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60 EUROPEAN CUP · FINAL
UNPLAYEDS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 날짜
- 1960년 5월 18일
- 장소
- 햄든 파크
- 관중
- 127,621명
- 주심
- 잭 모와트
1960년 5월 18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햄든 파크(Hampden Park)에 12만 7,621명이 들어왔다. 다섯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이다. 레알 마드리드 CF는 대회가 생긴 뒤 다섯 시즌 연속 결승에 왔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서독 구단으로 처음 결승에 섰다. 휘슬은 개최국 스코틀랜드의 잭 모와트(Jack Mowat; 스코틀랜드 주심)가 불었다. 한 해 전 마드리드 더비의 4강 1차전을 맡았던 주심이다.[2][3]
프랑크푸르트에게 글래스고는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열사흘 전 아이브록스에서 레인저스를 6-3으로 이기고 4강 합계 12-4로 결승에 올랐다. 레알은 그 4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두 번 3-1로 넘었고, 벤치에는 4강부터 미겔 무뇨스(Miguel Muñoz Mozún; 스페인 하프백·감독, 1922-1990)가 앉아 있었다. 1956년과 1957년 결승에서 주장으로 트로피를 들었던 사람이 감독으로 다섯 번째 결승을 맞았다. 결승까지의 길은 1959-60 유러피언컵 참가팀과 본선과 1959-60 유러피언컵 4강에 정리해 두었다.
레알의 공격진은 7번 카나리우(Darcy Silveira dos Santos, Canário; 브라질 윙어), 8번 루이스 델솔(Luis del Sol; 스페인 미드필더, 1935-2021), 9번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 10번 페렌츠 푸스카스(Puskás Ferenc; 헝가리 출신 공격수, 1927-2006), 11번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였다. 한 해 전 슈투트가르트 결승 명단에 없던 푸스카스가 이번에는 10번을 달았다. 주장 완장은 호세 마리아 사라가(José María Zárraga Martín; 스페인 미드필더, 1930-2012)가 찼다. 프랑크푸르트는 파울 오스발트(Paul Oßwald; 서독 감독) 감독 아래 골키퍼 에곤 로이(Egon Loy; 서독 골키퍼), 주장 알프레트 파프(Alfred Pfaff; 서독 축구선수, 1926-2008), 4강에서 세 골을 넣은 디터 린트너(Dieter Lindner; 서독 공격수)를 세웠다.[2][3]

18분: 크레스의 선제골
먼저 앞선 쪽은 프랑크푸르트
흑백 화면에서 레알은 위아래 흰 유니폼, 프랑크푸르트는 어두운 상의로 갈린다. 이 글의 영상에서는 이 색으로 두 팀을 나눈다. 먼저 골을 넣은 쪽은 프랑크푸르트였다. 18분, 오른쪽 윙어 리하르트 크레스(Richard Kreß; 서독 오른쪽 윙어)의 슈팅이 레알 골키퍼 로헬리오 도밍게스(Rogelio Antonio Domínguez; 아르헨티나 골키퍼)를 지나 골망에 닿았다.[2][3]
레알이 결승에서 먼저 골을 내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56년 파리에서는 랭스가 두 골을 먼저 넣었고, 1958년 브뤼셀에서는 밀란이 두 번 먼저 앞섰다. UEFA가 2002년에 만난 프랑크푸르트의 공격수 에르빈 슈타인(Erwin Stein; 서독 공격수)은 1-0으로 앞섰을 때 레알 선수들이 크게 놀란 듯 보였다고 돌아봤다.[4]
