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 · 유러피언컵

1958-59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퐁텐·디스테파노·페이로, 그리고 콜로나와 종케

공식 선정이 없던 네 번째 유러피언컵을 55경기의 출전 명단과 등번호로 다시 읽었다. 4연패의 레알 마드리드와 결승에서 진 스타드 드 랭스, 4강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8강의 비스무트에서 고른 삥이FC 회고 베스트 11.
유러피언컵 트로피 배경의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 Best XI 문구와, 야간 조명 아래 골키퍼가 공을 쳐내고 영 보이스와 비스무트 선수들이 뛰어드는 경기 사진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디자인: 삥이FC. 사진은 1959년 4월 1일 암스테르담 올림피스 스타디온의 8강 재경기 영 보이스-비스무트(Anefo, Wim van Rossem).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4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8-59

공식 베스트 11이 없던 네 번째 대회

대회 기간
1958년 8월 26일-1959년 6월 3일
참가
28개 구단 · 기권 2
경기 수
55경기 · 199골
우승
레알 마드리드 CF 스페인 1945-1977년 국기
준우승
스타드 드 랭스 프랑스 국기
4강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1945-1977년 국기 · BSC 영 보이스 스위스 국기
득점왕
쥐스트 퐁텐 프랑스 국기 · 스타드 드 랭스 · 10골
득점 2위
바바 브라질 국기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8골
득점 3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 레알 마드리드, 호아킨 페이로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6골
도움 순위
공식 집계 없음

득점은 UEFA 경기 데이터를 RSSSF와 대조한 값이다. 도움은 이 시즌은 물론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전체 순위와 두 자료가 갈린 골은 1958-59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에 정리했다. [1][2]

네 번째 유러피언컵도 트로피 하나만 남기고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스타드 드 랭스를 2-0으로 이겨 대회가 생긴 뒤 네 번의 결승을 모두 이겼다. 그해에도 대회를 대표할 11명의 명단은 누구도 발표하지 않았다. 예선부터 8강까지는 1958-59 유러피언컵 본편, 사라고사 재경기까지 이어진 다섯 경기는 4강 편, 슈투트가르트의 결승은 결승 하이라이트에서 이어진다.

이번 시즌의 고민은 9번이었다. 득점 1위 퐁텐, 2위 바바, 공동 3위 디스테파노가 모두 9번을 가장 많이 달았다. 디스테파노는 레알의 일곱 경기에서 모두 9번, 바바는 아틀레티코의 10경기에서 모두 9번이었고, 퐁텐은 일곱 경기 가운데 네 경기를 9번, 세 경기를 8번으로 뛰었다. 센터 포워드는 한 자리뿐이다. 필자는 디스테파노를 9번 자리에 두고, 8번으로 세 경기를 뛴 퐁텐을 인사이드 라이트로 옮겼다. 그 대신 바바가 명단 밖으로 나갔다. 1956-57 편에서 디스테파노를 오른쪽 하프로 내렸을 때와 같은 방식이라, 전술판 설명과 선수 카드, 기록 기준 세 곳에 함께 밝힌다.

나머지 10자리는 원칙대로 채웠다. UEFA가 공개한 55경기의 선발 명단에서 선수마다 어떤 번호를 달았는지 모았고, 고정 등번호가 없던 시절이라 그날의 번호를 그날의 역할로 읽었다. 그다음 득점과 출전 경기의 실점을 겹쳐 누가 어느 자리에서 대회의 흐름을 틀었는지 따졌다. [1][2]

11명을 읽는 법

전형은 당시 유럽 구단들이 쓰던 WM(WM formation; 수비 3명, 하프 2명, 인사이드 2명과 전방 3명이 W와 M 모양을 이루는 전형)을 따랐다. GK는 골키퍼, FB는 풀백, CH는 센터 하프, RH·LH는 오른쪽·왼쪽 하프, OL·IL·CF·IR·OR는 아웃사이드 레프트·인사이드 레프트·센터 포워드·인사이드 라이트·아웃사이드 라이트다. 앞선 시즌들과 같이 현대의 포지션으로 바꾸지 않고 당대 역할어를 그대로 둔다.

