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LON D’OR · 1956

1956년 발롱도르 수상자 포디움 및 랭킹 정리: 스탠리 매슈스

스탠리 매슈스 47점, 디스테파노 44점, 레몽 코파 33점. 초대 발롱도르의 연간 평가·투표 방식과 24명의 전체 순위, 세 선수의 국가대표팀·클럽 경력을 함께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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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FOOTBALL · PREMIÈRE ÉDITION1956 BALLON D’OR

발롱도르; 프랑스어로 ‘황금 공’을 뜻하는 이름.
《프랑스 풋볼》이 그해 최고의 유럽 축구선수를 선정한 개인상.

제1회 · 결과 발표 1956년 12월 18일

1955-56 시즌 우승팀

유러피언컵 [19]

우승
레알 마드리드 CF
준우승
스타드 드 랭스
4강
AC 밀란히버니언 FC

첫 유러피언컵이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파리에서 두 골을 먼저 내주고도 경기를 뒤집었고, 유럽의 강팀들이 같은 대회에서 겨룬다는 구상은 이제 우승컵을 가진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그해 유럽 최고의 선수도 자연스럽게 그 우승팀에서 나왔을까. 초대 발롱도르의 결과는 우리가 익숙하게 연결하는 두 문장 사이에 작은 틈을 남겼다.

1위는 스탠리 매슈스(Stanley Matthews; 잉글랜드 축구선수, 1915-2000)였다. 블랙풀 FC의 마흔한 살 오른쪽 윙어. 유러피언컵 우승팀의 중심도, 자국 리그 우승팀의 간판도 아닌 선수가 47점으로 첫 수상자가 됐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축구선수, 1926-2014)는 44점,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dit Kopa; 프랑스 축구선수, 1931-2017)는 33점이었다. [1]

이 순서를 보고 곧바로 공로상이라는 말을 꺼낼 수도 있다. 반대로 초대 수상자라는 권위에 기대어 의문 자체를 무례한 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양쪽 모두 조금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매슈스의 1956년을 지우고 그의 나이만 보면 실제 경기력이 사라지고, 새 상이 만들어지던 사정을 지우면 왜 그 이름이 첫 번째 자리에 놓일 수 있었는지 설명할 길이 좁아진다. 선수의 한 해와 상의 첫해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1956년, 누가 누구를 평가했나

발롱도르는 프랑스 축구 전문지 《프랑스 풋볼》(France Football; 1946년 창간)이 1956년 창설한 상이다. 가브리엘 아노(Gabriel Hanot; 프랑스 축구선수 출신 기자, 1889-1968)를 비롯한 이 매체의 축구인들이 유럽의 선수들을 함께 평가할 장을 만들었다. 유러피언컵 창설을 밀어붙인 언론의 문제의식과 이어져 있지만, UEFA가 그해 이 개인상을 창설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회를 운영하는 일과 기자들이 선수를 평가하는 일은 주체부터 구별해야 한다. [2]

평가 단위
1956년 연간 평가1955-56 시즌만을 대상으로 한 상이 아님
당시 대상
유럽에서 뛰는 유럽 국적 선수출생지와 대표팀 경력은 별도 구분
투표인단
16개 축구협회권의 기자 16명잉글랜드·스코틀랜드 각각 참여
배점
1위부터 5·4·3·2·1점기자 한 명이 선수 다섯 명을 순서대로 선정
결과 발표
1956년 12월 18일《프랑스 풋볼》 제561호
득점 선수
24명전체 배점 240점 · 개인 만점 80점

투표에 참여한 곳은 오스트리아·벨기에·체코슬로바키아·잉글랜드·프랑스·헝가리·이탈리아·네덜란드·포르투갈·스코틀랜드·스페인·스웨덴·스위스·튀르키예·서독·유고슬라비아였다. 여기서 ‘16개국’이라는 익숙한 표현은 축구의 제도에 맞춰 읽어야 한다. 영국이라는 국가 아래 있어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서로 다른 축구협회이며, 이 투표에서도 각각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매슈스의 국가 표에 영국과 잉글랜드를 나누어 놓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

