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 LEGEND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탱크(The Tank), 맨유 역사상 축구를 가장 잘한 선수

더들리의 열여섯 살이 1군에 서고, 열여덟 살에 잉글랜드 대표가 되고, 스물한 살에 뮌헨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버스비의 아이들의 2번 리그 우승, 베를린의 골, 하이버리의 5-4와 베오그라드의 마지막 경기, 셔츠 번호 하나에 담긴 자리까지. 클럽·대회별 스탯과 역대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짙은 색 깃 달린 유니폼을 입고 팔짱을 낀 채 웃는 젊은 던컨 에드워즈의 흑백 사진과 잉글랜드 국기, 맨유 대장 문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던컨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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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영국 국기
UNITED KINGDOM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잉글랜드 국기
ENGLAND잉글랜드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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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세 마리 사자와 장미가 그려진 잉글랜드 축구 협회 문장
#FA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별 하나 아래 세 마리 사자가 그려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ENG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England national football team | Three Lions (스리 라이언스; 세 마리 사자)
편집자 평가

1878년 철도 노동자들의 클럽으로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를 물으면 많은 사람이 바비 찰턴을 꼽는다. 축구를 가장 잘한 선수를 물으면,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던컨 에드워즈를 꼽는다. 열여섯 살에 1군에 서고 열여덟 살에 잉글랜드 대표가 된 레프트 하프였다. 태클로 공을 빼앗고 그대로 몰고 올라가 골까지 넣었으며, 감독이 필요하면 센터포워드와 센터백도 맡았다. 1958년 2월 뮌헨 비행기 참사로 스물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그가 살았다면 1950-60년대 유럽 축구의 얼굴들과 나란히 섰을 것이라고 본다.

던컨 에드워즈 플레이공을 빼앗고 그대로 끌고 올라가는 레프트 하프1 / 8

짙은 유니폼의 에드워즈가 태클로 공을 따내고 흰 유니폼 사이를 몰고 나간다.

삥이FC 던컨 에드워즈 평가

  1. 바비 찰턴(Bobby Charlto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966 월드컵 우승 잉글랜드의 공격수, 1937-2023)은 1999년 더들리에서 에드워즈의 동상을 제막하며 이렇게 말했다. 맨유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이 스스로를 낮춰 가며 꼽은 단 한 명이다.

나를 초라하게 느끼게 만든 선수는 그 하나뿐이었다.

He was the only player who made me feel inadequate.

- 바비 찰턴, 1999년 더들리의 에드워즈 동상 제막식에서
  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878년 랭커셔·요크셔 철도 회사의 노동자들이 세운 뉴턴 히스(Newton Heath LYR Football Club;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신)에서 시작했다. 그 긴 역사에서 선수들을 쭉 늘어놓고 누가 가장 위대했느냐고 물으면 대다수는 찰턴이라고 답할 것이다. 누가 축구를 가장 잘했느냐고 물으면, 에드워즈를 아는 팬들은 에드워즈라고 답한다. 필자는 두 질문의 답이 다르다는 데서 에드워즈의 자리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찰턴은 뮌헨에서 살아남아 1966년 월드컵과 1968년 유러피언컵을 들었고, 에드워즈는 스물한 살에 멈췄다. 업적의 크기는 찰턴이 크다. 공을 차는 사람으로서의 크기는 찰턴 자신이 에드워즈 쪽으로 손을 들었다.

  2. 에드워즈는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를 맡았다. 킥과 패스, 드리블, 시야, 판단의 속도까지 축구 선수가 갖춰야 할 것을 고루 갖췄다. 1957년 3월 FA컵 8강 본머스 원정에서는 토미 테일러가 빠져 센터포워드로 나섰고, 10분 만에 센터백 마크 존스가 실려 나가자 그 자리로 내려가 10명으로 2-1 역전승을 지켰다. 한 경기 안에서 맨 앞과 맨 뒤를 오간 선수였다.

  3.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에드워즈는 펠레, 가린샤, 군나르 노르달, 줄리뉴, 존 찰스, 푸슈카시 페렌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레몽 코파, 에우제비우와 함께 1950-60년대를 나눠 가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맨유의 역사도 레알 마드리드나 유벤투스에 버금갔을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다.