아래 전술판은 서로 다른 네 구단의 선수를 한 화면에 세운 회고적 배열이다. 레알과 랭스 모두 3번이 가운데 수비를 맡았다. 결승 명단도 레알은 마르키토스·산타마리아·사라가, 랭스는 로지크·종케·지로도 순서로 적혀 있다. 그래서 랭스의 3번 종케가 센터 하프 자리에, 레알의 2번과 4번이 양쪽 풀백 자리에 선다. 퐁텐의 IR은 필자 배치다. [1][2]

엔리케 코야르OL엔리케 코야르아틀레티코 · 10경기 5골
호아킨 페이로IL호아킨 페이로아틀레티코 · 10경기 6골
알프레도 디스테파노CF알프레도 디스테파노레알 · 7경기 6골
쥐스트 퐁텐IR쥐스트 퐁텐랭스 · 7경기 10골
클라우스 칭크OR클라우스 칭크비스무트 · 6경기 5골
호세 마리아 사라가LH호세 마리아 사라가레알 · 6경기
후안 산티스테반RH후안 산티스테반레알 · 7경기 2골
라파엘 레스메스FB라파엘 레스메스레알 · 7경기
로베르 종케CH로베르 종케랭스 · 8경기
마르키토스FB마르키토스레알 · 5경기
도미니크 콜로나GK도미니크 콜로나랭스 · 9경기
도미니크 콜로나
GK · 골키퍼도미니크 콜로나Dominique Colonna

스타드 드 랭스 스타드 드 랭스 문장 · 9경기 8실점 · 무실점 4회

마르키토스
FB · 풀백마르키토스Marcos Alonso Imaz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5경기 · 등번호 2번

로베르 종케
CH · 센터 하프로베르 종케Robert Jonquet

스타드 드 랭스 스타드 드 랭스 문장 · 8경기 · 무실점 4회

라파엘 레스메스
FB · 풀백라파엘 레스메스Rafael Lesmes Bobed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 등번호 4번

후안 산티스테반
RH · 라이트 하프후안 산티스테반Juan Santisteban Troyano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2골

호세 마리아 사라가
LH · 레프트 하프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6경기 · 결승 주장

클라우스 칭크
OR · 아웃사이드 라이트클라우스 칭크Klaus Zink

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 SC 비스무트 카를마르크스슈타트 문장 · 6경기 5골

쥐스트 퐁텐
IR · 인사이드 라이트 · 필자 배치쥐스트 퐁텐Just Louis Fontaine

스타드 드 랭스 스타드 드 랭스 문장 · 7경기 10골 · 득점왕 · 9번 4경기, 8번 3경기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CF · 센터 포워드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 · 7경기 6골

호아킨 페이로
IL · 인사이드 레프트호아킨 페이로Joaquín Peiró Luca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문장 · 10경기 6골

엔리케 코야르
OL · 아웃사이드 레프트엔리케 코야르Enrique Collar Monterrubio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문장 · 10경기 5골

골문과 최후방

골문은 결승에서 진 팀의 도미니크 콜로나(Dominique Colonna; 프랑스 골키퍼, 1928-2023)에게 맡겼다. 랭스가 치른 아홉 경기를 모두 1번으로 지켰고 여덟 골을 내줬다. 헬싱긴 팔로세우라와의 16강 두 경기, 그리고 8강과 4강에서 원정 패배를 뒤집은 랭스의 홈 두 경기, 모두 네 경기가 무실점이었다. 스탕다르 리에주와 영 보이스를 상대로 각각 0-2, 0-1로 지고 돌아온 랭스는 두 번 모두 3-0으로 이겼는데, 그 두 경기에서 콜로나의 골문에는 공이 들어가지 않았다. [1]

