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 · 유러피언컵

1956-57 유러피언컵 4강: 피오렌티나·츠르베나 즈베즈다, 레알·맨유의 1차전과 2차전

베오그라드 88분의 한 골과 피렌체의 0-0, 베르나베우 12만 관중 앞의 3-1과 조명을 단 올드 트래퍼드의 2-2. 1956-57 유러피언컵 4강 네 경기와 레알 마드리드·피오렌티나가 결승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읽는다.
피오렌티나·츠르베나 즈베즈다·레알 마드리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옷을 입은 네 토끼와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 문구
두 번째 유러피언컵의 4강, 네 구단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2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6-57

4강 진출팀

구단대표 지역4강 진출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유고슬라비아통산 첫 4강 진출
AC 피오렌티나이탈리아통산 첫 4강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두 번째 4강 진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통산 첫 4강 진출

1957년 4월 3일, 베오그라드에서 두 번째 유러피언컵 4강이 시작됐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AC 피오렌티나의 1차전이었다. 여드레 뒤에는 마드리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맞았다. 첫 대회 4강은 한쪽 대진이 결승 진출을 확정한 다음 날 다른 쪽이 1차전을 치를 만큼 일정이 엇갈렸지만, 이번에는 네 경기가 4월 한 달 안에 1차전 두 경기, 2차전 두 경기 순서로 차례차례 열렸다. [1]

네 팀 가운데 4강이 처음이 아닌 구단은 레알뿐이었다. 나머지 세 팀은 모두 첫 유러피언컵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1년 전 파르티잔이 8강에서 멈췄던 유고슬라비아 축구는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처음 4강에 들었고, 첫 대회에서 밀란이 4강까지 갔던 이탈리아는 이번에 피오렌티나를 올려 보냈다. 결승 장소는 이미 레알의 안방 베르나베우로 정해져 있었다. 예선부터 8강까지의 여정은 참가팀·예선·16강과 8강에서 이어진다. [2]

1956-57 유러피언컵의 원어 명칭과 대회 주관 협회 UEFA를 정리한 도판
1956-57 시즌 유러피언컵 대회 개요. 디자인: 삥이FC.

4강 1차전

4강 1차전 츠르베나 즈베즈다 대 피오렌티나, 레알 마드리드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마우릴리오 프리니 사진, 주심 앞에서 악수하는 선수들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1차전 두 경기의 기록. 위 사진은 마우릴리오 프리니, 아래는 주심 앞에서 악수하는 두 팀 선수. 이미지의 스타디온 파르티자나는 당시 이름 JNA 스타디움, ACF 피오렌티나는 당시 AC 피오렌티나로 읽는다. 디스테파노의 득점 시각은 UEFA 기록 73분이다. 디자인: 삥이FC.

츠르베나 즈베즈다 0-1 피오렌티나: 88분에 깨진 베오그라드의 균형

1957년 4월 3일 · JNA 스타디움, 베오그라드

FK 츠르베나 즈베즈다(Fudbalski klub Crvena zvezda)의 홈 1차전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경기장인 JNA 스타디움(Stadion Jugoslovenske narodne armije)에서 열렸다. 4만 관중 앞에 선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격진에는 16강에서 네덜란드 챔피언을 무너뜨린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유고슬라비아 왼쪽 윙어, 1930-2011)와 베테랑 라이코 미티치(Rajko Mitić; 유고슬라비아 공격수, 1922-2008), 열아홉 살의 드라고슬라브 셰쿨라라츠(Dragoslav Šekularac; 유고슬라비아 공격수, 1937-2019)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1]

맞은편 AC 피오렌티나(Associazione Calcio Fiorentina)의 전방에는 브라질 윙어 줄리뉴(Júlio Botelho; 브라질 오른쪽 윙어, 1929-2003),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겔 몬투오리(Miguel Ángel Montuori; 아르헨티나 출신 이탈리아 공격수, 1932-1998), 주세페 비르질리(Giuseppe Virgili; 이탈리아 공격수, 1935-2016)가 섰다. 풀비오 베르나르디니(Fulvio Bernardini; 이탈리아 감독, 1905-1984) 감독이 이끈 피오렌티나는 원정에서 실점하지 않았고, 경기는 88분까지 0-0이었다. [1], [2]