또 하나. 1956년이라는 숫자를 1955-56 시즌의 다른 이름처럼 취급하면 코파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그는 상반기에 스타드 드 랭스를 유러피언컵 결승으로 이끌었고, 여름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옮겼다. 랭스의 기록을 빼면 그가 왜 유럽의 주목을 받았는지 사라지고, 레알을 빼면 그해 하반기의 소속과 경기 자체가 사라진다. 수상 당시의 유니폼 하나가 평가 기간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3]

발롱도르가 연간 평가에서 시즌 평가로 바뀐 것은 훨씬 뒤인 2022년이다. 따라서 아래의 1955-56 시즌 성적은 한 해를 이해하기 위한 대회별 기록이며, 그 자체가 1956년 발롱도르의 평가 기간을 뜻하지 않는다. 연간 평가라 해도 결과가 발표된 뒤의 연말 경기까지 투표에 반영됐다고 볼 수는 없다. 발표일과 경기일, 시즌 종료일을 같은 날짜처럼 묶지 않아야 한다. [4]

포디움에 오른 세 사람

포디움(podium; 시상대, 여기서는 최종 순위 1~3위)의 세 선수는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지배하지 않았다. 매슈스는 오른쪽에서 수비수와 마주 섰고, 디스테파노는 공격의 출발과 마무리를 오갔으며, 코파는 좁은 공간에서 다음 패스의 길을 만들었다. 골 수와 우승컵만으로 세 사람을 곧장 한 줄에 세우기 어려운 이유다.

숫자는 득표 점수다. 47표나 47%를 뜻하지 않는다. 기자 16명 전원이 한 선수를 1위로 선택했을 때의 만점은 80점이다.

아래 연간 스탯은 195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록이다. 클럽 공식전과 국가대표 A매치를 합산하며, 클럽 친선경기·국제 초청대회는 합계에서 제외한다. 시즌 기록은 별도로 병기한다. [21]

1위 · 스탠리 매슈스

Stanley Matthews · 41세 · 오른쪽 윙어

FA컵 트로피를 들고 웃는 스탠리 매슈스
FA컵 트로피를 든 스탠리 매슈스. 블랙풀의 FA컵 우승은 발롱도르 수상보다 앞선 1953년이다.
영국 국기
UNITED KINGDOM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잉글랜드 국기
ENGLAND잉글랜드England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THE THREE LIONS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England national football team
블랙풀 FC 당시 문장
BLACKPOOL블랙풀 FCBlackpool Football Club

팀 성적

  • 1955-56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 준우승 (2위)
  • 1955-56 FA컵 64강 (3라운드)
  • 1955-56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공동 우승

개인 수상·기록

  • 1956년 발롱도르 수상

개인 스탯

1955-56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컵·유럽 대회

  • 1955-56 클럽 공식전 합계37경기 3골
  •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36경기 3골
  • FA컵1경기 0골
  • 풋볼리그 도움 (경기별 소급 등록)3도움 [21]

1956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6년 클럽 공식전34경기 4골
  • 상반기 · 1955-56 시즌17경기 2골
  • 하반기 · 1956-57 시즌17경기 2골
  • 1956년 국가대표팀5경기 1골
  • 1956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39경기 5골
BALLON D’OR · WINNER득표 점수
47점1위표 6장
선정 기자 12명

블랙풀의 준우승부터 볼 필요가 있다. 1955-56 시즌 블랙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잉글랜드 리그 2위에 올랐다. 매슈스는 리그 36경기에 출전했다. 마흔을 넘긴 선수가 가끔 등장해 박수만 받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강팀의 한 시즌을 반복해서 책임지는 선수였다. 그의 리그 3골이 적어 보일 수는 있지만, 오른쪽 윙어의 작업을 득점란 하나로 옮기면 수비수를 끌어내고 동료에게 공을 전달하는 대부분의 과정이 누락된다. [5]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Football League First Division; 당시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에서의 성적과 함께, 1956년 5월 9일 웸블리에서 열린 브라질전도 놓치기 어렵다. 잉글랜드는 4-2로 이겼고 매슈스는 그 경기의 오른쪽 공격을 맡았다. 영국 국립 축구 박물관의 인물 기록에도 당시 브라질 수비수와 맞서는 그의 사진이 남아 있다. 이 노장에 대한 평가가 오직 오래전 명성에만 기대고 있었다면, 유럽 밖의 강호와 만난 바로 그해의 경기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6]

