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 · 유러피언컵

1958-59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쥐스트 퐁텐 10골

결승에서 진 스타드 드 랭스의 퐁텐이 7경기 10골로 네 번째 유러피언컵 최다 득점자가 됐다. 3명을 올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한 경기 4골을 넣은 퐁텐·하메를·디스테파노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 1위부터 공동 5위까지 여덟 선수의 사진·클럽·국적·골 수를 정리한 삥이FC 디자인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 디자인: 삥이FC. 도판의 로저 피앙토니는 본문의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클라우스 징크는 본문의 클라우스 칭크(Klaus Zink)와 같은 인물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4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8-59

4골 이상 넣은 14명

순위선수클럽출신출전득점
1위쥐스트 퐁텐Just Fontaine스타드 드 랭스프랑스7경기10골
2위바바Vavá아틀레티코 마드리드브라질10경기8골
공동 3위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레알 마드리드 CF아르헨티나7경기6골
공동 3위호아킨 페이로Joaquín Peiró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10경기6골
공동 5위엔리케 코야르Enrique Collar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10경기5골
공동 5위요제프 하메를Josef Hamerl비너 스포츠 클럽오스트리아6경기5골
공동 5위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스타드 드 랭스프랑스9경기5골
공동 5위클라우스 칭크Klaus Zink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동독6경기5골
공동 9위장 자도Jean Jadot스탕다르 리에주벨기에5경기4골
공동 9위빌리 트뢰거Willy Tröger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동독8경기4골
공동 9위펄로타시 페테르Palotás PéterMTK 부더페슈트 FC헝가리4경기4골
공동 9위베른하르트 클로트Bernhard KlodtFC 샬케 04서독7경기4골
공동 9위에른스트 베흐젤베르거Ernst WechselbergerBSC 영 보이스서독7경기4골
공동 9위오이겐 마이어Eugen MeierBSC 영 보이스스위스7경기4골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며, 교체 제도가 없던 시즌이라 선발 수가 곧 출전 수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스포르팅 CP의 이브송은 UEFA 기록으로 네 골이지만 RSSSF의 경기별 기록과 한 골이 달라 표에 넣지 않았다(아래 기록 기준).

14명이 아홉 구단에 흩어져 있다. 가장 많은 세 명을 올린 구단은 우승팀이 아니라 4강에서 레알과 세 경기를 치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고, 10경기에서 넣은 25골도 대회 최다였다. 준우승한 랭스는 아홉 경기 23골에 두 명, 8강에서 맞붙은 BSC 영 보이스와 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SC Wismut Karl-Marx-Stadt)가 두 명씩이다. 우승한 레알은 여덟 경기 16골로 득점 순위에 디스테파노 한 명만 올렸다. [1], [2]

7경기 10골, 퐁텐의 첫 유러피언컵

쥐스트 퐁텐(Just Louis Fontaine; 프랑스 공격수, 1933-2023)은 1958 FIFA 월드컵에서 13골을 넣은 그해 가을, 처음 나선 유러피언컵에서도 득점 1위에 올랐다. 랭스가 첫 대회 뒤 세 시즌 만에 돌아온 대회였고, 퐁텐은 첫 대회가 끝난 1956년 여름 OGC 니스에서 랭스로 왔다.

10골 가운데 여섯 골이 예선에서 나왔다. 1958년 9월 17일 벨파스트 윈저 파크에서 열린 아즈 FC(Ards Football Club) 원정 4-1 승리에서 네 골을 모두 넣었고, 10월 8일 랭스의 홈 6-2 승리에서 14분과 16분에 두 골을 더했다. 16강에서는 헬싱긴 팔로세우라(Helsingin Palloseura)의 홈경기가 프랑스 루앙에서 열린 0-3 승리에서 2분과 10분에 골을 넣었다. [1], [2]

마지막 두 골은 탈락 위기에서 나왔다. 8강 1차전 리에주 원정을 0-2로 진 랭스는 1959년 2월 18일 홈에서 피앙토니의 70분 골로 한 골을 따라붙었고, 퐁텐이 73분과 88분에 두 골을 넣어 합계 3-2로 뒤집었다. 그는 1차전 리에주 원정과 16강 홈경기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그 뒤 영 보이스와의 4강 두 경기와 레알과의 결승, 마지막 세 경기에서는 골이 없었다. 결승 장면은 1958-59 유러피언컵 결승 H/L에서 볼 수 있다. [1]

