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 · 유러피언컵

1955-56 유러피언컵 4강: 랭스·히버니언, 레알·밀란의 1차전과 2차전

파리의 코파에게 쏟아진 환호부터 산 시로의 마지막 페널티킥까지. 1955-56 유러피언컵 4강 1차전·2차전의 네 경기와 랭스·레알 마드리드가 결승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읽는다.
랭스·히버니언·레알 마드리드·AC 밀란의 유니폼을 입은 네 토끼와 1955-56 시즌 유러피언컵 문구
첫 유러피언컵의 4강, 네 구단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1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5-56

4강 진출팀

구단대표 지역4강 진출
스타드 드 랭스프랑스통산 첫 4강 진출
히버니언 FC스코틀랜드통산 첫 4강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첫 4강 진출
AC 밀란이탈리아통산 첫 4강 진출

1956년 4월 18일, 스타드 드 랭스는 에든버러에서 첫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AC 밀란의 4강 1차전은 그다음 날이었다. 한쪽 대진은 두 경기를 다 마쳤고, 다른 쪽 대진은 아직 킥오프도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같은 주간에 나란히 펼쳐지는 준결승을 떠올리면 놓치기 쉬운, 첫 대회의 시간표다. [1] [6]

열여섯 구단에서 네 구단으로 좁혀진 대진표에는 서로 다른 길이 남아 있었다. 랭스는 8강에서 뵈뢰시 로보고와 합계 열네 골을 주고받았다. 히버니언은 유르고덴을 두 번 이겼다. 레알은 파르티잔 원정에서 홈의 네 골 차 우세를 거의 잃을 뻔했고, 밀란은 라피트 빈을 상대로 2차전에만 일곱 골을 넣었다. 그 과정을 통과한 팀들이 이번에는 결승의 두 자리를 나눠 가져야 했다. 창설 배경·참가팀·16강과 8강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1955-56 유러피언컵의 원어 명칭과 대회 주관 협회 UEFA를 정리한 도판
1955-56 시즌 유러피언컵 대회 개요. 디자인: 삥이FC.

4강 1차전

4강 1차전 랭스 대 히버니언, 레알 마드리드 대 밀란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미셸 르블롱·후안 스키아피노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1차전 두 경기의 득점 기록. 위 사진은 미셸 르블롱, 아래 사진은 후안 스키아피노. 디자인: 삥이FC.

랭스 2-0 히버니언: 파리가 코파의 이름을 부르던 밤

1956년 4월 4일 · 파르크 데 프랭스, 파리

랭스의 홈경기는 파리에서 열렸다. 이 무대에 선 레몽 코파(Raymond Kopa; 프랑스 공격수, 1931-2017)에게는 구단의 승리 외에도 풀어야 할 시선이 있었다. 《르 몽드》(Le Monde; 프랑스 일간지)의 당시 보도는 오스트리아와의 대표팀 경기에 빠진 뒤 비판을 받던 코파가 이 경기로 답했다고 평가했다. 코파가 공을 끌며 상대를 불러들였다가 속도를 바꾸는 모습, 막판 관중석에서 터진 그의 이름이 기사에 함께 남았다. [2]

승부는 한 시간 넘게 0-0이었다. 67분 미셸 르블롱(Michel Leblond; 프랑스 하프백, 1932-2009)이 코너킥을 머리로 마무리했다. 89분에는 코파의 패스를 받은 르네 블리아르(René Bliard; 프랑스 공격수, 1932-2009)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앞선 보도에서 코파가 주인공으로 남은 이유를, 득점자 명단만으로는 다 읽을 수 없다. [2]

블리아르는 이미 1954-55 프랑스 리그에서 서른 골을 넣어 득점왕에 오른 선수였다. 코파가 만든 틈을 마무리한 사람에게도 자기 몫의 이력이 있었다. 르블롱 역시 공격진 뒤에서 뛰는 선수였지만, 1952년 올림픽 폴란드전에서 프랑스의 골을 넣은 경험이 있었다. 랭스의 두 골에는 리그 득점왕의 결정력과 하프백의 득점 가담이 나란히 찍혔다. [3] [4]

히버니언에게 89분의 실점은 특히 무거웠다. 한 골 차라면 에든버러의 첫 골로 합계가 같아진다. 두 골 차가 되면 한 번의 득점으로는 부족하다. 랭스가 얻은 마지막 골은 그날의 승리를 더 보기 좋게 만든 데서 끝나지 않았다. 2차전에서 누가 먼저 서둘러야 하는지를 바꿨다.