균형을 깬 사람은 왼쪽 공격수 마우릴리오 프리니(Maurilio Prini; 이탈리아 공격수, 1932-2009)였다. 종료 2분 전의 한 골로 피오렌티나는 원정 승리를 챙겼다. 원정 다득점 규정이 없던 시절이라 이 골이 원정골로서 따로 계산되지는 않았지만, 홈 2차전을 한 골 앞선 채 시작하게 해 준 결승골이었다. [1], [3]

레알 마드리드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2만 관중 앞의 마지막 30분

1957년 4월 11일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UEFA 경기 기록에 적힌 관중은 12만 명이다. 맷 버스비(Sir Alexander Matthew Busby;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1909-1994) 감독의 맨유는 주장 로저 번(Roger William Byrne; 잉글랜드 풀백, 1929-1958)이 수비를 이끌고 에디 콜먼(Edward Colman; 잉글랜드 라이트 하프, 1936-1958)과 던컨 에드워즈(Duncan Edwards; 잉글랜드 레프트 하프, 1936-1958)가 하프 라인을 맡았으며, 토미 테일러(Thomas Taylor; 잉글랜드 센터 포워드, 1932-1958)와 데니스 바이올렛(Dennis Sydney Viollet; 잉글랜드 공격수, 1933-1999)이 전방에 섰다. 레알은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8-1991),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로 공격진을 꾸렸다. [1]

전반은 0-0이었다. 61분 리알의 골로 레알이 앞섰고, 73분 디스테파노가 두 번째 골을 넣었다. 맨유는 82분 테일러의 골로 한 골 차까지 따라붙었지만, 곧바로 엔리케 마테오스(Enrique Mateos Mancebo; 스페인 공격수, 1934-2001)가 3-1을 만들었다. 한 골 차로 맨체스터에 돌아갈 수 있었던 원정은 두 골 차 숙제를 안고 끝났다. [1]

이날 맨유 선발 열한 명 가운데 번, 콜먼, 에드워즈, 테일러와 리엄 휠런(William Augustine Whelan; 아일랜드 인사이드 포워드, 1935-1958), 데이비드 페그(David Pegg; 잉글랜드 왼쪽 윙어, 1935-1958) 여섯 명은 이듬해 2월 뮌헨 공항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6]

4강 2차전

2차전도 1차전과 같은 순서로 열렸다. 4월 18일 피렌체에서 피오렌티나와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4월 25일 맨체스터에서 맨유와 레알이 다시 만났다.

4강 2차전 피오렌티나 대 츠르베나 즈베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레알 마드리드의 득점자·경기 정보와 경기장의 선수들, 레몽 코파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사진을 담은 도판
4강 2차전 두 경기의 기록. 위 사진은 경기장의 두 팀 선수들, 아래는 레몽 코파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이미지의 ACF 피오렌티나는 당시 AC 피오렌티나로 읽는다. 디자인: 삥이FC.

피오렌티나 0-0 츠르베나 즈베즈다: 두 경기 무실점으로 지킨 한 골

1957년 4월 18일 · 스타디오 코무날레, 피렌체

피렌체의 스타디오 코무날레(Stadio Comunale; 현 아르테미오 프랑키 경기장)에 7만 명이 모였다.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1차전과 달리 골문에 블라디미르 베아라(Vladimir Beara; 유고슬라비아 골키퍼, 1928-2014)를 세우는 등 선발을 바꿨고, 피오렌티나는 베오그라드에서 이긴 열한 명을 그대로 내보냈다. [1]

한 골이 필요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도, 한 골을 지키면 되는 피오렌티나도 끝내 골을 넣지 못했다. 경기는 0-0으로 끝났고, 베오그라드에서 프리니가 넣은 한 골이 그대로 대진 전체의 결과가 됐다. 피오렌티나 골키퍼 줄리아노 사르티(Giuliano Sarti; 이탈리아 골키퍼, 1933-2017)는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첫 유러피언컵에 나선 이탈리아 챔피언이 이탈리아 구단으로는 처음 결승에 올랐다. [1], [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2 레알 마드리드: 조명을 단 올드 트래퍼드의 첫 유럽 경기