아틀레티코의 세 사람: 바바, 페이로, 코야르

2위 바바(Edvaldo Izídio Neto, Vavá; 브라질 공격수, 1934-2002)는 스웨덴 월드컵 결승에서 두 골을 넣고 브라질의 첫 우승을 함께한 뒤 아틀레티코로 왔다. 아틀레티코가 치른 10경기에 모두 나섰고, 예선부터 8강까지 매 라운드 골을 넣었다. 드럼콘드라 FC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세 골, CDNA 소피아(ЦДНА София)와의 16강 세 경기에서 세 골을 넣었는데 그중 두 골은 제네바 재경기 3-1 승리의 42분 골과 연장 108분 페널티킥이었다. 8강 FC 샬케 04와의 두 경기에서도 47분과 90분에 한 골씩 넣었다. 레알과의 4강 세 경기에서만 골이 없었다. [1], [2]

공동 3위 호아킨 페이로(Joaquín Peiró Lucas; 스페인 공격수, 1936-2020)의 여섯 골은 앞쪽에 몰려 있다. 드럼콘드라와의 두 경기에서 네 골, CDNA와의 16강 1차전 2-1 승리에서 79분 골, 샬케와의 8강 1차전 3-0 경기에서 마지막 골을 넣었다. 공동 5위 엔리케 코야르(Enrique Collar Monterrubio; 스페인 왼쪽 윙어, 1934-2022)는 반대로 끝에서 이름을 남겼다. 드럼콘드라전 세 골 뒤에는 한동안 골이 없다가, 레알과의 4강 2차전 1-0 승리에서 43분 결승골, 사라고사 재경기에서 18분 동점골을 넣었다. 아틀레티코가 레알을 상대로 넣은 세 골 가운데 두 골이 코야르의 것이었다. [1]

한 경기 4골: 퐁텐, 하메를, 디스테파노

이 시즌에는 한 경기에서 네 골을 넣은 선수가 셋 나왔다. 퐁텐의 아즈 원정에 이어, 10월 1일 빈에서 비너 스포츠 클럽(Wiener Sport-Club)의 요제프 하메를(Josef Hamerl; 오스트리아 공격수, 1931-2017)이 유벤투스를 상대로 34분, 38분, 64분, 80분에 골을 넣었다. 토리노의 1차전을 1-3으로 지고 온 비너 SC는 이 경기를 7-0으로 이겨 합계 8-3으로 올라갔다. 하메를은 16강 FK 두클라 프라하와의 홈경기 3-1 승리에서 47분 골을 더해 다섯 골이 됐다. [1], [2]

세 번째 네 골은 그 비너 SC를 상대로 나왔다. 1959년 3월 18일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8강 2차전에서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가 14분, 64분, 69분, 75분에 골을 넣어 레알이 7-1로 이겼다. 빈의 1차전은 0-0이었다. 공동 3위 디스테파노의 나머지 두 골은 사라고사 재경기의 16분 선제골과 결승의 47분 골이다. 한 시즌 전 10골로 득점왕이던 그는 일곱 경기 여섯 골로 내려왔지만, 레알의 16골 가운데 여섯 골을 혼자 넣었다. 레알에서 그다음으로 많이 넣은 선수는 푸스카스, 마테오스, 산티스테반, 리알로 두 골씩이었다. [1]

5골의 피앙토니와 칭크

공동 5위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프랑스 공격수, 1931-2018)는 랭스가 치른 아홉 경기에 모두 나섰다. 예선 아즈와의 홈경기에서 두 골, 리에주를 뒤집은 8강 2차전에서 70분 추격골을 넣었고, 영 보이스와의 4강 2차전 3-0 승리에서 41분과 72분에 두 골을 넣어 랭스를 결승에 올렸다. 퐁텐이 앞에서 여섯 골을 몰아넣은 동안 피앙토니는 뒤로 갈수록 골을 넣었다. [1]

