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56 EUROPEAN CUP · FINAL
UNPLAYEDS
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 날짜
- 1956년 6월 13일
- 장소
- 파르크 데 프랭스
- 관중
- 38,239명
- 주심
- 아서 엘리스
우리는 이 결승전을 너무 늦게 알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컵을 다섯 번 연속 우승했다는 결말을 이미 배운 다음 첫 번째 우승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1956년 6월 13일의 스타드 드 랭스는 왕조의 첫 계단처럼 보이고, 레알의 승리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네 번의 우승에 의해 미리 보증된 사건처럼 읽힌다.
당시 선수들에게는 그런 특권이 없었다.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는 초대 대회를 회고하며 외국 팀의 전술을 알아볼 텔레비전이나 영상이 없었고, 상대를 거의 모른 채 경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2] 어느 팀도 유러피언컵 결승을 치러본 적이 없었고, 어느 주장도 이 트로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날의 ‘최초’는 두 팀 앞에 똑같이 놓인 빈칸이었다.
그 빈칸을 먼저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팀은 랭스였다.
전반 6분: 폭을 벌린 뒤, 르블롱이 안으로 들어오다
미셸 르블롱, 첫 결승의 첫 골
알베르 바토(Albert Batteux; 프랑스 감독, 1919-2003)의 계획은 레알을 정면에서 밀어내는 데 있지 않았다. 스타드 드 랭스의 70주년 회고에 따르면 양쪽의 미셸 이달고와 장 탕플랭이 속도로 측면을 돌아 들어가고, 중앙의 레몽 코파가 움직일 공간을 만드는 구상이었다.[6] 기록 영상에서도 이달고가 터치라인에 붙어 직선으로만 달리는 대신 공을 세우고 방향을 바꾸며 수비수를 바깥으로 끌어내는 장면이 먼저 보인다.
그 틈을 하프백 미셸 르블롱(Michel Leblond; 프랑스 하프백, 1932-2009)이 사용했다. 전반 6분, 뒤에서 출발한 르블롱이 수비 사이로 들어가 낮은 슈팅을 밀어 넣었다. 첫 유러피언컵 결승의 첫 득점자는 코파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도 아니었다. 폭을 만든 공격수들 뒤에서 안쪽 길을 읽은 미드필더였다.
전반 10분: 골키퍼가 나온 뒤에도 끝나지 않은 공격
장 탕플랭, 4분 만에 두 골 차
이번에는 왼쪽이었다. 장 탕플랭(Jean Templin; 프랑스 측면 공격수, 1928-1980)이 뒷공간으로 달렸고, 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스페인 골키퍼, 1927-1994)가 골문을 비우고 전진했다. 영상만으로 접촉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알론소가 몸을 던진 뒤에도 공이 살아 있었고, 탕플랭이 균형을 잃지 않은 채 빈 골문으로 마무리했다는 사실이다.
전반 10분, 2-0. 레알은 첫 실점에 답하기도 전에 두 번째 골을 내줬다. 수비 뒤로 공이 넘어가자 알론소는 골문에 남아 슈팅을 기다리는 대신 앞으로 나왔지만, 그 전진으로도 공격을 끝내지 못했다. 골키퍼가 비운 자리를 탕플랭이 먼저 이용했다. 랭스의 속도는 수비수를 뒤로 달리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골키퍼에게도 결정을 재촉하고 있었다.