  4. 같은 만약을 남긴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1949년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그란데 토리노와 함께 세상을 떠난 주장 발렌티노 마촐라(Valentino Mazzola; 그란데 토리노의 주장, 1919-1949)다. 두 사람 모두 비행기 사고로 한 시대의 가장 강한 팀과 함께 사라졌다. 토리노의 이야기는 위대한 토리노 편에 있다.

던컨 에드워즈 프로필

잉글랜드 국기ENGLAND잉글랜드England
본명
Duncan Edwards
별명
빅 던크(Big Dunc) · 탱크(The Tank)
출생
1936년 10월 1일
출생지
잉글랜드 우스터셔 더들리(현 웨스트미들랜즈)
사망
1958년 2월 21일 · 향년 21세
사망지
서독 뮌헨 레히츠 데어 이자르 병원
신장
180cm
대표 국적
잉글랜드
포지션
레프트 하프 · 인사이드 레프트 · 센터포워드
주요 등번호
6번
선수 경력
1953-1958년
대표팀
1955-1957년 · 18경기 5골

더들리의 아이, 열여섯 살의 1군

에드워즈는 1936년 10월 1일 잉글랜드 중부 블랙 컨트리의 공업 도시 더들리(Dudley; 버밍엄 서쪽의 탄광·제철 도시)의 홀리 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글래드스턴은 금속 연마공이었다. 가족은 곧 프라이어리 단지의 엘름 로드로 옮겼고, 1947년에 태어난 여동생 캐럴 앤은 14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즈는 집안에서 어른이 된 단 하나의 아이였다.

열두 살에 그는 세 살 많은 아이들과 함께 더들리 학생 대표로 뛰었다. 1950년 5월 잉글랜드 14세 이하 대표에 처음 뽑혔고, 1951년 3월에는 아일랜드와 맞붙을 잉글랜드 학생 대표의 주장이 됐다. 그해 4월에는 웸블리에서 웨일스와의 학생 국가대항전을 뛰었다. 잉글랜드 학생 대표로 아홉 경기를 뛰어 당시 최다 기록을 세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카우트 잭 오브라이언은 맷 버스비(Matt Busby; 1945-196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1909-1994)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특별히 지켜볼 만한 열두 살 소년을 방금 봤습니다. 이름은 던컨 에드워즈, 더들리 출신입니다.

I've just seen a 12-year-old boy who merits special watching. His name is Duncan Edwards of Dudley.

- 잭 오브라이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카우트가 맷 버스비에게

1부 리그 구단 여럿이 그를 원했다. 1952년 6월 2일, 버스비의 오른팔 지미 머피(Jimmy Murphy;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이자 웨일스 대표팀 감독, 1910-1989)와 유소년 코치 버트 웨일리가 한밤중에 더들리를 찾아가 열다섯 살의 서명을 받아 왔다. 그해 처음 열린 FA 유스컵에서 에드워즈는 유소년 팀의 주장으로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첫 경기 4-0부터 우승까지 함께했고, 한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기도 했다. 이듬해 유스컵도 맨유가 다시 들었다.

1953년 4월 4일, 프로 계약을 맺기도 전에 버스비는 그를 올드 트래퍼드의 카디프 시티전에 내보냈다. 16세 185일,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에 선 가장 어린 선수였다. 맨유는 1-4로 졌지만 지역 신문은 공격의 시작이 된 그의 걷어 내기와 25야드 중거리를 적었다. 그해 8월 『선데이 익스프레스』에 칼럼을 쓰던 스탠리 매슈스(Stanley Matthews; 블랙풀의 윙어이자 첫 발롱도르 수상자, 1915-2000)는 아직 1군 한 경기를 뛴 소년을 두고 이렇게 썼다.

이 젊은 하프백은 모든 것을 가졌다. 체격, 힘, 기술, 용기. 거리를 가리지 않는 그의 대각선 패스는 멀리서라도 보러 갈 만하다.

This young half-back has everything... size, power, skill and courage. It is worth going a long way to see his cross-field pass, with distance no object.

- 스탠리 매슈스, 1953년 8월 『선데이 익스프레스』 칼럼에서

두 달 뒤 에드워즈는 다섯 번째 1군 경기에서 매슈스의 블랙풀을 4-1로 꺾는 데 힘을 보탰다. 그해 5월 FA컵을 든 국가대표들의 팀이었다. 17번째 생일인 1953년 10월 1일 프로 계약을 맺었고, 이때부터 1군 명단에서 거의 빠지지 않았다. 1954년 1월 뉴캐슬 원정 2-1 승리 뒤 『데일리 미러』는 그를 헤비급 세계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에 견줬다.

