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LON D’OR · 1959

1959년 발롱도르 수상자 포디움 및 랭킹 정리: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80점, 레몽 코파 42점, 존 찰스 24점. 레알 마드리드의 4연패와 라리가 득점왕을 함께 거친 디스테파노가 처음으로 두 번째 발롱도르를 받은 해를 26명의 전체 순위와 세 선수의 1959년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Ballon d’Or 로고
FRANCE FOOTBALL · QUATRIÈME ÉDITION1959 BALLON D’OR

발롱도르; 프랑스어로 ‘황금 공’을 뜻하는 이름.
《프랑스 풋볼》이 그해 최고의 유럽 축구선수를 선정한 개인상.

제4회 · 결과 발표 1959년 12월 15일

1958-59 시즌 우승팀

유러피언컵 [6]

우승
레알 마드리드 CF (4연패)
준우승
스타드 드 랭스
4강
아틀레티코 마드리드BSC 영 보이스

1958년 발롱도르 순위에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의 이름은 없었다. 한 해 전 72점으로 수상한 선수가 이듬해 26명의 명단에서 빠졌고, 트로피는 레알 마드리드의 동료 레몽 코파에게 갔다. 1959년, 디스테파노는 80점으로 돌아왔다. 기자 20명 가운데 14명이 그를 1위로 적었다. [1]

이 해에 디스테파노는 발롱도르를 두 번 받은 첫 선수가 됐다. 1956년 2위, 1957년 1위, 1958년 순위 밖을 지나 다시 1위다. 레알은 6월 슈투트가르트에서 유러피언컵 4연패를 완성했고, 그 결승의 두 번째 골도 그의 것이었다. 리그에서는 바르셀로나에 우승을 내줬지만 23골로 리그 득점 1위에 올랐다. [1][5][7]

1959년, 누가 누구를 평가했나

네 번째 발롱도르도 《프랑스 풋볼》(France Football)이 유럽 각국 기자의 투표로 선정했다. 기자 한 명이 유럽에서 뛰는 유럽 선수 다섯 명을 순서대로 적고, 1위부터 5·4·3·2·1점을 매겼다. 결과는 1959년 12월 15일 발행된 제718호에 실렸다. [1]

평가 단위
1959년 연간 평가1958-59 시즌만을 대상으로 한 상이 아님
당시 대상
유럽에서 뛰는 유럽 국적 선수출생지와 대표팀 경력은 별도 구분
투표인단
20개 축구협회권의 기자 20명루마니아·소련·스웨덴·튀르키예 참여
배점
1위부터 5·4·3·2·1점기자 한 명이 선수 다섯 명을 순서대로 선정
결과 발표
1959년 12월 15일《프랑스 풋볼》 제718호
득점 선수
26명전체 배점 300점 · 개인 만점 100점

투표에 참여한 곳은 오스트리아·벨기에·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잉글랜드·프랑스·그리스·헝가리·이탈리아·네덜란드·폴란드·포르투갈·루마니아·소련·스페인·스웨덴·스위스·튀르키예·서독·유고슬라비아였다. 1958년의 16명에서 네 명이 늘었다. 루마니아와 소련이 처음 들어왔고, 한 해 빠졌던 스웨덴과 튀르키예가 돌아왔다. 소련 기자가 참여한 첫해에 소련 선수 두 명이 점수를 받았다. [1]

1위부터 5위까지 모든 칸에 20장씩 표가 있어 전체 배점은 300점이다. 이 해의 이름도 달력의 한 해로 읽어야 한다. 1958-59 시즌의 봄과 1959-60 시즌의 가을이 한 해 안에 함께 들어오고, 투표 마감일은 확인되지 않았다. [1][4]

포디움에 오른 세 사람

1959년의 포디움(podium; 시상대, 여기서는 최종 순위 1~3위)에는 그해 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뛴 두 사람과 유벤투스의 웨일스 공격수가 섰다. 디스테파노와 코파는 슈투트가르트 결승에서 레알의 공격을 함께 이끌었고, 그 여름 코파는 스타드 드 랭스로 돌아갔다. [1][2]

숫자는 득표 점수다. 80표나 80%를 뜻하지 않는다. 기자 20명 전원이 한 선수를 1위로 선택했을 때의 만점은 100점이다.