전반 14분과 30분: 두 골을 되찾은 16분
디스테파노가 줄이고, 리알이 원점으로 돌리다
두 번째 실점에서 4분이 지난 14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센터 포워드, 1926-2014)가 왼쪽 안쪽에서 공을 이어받아 낮게 마무리했다. 영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슈팅의 크기보다 공을 처리하는 간격이다. 공을 받은 뒤 자세를 오래 고쳐 잡지 않고 골키퍼가 몸을 낮추는 사이 슈팅을 끝냈다. 랭스가 두 골 차를 누린 시간은 4분이었다.[1]
30분에는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스페인 공격수, 1928-1991)이 동점을 만들었다. 디스테파노의 만회골에서 16분, 랭스의 두 번째 골에서 20분 만이었다. 이 두 골만으로 레알이 랭스의 측면 공격에 해법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랭스 역시 자기 골문 앞에서 레알의 마무리를 막지 못하고 있었다. 전반에는 레알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장면도 나왔고, 두 팀은 2-2로 하프타임을 맞았다.[6]
TIME2
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REIMS LED 2-0 · MADRID ANSWERED BEFORE THE BREAK
코파가 상대편 선수가 되기 직전의 결승
전반의 네 골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선수의 이름은 득점자 명단에 없었다.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는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랭스의 공격을 연결했다. UEFA와 스타드 드 랭스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이미 다음 시즌 레알 이적을 앞둔 상태였다.[6][8]
그러니 이 경기는 흔히 말하는 ‘코파 더비’보다 조금 이상한 시간에 놓여 있었다. 코파는 미래의 동료들을 상대로 랭스의 첫 유럽 우승을 만들어야 했고, 레알은 곧 자기 선수가 될 공격수를 막아야 했다. 오늘날의 이적 발표식처럼 미래의 유니폼이 현재의 충성을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코파가 훗날 랭스의 축구를 ‘샴페인 풋볼’이라고 부른 까닭도, 그 팀이 자신이 뛰어본 가장 아름다운 공격 축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8]
후반 62분: 이달고가 다시 랭스를 앞세우다
측면을 흔들던 선수가 직접 골문에 도착하다
후반 17분, 전반에 측면을 넓혔던 미셸 이달고(Michel Hidalgo; 프랑스 측면 공격수, 1933-2020)가 이번에는 골문 앞에 도착했다. 높게 넘어온 공을 헤더로 돌려놓으며 랭스가 3-2로 다시 앞섰다. 이달고는 훗날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 1984 UEFA 유로 우승을 이끈다. 그러나 1956년의 화면 속 그는 직접 폭을 만들고 마지막 공간까지 침투한 23세 공격수다.[7]
이 골은 전반 2-0이 우연한 돌풍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레알이 두 골을 따라잡고 하프타임을 맞았어도 랭스의 공격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두 번째 리드까지 랭스의 세 골은 서로 다른 선수가 넣었고, 이달고는 측면의 원인과 문전의 결과에 모두 관여했다.
후반 67분: 마르키토스가 공격수가 된 순간
수비수의 전진이 두 번째 동점을 만들다
랭스의 세 번째 득점 뒤 이어지는 첫 영상에서 레알 선수는 중앙선 부근에서 상대를 등지고 공을 지킨 뒤 몸을 돌린다. 두 번째 영상은 67분의 동점골이다. 마르키토스(Marcos Alonso Imaz; 스페인 수비수, 1933-2012)가 문전까지 올라왔고, 여러 선수가 엉킨 자리에서 골을 넣었다. 공이 어느 발에 어떻게 닿았는지는 짧은 화면에서 선명하지 않지만, 수비수가 공격이 끝나는 위치까지 따라 들어온 것은 보인다. 디스테파노와 리알만 막으면 되는 공격이었다면, 그 자리에 마르키토스가 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3-3. 3-3. 레알은 두 번 뒤처지고 두 번 따라붙은 팀이었다. 그리고 결승의 첫 78분 동안 한 번도 리드하지 못했다.
후반 79분: 리알의 첫 터치, 레알의 첫 리드
엑토르 리알, 결승의 방향을 처음 뒤집다
리알은 첫 터치로 공을 자기 진행 방향에 놓고 수비수의 접근을 벗어났다. 이어진 슈팅이 골문을 가르면서 레알은 후반 34분에야 처음 앞섰다. 리알에게는 전반 동점골에 이은 두 번째 득점이었다. 디스테파노와 리알은 대회에서 각각 다섯 골을 넣었고, 결승에서는 세 골을 나눠 가졌다.[4]
오늘의 시선은 이 장면을 왕조의 출발이라고 부르기 쉽다. 그러나 화면 안의 선수들이 알고 있던 것은 훨씬 작고 급한 사실이었다. 남은 시간은 11분, 한 골 차, 그리고 결승에서 처음 얻은 리드. 헨토는 훗날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3] 그들 앞에 있던 것은 지키지 못하면 사라질 한 골 차였다. 역사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었다.
