIME IN BRUSSELS
연장 107분: 헨토가 말디니와 폰타나를 넘다
연장 후반의 한 방
정규 시간 90분이 2-2로 끝나면서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앞선 두 번의 결승은 모두 90분 안에 끝났으니, 유러피언컵 결승이 연장까지 간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연장에서도 레알의 공격은 코파에서 출발했다. 영상 속 7번은 밀란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 공을 끌다가 동료에게 넘기고, 공을 받은 흰 유니폼이 몸을 틀어 반대편으로 방향을 바꾼다. 연장 도중에는 헨토가 밀란 수비를 벗어나 때린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기도 했다.[1]
107분,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가 결승골을 넣었다. UEFA의 경기 기사는 코파의 패스를 받은 헨토가 체사레 말디니와 알피오 폰타나(Alfio Fontana; 이탈리아 수비수)를 차례로 제치고 낮고 강하게 차 넣었다고 적는다. 첫 영상에서 공이 지나가는 자리에 서 있는 어두운 유니폼의 5번이 바로 말디니다. 골키퍼 솔단은 몸을 던졌지만 공은 그 옆으로 빠져 골문 안에 멈췄다.[1][2]
두 번째 영상은 골망 안에 멈춘 공과 무릎을 꿇은 솔단을 비춘 뒤 관중석으로 넘어간다. 1년 전 베르나베우에서 사르티를 넘겨 쐐기골을 넣었던 헨토는 두 해 연속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 이번에는 우승을 결정한 골이었다.
THE THIRD EUROPEAN CUP · THREE IN A ROW
CHAMPIONREAL MADRID CF
세 번째 결승의 레알, 첫 결승의 밀란
레알 마드리드 CF는 세 시즌 연속 결승에 올라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AC 밀란은 첫 결승에서 첫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57-58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 구단 | 대표 지역 | 결승 진출 |
|---|---|---|
| 스페인 | 통산 세 번째 결승 진출 | |
| 이탈리아 | 통산 첫 결승 진출 |
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우승 |
|---|---|---|
| 스페인 | 통산 세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 |
준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준우승 |
|---|---|---|
| 이탈리아 | 통산 첫 유러피언컵 준우승 |
세 번째 트로피
귀빈석 앞에서 올라간 세 번째 트로피
마지막 영상은 귀빈석 앞이다. 등에 6번을 단 흰 유니폼은 레알의 왼쪽 하프 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스페인 미드필더, 1930-2012)다. 양복 차림의 귀빈들 옆에 트로피가 보이고, 화면이 바뀌면 그 트로피가 관중석을 배경으로 선수들 머리 위에 올라 있다.[2]
레알은 대회가 열린 세 시즌을 모두 우승했다. 세 번 연속 우승은 훗날 트로피를 영구히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됐고(1968-69시즌 앞서 도입), 2000-01시즌부터는 유니폼에 다는 UEFA 배지 오브 아너(UEFA Badge of Honour)의 조건이 됐다. 레알은 그 조건을 대회 세 번째 시즌에 이미 채웠다.[8] 이날 오른쪽에서 레알의 동점골과 결승골을 모두 연 코파는 그해 발롱도르를 받는다.
‘라 테르세라’(La Tercera)는 스페인어로 ‘세 번째’를 뜻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세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부르는 이름이다. 첫 번째가 0-2에서 시작한 역전이었고 두 번째가 69분까지 버틴 수비를 무너뜨린 경기였다면, 세 번째는 두 번 끌려가고 두 번 따라붙은 끝에 연장에서 처음 앞선 경기였다.
밀란도 레알 우승의 배경으로만 남겨 둘 수 없다. 첫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 챔피언은 전반 내내 솔단의 선방으로 버텼고, 후반에는 스키아피노와 그리요로 두 번이나 먼저 골을 넣었다. 90분 동안 레알이 한 번도 앞서지 못한 결승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영상과 참고 자료
- “Madrid make it three in a row in Brussels”, UEFA. 아토미움, 관중 67,000명, 전반 솔단의 선방, 디스테파노의 역습 동점골, 코파의 크로스와 리알의 로빙슛, 헨토의 골대 강타와 결승골.
- “Real Madrid 3-2 Milan”, UEFA 경기 기록. 득점 시각 59·74·77·79·107분, 선발 명단과 등번호.
- “European Champions’ Cup 1957-58 - Details”, RSSSF. 그리요 78분, 주심 알베르 알스텐(벨기에), 관중 67,000명.
- “1957/58: Di Stéfano shines for Madrid”, UEFA. 코파 영입, 밀란의 남미 출신 공격수 스키아피노와 그리요, 연장 후반 헨토의 결승골.
- “1958 European Cup final”, Wikipedia. 경기 개요, 주심, 카르니글리아 감독, 두 번 끌려간 뒤의 역전.
- “Atomium”, Wikipedia. 엑스포 58의 상징물, 1958년 4월 17일 개장, 헤이젤 고원의 위치.
- “Luis Carniglia”, Wikipedia. 1957년 6월 OGC 니스에서 레알 부임, 비야롱가의 후임.
- “European Champion Clubs’ Cup”, Wikipedia. 트로피 영구 보관 규정(1968-69시즌 앞서 도입)과 2000-01시즌 도입된 배지 오브 아너의 조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