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59 EUROPEAN CUP · 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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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 날짜
- 1959년 6월 3일
- 장소
- 네카르슈타디온
- 관중
- 72,000명
- 주심
- 알베르트 두슈
1959년 6월 3일, 서독 슈투트가르트의 네카르슈타디온(Neckarstadion)에 7만 2천 명이 들어왔다. 네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은 첫 대회 결승과 같은 대진이었다. 1956년 파리에서 4-3으로 끝난 레알 마드리드 CF와 스타드 드 랭스가 3년 만에 다시 마주 섰다. 휘슬은 개최국 서독의 알베르트 두슈(Albert Dusch; 서독 주심)가 불었다.[2][3]
레알은 대회가 생긴 뒤 세 번의 결승을 모두 이기고 네 번째 결승에 왔다. 1956년에는 코파를 데려왔고, 1957년에는 우루과이에서 수비수 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우루과이·스페인 수비수, 1929-2026)를, 1958년 여름에는 헝가리를 떠나 있던 페렌츠 푸스카스(Puskás Ferenc; 헝가리 출신 공격수, 1927-2006)를 영입했다. 해마다 거물을 하나씩 더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 Yeste; 레알 마드리드 회장, 1895-1978) 회장의 레알이었지만, 4강 1차전과 재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푸스카스의 이름은 이 결승 명단에 없었다. 공격진의 8번은 스물네 살의 엔리케 마테오스(Enrique Mateos Mancebo; 스페인 공격수, 1934-2001)였다. 주장 완장은 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스페인 미드필더, 1930-2012)가 찼다.[3][4] 푸스카스가 왜 빠졌는지는 인물관의 푸스카스 편에 따로 적어 두었다.
랭스 쪽에서 1956년 결승을 뛴 사람 가운데 가장 이름난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는 이제 레알의 7번이었다. 첫 결승에서 레알을 패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공격수가 그 결승 직후 마드리드로 떠났고, 지난 시즌 브뤼셀에서는 레알의 동점골과 결승골을 모두 열었다. 알베르 바퇴(Albert Batteux; 프랑스 감독, 1919-2003) 감독의 랭스에 남은 첫 결승의 얼굴은 주장 로베르 종케(Robert Jonquet; 프랑스 수비수, 1925-2008)와 라울 지로도(Raoul Giraudo; 프랑스 수비수), 미셸 르블롱(Michel Leblond; 프랑스 하프백, 1932-2009), 르네 블리아르(René Bliard; 프랑스 공격수, 1932-2009) 넷이었다. 그 사이 랭스는 하프 아르망 팡베른(Armand Penverne; 프랑스 하프백, 1926-2012)을 중원에 세우고, 왼쪽 날개 장 뱅상(Jean Vincent; 프랑스 왼쪽 윙어, 1930-2013)과 1958 FIFA 월드컵에서 13골을 넣은 쥐스트 퐁텐(Just Louis Fontaine; 프랑스 공격수, 1933-2023),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프랑스 공격수, 1931-2018)로 앞줄을 새로 짰다. 레알 쪽에서 파리의 결승을 뛴 선수는 마르키토스, 사라가, 디스테파노, 리알, 헨토였다.[3][6] 첫 결승의 장면은 1955-56 유러피언컵 결승 H/L에 있다.
두 팀은 이 시즌에도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랭스는 8강 리에주 원정과 4강 베른 원정에서 지고 돌아와 홈에서 뒤집었고, 레알은 같은 도시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세 경기를 치렀다. 예선부터 8강까지의 길은 1958-59 유러피언컵 참가팀과 본선에, 사라고사 재경기까지 이어진 결승행 다섯 경기는 1958-59 유러피언컵 4강에 정리해 두었다.

