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 · 유러피언컵
1956-57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데니스 바이올렛 9골
4강에서 멈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바이올렛이 아홉 골로 두 번째 유러피언컵 최다 득점자가 됐다. 여덟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선 테일러의 8골,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넣은 디스테파노, 16강에서 멈춘 도르트문트의 프라이슬러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제2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6-57
네 골 이상 넣은 여덟 명
| 순위 | 선수 | 클럽 | 출신 | 출전 | 득점 |
|---|---|---|---|---|---|
| 1위 | 데니스 바이올렛Dennis Viollet | 6경기 | 9골 | ||
| 2위 | 토미 테일러Tommy Taylor | 8경기 | 8골 | ||
| 3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 8경기 | 7골 | ||
| 4위 | 알프레트 프라이슬러Alfred Preißler | 5경기 | 6골 | ||
| 공동 5위 | 호세 루이스 아르테체José Luis Artetxe | 5경기 | 5골 | ||
| 공동 5위 | 자크 푸아Jacques Foix | 7경기 | 5골 | ||
| 공동 5위 |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 6경기 | 5골 | ||
| 8위 | 자크 페브르Jacques Faivre | 7경기 | 4골 |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며, 교체 제도가 없던 시즌이라 선발 수가 곧 출전 수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맨 위 두 자리는 이 시즌 처음 대회에 나선 맨유가 가져갔다. 바이올렛과 테일러가 넣은 17골은 맨유가 이 대회에서 넣은 24골의 3분의 2가 넘는다.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디스테파노가 3위에 올랐고, 결승에서 레알과 맞선 AC 피오렌티나(Associazione Calcio Fiorentina)에서는 두 골을 넘긴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피오렌티나는 일곱 경기에서 여덟 골만 넣고 결승까지 갔다. [1], [2]
두 경기를 빠지고도 1위에 오른 바이올렛
데니스 바이올렛(Dennis Sydney Viollet; 잉글랜드 공격수, 1933-1999)의 첫 골은 잉글랜드 구단의 첫 유러피언컵 골이기도 하다. 1956년 9월 12일 브뤼셀에서 RSC 안데를레흐트(Royal Sporting Club Anderlecht)를 상대로 먼저 골을 넣었고, 맨유는 이 경기를 2-0으로 이겼다. 2주 뒤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 메인 로드(Maine Road)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혼자 네 골을 넣었다. 맨유가 10-0으로 이긴 경기다. 예선 두 경기 만에 다섯 골이 그의 이름으로 적혔다. [2], [3]
16강에서는 10월 17일 메인 로드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Ballspielverein Borussia 09 e. V. Dortmund)를 상대로 두 골을 넣어 3-2 승리를 만들었다. 8강에서는 눈 내린 산 마메스(San Mamés)에서 3-5로 진 경기와 메인 로드에서 3-0으로 뒤집은 경기에 한 골씩 넣었다. 8강까지 다섯 경기에서 아홉 골을 넣은 셈이다. [2]
그다음부터는 골이 없었다. 베르나베우의 4강 1차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득점하지 못했고, 11월 도르트문트 원정과 4월 올드 트래퍼드의 4강 2차전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맨유가 치른 여덟 경기 가운데 여섯 경기만 뛰고도 끝까지 1위를 지켰다. 대회의 흐름은 1956-57 유러피언컵 본선과 4강에 정리해 두었다. [2]
여덟 경기 모두 선발로 뛴 테일러
토미 테일러(Thomas Taylor; 잉글랜드 센터 포워드, 1932-1958)는 맨유의 여덟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브뤼셀에서 두 번째 골을 넣었고, 메인 로드의 10-0 경기에서는 세 골을 넣었다. 도르트문트와의 16강 두 경기에서는 득점이 없었지만, 빌바오와의 8강 두 경기와 레알과의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씩 넣었다. [2]