비스무트의 클라우스 칭크(Klaus Zink; 동독 공격수)는 네 경기에서 골을 나눠 넣었다. FC 페트롤룰 플로이에슈티와의 키이우 재경기 4-0 승리에서 4분 선제골, 16강 IFK 예테보리 원정 2-2 경기에서 한 골, 홈의 2차전 4-0 승리에서 두 골, 8강 영 보이스 원정 2-2 경기에서 59분 골을 넣었다. 비스무트는 동독 구단으로 처음 8강에 올랐고, 암스테르담 재경기에서 영 보이스에 1-2로 졌다. [1], [3]

4골의 여섯 사람

공동 9위 여섯 명 가운데 둘은 8강에서 비스무트를 꺾은 영 보이스의 공격수다. 서독 출신 에른스트 베흐젤베르거(Ernst Wechselberger; 서독 공격수)는 16강 MTK 부더페슈트 원정 2-1 승리에서 64분 골, 홈의 2차전 4-1 승리에서 두 골, 암스테르담 재경기에서 33분 골을 넣었다. 오이겐 마이어(Eugen Meier; 스위스 공격수)는 MTK전, 비스무트와의 1차전과 재경기에서 한 골씩 넣고, 1959년 4월 15일 반크도르프의 4강 1차전에서 15분에 랭스를 1-0으로 이긴 결승골을 넣었다. [1], [4]

비스무트의 빌리 트뢰거(Willy Tröger; 동독 공격수)는 페트롤룰과의 예선 1차전에서 한 골, 키이우 재경기에서 페널티킥을 포함해 두 골, 암스테르담 재경기에서 75분 페널티킥으로 네 골을 넣었다. 스탕다르 리에주의 장 자도(Jean Jadot; 벨기에 공격수)는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와의 예선 5-1 승리에서 두 골, 스포르팅 원정 3-2 승리에서 한 골, 랭스와의 8강 1차전 2-0 승리에서 65분 골을 넣었다. [1], [3]

MTK의 펄로타시 페테르(Palotás Péter; 헝가리 센터 포워드, 1929-1967)는 네 골을 모두 폴로니아 비톰과의 예선 두 경기에서 넣었고, 그중 두 골이 페널티킥이었다. 첫 대회에서 뵈뢰시 로보고 소속으로 득점 순위 2위에 올랐던 선수로, 두 시즌 합계 10골이 됐다. 샬케의 베른하르트 클로트(Bernhard Klodt; 서독 왼쪽 윙어, 1926-1996)도 네 골을 모두 예선에서 넣었다. 키외벤하운스 볼클루브와의 홈경기 5-2 승리에서 25분과 34분, 엔스헤더 재경기 3-1 승리에서 57분과 86분이다. [1], [5]

기록 기준

골 수는 UEFA 경기 데이터의 55경기 득점 기록을 한 골씩 셌고, RSSSF의 경기별 득점자 줄과 대조했다. 두 자료가 다른 경기는 네 곳이다. 비스무트의 8강 1차전 59분 골과 암스테르담 재경기 75분 페널티킥을 UEFA는 칭크와 트뢰거로, RSSSF 대회 페이지는 디터 에를러(Dieter Erler; 동독 공격수)로 적는다. 샬케의 엔스헤더 재경기 57분 골은 UEFA가 클로트, RSSSF 대회 페이지가 귄터 지베르트(Günter Siebert; 서독 공격수)로 적는다. 세 골 모두 RSSSF의 구단별 상세 기록(비스무트, 샬케)이 UEFA와 같아 표는 UEFA를 따랐다. 같은 RSSSF 대회 페이지 맨 아래의 득점자 요약표도 칭크 다섯 골, 트뢰거 네 골로 UEFA와 같다. [1], [2], [3], [5]

남은 한 곳은 예선 도스-스포르팅 경기의 83분 골이다. UEFA는 이브송(Ivson de Freitas; 브라질 출신 공격수), RSSSF 대회 페이지는 우구 사르멘투(Hugo Sarmento)로 적어, 이브송의 골은 UEFA로 네 골, RSSSF 경기별 줄로 세 골이다. 세 번째 자료로 가리지 못해 이브송은 표에 넣지 않았다. 출전 수도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RSSSF 비스무트 페이지는 칭크의 출전을 다섯 경기로 적는다. 득점 시각은 몇 경기에서 두 자료가 다르며, 본문에는 두 자료가 같은 시각만 썼다. [1], [2], [3]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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