킥오프 전: 네카르슈타디온에 다시 선 2팀
3년 만에 같은 상대와 걸어 나온 레알
두 팀은 한 줄씩 나란히 걸어 나왔다. 흑백 화면에서 레알은 긴 소매의 흰 유니폼, 랭스는 소매만 흰 어두운 상의로 갈린다. 이 글의 영상에서는 이 색으로 두 팀을 나눈다. 레알의 선발은 골키퍼 로헬리오 도밍게스(Rogelio Antonio Domínguez; 아르헨티나 골키퍼) 앞에 마르키토스, 산타마리아, 사라가가 서고, 그 앞에 후안 산티스테반(Juan Santisteban Troyano; 스페인 미드필더, 1936-2023)과 안토니오 루이스(Antonio Ruiz; 스페인 미드필더), 맨 앞에 코파·마테오스·디스테파노·리알·헨토가 섰다. 랭스는 골키퍼 도미니크 콜로나(Dominique Colonna; 프랑스 골키퍼, 1928-2023) 앞에 브뤼노 로지크(Bruno Rodzik; 프랑스 수비수), 종케, 지로도를 세웠다.[2][3]
3년 전 파리의 결승은 일곱 골이 오간 4-3이었다. 같은 두 팀이 다시 만난 네카르슈타디온의 경기는 시작하자마자 한쪽으로 기울었다.
1분: 마테오스의 선제골
푸스카스의 자리에 선 공격수가 연 결승
킥오프 직후 레알의 긴 패스가 왼쪽 측면의 마테오스에게 닿았다. UEFA의 경기 기사에 따르면 마테오스는 랭스의 로베르 라마르틴(Robert Lamartine; 프랑스 오른쪽 윙어, 1935-1990)을 안쪽으로 따돌리고 먼 쪽 골대를 맞혀 공을 밀어 넣었다. 영상에서도 공은 몸을 던진 콜로나의 반대편 골망으로 들어가 멈춘다. 득점 시각은 UEFA 경기 기록이 1분, RSSSF가 2분이다.[1][2][3]
레알이 결승에서 먼저 골을 넣은 것은 1957년 베르나베우의 피오렌티나전 이후 두 번째였다. 파리에서는 랭스가 10분 만에 두 골을 먼저 넣었고, 브뤼셀에서는 밀란이 두 번 먼저 앞섰다. 첫 결승에서 레알을 그렇게 몰아붙였던 랭스가 이번에는 1분 만에 쫓는 쪽이 됐다.
헨토를 막은 로지크, 퐁텐을 막은 루이스
양쪽 에이스 앞에 선 수비수들
레알 공격의 왼쪽 끝은 11번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였다. 첫 영상에서 헨토가 공을 잡자 랭스의 오른쪽 수비수 2번 로지크가 거리를 주지 않고 붙는다. 헨토의 속도를 아는 수비는 처음부터 몸이 닿을 거리에 서서, 헨토가 앞으로 공을 밀어 놓을 틈을 주지 않는다.
두 번째 영상은 반대편 이야기다. 랭스의 9번 퐁텐이 센터서클 부근에서 레알 9번 디스테파노 앞으로 공을 띄워 넘긴다. 레알의 센터 포워드가 자기 진영까지 내려와 퐁텐을 쫓는 장면이다. 퐁텐이 앞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레알 6번 루이스가 앞을 막고 공을 따낸다. 1958년 월드컵에서 한 대회 13골을 넣은 퐁텐은 이 시즌 유러피언컵에서도 랭스의 공격을 이끌었지만, 결승의 중원에는 산티스테반과 루이스, 레알의 두 하프가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2][3]
16분: 마테오스가 얻고 마테오스가 놓친 페널티킥
2-0이 될 수 있었던 기회
추가골의 기회는 금방 왔다. UEFA의 경기 기사는 마테오스가 랭스 페널티 지역에서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었고, 그가 직접 찼다가 실축했다고 적는다. UEFA 경기 기록에는 16분의 실축으로 남아 있다. 첫 영상에서 흰 유니폼 하나가 페널티 지역 부근에서 쓰러지고 옆의 동료가 두 팔을 들어 올린다. 두 번째 영상은 골문 옆 낮은 자리에서 찍었다. 공이 차이는 순간 콜로나가 몸을 던지고, 공은 골망을 흔들지 못한 채 골문 밖으로 굴러 나온다.[1][2]
점수는 1-0 그대로였다. 슈투트가르트까지 온 랭스 응원단이 깃발을 흔들었고, 1분 만에 실점한 랭스는 두 골 차가 될 위기를 넘기고 한 골 차로 남은 시간을 맞았다.