레알 마드리드 4-2 AC 밀란: 네 명이 나눠 넣은 네 골

1956년 4월 19일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레알과 밀란은 국내리그의 선두 경쟁에서 밀려난 채 만났다. 밀란은 나흘 전 피오렌티나 원정에서 0-3으로 졌고, 레알도 리그 우승 가능성을 잃은 상태였다. 유럽 대회에 걸린 무게가 커져 있던 두 팀의 첫 대결은 전반부터 다섯 골이 터지는 경기로 흘렀다. [5]

6분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8-1991)의 선제골에 9분 군나르 노르달(Nils Gunnar Nordahl; 스웨덴 센터 포워드, 1921-1995)이 답했다. 25분 호세이토(José Iglesias Fernández; 스페인 공격수, 1926-2007)가 다시 레알을 앞세우자, 30분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5-2002)가 2-2를 만들었다. 레알이 앞서면 밀란이 따라붙는 흐름이 두 차례 반복됐다. [6]

세 번째 리드는 40분 로케 올센(Roque Germán Olsen Fontana;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5-1992)의 골로 찾아왔다. 올센은 디스테파노와 리알이 합류하기 전부터 레알의 공격을 맡아 온 선수였다. 구단 공식 기록은 그의 레알 통산 성적을 123경기 66골로 정리한다. 훗날의 유럽 제패를 몇몇 이름으로만 기억하면, 그 공격을 먼저 떠받치던 선수의 자리가 작아진다. 이 준결승에서 올센의 골은 전반을 동점으로 끝내려던 밀란을 다시 뒤쫓는 처지로 돌려놓았다. [7]

후반 62분에는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센터 포워드, 1926-2014)가 4-2를 만들었다. 이날 레알의 네 골은 네 명에게서 나왔다. 밀란이 두 번 따라잡고도 세 번째 동점을 만들지 못한 사이, 점수 차가 두 골로 벌어졌다. 디스테파노의 마지막 골은 2차전을 앞두고 레알이 가진 여유의 절반이었다. [6]

스페인 축구사 연구지 《쿠아데르노스 데 푸트볼》(Cuadernos de Fútbol)은 이 경기를 레알의 공격력과 수비의 빈틈이 함께 드러난 승부로 정리한다. 그 글에 수록된 경기 뒤 반응에서도 두 감독은 다른 곳을 바라봤다. 레알 쪽은 밀란의 두터운 수비를, 밀란 쪽은 자기 골키퍼의 실수를 거론했다. 4-2라는 같은 결과 안에서도 승자는 뚫어 낸 방어선을, 패자는 막지 못한 골문을 기억했다. [5]

4강 2차전

두 대진의 2차전을 한데 놓기 전에 날짜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히버니언·랭스전은 4월 18일, 밀란·레알전은 5월 1일이다. 랭스는 결승 상대가 정해지기까지 열세 날을 기다렸다. 아래 기록은 각 대진의 2차전을 모은 것이며, 네 경기 전체의 달력 순서는 4월 4일 → 4월 18일 → 4월 19일 → 5월 1일이다.

4강 2차전 히버니언 대 랭스, 밀란 대 레알 마드리드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레옹 글로바츠키 사진, 선수들의 악수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2차전 두 경기의 기록. 위 사진은 레옹 글로바츠키, 아래는 양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악수 장면. 디자인: 삥이FC.

