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E DES CLUBS CHAMPIONS EUROPÉENS · FINAL LA SEGUNDA 라 세군다; 스페인어로 ‘두 번째’라는 뜻. 두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을 여는 이름.

1956-57 EUROPEAN CUP · FINAL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1945년부터 사용된 스페인 국기스페인
V90 MINUTES
UNPLAYED
S
AC 피오렌티나 문장AC 피오렌티나AC FIORENTINA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날짜
1957년 5월 30일
장소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관중
124,000명
주심
레오 호른

1957년 5월 30일,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éu)에 12만 4천 명이 들어왔다. 파리의 첫 결승을 지켜본 관중이 4만 명에 못 미쳤으니 1년 만에 세 배가 넘는 사람이 결승을 보러 온 셈이다. 사실 이 숫자는 놀랍지 않다. 결승 장소가 디펜딩 챔피언의 안방으로 정해졌으니, 마드리드 사람에게는 경기장에 가지 않을 이유를 찾는 편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결승에 오른 팀이 자기 홈구장에서 결승을 치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1][6]

레알 마드리드 CF는 첫 우승 멤버에 한 사람을 더했다. 파리 결승에서 상대편 스타드 드 랭스의 공격을 이끌던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가 이번에는 흰 유니폼을 입고 오른쪽 측면에 섰다. 주장 미겔 무뇨스(Miguel Muñoz Mozún; 스페인 미드필더·주장, 1922-1990)와 골키퍼 후안 알론소(Juan Adelarpe Alonso; 스페인 골키퍼, 1927-1994), 수비수 마르키토스(Marcos Alonso Imaz; 스페인 수비수, 1933-2012), 그리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와 파코 헨토, 엑토르 리알로 이어지는 공격진까지, 호세 비야롱가(José Villalonga; 스페인 감독, 1919-1973) 감독의 레알은 한 시즌 전보다 더 무거운 이름으로 결승을 맞았다. 4강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합계 5-3으로 돌려보냈다.[4] 그 두 경기는 1956-57 유러피언컵 4강에서 이어진다.

맞은편의 AC 피오렌티나(Associazione Calcio Fiorentina)는 1955-56시즌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2위 밀란과 승점 12점 차로 차지하고 이 대회에 나왔다. 풀비오 베르나르디니(Fulvio Bernardini; 이탈리아 감독, 1905-1984) 감독의 팀에는 브라질 윙어 줄리뉴(Júlio Botelho; 브라질 오른쪽 윙어, 1929-2003)와 아르헨티나 태생의 미겔 몬투오리(Miguel Ángel Montuori; 아르헨티나 출신 이탈리아 공격수, 1932-1998), 스물한 살의 센터 포워드 주세페 비르질리(Giuseppe Virgili; 이탈리아 공격수, 1935-2016)가 있었다. 16강 IFK 노르셰핑(IFK Norrköping), 8강 그라스호퍼(Grasshopper Club Zürich), 4강 츠르베나 즈베즈다(Crvena zvezda)를 넘으면서 이탈리아 구단으로는 처음 유러피언컵 결승에 올랐다.[1][7] 예선부터 8강까지의 길은 1956-57 유러피언컵 참가팀과 본선에 정리해 두었다.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가운데 두고 단체 사진을 찍은 레알 마드리드 CF 선수들
유러피언컵 트로피와 함께한 레알 마드리드 CF.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AC 피오렌티나 선수들
AC 피오렌티나. 보라색 유니폼에서 나온 별명이 ‘비올라’다.

킥오프 전: 체르바토와 무뇨스가 페넌트를 바꾸다

KICK-OFF · 30 MAY 1957

두 주장과 네덜란드 주심

관중석 앞 중계 장면에 이어, 피오렌티나 주장 체르바토(3번)와 레알 주장 무뇨스가 주심 앞에서 페넌트를 주고받는다.