우승팀 레알은 골문을 둘로 나눴다. 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스페인 골키퍼, 1927-1994)가 16강과 8강의 네 경기에서 두 골, 로헬리오 도밍게스(Rogelio Antonio Domínguez; 아르헨티나 골키퍼)가 아틀레티코와의 4강 세 경기와 결승에서 세 골을 내줬다. 경기당 실점은 레알의 두 사람이 낮지만, 대회 전체를 혼자 맡은 쪽은 콜로나였다. 한 사람의 11명을 고르는 자리라 아홉 경기를 버틴 쪽을 택했다. [1]

그 앞의 중앙에는 랭스의 주장 로베르 종케(Robert Jonquet; 프랑스 수비수, 1925-2008)가 선다. 아즈 FC와의 예선 홈경기 하나를 빼고 여덟 경기에 모두 3번으로 나섰고, 랭스는 그가 선 여덟 경기에서 여섯 골을 내줬다. 무실점 네 경기도 모두 그가 선 경기다. 1956년 파리의 첫 결승에서도 주장 완장을 찼다. 그 결승과 3년 뒤 슈투트가르트의 결승을 모두 뛴 랭스 선수는 종케와 지로도, 르블롱, 블리아르 넷뿐이었다. 레알의 호세 산타마리아와 이 자리를 두고 저울질했다. 두 사람 모두 여덟 경기에 3번으로 나섰고, 실점은 산타마리아가 하나 적고 무실점 경기는 종케가 하나 많다. [1][4]

오른쪽 풀백은 마르키토스(Marcos Alonso Imaz; 스페인 수비수, 1933-2012)다. 베식타시와의 16강 두 경기, 비너 SC와의 8강 두 경기, 그리고 결승에 2번으로 나섰다. 다섯 경기에서 레알은 두 골만 내줬고 무실점이 세 번이었다. 1956년 파리 결승에서 67분 동점골을 넣었던 그 수비수다. 아틀레티코와의 4강 세 경기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고, 결승에서 다시 2번을 달았다. [1][4]

왼쪽 풀백은 라파엘 레스메스(Rafael Lesmes Bobed; 스페인 수비수)다. 결승 하나를 빼고 레알의 일곱 경기에 모두 4번으로 나섰다. 레알이 대회 내내 내준 다섯 골이 모두 그가 선 경기에서 나왔지만, 그 다섯 골 가운데 세 골이 같은 도시의 아틀레티코와 치른 세 경기에서 나왔다. 아틀레티코의 페이로, 코야르, 바바를 세 번 연달아 상대한 수비 라인에서 레스메스는 한 경기도 빠지지 않았다. [1]

두 하프

오른쪽 하프는 후안 산티스테반(Juan Santisteban Troyano; 스페인 미드필더, 1936-2023)이다. 레알의 일곱 경기에 나서 여섯 경기를 5번, 베식타시 원정 한 경기를 8번으로 뛰었다. 하프로 두 골을 넣었는데 모두 베식타시와의 16강에서 나왔다. 베르나베우의 1차전 2-0 승리에서 57분, 이스탄불의 2차전에서 13분 선제골을 넣어 1-1을 만들었다. 이 시즌 레알이 결승까지 오는 길에서 디스테파노 다음으로 골을 많이 넣은 선수 넷 가운데 하나가 그였다. [1]

왼쪽 하프는 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스페인 미드필더, 1930-2012)다. 여섯 경기에 나서 다섯 경기를 6번으로 뛰었고, 결승에서는 4번을 달고 주장 완장을 찼다. 한 시즌 전 편에서 일곱 경기에 모두 6번으로 나서고도 던컨 에드워즈에게 자리를 내줬던 선수다. 1956년 파리의 첫 결승에서도 뛰었고, 미겔 무뇨스가 떠난 이 시즌 결승에서는 그가 주장이었다. [1][2]