히버니언 0-1 랭스: 에든버러에서 늘어난 한 골의 거리

1956년 4월 18일 · 이스터 로드, 에든버러

랭스가 파리의 승리만으로 편안한 두 주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에든버러 원정을 앞둔 《르 몽드》는 랭스가 직전 리그에서 생테티엔에 1-2로 패했고, 부상으로 빠지는 선수도 있다고 전했다. 히버니언은 머더웰과 1-1로 비긴 상태였다. 두 팀은 국내 일정에서 곧바로 유럽의 승부로 돌아왔다. 1차전의 두 골 차와 그 뒤의 팀 사정은 별도로 읽어야 한다. [8]

이스터 로드에는 44,941명이 들어왔다. 히버니언은 전반까지 실점을 막았지만, 필요한 골도 얻지 못했다. 57분 레옹 글로바츠키(Léon Glovacki; 프랑스 공격수, 1928-2009)가 랭스의 선제골을 넣었다. 그 순간 합계는 0-3이 됐다. 히버니언이 승부를 다시 같은 출발선에 놓으려면 남은 시간에 세 골을 넣고 더는 실점하지 않아야 했다. 랭스의 원정 한 골이 히버니언의 과제를 한층 더 크게 만들었다. [9]

글로바츠키는 코파에게 오래 익숙한 동료였다. 코파는 훗날 1954년 월드컵을 돌아보는 인터뷰에서, 랭스에서 함께 뛰던 글로바츠키와는 눈을 감고도 서로를 찾을 만큼 호흡이 맞았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그 기억 속 대표팀 경기가 성공담이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유고슬라비아에 0-1로 졌고, 코파는 놓친 기회들을 아쉬워했다. 2년 뒤 에든버러에서 결승행의 마지막 골을 넣은 선수는 그 실패의 기억에도 함께 있던 동료였다. [10]

이 연결을 글로바츠키의 골에 확인되지 않은 도움이나 움직임을 붙이는 데 쓸 필요는 없다. 득점 기록이 알려 주는 것은 그가 57분에 넣었다는 사실이고, 코파의 회고가 알려 주는 것은 두 사람이 쌓아 온 관계다. 랭스의 공격은 그날 처음 맞춰 본 조합이 아니었다. 대표팀과 구단을 오가며 함께 성공하고 기회를 놓쳤던 선수들이 첫 유럽 결승으로 향했다.

경기는 그대로 0-1로 끝났다. 랭스는 8강에서 여섯 골을 내줬던 팀이었지만, 4강에서는 히버니언을 두 번 만나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결과만으로 수비 전술의 세부를 복원할 수는 없어도, 같은 팀이 두 라운드를 얼마나 다른 점수로 통과했는지는 분명하다. 파리의 2-0에 에든버러의 1-0이 더해지며 첫 결승 진출팀이 정해졌다. [1]

AC 밀란 2-1 레알 마드리드: 이긴 밀란과 올라간 레알

1956년 5월 1일 · 산 시로, 밀라노

밀란은 두 골을 만회해야 했다. 레알은 1차전처럼 점수를 주고받을 이유가 줄어든 상태였다. 앞선 스페인 축구사 연구는 레알이 이 원정에서 수비를 단단히 하는 쪽으로 경기 방식을 바꿨다고 설명한다. 경기 뒤 밀란 감독의 평가 역시 마드리드에서와 달라진 상대 수비를 짚었다. 홈에서 네 골을 넣은 팀이 원정에서도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5]

전반은 0-0이었다. 후반 65분, 먼저 골을 얻은 쪽도 레알이었다. 호세이토가 1차전에 이어 다시 득점하면서 합계가 5-2로 벌어졌다. 호세이토는 레알 공식 소개에서 측면과 중앙을 모두 맡을 수 있었던 공격수로 회고된다. 이 대진에서는 두 경기 모두 골을 넣은 레알 선수였고, 밀라노의 골은 특히 상대가 남은 시간에 채워야 할 격차를 키웠다. [15] [11]

밀란은 곧바로 추격했다. 69분 조르조 달몬테(Giorgio Carlo Dal Monte; 이탈리아 공격수, 1931-1992)가 페널티킥으로 1-1을 만들었다. 달몬테는 아오스타에서 성장해 제노아의 승격을 경험하고, 1955년에 밀란 유니폼을 입은 선수였다. 아직 스물네 살이던 그에게 유럽 준결승의 페널티킥이 맡겨졌다. 아오스타 시가 남긴 생애 기록을 따라가면, 이 골의 주인공에게도 작은 도시의 구단에서 시작한 긴 이동이 있었다. [12]