가을에도 대표팀 일정은 이어졌다. 10월 북아일랜드전에서는 골을 넣었고, 11월 웨일스와 유고슬라비아, 12월 덴마크와의 월드컵 예선에도 출전했다. 1956년 A매치 5경기 1골은 봄에 끝나는 클럽 시즌 기록과 다른 달력 위에 놓인다.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British Home Championship; 영국의 네 축구 대표팀이 겨룬 대회)의 공동 우승 역시 1955-56 대회의 결과이며, 가을에 시작한 다음 대회의 최종 성적을 미리 더한 것이 아니다. [7]

물론 이것만으로 디스테파노보다 반드시 우위였다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유러피언컵 우승팀의 중심에 섰던 선수를 선택할 근거도 충분했다. 다만 매슈스를 설명하면서 ‘41세였으니 공로상’이라고 끝내면, 나이를 경기력의 증거처럼 쓰게 된다. 오래 뛰었다는 사실과 이제 잘하지 못했다는 판단은 다른 문장이다.

여기서 필자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새로운 상과 첫 수상자 사이의 관계다. 상은 선수에게 권위를 준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받아 본 적 없는 상이라면 어떨까. 그때는 수상자의 명성이 상에 권위를 돌려줄 수도 있다. 오래 축구를 본 이들이 이름만으로 기량과 지속성을 떠올릴 수 있는 선수가 첫 페이지에 놓이면, 그 명단은 출발부터 자기 기준을 설명할 언어를 얻는다.

사업 하나를 처음 열 때에도 실행 성과만큼이나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의 이름을 걸고 시작하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명분이 실제 성과를 대신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슈스가 흥미로운 것은 1956년에도 정상급 무대에서 뛰고 있었다는 사실 위에, 오랫동안 축적된 신뢰가 함께 놓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초대 수상을 이 두 층위에서 읽는다. 이것은 수상 결과에 대한 해석이지, 열여섯 기자가 모두 그런 의도로 표를 던졌다는 증언은 아니다.

당시 명칭에도 시간을 되돌려 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익숙한 ‘스탠리 매슈스 경’의 기사 작위는 1965년, CBE 수훈은 1957년의 일이다. 1956년의 선수 카드에 훗날의 명예를 미리 달아 놓으면, 우리는 수상 순간의 매슈스보다 이미 전설이 완성된 매슈스를 먼저 보게 된다. 첫 발롱도르를 받던 그는 아직 그 뒤의 아홉 해를 더 뛰어야 할 현역 선수였다. [6]

2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Laulhé · 30세 · 센터포워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트로피 옆에 앉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의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1956년에는 첫 유러피언컵 우승과 발롱도르 2위가 그의 이력에 나란히 놓였다.
아르헨티나 공화국 국기
ARGENTINA아르헨티나 공화국República Argentina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스페인 국기
ESPAÑA스페인Estado Español1956년 10월 13일 스페인 국적 취득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LA ALBICELESTE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Selección Argentina de Fútbol1947년 6경기 · 1956년까지의 유일한 A매치 경력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SELECCIÓN ESPAÑOLA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Selección española de fútbol1957년 1월 30일 데뷔 전
레알 마드리드 CF 당시 문장
REAL MADRID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lub de Fútbol

팀 성적

  • 1955-56 라리가 3위
  • 1956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4강
  • 1955-56 유러피언컵 우승
  • 1956 스몰 클럽 월드컵 우승

개인 수상·기록

  • 1955-56 트로페오 피치치 라리가 득점왕 (24골)
  • 1955-56 레알 마드리드 CF 팀 내 최다 득점자 (공식전 29골) [9]
  • 1955-56 유러피언컵 공동 득점 4위 (5골) [19]
  • 1956 스몰 클럽 월드컵 팀 내 득점 2위 (4골) [20]
  • 1956년 발롱도르 2위