아래 연간 스탯은 195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기록이다. 클럽 공식전은 국내 리그·국내 컵·유러피언컵이며, 국가대표 A매치와 합산한다. 시즌 기록은 별도로 병기한다. [2]

1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Alfredo Di Stéfano · 33세 · 센터포워드

관중석 지붕 아래에서 F.I.F.A. 문장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F.I.F.A. 문장이 달린 세계 선발팀 유니폼을 입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스페인 국기
ESPAÑA스페인Estado Español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SELECCIÓN ESPAÑOLA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Selección española de fútbol
레알 마드리드 CF 당시 문장
REAL MADRID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lub de Fútbol

팀 성적

  • 1958-59 라리가 준우승 [7]
  • 1959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4강
  • 1958-59 유러피언컵 우승 (4연패)

개인 수상·기록

  • 1958-59 라리가 득점왕 (23골) [7]
  • 1958-59 유러피언컵 7경기 6골 · 결승 득점
  • 1959년 발롱도르 수상

개인 스탯

1958-59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컵·유럽 대회

  • 1958-59 클럽 공식전 합계43경기 34골
  • 라리가28경기 23골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8경기 5골
  • 유러피언컵7경기 6골

1959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9년 클럽 공식전43경기 32골
  • 상반기 · 1958-59 시즌27경기 23골
  • 하반기 · 1959-60 시즌16경기 9골
  • 1959년 국가대표팀5경기 6골
  • 1959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48경기 38골
BALLON D’OR · WINNER득표 점수
80점1위표 14장
선정 기자 18명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축구선수, 1926-2014)는 1958-59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공식전 43경기 34골을 넣었다. 리그 28경기 23골로 라리가 득점 1위에 올랐고, 2위는 21골의 동료 푸슈카시 페렌츠였다.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에서는 여덟 경기 다섯 골을 넣었지만 레알은 4강에서 바르셀로나에 두 번 졌다. 리그도 바르셀로나가 51점으로 가져갔고 레알은 47점으로 2위였다. 국내 두 대회를 모두 바르셀로나에 내준 시즌이었다. [2][7]

그 시즌의 무게는 유럽에 있었다. 디스테파노는 유러피언컵 일곱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비너 스포츠 클럽과의 8강 2차전에서 14분, 64분, 69분, 75분에 네 골을 넣었고, 같은 도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치른 사라고사 재경기에서 16분 선제골, 슈투트가르트의 결승에서 47분 골을 넣었다. 푸슈카시는 부상으로 결승에 서지 못했고 코파는 결승 초반에 다쳤다. 결승 네 번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는 대회 네 시즌 동안 그 하나였다. [5][6]

레알 마드리드 CF 유니폼의 레몽 코파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사이에 헝가리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푸슈카시가 선 1958-59 유러피언컵 결승전 썸네일EUROPEAN CUP · FINAL1958-59 유러피언컵 결승전 H/L레알 마드리드 CF vs 스타드 드 랭스. 1분의 선제골과 16분의 실축, 디스테파노의 47분을 장면 순서대로 읽기.경기 복원 보기

대표팀에서도 골이 이어졌다. 1959년 스페인 유니폼을 입고 다섯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2월 이탈리아와의 1-1 경기에서 한 골, 첫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예선 폴란드와의 두 경기에서 세 골, 11월 오스트리아와의 6-3 경기에서 두 골이다. 마지막 경기는 발표 이틀 뒤인 12월 17일 프랑스와의 3-4 패배였고, 반대편에는 코파가 있었다. 1959년 한 해에 클럽 43경기 32골, 대표팀 5경기 6골, 모두 48경기 38골이다. [2]

표의 모양도 분명했다. 디스테파노를 다섯 명 안에 넣은 기자는 20명 가운데 18명이었고, 그중 14명이 1위로 적었다. 나머지 네 명은 2위부터 5위까지 한 장씩이다. 1957년에 받은 72점보다 8점 많고, 2위 코파와는 38점 차이다. 1956년 2위 44점, 1957년 1위 72점, 1958년 순위 밖을 지나 네 번째 투표에서 두 번째 황금 공을 받았다. [1]

2위 · 레몽 코파

Raymond Kopa · 28세 · 오른쪽 윙어

관중석을 배경으로 레알 마드리드 흰 유니폼을 입고 선 레몽 코파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레몽 코파.
프랑스 공화국 국기
FRANCE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 française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당시 문장
LES BLEUS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Équipe de France de football
레알 마드리드 CF 당시 문장
REAL MADRID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lub de Fútbol
스타드 드 랭스 당시 문장
STADE DE REIMS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