1957년 4월 25일 · 올드 트래퍼드, 맨체스터

맨유는 이번 시즌 유럽 홈경기 세 번을 모두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 메인 로드(Maine Road)에서 치렀다. 올드 트래퍼드에는 저녁 경기를 치를 조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을 세운 올드 트래퍼드의 첫 조명 경기는 한 달 전인 3월 25일에 열렸고, 레알과의 4강 2차전은 맨유가 올드 트래퍼드에서 치른 첫 유러피언컵 경기가 됐다. UEFA 기록상 관중은 6만 5천 명이다. [4], [5], [1]

두 골 차를 뒤집어야 했던 맨유는 전반에 오히려 두 골을 내줬다. 25분 코파, 33분 리알이 넣으면서 합계는 1-5까지 벌어졌다. 맨유는 52분 테일러의 골로 추격을 시작했고, 85분 바비 찰턴(Sir Robert Charlton; 잉글랜드 공격수, 1937-2023)이 동점골을 넣었다. 찰턴은 이 시즌 10월에 리그 데뷔전을 치른 열아홉 살 공격수로, 시즌 동안 주로 바이올렛의 자리를 이어받으며 출전했고 이날도 10번을 달았다. 경기는 2-2로 끝났지만 합계는 3-5였다. [1], [4]

UEFA의 시즌 회고는 이 4강을 맨유 여정의 끝으로 기록한다. 풋볼리그의 반대를 넘어 처음 유럽에 나선 잉글랜드 챔피언은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두 경기 합계 세 골을 넣고 물러났다. [2]

결승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와 피오렌티나

1956-57 유러피언컵 · 4강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vs AC 피오렌티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로고
FK 츠르베나 즈베즈다FK CRVENA ZVEZDA유고슬라비아 국기유고슬라비아
합계0:1두 경기 결과
AC 피오렌티나 로고
AC 피오렌티나AC FIORENTINA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4강 1차전
0 : 1
4강 2차전
0 : 0
결승 진출
AC 피오렌티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득점 없음

4강 1차전

AC 피오렌티나프리니 88분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득점 없음

4강 2차전

AC 피오렌티나득점 없음

베오그라드 88분 프리니의 한 골을 피렌체의 0-0으로 지켜 냈다.

1956-57 유러피언컵 · 4강

레알 마드리드 CF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로고
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스페인 국기스페인
합계5:3두 경기 결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MANCHESTER UNITED FC잉글랜드 국기잉글랜드
4강 1차전
3 : 1
4강 2차전
2 : 2
결승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61분, 디스테파노 73분, 마테오스 83분

4강 1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테일러 82분

레알 마드리드 CF코파 25분, 리알 33분

4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테일러 52분, 찰턴 85분

베르나베우의 3-1을 들고 간 레알이 올드 트래퍼드에서 2-2로 버텼다.

대진 카드의 1·2차전 스코어는 왼쪽 구단부터 표시한다. 실제 2차전 홈팀은 AC 피오렌티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다.

4강 네 경기 기록날짜·홈과 원정·득점자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구분 날짜 홈 결과 원정 득점
4강 1차전 1957.04.03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0-1 AC 피오렌티나 프리니 88분
4강 1차전 1957.04.11 레알 마드리드 CF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61분, 디스테파노 73분, 마테오스 83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테일러 82분
4강 2차전 1957.04.18 AC 피오렌티나 0-0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득점 없음
4강 2차전 1957.04.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2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코파 25분, 리알 33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테일러 52분, 찰턴 85분

득점 시각은 UEFA 경기 데이터를 따른다. RSSSF는 디스테파노 74분, 마테오스 84분, 2차전 리알 32분, 찰턴 87분으로 적고, 도판은 1차전 디스테파노 골을 63분으로 표기한다.

레알은 4강 두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고 두 시즌 연속 결승에 올랐다. 피오렌티나는 두 경기에서 한 골만 넣었지만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결승행의 방식은 정반대였다. 한 팀은 공격으로 벌린 차이를 원정에서 지켰고, 다른 한 팀은 원정에서 얻은 한 골을 수비로 끝까지 붙들었다. [1]

1957년 5월 30일, 결승은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다. 레알에게는 두 번째 결승이자 안방에서 치르는 첫 결승이고, 피오렌티나에게는 창단 뒤 첫 유럽 결승이다. [1], [2]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