개인 스탯

1955-56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컵·유럽 대회

  • 1955-56 클럽 공식전 합계37경기 29골
  • 라리가30경기 24골
  • 유러피언컵7경기 5골

1956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6년 클럽 공식전40경기 39골
  • 상반기 · 1955-56 시즌21경기 19골
  • 하반기 · 1956-57 시즌19경기 20골
  • 1956년 국가대표팀0경기
  • 1956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40경기 39골

초청대회연간 합계에 넣지 않음

  • 1956 스몰 클럽 월드컵6경기 4골 [20]
BALLON D’OR · SECOND득표 점수
44점1위표 5장
선정 기자 11명

1956년의 디스테파노에게는 무엇보다 파리의 결승전이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랭스에 0-2로 끌려갔고, 디스테파노의 만회골이 추격을 열었다. 동점을 만든 뒤 다시 뒤처졌지만 최종 결과는 4-3. 첫 유러피언컵이 레알의 것이 되는 동안 그는 골문 앞에서 기다리는 득점원에 머물지 않았다. 공이 오지 않으면 낮은 위치로 움직여 공격에 관여했고, 전진한 뒤에는 다시 마무리 지점에 나타났다. 구단의 역사 기록이 그의 공격·수비 참여와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함께 강조하는 이유다. [8]

센터포워드(centre-forward; 당시 공격진 중앙에 놓이는 전방 공격수)라는 출발점은 있었지만, 그 위치가 활동 범위의 울타리는 아니었다. 오늘날의 역할 이름을 붙여 설명할 수는 있어도, 1956년의 동료 배치와 경기 환경을 지운 채 현대 전술의 완성품이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실제로 맡았던 일이다. 공격 전개에 관여하는 선수와 골을 넣는 선수가 한 몸이었고, 상대는 그 두 일을 같은 선수가 수행한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리그에서는 24골로 트로페오 피치치(Trofeo Pichichi; 《마르카》가 시상하는 스페인 최상위 리그 득점왕 트로피)를 받았다. 유러피언컵 5골을 합치면 1955-56 시즌 공식전 29골이다. 팀의 리그 3위와 개인의 득점왕, 유럽 대회의 우승은 서로 다른 항목이다. 국내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한 문장만으로 그의 한 해를 낮추거나, 유러피언컵 우승 하나만으로 다른 후보와의 비교를 끝내기는 어렵다. [9]

여름의 베네수엘라 국제 초청대회인 스몰 클럽 월드컵(Pequeña Copa del Mundo) 우승도 같은 해의 경력에 남는다. 다만 이것을 오늘날 FIFA 클럽 월드컵과 같은 제도로 읽어서는 안 된다. 레알의 공식 우승 기록에서도 별도의 대회로 구분한다. 스페인 국내 컵 역시 당시 이름은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Copa del Generalísimo; 프랑코 집권기의 스페인 전국 컵대회 명칭)였다. 익숙한 현대 대회명으로 고쳐 부를수록 당시 축구를 둘러싼 정치적 시간은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다. [10]

디스테파노의 국적도 이 상의 경계를 드러낸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그 나라 대표팀으로 뛴 선수가 스페인 선수로 발롱도르 순위에 들어왔다. 1956년에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지만, 스페인 대표팀 데뷔는 이듬해 1월이었다. 따라서 ‘스페인’이라는 국적 표기에서 곧장 ‘1956년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만들어낼 수 없다. 상의 자격과 국가대표 출전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은 사실은 아니다. [11]

매슈스와의 차이는 3점이었다. 기자 한 명이 준 1위표와 4위표의 점수 차이만큼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자 세 명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매슈스를 다섯 명 안에 넣은 기자는 12명, 디스테파노를 넣은 기자는 11명이었으며 각자의 순위 배점이 합쳐져 47과 44가 됐다. 승패처럼 선명하게 적힌 최종 순위 아래에, 실제로는 꽤 가까운 판단들이 모여 있었다.