4강의 두 골은 모두 맨유가 레알을 쫓아가는 골이었다. 베르나베우에서 0-2로 뒤진 뒤 한 골 차로 따라붙었고, 올드 트래퍼드에서는 합계 1-5가 된 뒤 추격의 첫 골을 넣었다. 맨유는 2차전을 2-2로 비겨 합계 3-5로 탈락했다. 이듬해 2월 뮌헨 공항 사고로 테일러는 세상을 떠났고, 바이올렛은 살아남았다. [2], [4]
모든 라운드에서 골을 넣은 디스테파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는 레알이 치른 네 라운드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16강에서는 11월 1일 마드리드에서 SK 라피트 빈(Sportklub Rapid Wien)을 상대로 두 골, 2주 뒤 빈 원정에서 한 골을 넣었다. 빈에서 1-3으로 진 경기의 그 한 골이 합계를 5-5로 맞춰 레알을 재경기로 보냈다. 8강에서는 니스 원정에서 두 골을 넣어 3-2 역전승을 만들었다. [2]
4강에서는 베르나베우의 맨유전 두 번째 골을 넣었고, 결승에서는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었다. 레알이 대회에서 넣은 20골 가운데 일곱 골이 그의 것으로, 팀 최다 득점자다. 여덟 경기 모두 선발로 뛰었고, 16강 재경기와 8강 1차전, 4강 2차전에서만 골이 없었다. 결승의 페널티킥 장면은 1956-57 유러피언컵 결승 H/L에서 볼 수 있다. [2], [3]
16강에서 멈춘 도르트문트의 여섯 골
4위 알프레트 프라이슬러(Alfred Preißler; 서독 공격수, 1921-2003)의 팀은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그는 다섯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1956년 8월 1일 대회 개막전에서 CA 스포라 룩셈부르크(Club Athlétique Spora Luxembourg)를 상대로 두 골을 넣어 4-3 승리를 만들었고, 룩셈부르크 원정에서 1-2로 진 경기에서도 한 골을 넣었다. 합계 5-5로 열린 재경기에서 두 골을 더했고, 16강 메인 로드 원정에서 넣은 한 골이 마지막이었다. [2]
도르트문트가 이 대회에서 넣은 14골 가운데 여섯 골이 프라이슬러의 것이다. 득점이 없었던 경기는 맨유와 0-0으로 비긴 16강 2차전 한 경기뿐이다. 1956년 서독 챔피언의 주장이던 그의 이력은 도르트문트 역대 베스트 11에 적었다. [2]
다섯 골의 세 사람
공동 5위 세 사람의 팀은 모두 8강 이상 올라갔다. 아틀레틱 클루브의 호세 루이스 아르테체(José Luis Artetxe Muguire; 스페인 공격수, 1930-2016)는 다섯 골을 모두 산 마메스에서 넣었다. 9월 26일 FC 포르투(Futebol Clube do Porto)와의 예선 2차전에서 20분 만에 두 골을 내준 뒤 페널티킥을 포함해 혼자 세 골을 넣어 3-2로 뒤집었다. 16강 혼베드전 3-2 승리와 8강 맨유전 5-3 승리에서도 한 골씩 넣었다. 포르투 원정인 예선 1차전에는 선발로 나서지 않았다. [2]
OGC 니스(Olympique Gymnaste Club de Nice)의 자크 푸아(Jacques Foix; 프랑스 공격수, 1930-2017)는 다섯 골을 다섯 경기에 한 골씩 나눠 넣었다. 오르후스와의 예선 두 경기, 레인저스와의 16강 2차전과 파리 재경기, 레알과의 8강 2차전에서 골을 넣었다. 마지막 골은 니스 홈에서 레알을 상대로 넣은 선제골이었지만 니스는 2-3으로 졌다. 니스가 넣은 14골 가운데 푸아와 자크 페브르가 아홉 골을 넣었다. [2]
FK 츠르베나 즈베즈다(Fudbalski klub Crvena zvezda)의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유고슬라비아 왼쪽 윙어, 1930-2011)는 팀이 넣은 10골의 절반을 넣었다. 16강 네덜란드 원정에서 4분 만의 선제골을 포함해 두 골, 베오그라드의 2차전에서 한 골, 8강 CDNA 소피아와의 홈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피오렌티나와의 4강 두 경기에서는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2], [3]
8위 페브르와 기록 기준
네 골을 넣은 선수는 두 자료가 모두 인정하는 니스의 자크 페브르(Jacques Faivre; 프랑스 공격수, 1932-2020) 한 사람이다. 오르후스와의 예선 2차전에서 두 골, 글래스고의 16강 1차전에서 선제골, 파리 재경기에서 쐐기골을 넣었다. [2]
CDNA 소피아의 이반 콜레프(Иван Петков Колев; 불가리아 공격수, 1930-2005)는 두 자료가 한 골을 다르게 적는다. 1956년 10월 21일 소피아에서 CDNA가 디나모 부쿠레슈티를 8-1로 이긴 경기에서, RSSSF는 CDNA의 세 번째 골을 콜레프의 것으로 적어 그를 네 골로 센다. UEFA 경기 데이터는 같은 골을 파나요트 파나요토프(Панайот Панайотов; 불가리아 공격수)의 것으로 기록해 콜레프를 세 골로 센다. 이 한 골의 주인에 따라 8위가 두 명이 될 수 있어, 표는 두 자료가 일치하는 여덟 명까지만 실었다.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