팀 성적

  • 1958-59 라리가 준우승
  • 1958-59 유러피언컵 우승 (4연패)

개인 수상·기록

  • 1958-59 유러피언컵 7경기 1골
  • 1959년 발롱도르 2위

개인 스탯

1958-59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유럽 대회

  • 1958-59 클럽 공식전 합계37경기 11골
  • 라리가30경기 10골
  • 유러피언컵7경기 1골

1959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9년 클럽 공식전40경기 14골
  • 상반기 · 1958-59 시즌 · 레알 마드리드20경기 5골
  • 하반기 · 1959-60 시즌 · 스타드 드 랭스20경기 9골
  • 1959년 국가대표팀4경기 0골
  • 1959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44경기 14골
BALLON D’OR · SECOND득표 점수
42점1위표 없음
선정 기자 14명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dit Kopa; 프랑스 축구선수, 1931-2017)는 네 해 연속 발롱도르 시상대에 올랐다. 1956년 3위, 1957년 공동 3위, 1958년 1위, 그리고 1959년 2위다. 한 해 전 수상자는 이번에는 1위표를 한 장도 받지 못했지만, 14명의 기자가 그를 다섯 명 안에 적었다. 2위표 4장, 3위표 7장, 4위표 2장, 5위표 1장이다. 3위표 7장은 이 해 어느 선수보다 많았다. [1]

1958-59 시즌 레알에서는 리그 30경기 10골, 유러피언컵 7경기 1골로 공식전 37경기 11골을 기록했다. 유러피언컵 골은 베식타시와의 16강 홈경기 2-0 승리의 90분 골이다. 슈투트가르트의 결승에서는 친정 랭스를 상대로 오른쪽에 섰지만, 15분 무렵 장 뱅상의 늦은 태클에 다쳐 밖에서 치료를 받았고 남은 시간을 부상을 안고 뛰었다. [2][5][6]

그 결승이 레알에서 뛴 마지막 공식전이 됐다. 1956년 여름 랭스를 떠나 레알에서 유러피언컵 세 번을 들어 올린 코파는 1959년 여름 랭스로 돌아갔다. 1959-60 시즌 디비지옹 1에서 그해 말까지 20경기 9골을 넣었고, 대표팀에서 함께 뛰던 쥐스트 퐁텐과 처음으로 같은 클럽의 앞줄에 섰다. 1959년 클럽 공식전은 레알 20경기 5골, 랭스 20경기 9골, 모두 40경기 14골이다. 대표팀에서는 가을 네 경기에 나섰고 골은 없었다. 12월 17일 프랑스가 스페인을 4-3으로 이긴 경기에서 디스테파노와 마주 섰다. [2]

3위 · 존 찰스

John Charles · 27세 · 센터포워드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가운데 두고 줄무늬 유니폼의 유벤투스 선수들과 감독진이 두 줄로 선 단체 사진
1959년 9월 13일 산 시로,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인테르나치오날레를 4-1로 이긴 유벤투스. 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존 찰스다.
영국 국기
UNITED KINGDOM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웨일스 국기
WALES웨일스Wales
THE DRAGONS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Wales national football team
유벤투스 FC 당시 문장
JUVENTUS유벤투스 FCJuventus Football Club

팀 성적

  • 1958-59 세리에 A 4위 [8]
  • 1958-59 코파 이탈리아 우승 [9]
  • 1958-59 유러피언컵 예선 탈락

개인 수상·기록

  • 1958-59 세리에 A 팀 내 최다 득점 (19골) [8]
  • 1959년 발롱도르 3위

개인 스탯

1958-59 시즌클럽 공식전 · 리그·컵·유럽 대회

  • 1958-59 클럽 공식전 합계36경기 24골
  • 세리에 A30경기 19골
  • 코파 이탈리아4경기 5골
  • 유러피언컵2경기 0골

1959년 연간발롱도르 평가 기간 · 1월 1일-12월 31일

  • 1959년 클럽 공식전38경기 27골
  • 상반기 · 1958-59 시즌25경기 19골
  • 하반기 · 1959-60 시즌13경기 8골
  • 1959년 국가대표팀1경기 1골
  • 1959년 클럽+국가대표팀 합계39경기 28골
BALLON D’OR · THIRD득표 점수
24점1위표 2장
선정 기자 7명