코파와 디스테파노가 악수하는 1955-56 유러피언컵 결승전 썸네일EUROPEAN CUP · FINAL1955-56 유러피언컵 결승전 H/L레알 마드리드 CF vs 스타드 드 랭스. 두 후보가 맞선 경기를 장면 순서대로 읽기.경기 복원 보기

3위 · 레몽 코파

Raymond Kopa · 25세 · 인사이드 포워드

스타드 드 랭스의 붉은색과 흰색 유니폼을 입고 공과 함께 앉은 레몽 코파
스타드 드 랭스의 레몽 코파. 1956년의 평가에는 랭스에서 보낸 상반기와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하반기가 함께 놓인다.
프랑스 공화국 국기
FRANCE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 française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LES BLEUS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스타드 드 랭스 당시 문장
STADE DE REIMS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
레알 마드리드 CF 당시 문장
REAL MADRID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lub de Fútbol

팀 성적

  • 1955-56 디비지옹 1 10위
  • 1955-56 쿠프 드 프랑스 8강
  • 1955-56 유러피언컵 준우승

개인 수상·기록

  • 1956년 발롱도르 3위

개인 스탯

1955-56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컵·유럽 대회

  • 1955-56 스타드 드 랭스 공식전 합계42경기 9골
  • 디비지옹 130경기 5골
  • 쿠프 드 프랑스5경기 4골
  • 유러피언컵7경기 0골

1956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6년 클럽 공식전 합계35경기 10골
  • 상반기 · 스타드 드 랭스 (1955-56 시즌)22경기 6골
  • 하반기 · 레알 마드리드 CF (1956-57 시즌)13경기 4골
  • 1956년 국가대표팀1경기 0골
  • 1956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36경기 10골
BALLON D’OR · THIRD득표 점수
33점1위표 1장
선정 기자 12명

코파의 1955-56 유러피언컵 기록에는 득점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결승 진출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발롱도르에서는 3위에 올랐다. 골이 생기기 전에 누가 수비의 시선을 움직이고 동료가 공을 받을 자리를 만드는지, 그 과정에도 평가할 내용이 있다. 랭스의 7경기에 모두 출전한 코파의 영향력을 득점 순위에서만 찾으려 하면 출발부터 찾는 장소가 달라진다. [12]

그의 역할을 지금의 ‘미드필더’ 한 단어로 적으면 당시 배치가 흐려질 수 있다. 인사이드 포워드(inside forward; 전통적인 5인 공격진에서 윙어와 중앙 공격수 사이에 놓이는 공격수)는 공격에 가까운 위치에서 출발하면서도 동료를 연결했다. 프랑스축구협회 역시 코파를 공격수로 분류하면서 경기 조율과 득점을 함께 맡은 선수로 설명한다.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와 비교할 만한 기능은 있지만, 당대의 포지션을 그 이름으로 모두 갈아 끼울 필요는 없다. [3]

랭스의 한 시즌은 또 다른 비대칭을 보여준다. 자국 리그에서는 10위였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결승에 올랐다. 국내 순위와 대륙의 토너먼트 성적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짧은 대회에서 특정 상대를 무너뜨리는 힘과 긴 리그를 버티는 안정성은 겹치는 부분도 있고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코파의 시즌을 읽을 때에도 두 결과를 함께 놓아야 랭스가 어떤 성취를 했으며 무엇을 놓쳤는지 보인다.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은 이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코파는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맞섰던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런데 연말의 발롱도르 표를 레알 소속으로만 정리하면, 그를 그 자리까지 데려온 랭스의 결승 진출이 부차적인 이력이 돼 버린다. 반대로 랭스의 선수로만 적으면 여름 이후의 변화가 지워진다. 코파의 카드에 클럽 두 줄이 필요한 이유는 보기 좋은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1956년이 실제로 두 구단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코파가 파리에서 우승했다면 발롱도르 순위도 바뀌었을까. 흥미로운 가정이지만 결과처럼 말할 수는 없다. 열두 기자가 그를 다섯 명 안에 넣었다는 점에서는 매슈스와 같았고, 그중 1위로 선택한 기자는 한 명이었다. 넓은 지지와 가장 높은 평가의 집중도는 다른 문제였다. 코파는 33점으로 3위에 올랐고, 32점의 4위와는 불과 한 점 차였다.