86분 달몬테는 두 번째 페널티킥도 넣었다. 밀란은 그날 경기에서 2-1로 앞섰고, 합계에서는 4-5로 뒤졌다. 승리하고 있는 홈팀이 여전히 한 골을 더 필요로 하는 순간이었다. 밀란은 끝내 그 한 골에 닿지 못했다. 호세이토의 65분 득점 이후 벌어졌던 세 골의 격차 가운데 두 골을 되찾았지만, 레알이 결승으로 가져간 것은 남은 한 골이었다. [15]

오늘의 규칙을 거꾸로 대입해 원정골을 따로 계산하면 이 승부가 흐려진다. 레알의 진출을 결정한 것은 합계 5-4였다. 마드리드에서 4-2로 이기고 밀라노에서 1-2로 진 두 결과가 더해졌다. 홈에서 만든 우세는 원정의 패배를 견뎠고, 밀란의 당일 승리는 대진 전체를 뒤집기에는 한 골 모자랐다.

결승에 오른 랭스와 레알 마드리드

1955-56 유러피언컵 · 4강

스타드 드 랭스 vs 히버니언 FC

스타드 드 랭스 로고
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프랑스 국기프랑스
합계3:0두 경기 결과
히버니언 FC 로고
히버니언 FCHIBERNIAN FC스코틀랜드 국기스코틀랜드
4강 1차전
2 : 0
4강 2차전
1 : 0
결승 진출
스타드 드 랭스

스타드 드 랭스르블롱 67분, 블리아르 89분

4강 1차전

히버니언 FC득점 없음

스타드 드 랭스글로바츠키 57분

4강 2차전

히버니언 FC득점 없음

파리에서 두 골, 에든버러에서 한 골. 랭스는 두 경기 모두 실점 없이 결승에 올랐다.

1955-56 유러피언컵 · 4강

레알 마드리드 CF vs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CF 로고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스페인 국기스페인
합계5:4두 경기 결과
AC 밀란 로고
AC 밀란AC MILAN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4강 1차전
4 : 2
4강 2차전
1 : 2
결승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6분, 호세이토 25분, 올센 40분, 디스테파노 62분

4강 1차전

AC 밀란노르달 9분, 스키아피노 30분

레알 마드리드 CF호세이토 65분

4강 2차전

AC 밀란달몬테 69분 86분(모두 PK)

마드리드의 두 골 차 우세를 밀라노에서 한 골 차 합계 승리로 지켜 냈다.

대진 카드의 1·2차전 스코어는 왼쪽 구단부터 표시한다. 실제 2차전 홈팀은 히버니언과 AC 밀란이다.

4강 네 경기 기록날짜·홈과 원정·득점자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분 날짜 홈 결과 원정 득점
4강 1차전 1956.04.04 스타드 드 랭스 2-0 히버니언 FC 르블롱 67분, 블리아르 89분
4강 1차전 1956.04.19 레알 마드리드 CF 4-2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6분, 호세이토 25분, 올센 40분, 디스테파노 62분
AC 밀란노르달 9분, 스키아피노 30분
4강 2차전 1956.04.18 히버니언 FC 0-1 스타드 드 랭스 글로바츠키 57분
4강 2차전 1956.05.01 AC 밀란 2-1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달몬테 69·86분(모두 PK)
레알 마드리드 CF호세이토 65분

레알·밀란 1차전의 리알 골은 5분 또는 6분, 디스테파노 골은 62분 또는 63분으로 전하는 자료가 있다. 이 표는 RSSSF의 6분·62분을 따른다. 관중 수 역시 자료 간 집계 차이가 있어 도판의 수치를 별도 확정값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랭스는 두 경기 모두 이겼고, 레알은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다. 결승행의 방식은 달랐지만 두 팀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1955년 라틴컵 결승에서도 레알과 랭스가 만났고, 레알이 이겼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구단들이 겨루던 대회에서 만들어진 만남이, 이듬해에는 참가 범위를 넓힌 유러피언컵의 마지막 대진이 됐다. [13]

1956년 6월 13일의 무대는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였다. 랭스에게는 히버니언을 2-0으로 이겼던 경기장이었고, 레알에게는 첫 유럽 우승에 도전하는 결승 무대였다. 4월의 환호와 5월의 한 골 차를 통과한 두 팀이 이제 한 경기에서 만난다. [14]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