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 · 유러피언컵
1958-59 유러피언컵 4강: 영 보이스·랭스, 레알·아틀레티코의 1차전과 2차전, 사라고사 재경기
반크도르프 6만 관중 앞의 1-0과 파리의 3-0, 같은 도시의 2개 구단이 베르나베우와 메트로폴리타노에서 한 번씩 이기고 사라고사에서 다시 만난 첫 유럽 더비. 1958-59 유러피언컵 4강 5경기와 레알 마드리드·스타드 드 랭스가 결승에 오르기까지를 읽는다.
제4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8-59
4강 진출팀
| 구단 | 대표 지역 | 4강 진출 |
|---|---|---|
| 스페인 | 통산 4번째 4강 진출 | |
| 스페인 | 통산 첫 4강 진출 | |
| 스위스 | 통산 첫 4강 진출 | |
| 프랑스 | 통산 2번째 4강 진출 |
1959년 4월 15일, 베른에서 네 번째 유러피언컵 4강이 시작됐다. 부전승으로 대회를 시작한 BSC 영 보이스와 첫 대회 준우승팀 스타드 드 랭스의 1차전이었다. 여드레 뒤 마드리드에서 다른 쪽 대진이 시작됐다.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도시의 두 구단이 유러피언컵에서 처음 만났다. [1], [4]
레알은 네 시즌 연속 4강이었고, 랭스는 첫 대회 결승에서 레알에 진 뒤 두 번째 4강이었다. 아틀레티코는 레알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하면서 받은 스페인의 리그 자리로 처음 대회에 나와 4강까지 왔고, 영 보이스는 스위스 구단으로는 처음 4강에 올랐다. 예선부터 8강까지의 여정은 참가팀·예선·16강과 8강에서 이어진다.
4강 1차전

BSC 영 보이스 1-0 스타드 드 랭스: 반크도르프의 6만 명
1959년 4월 15일 · 반크도르프, 베른
다섯 해 전 월드컵 결승이 열린 베른의 반크도르프(Wankdorf)에 6만 명이 모였다. 그 결승의 장면은 1954 월드컵 결승 H/L에 있다. 영 보이스의 감독은 독일 출신 알베르트 징(Albert Sing; 독일 출신 감독, 1917-2008)이었다. 8강에서 비스무트와 세 경기를 치르며 올라온 팀은 15분 오이겐 마이어(Eugen Meier; 스위스 공격수)의 골로 앞섰고, 그 한 골을 끝까지 지켰다. 16강 2차전, 8강 1차전, 암스테르담 재경기에 이은 마이어의 이 시즌 네 번째 골이었다. [1], [2]
알베르 바퇴(Albert Batteux; 프랑스 감독, 1919-2003) 감독의 랭스는 쥐스트 퐁텐(Just Fontaine; 프랑스 공격수, 1933-2023), 로제 피앙토니(Roger Piantoni; 프랑스 공격수, 1931-2018), 장 뱅상(Jean Vincent; 프랑스 왼쪽 윙어, 1930-2013)이 모두 선발로 나섰지만 골을 넣지 못했다. 이 시즌 랭스가 골을 넣지 못한 것은 8강 1차전 리에주 원정에 이어 두 번째였다. [1]
레알 마드리드 2-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첫 유럽 더비
1959년 4월 23일 ·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마드리드
UEFA 기록에 적힌 관중은 12만 명, 주심은 스코틀랜드의 잭 모와트(Jack Mowat; 스코틀랜드 주심)였다. 레알 구단은 이 대진을 첫 유럽 더비로 기록한다. 루이스 카르니글리아(Luis Antonio Carniglia;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1917-2001) 감독은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를 빼고 엔리케 마테오스(Enrique Mateos; 스페인 공격수)를 오른쪽에 세웠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8-1991), 페렌츠 푸스카스(Puskás Ferenc; 헝가리 출신 공격수, 1927-2006),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를 함께 내보냈다. [1], [3], [4]
아틀레티코의 감독은 페르디난드 다우치크(Ferdinand Daučík;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감독, 1910-1986)였다. 1950년대 초 FC 바르셀로나를 이끌었고, 쿠벌러 라슬로의 처남이기도 한 사람이다. 먼저 골을 넣은 쪽도 아틀레티코였다. 13분 추소(Chuzo; 스페인 하프백)의 골이었다. 레알은 2분 뒤 리알의 골로 따라잡았고, 33분 푸스카스가 페널티킥을 넣어 2-1로 뒤집었다. 1956년 헝가리를 떠난 푸스카스가 유러피언컵에서 넣은 첫 골이다. [1], [3]
4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0 레알 마드리드: 메트로폴리타노의 코야르
1959년 5월 7일 ·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 마드리드
아틀레티코는 16강과 8강의 홈경기를 레알의 베르나베우에서 치렀지만, 4강 2차전은 안방 메트로폴리타노(Estadio Metropolitano)로 돌아와 치렀다. 관중은 5만 명, 주심은 잉글랜드의 레그 리프(Reg Leafe; 잉글랜드 주심)였다. 레알은 코파를 다시 오른쪽에 세우고 리알을 왼쪽 인사이드로 옮겼다. 푸스카스의 이름은 이날 명단에 없었다. [1], [3]
전반이 끝나기 2분 전, 왼쪽 윙어 엔리케 코야르(Enrique Collar Monterrubio; 스페인 왼쪽 윙어, 1934-2022)가 골을 넣었다. 그 한 골로 아틀레티코가 이겼다. 합계 2-2. 원정 다득점 규정이 없던 때라 두 구단은 세 번째 경기를 치러야 했다. 이 시즌 레알이 유러피언컵에서 진 것은 이 경기가 처음이다. [1], [2]
스타드 드 랭스 3-0 BSC 영 보이스: 파리에서 뒤집은 합계
1959년 5월 13일 · 파르크 데 프랭스, 파리
랭스의 홈경기는 랭스의 스타드 오귀스트들로네 대신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에서 열렸다. 관중은 3만 5,898명이었다. 41분 피앙토니가 합계를 1-1로 맞췄고, 후반 아르망 팡베른(Armand Penverne; 프랑스 하프백, 1926-2012)이 두 번째 골을, 72분 피앙토니가 세 번째 골을 넣었다. 합계 3-1. 랭스가 두 번째 결승에 올랐다. [1], [2]
영 보이스는 부전승으로 시작해 MTK와 비스무트를 넘었고, 4강 1차전에서는 첫 대회 준우승팀을 이겼다. 네 대진 가운데 맨유와의 예선은 열리지 않았으니, 영 보이스가 실제로 치른 경기는 일곱 경기였다. 스위스 챔피언의 대회는 파리에서 끝났다. [2]
4강 재경기