그 뒤 레알에서 거둘 유럽 우승과 자신의 발롱도르 수상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그것들을 알고 있는 우리는 1956년을 자꾸 전설의 예고편으로 읽는다. 하지만 당시 코파에게는 이미 끝난 결승전의 패배가 있었고, 막 시작한 새 구단에서의 적응이 있었다. 연말의 33점은 그 열린 시간 안에서 나온 평가다.

1956년 발롱도르 전체 랭킹

24명이 점수를 받았다. 공동 9위가 세 명이므로 그다음은 12위, 공동 13위가 여덟 명이므로 그다음은 21위다. 한 해에 소속이 바뀐 코파와 오크비르크는 두 구단을 함께 적었다. 당시 CDNA 소피아를 현대의 CSKA 명칭으로 바꾸거나, FC 낭시 소속이던 피앙토니를 훗날의 랭스로 옮겨 적지 않는다. [1][13]

국적이 달라진 선수는 원국적을 먼저, 이후 취득한 국적을 다음 줄에 적었다. 디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스페인, 코파와 시소브스키는 폴란드·프랑스, 몬투오리는 아르헨티나·이탈리아, 스키아피노는 우루과이·이탈리아다. 1956년까지의 국적 이력을 보여주는 표기이며, 두 국적의 동시 보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11][15][16][17]

순위선수국적1956년 소속 구단점수
1 스탠리 매슈스Stanley Matthews 영국(잉글랜드)블랙풀 FC 47
2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아르헨티나스페인레알 마드리드 CF 44
3 레몽 코파Raymond Kopa 폴란드프랑스스타드 드 랭스레알 마드리드 CF 33
4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 헝가리부다페스트 혼베드 SE 32
5 레프 야신Lev Yashin 소련FC 디나모 모스크바 19
6 보지크 요제프Bozsik József 헝가리부다페스트 혼베드 SE 15
7 에른스트 오크비르크Ernst Ocwirk 오스트리아FK 아우스트리아 빈UC 삼프도리아 9
8 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 헝가리부다페스트 혼베드 SE 6
공동9 타데 시소브스키Thadée Cisowski 폴란드프랑스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4
공동9 이반 콜레프Ivan Kolev 불가리아CDNA 소피아 4
공동9 빌리 라이트Billy Wright 영국(잉글랜드)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 4
12 줄리뉴Júlio Botelho 브라질이탈리아(수상 기록상 분류)AC 피오렌티나 3
공동13 스테판 보즈코프Stefan Bozhkov 불가리아CDNA 소피아 2
공동13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영국(잉글랜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
공동13 게르하르트 하나피Gerhard Hanappi 오스트리아SK 라피트 빈 2
공동13 로베르 종케Robert Jonquet 프랑스스타드 드 랭스 2
공동13 미겔 몬투오리Miguel Montuori 아르헨티나이탈리아AC 피오렌티나 2
공동13 페피요José García Castro 스페인세비야 CF 2
공동13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이탈리아AC 밀란 2
공동13 에두아르트 스트렐초프Eduard Streltsov 소련FC 토르페도 모스크바 2
공동21 마르셀리노 캄파날Marcelino Campanal 스페인세비야 CF 1
공동21 브르제티슬라프 돌레이시Břetislav Dolejší 체코슬로바키아두클라 프라하 1
공동21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프랑스FC 낭시 1
공동21 케이스 레이퍼르스Kees Rijvers 네덜란드AS 생테티엔 1

줄리뉴의 ‘이탈리아’는 수상 기록상의 분류이며, 시민권 취득을 뜻하는 표기는 아니다. [1][18]