영상은 마이크를 든 중계진을 잠깐 비춘 뒤 센터서클로 넘어간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심판진 사이에서 두 주장이 페넌트를 교환한다. 등번호 3번을 단 피오렌티나 주장은 왼쪽 풀백 세르지오 체르바토(Sergio Cervato; 이탈리아 수비수, 1929-2005)다. 1955-56시즌 첫 스쿠데토를 주장으로 들어 올렸고, 왼쪽 풀백이면서도 강한 슈팅으로 페널티킥과 프리킥까지 맡던 수비수다. 레알 쪽 주장 무뇨스는 1년 전 파리에서 첫 트로피를 받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2][3][11]

체르바토와 함께 피오렌티나 수비의 짝을 이룬 선수는 오른쪽 풀백 아르디코 마그니니(Ardico Magnini; 이탈리아 수비수, 1928-2020)였다.[11] 휘슬을 문 사람은 네덜란드의 레오 호른(Leopold Sylvain Horn; 네덜란드 주심, 1916-1995)이었다. 이 이름은 후반 69분에 다시 불려 나온다.[3]

전반: 줄리뉴의 오른쪽, 헨토의 왼쪽

FIRST HALF · THE WINGS

양 팀의 공격은 측면에서 먼저 시작됐다

피오렌티나 7번 줄리뉴가 레알 수비수를 앞에 두고 공을 몰고 들어간다.

경기 초반 레알을 먼저 위협한 선수는 등번호 7번의 줄리뉴였다. 1954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오른쪽 측면을 맡았던 윙어는 이 시즌 피오렌티나의 오른쪽에서 뛰고 있었다. 영상 속 줄리뉴는 수비수를 마주한 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공을 몸 가까이 붙여 앞으로 밀고 나간다. 1996년 피오렌티나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 이름답게, 드리블로 측면을 여는 줄리뉴는 피오렌티나가 가진 가장 분명한 공격 수단이었다.[2][12]

높은 각도의 화면에서 레알의 전진이 이어지고, 11번 헨토가 피오렌티나 2번 마그니니 앞에서 공을 처리한다.
헨토가 골문 쪽으로 들어가자 피오렌티나 2번과 4번이 뒤를 쫓는다.

반대편에서는 레알의 11번이 움직였다.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가 왼쪽에 서면, 그를 막는 사람은 피오렌티나의 오른쪽 풀백 마그니니였다. 두 영상에서 헨토 곁에 계속 2번이 붙어 있는 이유다. 레알은 헨토의 속도로 측면을 뚫고 문전까지 공을 옮겼지만, 피오렌티나 수비는 골문 앞에서 숫자를 채우며 슈팅 각도를 좁혔다. 레알 공식 기록도 “이탈리아 챔피언의 단단한 수비가 경기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고 적는다.[4]

전반: 줄리뉴가 공을 잃은 뒤 사르티가 몸을 던지다

FIRST HALF · 0-0

빼앗긴 공이 곧바로 역습이 됐다

줄리뉴(7번)가 레알 선수 둘 사이로 들어가다 공을 빼앗긴다.
이어진 레알의 공격. 골문 뒤 카메라가 슈팅을 향해 몸을 던지는 사르티를 잡는다.

줄리뉴의 드리블은 위협이었지만 대가도 있었다. 첫 영상에서 줄리뉴는 레알 선수 두 명 사이로 파고들다 공을 잃는다. 공격에 나섰던 피오렌티나 선수들이 미처 돌아오기 전에 레알이 전진했고, 슈팅은 피오렌티나 골문으로 향했다. 골문 뒤에서 찍은 두 번째 영상의 주인공은 골키퍼 줄리아노 사르티(Giuliano Sarti; 이탈리아 골키퍼, 1933-2017)다. 사르티가 몸을 날려 슈팅을 막아 냈다.

