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 · 유러피언컵
1955-56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밀로시 밀루티노비치 8골
8강에서 멈춘 파르티잔의 밀루티노비치가 여덟 골로 첫 유러피언컵 최다 득점자가 됐다. 대회 첫 해트트릭의 펄로타시,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넣은 글로바츠키, 레알과 랭스의 5골 트리오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제1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5-56
네 골 이상 넣은 아홉 명
| 순위 | 선수 | 클럽 | 출신 | 출전 | 득점 |
|---|---|---|---|---|---|
| 1위 | 밀로시 밀루티노비치Miloš Milutinović | 4경기 | 8골 | ||
| 공동 2위 | 레옹 글로바츠키Léon Glovacki | 7경기 | 6골 | ||
| 공동 2위 | 펄로타시 페테르Palotás Péter | 4경기 | 6골 | ||
| 공동 4위 | 르네 블리아르René Bliard | 7경기 | 5골 | ||
| 공동 4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 7경기 | 5골 | ||
| 공동 4위 |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 7경기 | 5골 | ||
| 공동 7위 | 런토시 미하이Lantos Mihály | 4경기 | 4골 | ||
| 공동 7위 | 군나르 노르달Gunnar Nordahl | 5경기 | 4골 | ||
| 공동 7위 | 미셸 르블롱Michel Leblond | 6경기 | 4골 |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다. 도움은 이 시즌은 물론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표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1위와 공동 2위의 한 사람은 8강에서 탈락한 팀에서 나왔고, 공동 4위 세 사람은 결승에서 맞붙은 두 팀에서 나왔다. 오래 살아남은 팀의 공격수가 경기 수를 등에 업고 순위를 채운 대회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네 경기만 치른 선수 둘이 일곱 경기를 치른 선수들보다 앞에 섰다.
여덟 골의 득점왕, 8강에서 멈춘 파르티잔
밀로시 밀루티노비치(Miloš Milutinović; 유고슬라비아 공격수, 1933-2003)의 여덟 골 가운데 여섯 골은 스포르팅 CP(Sporting Clube de Portugal)를 상대로 나왔다. 1955년 9월 4일 리스본에서 열린 대회 개막전에서 두 골을 넣어 FK 파르티잔(Fudbalski klub Partizan)의 3-3 무승부를 만들었고, 10월 12일 베오그라드의 2차전에서는 혼자 네 골을 넣어 5-2 승리를 이끌었다. 파르티잔이 치른 첫 두 경기에서 이미 여섯 골이 그의 이름으로 적힌 셈이다. [1], [2]
8강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마드리드 원정에서 0-4로 지고 돌아온 파르티잔은 1956년 1월 29일 눈 덮인 베오그라드에서 레알을 3-0으로 몰아붙였고, 그 가운데 두 골이 밀루티노비치의 것이었다. 한 골만 더 들어갔다면 합계가 같아지는 경기였지만 파르티잔은 3-4로 탈락했다. 결국 득점왕은 네 경기, 그것도 레알 원정의 한 경기를 빼면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고 대회를 떠났다. 스물두 살 공격수의 이력과 형제 이야기는 1955-56 유러피언컵 베스트 11에 정리해 두었다. [2]
대회 첫 해트트릭의 펄로타시 페테르
공동 2위 펄로타시 페테르(Palotás Péter; 헝가리 공격수, 1929-1967)의 여섯 골도 네 경기에서 나왔다. 1955년 9월 7일 부다페스트 네프슈터디온(Népstadion)에서 뵈뢰시 로보고(Vörös Lobogó; 현재 MTK 부다페스트의 당시 명칭)가 RSC 안데를레흐트(Royal Sporting Club Anderlecht)를 6-3으로 이긴 경기에서 그는 세 골을 넣었다. 유러피언컵 역사의 첫 해트트릭이다. 10월 브뤼셀의 2차전에서도 한 골을 보태 두 경기에서만 네 골을 채웠다. [3], [2]