존 찰스(William John Charles; 웨일스 공격수·수비수, 1931-2004)는 세 해째 순위를 올렸다. 1957년 6위, 1958년 공동 4위를 지나 1959년 처음 시상대에 섰다. 그를 다섯 명 안에 넣은 기자는 일곱 명뿐이었지만 그중 둘이 1위로, 셋이 2위로 적었다. 1위표 2장은 디스테파노 다음으로 많았다. 4위 루이스 수아레스와는 2점 차이였다. [1]

1957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유벤투스로 옮긴 찰스는 두 번째 시즌 세리에 A 30경기에서 19골을 넣었다. 유벤투스는 4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찰스의 19골은 오마르 시보리의 15골보다 많은 팀 내 최다였다. 유럽에서는 일찍 멈췄다. 유벤투스는 유러피언컵 예선에서 비너 스포츠 클럽에 홈 3-1, 원정 0-7로 졌고, 찰스는 두 경기에서 골이 없었다. [2][6][8]

트로피는 가을에 왔다. 대회 시즌은 1958-59였지만 코파 이탈리아 결승은 1959년 9월 13일 밀라노 산 시로에서 열렸고, 유벤투스가 인테르나치오날레를 4-1로 이겼다. 찰스는 이 대회 네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었다. 위 사진이 그날 경기 뒤 우승 트로피를 가운데 두고 찍은 유벤투스 선수단이다. 1959년 한 해에 클럽 38경기 27골, 웨일스 대표팀 1경기 1골, 모두 39경기 28골이다. [2][9]

1959년 발롱도르 전체 랭킹

26명이 점수를 받았다. 공동 13위가 네 명이므로 그다음은 17위, 공동 17위가 세 명이므로 그다음은 20위다. 1959년에 소속 구단이 바뀐 코파와 헬무트 란, 호르스트 시마니아크는 두 구단을 함께 적었다. 표의 동순위 순서는 운영자의 순위 도판을 따랐다. [1]

디스테파노는 1957년 편과 같이 원국적 아르헨티나와 1956년 취득한 국적 스페인을, 코파는 원국적 폴란드와 이후 취득한 국적 프랑스를 함께 적었다. 두 국적의 동시 보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순위선수국적1959년 소속 구단점수
1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아르헨티나스페인레알 마드리드 CF 80
2 레몽 코파Raymond Kopa 폴란드프랑스레알 마드리드 CF스타드 드 랭스 42
3 존 찰스John Charles 영국(웨일스)유벤투스 FC 24
4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스페인CF 바르셀로나 22
5 아그네 시몬손Agne Simonsson 스웨덴외르그뤼테 IS 20
6 티히 러요시Tichy Lajos 헝가리부다페스트 혼베드 SE 18
7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 헝가리레알 마드리드 CF 16
8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스페인레알 마드리드 CF 12
9 헬무트 란Helmut Rahn 서독로트바이스 에센1. FC 쾰른 11
10 호르스트 시마니아크Horst Szymaniak 서독부퍼탈러 SV카를스루어 SC 8
11 레프 야신Lev Yashin 소련FC 디나모 모스크바 7
12 유리 보이노프Yuri Voinov 소련FC 디나모 키이우 5
공동13 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 헝가리버셔시 SC 4
공동13 그로시치 줄러Grosics Gyula 헝가리터터바녀 바냐스 SC 4
공동13 이반 콜레프Ivan Kolev 불가리아CDNA 소피아 4
공동13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스웨덴AC 밀란 4
공동17 티투스 부베르니크Titus Buberník 체코슬로바키아ČH 브라티슬라바 3
공동17 쥐스트 퐁텐Just Fontaine 프랑스스타드 드 랭스 3
공동17 게오르기 나이데노프Georgi Naydenov 불가리아CDNA 소피아 3
공동20 얼베르트 플로리안Albert Flórián 헝가리페렌츠바로시 TC 2
공동20 우베 젤러Uwe Seeler 서독함부르크 SV 2
공동20 주안 세가라Joan Segarra 스페인CF 바르셀로나 2
공동23 괴뢰치 야노시Göröcs János 헝가리우이페슈티 도저 1
공동23 클리프 존스Cliff Jones 영국(웨일스)토트넘 홋스퍼 FC 1
공동23 로제 마르슈Roger Marche 프랑스라싱 클뢰브 드 파리 1
공동23 안토니 라마예츠Antoni Ramallets 스페인CF 바르셀로나 1
기자들이 매긴 1~5위별 투표 내역 보기펼쳐보기접기
순위선수1위표2위표3위표4위표5위표선정 기자점수
1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14111118명 80
2 레몽 코파Raymond Kopa 0472114명 42
3 존 찰스John Charles 230027명 24
4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121228명 22
5 아그네 시몬손Agne Simonsson 111328명 20
6 티히 러요시Tichy Lajos 031116명 18
7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 022105명 16
8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101204명 12
9 헬무트 란Helmut Rahn 021003명 11
10 호르스트 시마니아크Horst Szymaniak 002024명 8
11 레프 야신Lev Yashin 100023명 7
12 유리 보이노프Yuri Voinov 001102명 5
공동13 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 010001명 4
공동13 그로시치 줄러Grosics Gyula 000202명 4
공동13 이반 콜레프Ivan Kolev 000123명 4
공동13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010001명 4
공동17 티투스 부베르니크Titus Buberník 000112명 3
공동17 쥐스트 퐁텐Just Fontaine 001001명 3
공동17 게오르기 나이데노프Georgi Naydenov 001001명 3
공동20 얼베르트 플로리안Albert Flórián 000101명 2
공동20 우베 젤러Uwe Seeler 000101명 2
공동20 주안 세가라Joan Segarra 000101명 2
공동23 괴뢰치 야노시Göröcs János 000011명 1
공동23 클리프 존스Cliff Jones 000011명 1
공동23 로제 마르슈Roger Marche 000011명 1
공동23 안토니 라마예츠Antoni Ramallets 000011명 1