버스비의 아이들과 2번의 리그 우승

버스비는 전쟁 뒤 유소년에서 키운 선수들로 1군을 채웠다. 언론은 이 팀을 버스비의 아이들(Busby Babes)이라 불렀다. 라이트 하프 에디 콜먼, 레프트 하프 에드워즈, 센터포워드 토미 테일러, 인사이드 포워드 데니스 바이올렛, 윙어 데이비드 페그가 그 중심이었다. 에드워즈는 그 가운데서도 클럽과 대표팀 명단에 늘 가장 먼저 적히는 이름이었다.

흰 V넥 깃의 짙은 유니폼과 흰 바지를 입은 던컨 에드워즈가 경기장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흑백 사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에드워즈. 열일곱 살부터 1군 명단에서 거의 빠지지 않았다.

1955년 6월 그는 찰턴과 함께 병역으로 슈루즈베리 근처 네스클리프의 육군 탄약 보급창에 배치됐다. 탄약 창고를 맡은 병사였다. 군은 그가 맨유 경기에 나가도록 허락했다. 주말에는 맨유와 잉글랜드, 주중에는 부대 팀 경기를 뛰어 한 시즌에 100경기를 넘긴 적도 있다. 병역 중에 그는 훗날 약혼녀가 되는 몰리 리치를 만났다. 차를 갖고 있었지만 운전은 하지 못해 자전거로 다녔고, 몰리의 집에서 돌아오다 전조등이 없다는 이유로 붙잡혀 세일 치안 법원에서 10실링 벌금을 냈다. 버스비는 구단의 이름을 더럽혔다며 그에게 2주 치 급여를 따로 물렸다.

1955-56 시즌 맨유는 2위와 승점 11점 차로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에서 우승했다. 승리에 2점을 주던 시절이고, 선수단의 평균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1956-57 시즌에는 8점 차로 다시 우승했다. 에드워즈는 두 시즌 리그 67경기에서 8골을 넣었다.

에드워즈의 자리는 6번 레프트 하프였다. 지금의 중앙 미드필더에 가깝다. 상대 인사이드 포워드를 맡아 공을 끊고, 끊은 공을 그대로 몰고 상대 진영까지 올라갔다. 양발을 다 썼고, 서서 하는 태클만큼 미끄러지는 태클도 정확했다. 필요하면 감독은 그를 인사이드 레프트나 센터포워드로 올렸다. 버스비의 말이 그 쓰임새를 설명한다.

훈련 때 선수들을 보며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는지 찾곤 했다. 던컨을 보다가는 그의 약점을 찾으려던 것을 포기했다.

We used to look at players in training to see if we might have to get them to concentrate more on something. We looked at Duncan, and gave up trying to spot flaws in his game.

- 맷 버스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소개문에서

열여덟 살의 잉글랜드, 베를린의 골

잉글랜드 대표 데뷔는 1955년 4월 2일 웸블리의 스코틀랜드전이었다. 18세 183일, 전쟁 뒤 잉글랜드에서 가장 어린 국가대표였고, 이 기록은 1998년 마이클 오언이 깰 때까지 20세기 내내 남았다. 잉글랜드는 7-2로 이겼다. 그 전에 그는 이미 1954년 잉글랜드 B팀의 최연소 선수가 돼 있었다.

1956년 5월 26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잉글랜드는 2년 전 월드컵 우승국 서독을 3-1로 이겼다. 에드워즈가 선제골을 넣었다. 그날의 주장 빌리 라이트(Billy Wright;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센터백이자 잉글랜드 주장, 1924-1994)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 경기를 본 모든 사람의 입에 던컨 에드워즈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The name of Duncan Edwards was on the lips of everyone who saw this match.

- 빌리 라이트, 1956년 베를린의 서독전을 돌아보며

1956년 12월 5일 고향에서 멀지 않은 울버햄프턴 몰리뉴의 월드컵 예선 덴마크전에서는 10번을 달고 인사이드 레프트로 나서 두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는 5-2로 이겼다. 1957년 4월 6일 웸블리의 스코틀랜드전 2-1에서도 골을 넣었고, 5월에는 아일랜드와 덴마크를 상대로 한 예선 세 경기를 모두 뛰어 1958 스웨덴 월드컵 본선행을 도왔다. 마지막 A매치는 1957년 11월 27일 웸블리의 프랑스전 4-0이다. 대표팀 18경기 가운데 17경기를 레프트 하프로 뛰었고, 다섯 골을 넣었다.