라마르틴의 돌파와 코파의 부상
산타마리아와 산티스테반 사이를 지난 7번
랭스의 가장 좋은 장면은 오른쪽에서 나왔다. 영상의 어두운 7번은 오른쪽 윙어 라마르틴이다. 레알의 3번 산타마리아와 5번 산티스테반이 차례로 다가오지만 라마르틴은 공을 발끝에 붙인 채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고, 골문 쪽으로 공을 보낸다. 그 끝에서 9번 퐁텐이 골키퍼 앞까지 파고들었다가 레알 수비수와 엉켜 넘어진다. 1분에 마테오스가 안쪽으로 따돌린 수비가 바로 이 라마르틴이었으니, 랭스의 오른쪽 날개는 레알의 왼쪽 공격을 막는 일까지 맡고 있었다.[1][3]
레알에게는 실축보다 큰 일이 있었다. UEFA의 경기 기사에 따르면 15분 무렵 코파가 장 뱅상의 늦은 태클에 걸려 다쳤고, 교체가 없던 시절이라 레알은 그가 밖에서 치료를 받는 몇 분 동안 10명으로 뛰었다. 영상에서 코파는 터치라인 밖 잔디에 앉아 있고,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 마테오스의 페널티킥은 코파가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 코파는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지만 이 부상을 안고 남은 시간을 뛰었다. 친정 랭스를 상대로 한 첫 결승에서였다.[1][4]
TIME0
스타드 드 랭스STADE DE REIMSMATEOS IN THE FIRST MINUTE · A PENALTY MISSED · KOPA HURT
47분: 디스테파노의 추가골
후반 2분 만에 나온 네 번째 결승골
후반이 시작되고 2분 만에 승부가 기울었다. 47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가 페널티 지역 끝에서 때린 슈팅이 골대 바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UEFA의 경기 기사는 콜로나가 공을 늦게 봤는지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데 한발 늦었다고 적는다. 영상에서도 공이 먼저 골문 안에 닿고, 콜로나는 그 옆에 주저앉는다.[1][2]
디스테파노는 1956년 파리에서 14분 만회골, 1957년 베르나베우에서 페널티킥 선제골, 1958년 브뤼셀에서 74분 동점골을 넣었다. 슈투트가르트의 47분으로 그는 대회가 열린 네 시즌의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푸스카스도, 다친 코파도 아닌 레알의 9번이 다시 결승을 끝냈다.
피앙토니의 슈팅과 랭스의 공세
랭스가 두드린 레알의 골문
랭스도 레알의 골문을 두드렸다. 첫 영상의 10번이 피앙토니다. 레알 선수의 태클을 뛰어넘어 공을 지킨 피앙토니가 몇 걸음 몰고 나가 강하게 때리고, 도밍게스가 몸을 날린다. 두 번째 영상은 반대로 레알의 역습이다. 흰 유니폼 하나가 공을 길게 차 놓고 랭스 수비수와 경주하듯 달려 페널티 지역까지 들어간다.