레알의 네 사람, 헝가리의 여섯 사람

상위 8명 가운데 네 명이 1959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 1위 디스테파노, 2위 코파, 7위 푸슈카시 페렌츠, 8위 파코 헨토다. 4연패의 레알이 표에서도 가장 큰 덩어리였고, 그 네 사람의 점수를 더하면 150점으로 전체 300점의 절반이다. [1]

나라로 보면 헝가리 선수가 여섯 명으로 가장 많다. 6위 티히 러요시, 7위 푸슈카시, 공동 13위 분자크 데죄와 그로시치 줄러, 공동 20위 얼베르트 플로리안, 공동 23위 괴뢰치 야노시다. 1956년 가을 이후 나라 밖에서 뛰던 푸슈카시를 빼면 모두 헝가리 리그의 선수다. 처음 투표에 참여한 소련에서는 레프 야신과 유리 보이노프가 점수를 받았다. [1]

디스테파노에게 1959년은 두 번째 수상의 해였다. 1957년 72점, 1958년 순위 밖, 1959년 80점이다. 레알의 4연패와 라리가 득점 1위가 한 해 안에 모였고, 20명 가운데 14명의 기자가 그 한 해를 1위로 적었다. [1]

발롱도르 트로피를 앞에 둔 양복 차림의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와 1959년 발롱도르 상위 10위를 정리한 삥이FC 썸네일

참고 자료

  1. José Luis Pierrend, RSSSF,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59”. 《프랑스 풋볼》 제718호의 결과를 정리한 순위·배점·투표인단 기록.
  2. Transfermarkt, 디스테파노, 코파, 찰스 경기별 기록. 1958-59 시즌과 1959년 연간 클럽·대표팀 출전과 득점.
  3. 위키미디어 공용, “Juventus FC - Coppa Italia 1958-59.jpg”. 1959년 9월 13일 산 시로, 결승 뒤 유벤투스 선수단(퍼블릭 도메인).
  4. 《프랑스 풋볼》, “Ballon d’Or : quatre changements pour l’histoire”, 2022년 3월 11일. 연간 평가에서 시즌 평가로의 전환.
  5. UEFA, “Reims succumb to Madrid for a second time”. 1959년 결승의 디스테파노 47분 골과 코파의 부상.
  6. UEFA, 1958-59 유러피언컵 경기 기록. 우승·준우승·4강 진출팀, 디스테파노·코파·찰스의 출전과 득점.
  7. weltfussball.de, Primera División 1958/1959 최종 순위, 득점 순위. 바르셀로나 51점·레알 47점, 디스테파노 23골·푸슈카시 21골.
  8. RSSSF, “Italy 1958/59”. 세리에 A 최종 순위(유벤투스 4위)와 득점 순위(찰스 19골, 시보리 15골).
  9. RSSSF, “Italy - Cup Finals”. 1958-59 코파 이탈리아 결승, 유벤투스 4-1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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