나머지 두 골은 8강 2차전에서 나왔다. 12월 28일 부다페스트에서 뵈뢰시 로보고는 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에 후반 초반 1-4로 뒤지다 4-4까지 따라붙었고, 펄로타시는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1차전 2-4 패배를 뒤집기에는 모자랐고, 뵈뢰시 로보고도 파르티잔처럼 8강에서 여정을 마쳤다. [2]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넣은 글로바츠키
펄로타시와 같은 여섯 골을 넣은 레옹 글로바츠키(Léon Glovacki; 프랑스 공격수, 1928-2009)는 결승을 제외한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넣었다. 16강에서는 오르후스 GF(Aarhus Gymnastikforening)를 상대로 원정 두 골과 홈 한 골, 8강에서는 뵈뢰시 로보고를 상대로 두 경기에 한 골씩 넣었다. [2]
마지막 한 골이 가장 무거웠다. 1956년 4월 18일 에든버러에서 열린 히버니언 FC(Hibernian Football Club)와의 4강 2차전은 후반 초반까지 0-0이었고, 글로바츠키의 골이 이날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 됐다. 랭스는 합계 3-0으로 첫 유러피언컵 결승에 올랐다. 파리의 결승에서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랭스가 결승까지 가는 길에는 매 라운드 그의 이름이 있었다. 이 경기의 흐름은 1955-56 유러피언컵 4강에 자세히 적었다. [2]
다섯 골의 세 사람, 결승에서 만난 두 팀
공동 4위 세 사람은 모두 결승 진출팀 선수다. 랭스의 르네 블리아르(René Bliard; 프랑스 공격수, 1932-2009)는 오르후스와의 홈경기에서 한 골, 뵈뢰시 로보고와의 8강에서 세 골, 히버니언과의 4강 1차전에서 경기 막판 쐐기골을 넣었다. 특히 부다페스트의 4-4 경기에서는 전반에만 두 골을 넣어 랭스가 크게 앞서 나가는 발판을 만들었다. 랭스가 이 대회에서 넣은 18골 가운데 글로바츠키 6골, 블리아르 5골, 미셸 르블롱(Michel Leblond; 프랑스 하프백, 1932-2009) 4골을 합치면 15골이다. [1], [2]
레알 마드리드의 두 사람은 득점 장소가 대조적이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의 다섯 골은 세르베트 FC(Servette FC)전 두 골, 파르티잔전 한 골, AC 밀란전 한 골이 모두 마드리드 홈경기에서 나왔고, 마지막 한 골이 파리의 결승이었다. 모든 라운드에서 넣었지만 원정 경기 득점은 하나도 없다.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8-1991)은 제네바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골을 넣었고, 마드리드 2차전과 밀란전에서 한 골씩, 결승에서 두 골을 넣었다. 결승의 두 번째 골이 레알의 4-3 역전승을 확정한 결승골이다. 그 장면은 1955-56 유러피언컵 결승 H/L에서 볼 수 있다. [2]
공동 7위와 기록 기준
네 골로 공동 7위에 오른 세 사람도 성격이 다르다. 뵈뢰시 로보고의 런토시 미하이(Lantos Mihály; 헝가리 수비수, 1928-1989)는 수비수로 네 골을 넣었고, 밀란의 군나르 노르달(Nils Gunnar Nordahl; 스웨덴 센터 포워드, 1921-1995)과 랭스의 르블롱이 같은 네 골을 기록했다. 르블롱은 결승전 선제골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
세 골 선수부터는 두 자료가 한 곳에서 갈린다. RSSSF는 SK 라피트 빈의 알프레트 쾨르너(Alfred Körner; 오스트리아 공격수)를 세 골, 그의 형제 로베르트 쾨르너를 한 골로 적는다. UEFA 경기 데이터는 1956년 1월 18일 빈에서 열린 밀란과의 8강 1차전 페널티킥 골을 알프레트의 것으로 기록해 그를 네 골로 센다. 이 한 골의 주인에 따라 공동 7위가 네 명이 될 수 있어, 표는 두 자료가 일치하는 아홉 명까지만 실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