랭스는 레알 골문 앞에 사람을 쌓았다. 페널티 지역 안에서 공이 몇 번 오갔지만 슈팅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피앙토니의 프리킥은 도밍게스의 품에 안겼다. 이 시즌 랭스는 8강에서 두 골, 4강에서 한 골을 지고 돌아와 홈에서 뒤집었다. 그러나 결승에는 돌아갈 홈 경기가 없었다.[4]
THE FOURTH EUROPEAN CUP · FOUR IN A ROW
CHAMPIONREAL MADRID CF
네 번째 결승의 레알, 두 번째 결승의 랭스
레알 마드리드 CF는 네 시즌 연속 결승에 올라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스타드 드 랭스는 두 번의 결승에서 모두 레알에 져 두 번째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58-59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 구단 | 대표 지역 | 결승 진출 |
|---|---|---|
| 스페인 | 통산 4번째 결승 진출 | |
| 프랑스 | 통산 2번째 결승 진출 |
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우승 |
|---|---|---|
| 스페인 | 통산 4번째 유러피언컵 우승 |
준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준우승 |
|---|---|---|
| 프랑스 | 통산 2번째 유러피언컵 준우승 |
종료 휘슬 뒤: 7번과 10번
랭스 선수들에게 걸어간 코파
종료 휘슬이 울리자 사진기자들이 경기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첫 영상에서 레알의 7번 코파가 랭스 4번 지로도 옆에 서 있다가 선수들이 모인 쪽으로 걸어가 손을 내민다. 두 번째 영상의 가운데에 선 랭스의 10번은 피앙토니다. 레알의 흰 유니폼들이 그를 둘러싸고 어깨를 두드린다. 코파와 피앙토니는 1958년 월드컵에서 퐁텐과 함께 프랑스의 3위를 이끈 공격진이었다. 클럽에서는 다른 유니폼을 입고, 이날 처음으로 결승에서 서로를 상대했다.[2]
UEFA의 경기 기사는 레알이 종료 휘슬과 함께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전한다. 레알은 대회가 열린 네 시즌을 모두 우승했고, 랭스는 그 네 번 가운데 두 번의 결승에서 레알을 만나 두 번 모두 졌다.[1]
‘라 콰르타’(La Cuarta)는 스페인어로 ‘네 번째’를 뜻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네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부르는 이름이다. 첫 번째가 0-2에서 시작한 역전이었고 두 번째가 69분까지 버틴 수비를 무너뜨린 경기였으며 세 번째가 두 번 끌려간 끝에 연장에서 처음 앞선 경기였다면, 네 번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은 결승이었다. 1분의 골과 47분의 골, 그 사이의 실축과 부상까지, 레알은 푸스카스 없이 다친 코파를 안고도 90분 내내 앞서 있었다.
랭스에게 이 결승은 3년 전의 반대편이었다. 파리에서는 랭스가 먼저 두 골을 넣고 레알이 따라왔지만,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레알이 1분 만에 앞서고 랭스가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랭스의 공격을 이끌던 코파는 레알의 7번이 됐고, 이날 랭스 선수들 사이로 걸어간 사람도 그였다.

영상과 참고 자료
- “Reims succumb to Madrid for a second time”, UEFA. 마테오스의 선제골 경위, 15분 무렵 뱅상의 태클과 코파의 부상, 마테오스의 페널티킥 실축, 디스테파노의 추가골과 콜로나, 종료 뒤의 기립 박수.
- “Real Madrid 2-0 Reims”, UEFA 경기 기록. 득점 시각 1·47분, 16분 페널티킥 실축, 선발 명단과 등번호, 관중 72,000명.
- “European Champions’ Cup 1958-59 - Details”, RSSSF. 마테오스 2분, 주심 알베르트 두슈(서독), 두 팀의 주장과 감독, 포지션 순서의 선발 명단.
- “1958/59: Di Stéfano keeps Madrid rolling”, UEFA. 푸스카스의 결장과 코파의 부상, 랭스의 8강·4강 역전.
- “European Cup final 1959 | Real Madrid 2-0 Stade de Reims”, 레알 마드리드 CF 공식 유튜브. 본문의 18개 영상은 이 결승 기록 영상을 장면 순서대로 나눈 것이다.
- “European Champions’ Cup 1955-56 - Details”, RSSSF. 1956년 파리 결승의 두 팀 선발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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