기자들이 매긴 1~5위별 투표 내역 보기펼쳐보기접기
순위선수1위표2위표3위표4위표5위표선정 기자점수
1 스탠리 매슈스Stanley Matthews 6221112명 47
2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5320111명 44
3 레몽 코파Raymond Kopa 1235112명 33
4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 331108명 32
5 레프 야신Lev Yashin 022138명 19
6 보지크 요제프Bozsik József 031004명 15
7 에른스트 오크비르크Ernst Ocwirk 002035명 9
8 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 100012명 6
공동9 타데 시소브스키Thadée Cisowski 001012명 4
공동9 이반 콜레프Ivan Kolev 010001명 4
공동9 빌리 라이트Billy Wright 001012명 4
12 줄리뉴Júlio Botelho 001001명 3
공동13 스테판 보즈코프Stefan Bozhkov 000101명 2
공동13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000101명 2
공동13 게르하르트 하나피Gerhard Hanappi 000101명 2
공동13 로베르 종케Robert Jonquet 000101명 2
공동13 미겔 몬투오리Miguel Montuori 000101명 2
공동13 페피요José García Castro 000101명 2
공동13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000101명 2
공동13 에두아르트 스트렐초프Eduard Streltsov 000101명 2
공동21 마르셀리노 캄파날Marcelino Campanal 000011명 1
공동21 브르제티슬라프 돌레이시Břetislav Dolejší 000011명 1
공동21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000011명 1
공동21 케이스 레이퍼르스Kees Rijvers 000011명 1

첫 수상자의 이름이 남긴 기준

매슈스의 수상에 동의하는 일과 디스테파노를 최고의 선수로 평가하는 일은 서로 다른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다. 어느 무대를 더 중요하게 보는지, 득점과 경기 조율을 어떻게 비교하는지, 한 해의 활약과 오랫동안 확인된 기량을 어디까지 함께 읽는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투표는 그 차이를 없애는 장치라기보다, 서로 다른 판단을 하나의 순위로 모으는 절차에 가깝다.

그래서 초대 발롱도르의 흥미는 ‘논란이 있었느냐’라는 말만으로 소진되지 않는다. 어느 상이든 첫해에는 아직 자기 역사가 없다. 첫 수상자를 정하는 행위가 앞으로 무엇을 존중할 것인지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된다. 매슈스의 지속성과 기술, 디스테파노의 유럽 우승과 전방위적인 영향력, 코파의 창조성이 한 표 안에서 비교됐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유럽 축구의 개인 서열도 처음에는 그런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필자는 매슈스가 상의 권위를 빌리기만 한 첫 수상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상을 받아들일 이유를 그의 경력이 함께 제공했다. 허나 그 관계를 인정하는 일과, 그의 수상을 오랜 경력에 대한 예우로만 설명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후자의 설명이 성립하려면 1956년의 경기력이 경쟁자들보다 부족했는데도 다른 이유로 선택됐다는 근거가 더 필요하다.

득점이 적었다는 사실과 오른쪽 윙어로서의 기여가 작았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니다. 디스테파노의 득점과 유럽 우승을 더 높이 평가할 수는 있다. 다만 그 선택을 설명하는 일과 매슈스에게 줄 표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일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무엇을 비교했는지 밝히지 않은 채 나이와 명성만으로 수상의 이유를 완성하면, 우리가 설명한 것은 당시 기자들의 판단보다 그 판단에 대한 후대의 인상에 가까워진다.