레알 마드리드 2-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 로마레다
1959년 5월 13일 · 에스타디오 데 라 로마레다, 사라고사
같은 날 파리에서 랭스가 결승행을 확정하는 동안, 마드리드의 두 구단은 북동쪽으로 270킬로미터쯤 떨어진 사라고사의 라 로마레다(Estadio de La Romareda)에서 세 번째 경기를 치렀다. 관중은 2만 명, 주심은 잉글랜드의 아서 엘리스(Arthur Edward Ellis; 잉글랜드 주심, 1914-1999)였다. 레알은 코파와 푸스카스를 함께 세우고 리알을 뺐다. [1], [3]
16분 디스테파노가 먼저 골을 넣었고, 2분 뒤 코야르가 다시 동점골을 넣었다. 2차전 결승골에 이은 코야르의 두 경기 연속 골이다. 42분 푸스카스의 골로 레알이 다시 앞섰고, 후반에는 골이 나오지 않았다. 2-1. 레알이 이긴 1차전과 재경기의 결승골은 모두 푸스카스가 넣었다. [1], [4]
결승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와 스타드 드 랭스
4강1958-59 유러피언컵
BSC 영 보이스 vs 스타드 드 랭스

- 4강 1차전
- 1 : 0
- 4강 2차전
- 0 : 3
- 결승 진출
- 스타드 드 랭스
BSC 영 보이스마이어 15분
4강 1차전
스타드 드 랭스득점 없음
BSC 영 보이스득점 없음
4강 2차전
스타드 드 랭스피앙토니 41분 72분, 팡베른 54분
반크도르프의 1-0을 들고 간 영 보이스가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3골을 내줬다.
4강1958-59 유러피언컵
레알 마드리드 CF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4강 1차전
- 2 : 1
- 4강 2차전
- 0 : 1
- 재경기
- 2 : 1
- 결승 진출
-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15분, 푸스카스 33분(PK)
4강 1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추소 13분
레알 마드리드 CF득점 없음
4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코야르 43분
레알 마드리드 CF디스테파노 16분, 푸스카스 42분
재경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코야르 18분
베르나베우의 2-1과 메트로폴리타노의 0-1. 같은 도시의 2개 구단은 사라고사에서 세 번째 경기를 치렀다.
대진 카드의 1·2차전 스코어는 왼쪽 구단부터 표시한다. 실제 2차전 홈팀은 스타드 드 랭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며, 재경기는 사라고사의 중립 경기장에서 열렸다.
4강 다섯 경기 기록날짜·홈과 원정·득점자 확인하기펼쳐 보기접기
| 구분 | 날짜 | 홈 | 결과 | 원정 | 득점 |
|---|---|---|---|---|---|
| 4강 1차전 | 1959.04.15 | BSC 영 보이스 | 1-0 | 스타드 드 랭스 | 마이어 15분 |
| 4강 1차전 | 1959.04.23 | 레알 마드리드 CF | 2-1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레알 마드리드 CF리알 15분, 푸스카스 33분(PK)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추소 13분 |
| 4강 2차전 | 1959.05.13 | 스타드 드 랭스 | 3-0 | BSC 영 보이스 | 피앙토니 41분, 72분, 팡베른 54분 |
| 4강 2차전 | 1959.05.07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1-0 | 레알 마드리드 CF | 코야르 43분 |
| 4강 재경기 | 1959.05.13 | 레알 마드리드 CF | 2-1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레알 마드리드 CF디스테파노 16분, 푸스카스 42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코야르 18분 |
날짜·득점 시각은 UEFA 경기 데이터를 따른다. RSSSF 시즌 기록은 영 보이스-랭스 1차전을 4월 13일, 팡베른의 골을 47분으로 적고, RSSSF 레알 마드리드 경기 기록은 1차전 추소 14분·리알 16분, 재경기 코야르 19분·푸스카스 40분(PK)으로 적는다. 재경기는 사라고사의 중립 경기장이며 레알을 왼쪽에 둔 것은 기록 순서다.
랭스는 원정에서 지고 돌아와 홈에서 세 골을 넣었고, 레알은 같은 도시의 상대와 세 경기를 치른 끝에 결승에 올랐다. 두 대진 모두 1차전 홈팀이 2차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1]
1959년 6월 3일, 결승은 서독 슈투트가르트의 네카르슈타디온에서 열린다. 첫 대회 결승의 두 팀이 다시 만난다. 레알에게는 네 번째 결승이고 랭스에게는 두 번째 결승이다. 1956년 파리 결승에서 랭스의 공격을 이끌었던 코파는 이번에는 레알의 선수로 옛 팀을 상대한다. 첫 결승의 장면은 1956 유러피언컵 결승 H/L에 있다.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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