유러피언컵과 1957년의 웸블리

1956-57 시즌 맨유는 잉글랜드 구단으로는 처음 유러피언컵에 나갔다. 1956년 9월 26일 맨체스터 시티의 홈 메인 로드를 빌려 치른 안데를레흐트전은 10-0이었다. 지금도 맨유의 유럽 대항전 최다 점수 차 승리다. 8강에서는 빌바오 원정에서 3-5로 지고 돌아와, 1957년 2월 6일 메인 로드에서 아틀레틱 클루브를 3-0으로 뒤집었다.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데스먼드 해킷은 에드워즈를 그날 경기의 주인공이라 적었다. 4강에서 맨유는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에 1-3, 2-2로 막혔다. 에드워즈는 맨유의 그 대회 여덟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를 뛰었다. 4강의 이야기는 1956-57 유러피언컵 4강 편에 있다.

BEA 여객기 트랩과 그 앞에 정장 차림으로 줄지어 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의 흑백 사진
1955년 덴마크에 도착해 BEA 여객기 트랩 앞에 선 버스비의 아이들. 유럽으로 가는 길은 늘 비행기였다.

같은 시즌 맨유는 FA컵 결승에도 올라 리그와 FA컵을 함께 드는 더블을 노렸다. 1957년 5월 4일 웸블리에서 애스턴 빌라에 1-2로 졌다. 그해 에드워즈는 잉글랜드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톰 피니(Tom Finney;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윙어, 1922-2014)에 이어 2위에 올랐고,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최종 후보 10명에 들었다. 축구 선수는 피니와 매슈스, 에드워즈 셋이었다. 피니는 에드워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워낙 힘이 세서 사람들은 그 힘만 봤다. 그의 터치는 누구보다 섬세했다.

He was so strong people could only see the power, but he had a most delicate touch.

- 톰 피니, 동시대 잉글랜드 대표 동료

12월 발표된 1957년 발롱도르에서 에드워즈는 레몽 코파와 함께 16점으로 공동 3위에 올랐다. 1위 디스테파노, 2위 같은 잉글랜드의 빌리 라이트였다. 1956년 첫 발롱도르에서는 13위였다. 그해 투표의 이야기는 1957 발롱도르 편에 있다.

하이버리의 5-4, 뮌헨의 활주로

1957-58 시즌 맨유는 리그 3연패와 FA컵, 유러피언컵을 한꺼번에 노렸다. 1958년 2월 1일 하이버리의 아스널전에서 에드워즈는 선제골을 넣었고 맨유는 5-4로 이겼다. 그가 잉글랜드에서 뛴 마지막 경기다. 나흘 뒤 2월 5일 베오그라드에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3-3으로 비겨 합계 5-4로 4강에 올랐다.

2월 6일 귀국길의 영국 유럽 항공 609편은 급유를 위해 뮌헨-림 공항에 내렸다. 왼쪽 엔진 문제로 이륙을 두 번 멈춘 뒤 세 번째로 활주로를 달렸고, 눈이 녹아 고인 진창에 속도를 잃고 활주로 끝 담장과 집을 들이받았다. 선수 일곱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에드워즈는 두 다리와 갈비뼈가 부러지고 신장이 크게 다친 채 레히츠 데어 이자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식을 찾은 그는 병실을 찾은 머피에게 물었다.

울브스전 킥오프가 몇 시예요, 지미? 그 경기는 놓치면 안 되는데.

What time is the kick off against Wolves, Jimmy? I mustn't miss that match.

- 던컨 에드워즈, 뮌헨의 병원에서 지미 머피에게

몰리 리치는 병원을 지키며 기자들에게 그의 상태를 묻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 몸이라면 이겨 낼 것이라 믿었다. 에드워즈는 사고 열닷새 뒤인 1958년 2월 21일 새벽 2시 15분에 숨졌다. 뮌헨 참사로 세상을 떠난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선수였다. 그 시즌과 참사 뒤 맨유의 이야기는 1957-58 유러피언컵 편과 맷 버스비 시대 맨유 베스트 11에 있다.