이 스물세 살 골키퍼는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고 결승에 왔다. 사르티는 1963년 인테르로 옮겨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이른바 ‘그란데 인테르’ 골문을 지켰고, 1964년과 1965년 유러피언컵을 연달아 들었다. 1964년 빈 결승에서 인테르가 3-1로 꺾은 상대가 바로 레알 마드리드였다. 베르나베우에서 레알의 슈팅에 몸을 던지던 골키퍼는 7년 뒤 레알을 상대로 첫 유러피언컵을 들었다.[8][13]

THE STANDS · BERNABÉU

12만 4천 명이 지켜본 0-0

베르나베우 관중석. 선글라스를 쓴 관중과 옆 사람들이 경기장을 바라본다.

전반 45분 동안 골은 나오지 않았다. 레알은 헨토의 왼쪽과 문전 공격으로 피오렌티나 골문을 두드렸지만 사르티와 수비진을 넘지 못했고, 피오렌티나는 줄리뉴의 드리블로 반격의 틈을 노렸다. 안방 결승에서 첫 골을 기다리던 관중은 0-0으로 하프타임을 맞았다.

MADRID · 30 MAY 1957THE SECOND EUROPEAN CUP FINAL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1945년부터 사용된 스페인 국기스페인
0HALF
TIME
0
AC 피오렌티나 문장AC 피오렌티나AC FIORENTINA이탈리아 국기이탈리아

FIORENTINA HELD THE HOLDERS · GOALLESS AT THE BREAK

후반 69분: 마테오스를 넘어뜨린 태클과 디스테파노의 페널티킥

69' · REAL MADRID CF 1-0

논란 속에서 깨진 균형

공을 몰고 들어가던 레알 공격수가 뒤따라온 수비수와 엉켜 페널티 지역 경계 부근에서 넘어진다.
디스테파노가 페널티킥을 차고, 레알 선수들이 골문 앞으로 달려간다.

후반 69분, 레알의 8번 엔리케 마테오스(Enrique Mateos Mancebo; 스페인 공격수, 1934-2001)가 피오렌티나 수비 사이를 뚫고 사르티와 일대일로 마주할 기회를 잡았다. 그대로 두면 골키퍼와의 일대일을 내줄 상황에서 마그니니가 뒤따라가 태클했고, 마테오스가 넘어지자 호른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거친 태클로 흐름을 끊으려던 수비의 선택이 결승 전체를 바꿔 놓았다.[6][14]

이 페널티킥에는 곧바로 논란이 따라붙었다. UEFA의 시즌 회고는 이 장면을 ‘논란의 페널티킥’으로 적는다. 널리 알려진 설명에 따르면 부심은 마테오스의 오프사이드를 알리는 깃발을 들었고, 반칙 지점도 페널티 지역 밖으로 보였다.[1][6] 필자가 보기에 남아 있는 높은 각도의 화면만으로는 둘 중 어느 쪽도 판정하기 어렵다. 넘어진 위치가 페널티 지역 경계에 걸쳐 있다는 것 정도가 영상이 보여 주는 전부다.

판정의 무게를 덜어 준 것은 키커였다.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Stéfan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스페인 센터 포워드, 1926-2014)가 키커로 나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고, 0-0으로 팽팽하던 결승이 한 번의 킥으로 기울었다. 득점 시각은 UEFA 기록으로 69분이며, 레알 마드리드 공식 기록과 RSSSF는 70분으로 적는다.[2][3][4]

AFTER THE PENALTY · THE HOME CROWD

베르나베우의 흰 손수건

골 뒤 레알 선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관중석에서는 흰 천이 일제히 흔들린다.

화면이 관중석으로 넘어가면 흰 천이 파도처럼 흔들린다. 전반 내내 첫 골을 기다렸던 12만 관중이 한꺼번에 반응한 순간이다. 파리에서 레알은 79분에야 처음 앞섰다. 1년 뒤 안방에서는 그보다 10분 먼저 리드를 잡았고, 남은 20분 동안 그 리드를 지켜야 할 쪽이 됐다.

후반: 피오렌티나의 반격과 넘어진 레몽 코파

SECOND HALF · FIORENTINA PUSH

한 골을 따라가야 하는 비올라

문전에서 이어진 피오렌티나의 공격. 레알 골키퍼 알론소가 몸을 던져 공을 잡는다.
터치라인 근처에서 공을 다투던 레알 7번 코파가 피오렌티나 6번 세가토와 부딪혀 그라운드에 나뒹군다.