매슈스와 1956년 발롱도르 상위 순위를 정리한 삥이FC 썸네일

참고 자료

  1. José Luis Pierrend, RSSSF,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56”. 《프랑스 풋볼》 제561호의 결과를 정리한 순위·배점·투표인단 기록.
  2. UEFA, “European football’s enduring French connection”. 프랑스 스포츠 언론과 유러피언컵·발롱도르의 창설 배경.
  3. 프랑스축구협회, 레몽 코파 공식 인물 기록. 생애·역할·클럽 재적 기간과 대표팀 경기 목록.
  4. 《프랑스 풋볼》, “Ballon d’Or : quatre changements pour l’histoire”, 2022년 3월 11일. 연간 평가에서 시즌 평가로의 전환과 평가 기준 개편.
  5. 블랙풀 FC, 구단 역사; 《레키프》, 스탠리 매슈스 시즌 기록. 1955-56 리그 준우승과 리그 출전·득점. StatCity 1955-56 경기 목록의 블랙풀 FA컵 3라운드 결과.
  6. 영국 국립 축구 박물관, “Sir Stanley Matthews”. 선수 생애, 1956년 브라질전 사진, CBE와 기사 작위 연도.
  7. RSSSF, 매슈스 국가대표 출전 목록,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역대 결과; England Stats 매슈스 기록. 1956년 경기와 1955-56 공동 우승.
  8. 레알 마드리드 CF, 디스테파노 공식 인물 기록, 첫 유러피언컵 우승 회고.
  9. 《레키프》, 디스테파노 시즌별 기록; 《마르카》, 역대 피치치 수상 기록. 1955-56 리그 30경기 24골, 시즌 공식전 37경기 29골. BDFutbol 1955-56 레알 마드리드 선수별 기록으로 대조한 팀 내 공식전 득점 2위는 엑토르 리알의 23골.
  10. 레알 마드리드 CF, 공식 우승 기록; BDFutbol, 1955-56 스페인 리그, 1956년 국내 컵. 대회별 우승과 국내 성적.
  11. 스페인축구협회, 디스테파노의 대표팀 데뷔 60주년; 대표팀 경기 목록. 스페인 대표팀 첫 출전은 1957년 1월 30일. UEFA, 디스테파노 회고의 1956년 스페인 국적 취득 기록.
  12. 《레키프》, 레몽 코파 시즌별 기록; Archives Reims Football 코파 기록; 랭스 1955-56 시즌 결과. 대회별 출전·득점과 팀 성적.
  13. 프랑스축구협회, 로제 피앙토니의 클럽 경력; FK 아우스트리아 빈, 구단 역사. 피앙토니의 1956년 낭시 소속과 오크비르크의 1956년 여름 삼프도리아 이적. CIHEFE, 스페인 구단 명칭 변천의 당시 세비야 CF 표기.
  14. Historical Football Kits, 블랙풀, 잉글랜드 1946~1960; 1000logos, 프랑스 대표팀 문장 변천, 스페인 대표팀 문장 변천. 각 시대 문장의 형태와 사용 시기.
  15. 프랑스 관세행정사협회, 레몽 코파의 관세청 문서 기록. 폴란드인 부모와 프랑스 국적 취득을 다룬 국적증명서 해설.
  16. 《모젤 스포르》, FC 메스 역대 선수 회고; 프랑스축구협회, 타데 시소브스키 공식 기록. 폴란드에서 프랑스로의 귀화와 1951년 대표팀 데뷔.
  17. Europeana, 미겔 몬투오리; UEFA, 후안 스키아피노 회고; Maglia Rossonera 스키아피노 경기 기록. 아르헨티나·우루과이와 이탈리아의 국적 이력, 각각 1956년·1954년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
  18. SE 파우메이라스, 줄리뉴 보텔류 공식 인물 기록. 브라질 선수 경력과 1954년 월드컵 출전.
  19. UEFA, 1955-56 유러피언컵 시즌 기록; RSSSF, 1955-56 유럽 클럽 대회 경기·득점 기록. 결승·4강 진출팀과 득점 순위.
  20. RSSSF, 1956 스몰 클럽 월드컵 경기별 기록. 디스테파노의 6경기 출전과 4득점.
  21. Transfermarkt, 매슈스 경기별 기록, 디스테파노 경기별 기록, 코파 경기별 기록; Historical Lineups, 잉글랜드 1955-56 리그 경기 명단·득점자, 1956-57 리그 경기 명단·득점자; Archives Reims Football, 코파의 스타드 드 랭스 경기 기록. 연간 수치는 경기 날짜별 재집계. 클럽 친선경기와 국제 초청대회는 별도이며, 도움은 공식 집계가 없던 시절이라, 매슈스의 1955-56 풋볼리그 도움은 Transfermarkt에 경기별로 소급 등록된 값(1955년 10월 29일 1개, 1956년 1월 14일 2개)을 그대로 적었다. 전 경기를 빠짐없이 기록한 공식 총계로 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