더들리로 돌아온 에드워즈

닷새 뒤 프라이어리 단지의 세인트 프랜시스 교회에서 장례가 열렸고, 5,000명이 교회 밖을 메웠다. 그는 스타워브리지 로드의 더들리 묘지, 여동생 캐럴 앤 곁에 묻혔다.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졌다.

떠올리기 슬픈 기억의 날, 작별 인사도 없이 그는 우리 모두를 떠났다.

A day of memory, sad to recall. Without farewell, he left us all.

- 더들리 묘지의 던컨 에드워즈 묘비
검은 묘비 앞에 꽃다발과 붉은·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머플러가 수북이 놓인 던컨 에드워즈의 무덤
더들리 묘지의 에드워즈 무덤. 여동생 캐럴 앤 곁에 묻혔다.

머피는 훗날 무하마드 알리가 스스로를 가장 위대하다고 할 때마다 웃었다고 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던컨 에드워즈라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였기 때문이다. 1999년 더들리 시장 광장에 공을 차려는 에드워즈의 동상이 섰고, 찰턴이 제막했다. 동상은 시내 재개발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2015년 하이 스트리트로 돌아와 다시 봉헌됐다. 2002년 에드워즈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이 처음 문을 열 때 이름을 올렸다.

세 사자 문장이 달린 흰 유니폼 차림으로 한쪽 다리를 뒤로 들어 공을 차려는 던컨 에드워즈 동상과 이름·경력이 새겨진 돌 받침대
더들리 하이 스트리트의 에드워즈 동상. 1999년 바비 찰턴이 제막했고 2015년 지금 자리로 옮겨졌다.

그가 살았다면 1966년 웸블리에서 줄리메컵을 든 잉글랜드 주장은 바비 무어가 아니라 에드워즈였을지 모른다는 말이 지금도 잉글랜드에서 나온다. 1966년의 무어는 에드워즈와 같은 6번 레프트 하프 출신이었다. 무어의 이야기는 바비 무어 편에 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1902-197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쓰던 맨체스터 시 문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953-1958177경기 · 21골
별이 달리기 전의 세 사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잉글랜드 대표팀1955-195718경기 · 5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FA컵·유러피언컵·FA 채리티 실드를 합한 공식전 기록이다(MUFCInfo의 구단 기록 대장). 리그만 보면 151경기 20골이다. 이 시대 경기는 도움 기록이 남지 않아 적지 않았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며, 잉글랜드 B팀과 학생·청소년 대표 경기는 넣지 않았다. 문장은 에드워즈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대회별 스탯

대회경기골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15120
FA컵121
유러피언컵120
FA 채리티 실드20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62
FIFA 월드컵 예선42
A매치 친선 경기81

클럽은 MUFCInfo의 시즌별 기록, 대표팀은 잉글랜드 대표 경기 기록(englandstats)을 대회별로 나눈 값이다.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은 일곱 경기, 1957-58 시즌은 다섯 경기다. 이 시대 경기는 도움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아 도움 칸을 두지 않았다. 트랜스퍼마크트의 경기별 기록은 리그·유러피언컵·채리티 실드가 위 수치와 같고 FA컵 네 경기가 빠져 있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953-54~1957-58 시즌6 · 9 · 10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잉글랜드1955-1957년 A매치6 · 10

당시 잉글랜드 구단과 대표팀은 고정 등번호 없이 그 경기의 포지션에 따라 1번부터 11번을 받았다. 레프트 하프는 6번이다. 트랜스퍼마크트의 경기별 기록에서 에드워즈는 번호가 남은 클럽 경기 대부분을 6번으로 뛰었고, 1954-55 시즌 두 경기는 10번, 1956-57 시즌에는 센터포워드로 9번 네 경기와 인사이드 레프트로 10번 두 경기를 뛰었다. 1953-54 시즌 이전과 상당수 경기는 번호가 남지 않았다. 대표팀에서는 1956년 12월 5일 덴마크전 한 경기만 10번이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Football League First Division

우승 2회: 1955-56, 1956-57

FA 채리티 실드FA Charity Shield · 현재의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2회: 1956, 1957

FA컵FA Cup

준우승: 1956-57

유러피언컵European Champion Clubs' Cup

4강: 1956-57

던컨 에드워즈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발롱도르1956년 13위 · 1957년 3위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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