뒤진 피오렌티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첫 영상에서 피오렌티나의 공격은 레알 골문 앞까지 이어지지만, 어두운 유니폼의 알론소가 낮게 몸을 던져 공을 품에 안는다. 파리 결승에서 두 골을 먼저 내줬던 골키퍼는 이날 끝까지 실점하지 않았다.[2]

두 번째 영상은 몸싸움이다. 피오렌티나 6번 아르만도 세가토(Armando Segato; 이탈리아 미드필더, 1930-1973)와 부딪힌 레알 선수가 크게 넘어진다. 등에 7번을 단 그 선수는 오른쪽 측면의 코파다. 피오렌티나는 몸싸움을 피하지 않고 레알의 새 공격수를 거칠게 막아섰다. 코파에게 이날은 자신의 두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이자 레알 유니폼을 입고 치른 첫 결승이었고, 1년 전 레알을 상대로 뛰었던 공격수는 이제 이탈리아 챔피언의 수비를 레알 쪽에서 상대하고 있었다.[2][10]

후반 75분: 헨토가 사르티를 넘기다

75' · REAL MADRID CF 2-0

혼자 달려간 왼쪽 윙어의 마무리

그림자가 드리운 그라운드 위로 레알 공격수가 수비를 떼어 내고 페널티 지역을 향해 달린다.
헨토가 발밑으로 뛰어든 사르티를 넘겨 공을 띄운다. 2-0.

선제골 뒤 6분, 이번에는 페널티킥이 필요 없었다. 헨토가 수비 사이를 빠져나와 사르티 앞까지 혼자 도착했다. 앞으로 뛰쳐나온 사르티가 발밑으로 몸을 던지자 헨토는 공을 띄워 그 위를 넘겼다. 레알 마드리드 공식 기사는 이 골을 “이탈리아 골키퍼의 전진을 넘어선” 마무리로 기록한다. 득점 시각은 UEFA 기록으로 75분, 레알 공식 기록과 RSSSF로는 76분이다.[2][3][5]

두 골을 나눠 넣은 디스테파노와 헨토, 그리고 오른쪽에서 이탈리아 수비와 부딪친 코파까지, 레알이 자랑하던 공격진이 결승의 마지막 20분에 한꺼번에 이름을 드러냈다. UEFA의 회고가 적은 대로 피오렌티나는 논란의 페널티킥 이후 끝내 흐름을 되찾지 못했고, 6분 사이에 두 골을 내준 뒤 남은 시간 동안 따라붙지 못했다.[1]

FULL TIME · ESTADIO SANTIAGO BERNABÉUREAL MADRID CF 2-0 AC FIORENTINA
30 MAY 1957라 세군다

THE SECOND EUROPEAN CUP · CHAMPIONS AGAIN AT HOME

1945년부터 사용된 스페인 국기CHAMPION
REAL MADRID CF

두 번째 결승의 레알, 첫 결승의 피오렌티나

레알 마드리드 CF는 두 시즌 연속 결승에 올라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AC 피오렌티나는 첫 결승에서 첫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56-57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구단대표 지역결승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두 번째 결승 진출
AC 피오렌티나이탈리아통산 첫 결승 진출

우승

구단대표 지역대회 우승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두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

준우승

구단대표 지역대회 준우승
AC 피오렌티나이탈리아통산 첫 유러피언컵 준우승

트로피를 받은 미겔 무뇨스

AFTER FULL TIME · THE CAPTAIN

두 번째로 트로피를 받은 같은 주장

문장이 수놓인 천이 걸린 귀빈석 앞. 레알 주장 무뇨스가 손을 뻗어 트로피를 받는다.