THE FIRST EUROPEAN CUP · THE FIRST CHAMPION
CHAMPIONREAL MADRID CF
첫 결승에 도착한 두 팀, 첫 우승과 첫 준우승
초대 대회의 결승 진출은 두 구단 모두 처음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CF는 첫 우승을, 스타드 드 랭스는 첫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55-56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 구단 | 대표 지역 | 결승 진출 |
|---|---|---|
| 스페인 | 통산 첫 결승 진출 | |
| 프랑스 | 통산 첫 결승 진출 |
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우승 |
|---|---|---|
| 스페인 | 통산 첫 유러피언컵 우승 |
준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준우승 |
|---|---|---|
| 프랑스 | 통산 첫 유러피언컵 준우승 |
트로피를 든 미겔 무뇨스
선수로 처음 들고, 감독으로 다시 들 사람
마지막 영상에서 트로피를 드는 사람은 미겔 무뇨스(Miguel Muñoz Mozún; 스페인 미드필더·주장, 1922-1990)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는 구단 주장으로 유러피언컵을 처음 들어 올렸고, 선수로 세 차례 우승한 뒤 감독으로 두 차례 더 우승했다. 14시즌 연속 레알을 지휘한 구단 최장수 감독이기도 하다.[5]
그러나 1956년의 무뇨스가 들어 올린 것은 아직 왕조의 상징물이 아니었다. 새 대회의 초대 우승컵이었다. 결승에서 두 골을 먼저 내주고, 한 번 더 뒤처지고, 79분에야 처음 앞선 팀이 간신히 얻은 물건이었다.
‘라 프리메라’(La Primera)는 스페인어로 ‘첫 번째’를 뜻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실제 경기 안에서 첫 번째는 그렇게 단정한 숫자가 아니었다. 정보가 부족한 낯선 대회, 양쪽에서 수비를 찢은 프랑스 챔피언, 두 골 차와 세 번째 실점, 수비수의 문전 가담과 79분의 첫 리드가 한꺼번에 얽힌 결과였다.
스타드 드 랭스는 레알의 역사를 위해 준비된 조연이 아니었다. 두 번 앞섰고 세 명의 선수가 골을 넣었으며, 전반의 두 골 차를 잃은 뒤에도 다시 리드를 잡았다. 그래서 레알의 첫 우승도 두 차례 동점을 만든 뒤 79분에 비로소 경기를 뒤집어 얻은 승리로 읽어야 한다.
역사는 결과를 안 뒤에는 곧잘 직선이 된다. 1956년의 영상은 그 직선을 다시 구부린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컵 5연패는 첫날부터 보이던 미래가 아니었다. 첫날에는 그저, 79분에 처음 앞선 결승전이 있었다.

영상과 참고 자료
- “1955/56: Madrid claim first crown”, UEFA. 결승 득점 순서와 초대 대회 진행.
- “Legendary Moments: Madrid's dynasty begins”, UEFA. 파코 헨토가 회고한 첫 대회의 정보 환경.
- “The history-makers of Madrid”, UEFA. 헨토의 초대 우승 회고.
- “La primera Copa de Europa”, Real Madrid CF. 득점·선발 명단과 대회 득실 기록.
- “Miguel Muñoz”, Real Madrid CF. 주장으로서의 첫 우승과 선수·감독 경력.
- “Il y a 70 ans, Reims était si près du toit de l’Europe”, Stade de Reims. 바토의 측면 운용, 득점 장면과 코파의 이적 상황.
- “Disparition de Michel Hidalgo”, Stade de Reims. 이달고의 랭스 경력과 결승 득점.
- “Goals, not coal, for Kopa”, UEFA. 코파가 회고한 랭스의 공격 축구와 레알 이적.
- “European football mourns Madrid great Kopa”, UEFA. 코파의 1957·1958·1959년 유러피언컵 우승.
- “UEFA Champions League Statistics Handbook 2011/12”, UEFA. 공식 선발 명단·주심·관중 38,239명 대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