다섯 공격

오른쪽 끝은 비스무트의 클라우스 칭크(Klaus Zink; 동독 공격수)다. 여섯 경기 가운데 다섯 경기를 7번, 암스테르담 재경기를 10번으로 뛰었다. 페트롤룰 플로이에슈티와의 키이우 재경기 4-0 승리에서 4분 선제골, IFK 예테보리와의 16강 두 경기에서 세 골, 영 보이스와의 8강 1차전에서 59분 골을 넣었다. 동독 구단으로는 처음 8강에 오른 비스무트의 공격을 오른쪽에서 이끌었다. 레알의 레몽 코파와 이 자리를 두고 저울질했는데, 코파는 일곱 경기(7번 여섯 경기, 9번 한 경기)에서 한 골을 넣었고 결승 초반에 다쳤다. [1][3]

그 안쪽 인사이드 라이트에 필자는 득점왕 쥐스트 퐁텐(Just Louis Fontaine; 프랑스 공격수, 1933-2023)을 세웠다. 랭스의 아홉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에 나서 네 경기를 9번, 세 경기를 8번으로 뛰었다. 8번을 단 세 경기에서 아즈와의 홈경기 두 골, 스탕다르와의 8강 2차전 두 골을 넣었으니 인사이드의 자리에서도 골을 넣은 선수다. 10골 가운데 네 골은 예선 아즈 원정에서, 두 골은 루앙에서 치른 16강 원정에서 나왔다. 1958 FIFA 월드컵의 13골에 이어 같은 해 가을부터 다시 10골을 넣었다. 그러나 영 보이스와의 4강 두 경기와 결승에서는 골이 없었다. [1][2]

한가운데는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센터 포워드, 1926-2014)다. 레알의 여덟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에 모두 9번으로 나서 여섯 골을 넣었다. 그중 네 골이 비너 SC와의 8강 2차전 7-1 경기에서 나왔고, 사라고사 재경기의 16분 선제골, 결승의 47분 골이 뒤를 이었다. 레알의 16골 가운데 여섯 골을 혼자 넣었고, 4강 재경기와 결승, 대회의 마지막 두 경기에서 모두 첫 골이나 쐐기골을 넣었다. 유러피언컵 결승 네 번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1][3]

인사이드 레프트는 아틀레티코의 호아킨 페이로(Joaquín Peiró Lucas; 스페인 공격수, 1936-2020)다. 아틀레티코가 치른 10경기에 모두 10번으로 나섰다. 대회에서 10경기를 모두 같은 번호로 뛴 공격수는 그와 바바, 코야르 셋뿐이다. 드럼콘드라 FC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네 골, CDNA 소피아와의 16강 1차전에서 79분 골, FC 샬케 04와의 8강 1차전에서 마지막 골을 넣어 여섯 골이 됐다. 레알과의 4강 세 경기까지 한 경기도 쉬지 않았다. [1]

마지막 자리, 왼쪽 끝은 엔리케 코야르(Enrique Collar Monterrubio; 스페인 왼쪽 윙어, 1934-2022)다. 아틀레티코의 10경기에 모두 11번으로 나서 다섯 골을 넣었다. 드럼콘드라와의 두 경기에서 세 골을 넣은 뒤에는 한동안 골이 없다가, 레알과의 4강에서 두 골을 넣었다. 메트로폴리타노의 2차전 1-0 승리의 43분 결승골, 사라고사 재경기의 18분 동점골이다. 아틀레티코가 레알을 상대로 넣은 세 골 가운데 두 골이 그의 것이었다. 레알의 파코 헨토와 이 자리를 두고 저울질했는데, 헨토는 여덟 경기에 모두 11번으로 나서 한 골을 넣었다. [1]

명단 밖에 남은 이름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바바(Edvaldo Izídio Neto, Vavá; 브라질 공격수, 1934-2002)다. 아틀레티코의 10경기에 모두 9번으로 나서 여덟 골로 득점 2위에 올랐고, 예선부터 8강까지 매 라운드 골을 넣었다. 9번 자리에는 디스테파노가, 인사이드 라이트에는 8번 경기가 있는 퐁텐이 섰고, 아틀레티코의 10번 자리에는 페이로가 있었다. 바바를 넣으려면 9번밖에 달지 않은 선수를 인사이드로 옮겨야 해서 이번에는 남겼다. [1]