UEFA의 회고는 헨토의 골이 주장 무뇨스에게 트로피를 받을 일만 남겨 줬다고 적는다. 마지막 영상에서 무뇨스는 귀빈석 난간 아래에서 손을 뻗어 트로피를 받아 든다. 1년 전 파리에서 들었던 그 트로피를 이번에는 자기 팀 홈구장에서 다시 받은 것이다.[1]

레알은 이 시즌 라리가 우승까지 더해 구단 역사상 처음 리그와 유러피언컵을 한 시즌에 함께 차지했다. 디스테파노는 대회 일곱 골로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됐고, 그해 발롱도르를 받았다. 코파는 같은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4] 무뇨스는 선수로 세 차례 유러피언컵을 들었고, 훗날 감독으로 두 번 더 우승했다.[9]

‘라 세군다’(La Segunda)는 스페인어로 ‘두 번째’를 뜻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부르는 이름이다. 첫 번째가 0-2에서 시작해 79분에야 앞선 역전이었다면, 두 번째는 69분까지 한 골도 허락하지 않은 수비를 논란의 페널티킥과 6분 뒤의 로빙슛으로 무너뜨린 경기였다.

피오렌티나를 레알 우승의 배경으로만 남겨 둘 수는 없다. 이탈리아 챔피언은 첫 유러피언컵에서 이탈리아 구단 최초로 결승까지 올라왔고, 상대 팀 안방을 가득 메운 12만 관중 앞에서 69분 동안 디펜딩 챔피언에게 골을 내주지 않았다. 그 69분이 있었기에 베르나베우의 흰 손수건도 그만큼 늦게, 그만큼 크게 흔들렸다.

베르나베우에서 헤더 경합을 벌이는 레알 마드리드 CF와 AC 피오렌티나 선수들, 왼쪽에 두 구단 문장과 2-0 스코어를 넣은 편집 이미지
1956-57 유러피언컵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 CF 2-0 AC 피오렌티나. 디자인: 삥이FC.

영상과 참고 자료

  1. “1956/57: Di Stéfano and Gento win it for Madrid”, UEFA. 결승 개최지, 피오렌티나의 결승행, 논란의 페널티킥, 무뇨스의 트로피.
  2. “Real Madrid 2-0 Fiorentina”, UEFA 경기 기록. 득점 시각 69·75분, 선발 명단과 등번호.
  3. “European Champions’ Cup 1956-57 - Details”, RSSSF. 득점 시각 70·76분, 주장, 주심 레오폴트 실뱅 호른, 관중 124,000명.
  4. “2ª Copa de Europa”, Real Madrid CF. 코파 영입, 4강 맨유전, 피오렌티나 수비, 대회 득점과 1957년 발롱도르 투표.
  5. “Se cumplen 69 años de la segunda Copa de Europa”, Real Madrid CF. 헨토의 두 번째 골과 첫 리그·유러피언컵 더블.
  6. “1957 European Cup final”, Wikipedia. 페널티킥 장면의 오프사이드·반칙 위치 논란과 홈구장 결승 기록.
  7. “ACF Fiorentina”, Wikipedia. 1955-56 첫 세리에 A 우승과 이탈리아 구단 첫 유러피언컵 결승.
  8. “Giuliano Sarti”, Wikipedia. 사르티의 1963년 인테르 이적과 두 차례 유러피언컵 우승.
  9. “Miguel Muñoz”, Real Madrid CF. 선수·감독으로서의 유러피언컵 우승.
  10. “European football mourns Madrid great Kopa”, UEFA. 코파의 레알 이적과 1957·1958·1959년 유러피언컵 우승.
  11. “Sergio Cervato”, Wikipedia. 1955-56 우승 주장, 마그니니와의 수비 조합, 페널티킥·프리킥 전담.
  12. “Julinho”, Wikipedia. 1954 FIFA 월드컵 출전과 1996년 피오렌티나 역대 최고 선수 선정.
  13. “1964 European Cup final”, Wikipedia. 인테르의 3-1 승리와 결승 상대 레알 마드리드.
  14. “Finale della Coppa dei Campioni 1956-1957”, Wikipedia(이탈리아어). 마테오스의 일대일 돌파와 마그니니의 반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