수비에서는 레알의 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우루과이·스페인 수비수, 1929-2026)가 끝까지 남았다. 헨토와 함께 레알의 여덟 경기를 모두 뛴 선수이고, 여덟 경기 모두 3번이었다. 레알은 그가 선 여덟 경기에서 다섯 골만 내줬다. 종케와의 차이는 무실점 경기 하나였다. 랭스의 브뤼노 로지크(Bruno Rodzik; 프랑스 수비수)도 아홉 경기에 모두 2번으로 나섰지만, 오른쪽 풀백은 다섯 경기에서 두 골만 내준 마르키토스가 앞섰다. [1]

공격에서는 레알의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와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 랭스의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프랑스 공격수, 1931-2018)가 남았다. 피앙토니는 랭스의 아홉 경기에 모두 나서 다섯 골을 넣었고, 영 보이스와의 4강 2차전에서 두 골을 넣어 랭스를 결승에 올렸다. 다섯 경기를 9번, 네 경기를 10번으로 뛰어 페이로와 10번 자리를 두고 겨뤘는데, 한 골 차이와 10경기 전부를 같은 번호로 뛴 페이로 쪽으로 기울었다. 비너 SC의 요제프 하메를(Josef Hamerl; 오스트리아 공격수, 1931-2017)은 유벤투스와의 예선 7-0 경기에서 네 골을 넣고 다섯 골로 공동 5위에 올랐지만 10번 자리에서 같은 이유로 남았다. 레알의 페렌츠 푸스카스는 4강에서 두 골을 넣었지만 다섯 경기 출전에 결승 명단에 없었다. [1][2]

그렇게 추리고 나니 레알에서 다섯 명, 랭스에서 세 명, 아틀레티코에서 두 명, 비스무트에서 한 명이 남았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이 여덟 명을 냈고, 4강에서 레알과 세 경기를 치른 아틀레티코가 두 명을 더했다. 네 번째 유러피언컵은 레알의 4연패로 끝났다. 그 대회에서 레알을 이긴 팀은 메트로폴리타노의 아틀레티코 하나였고, 결승에서 진 랭스는 골문과 수비 한가운데, 득점왕까지 세 자리를 이 명단에 남겼다.

출처와 기록 기준

  1.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8/59 matches and line-ups」, UEFA 경기 데이터. 55경기의 선발 명단, 선수별 등번호, 득점과 실점.
  2. 「European Champions’ Cup 1958-59 - Details」, RSSSF. 경기별 득점자, 결승 명단과 주장.
  3. 「Reims succumb to Madrid for a second time」, UEFA. 결승 초반 코파의 부상과 디스테파노의 47분 골.
  4. 「European Champions’ Cup 1955-56 - Details」, RSSSF. 1956년 파리 결승의 두 팀 선발 명단, 주장과 득점자.

1958-59 시즌에는 공식 대회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11명은 삥이FC가 2026년 선정한 회고 명단이다. 출전 경기와 실점·무실점은 UEFA 경기 데이터의 선발 명단과 경기 결과, 득점은 UEFA와 RSSSF로 맞춘 기록을 기준으로 하며 공식 도움 통계는 없어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역할어는 선수가 가장 많이 단 등번호와 당시 구단의 번호 체계를 따랐다. 예외는 쥐스트 퐁텐 한 사람으로, 9번을 네 경기, 8번을 세 경기 달았는데 9번 자리에 디스테파노를 두면서 필자가 8번 경기를 근거로 인사이드 라이트에 세웠다. 사진: 도미니크 콜로나 Anefo(1963년 3월 12일, Joop van Bilsen, CC0), 호아킨 페이로 1962년 초상(작자 미상, CC BY-SA 3.0 nl, 이상 Wikimedia Commons), 클라우스 칭크 삥이FC 1958-59 득점 순위 도판, 라파엘 레스메스·후안 산티스테반·호세 마리아 사라가·엔리케 코야르 삥이FC 축쿼드 선수 카드, 쥐스트 퐁텐 1958 FIFA 월드컵 베스트 11 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마르키토스 1956-57 편, 로베르 종케 1955-56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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