27분과 30분: 디스테파노의 2골
9분 만에 따라잡은 9번
레알은 9분 만에 따라잡았다. 27분, 디스테파노가 프랑크푸르트 골문 앞에서 공을 밀어 넣었다. 1956년 파리, 1957년 마드리드, 1958년 브뤼셀, 1959년 슈투트가르트에 이어 다섯 번째 결승의 골이다. 디스테파노는 대회가 열린 다섯 시즌의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2]
골키퍼 앞에서 다시 9번
3분 뒤 디스테파노가 다시 골을 넣었다. 첫 영상에서 레알의 공격이 프랑크푸르트 진영 깊숙이 들어가고 로이가 몸을 던진다. 두 번째 영상에서 로이는 골대 옆에 쓰러져 있고, 그 앞에 레알의 7번 카나리우가 서 있다. 슈타인은 UEFA와의 인터뷰에서, 동점골을 내준 뒤에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레알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자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2][4]
45분: 푸스카스의 첫 결승골
전반 마지막 순간의 10번
전반이 끝나기 직전, 푸스카스가 세 번째 골을 넣었다. 1958년 여름 레알에 온 푸스카스의 첫 유러피언컵 결승 골이다. 한 해 전 결승 명단에서 빠졌던 사정은 인물관의 푸스카스 편에 따로 적어 두었다. 레알은 3-1로 전반을 마쳤다. UEFA 경기 기록은 이 골을 45분, UEFA의 시즌 기사는 46분으로 적는다.[1][2]
TIME1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KRESS FIRST · DI STÉFANO TWICE · PUSKÁS BEFORE THE BREAK
56분과 60분: 페널티킥, 그리고 헨토의 돌파
페널티 지역 앞에 늘어선 프랑크푸르트
후반 11분, 레알이 페널티킥을 얻었고 푸스카스가 차 넣었다. 4-1. 영상은 페널티 지역 바깥에 늘어선 프랑크푸르트 선수들 뒤에서 시작해 골문 안의 공으로 끝난다.[2][3]
왼쪽 끝을 달린 11번
4분 뒤 레알의 왼쪽 끝에서 헨토가 달렸다. 헨토는 수비수를 앞에 두고 터치라인을 따라 공을 몰고 나갔고, 골문 쪽으로 파고든 끝에 공이 골문 앞으로 갔다. 마무리는 푸스카스였다. 5-1. 영상의 마지막에 프랑크푸르트의 5번 한스발터 아이겐브로트(Hans-Walter Eigenbrodt; 서독 수비수)가 잔디에 주저앉아 있다. 레알 구단의 결승 기록 영상은 이 골을 두 번 보여 준다. 첫 영상은 앞의 장면, 나머지 셋은 뒤의 장면이다.[2][5]
71분부터 75분까지: 5분 사이 터진 4골
푸스카스의 네 번째 골
71분, 푸스카스가 네 번째 골을 넣었다. 한 결승에서 혼자 넣은 네 골이다. 영상은 프랑크푸르트 진영을 오가는 흰 유니폼들에서 시작해 골대 바로 안쪽에 멈춘 공으로 끝난다.[2]
1분 만에 받아친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는 1분 만에 받아쳤다. 72분, 슈타인이 골을 넣었다. 6-2. 첫 영상에서 어두운 상의들이 센터서클 부근에서 레알 선수들 사이로 공을 몰고 나가고, 두 번째 영상의 끝에서 공은 레알 골문 안에 있다.[2]
센터서클에서 출발한 해트트릭
이번에는 레알이 1분 만에 받아쳤다. 73분, 디스테파노가 센터서클 부근에서 공을 잡아 프랑크푸르트 선수들 사이로 몰고 들어갔고, 그 끝에서 골을 넣었다. 디스테파노의 해트트릭이다. 주장 사라가가 달려와 그를 껴안았다. 7-2. 푸스카스의 네 골과 디스테파노의 세 골, 레알의 일곱 골을 두 사람이 모두 넣었다.[1][2]
골키퍼 앞에서 가로챈 9번
프랑크푸르트의 마지막 골도 슈타인의 것이었다. 75분, 레알 수비진이 자기 페널티 지역 앞에서 공을 돌리다 골키퍼 쪽으로 보낸 공을 9번 슈타인이 가로챘다. 슈타인은 도밍게스와 엉켜 넘어지면서 공을 밀어 넣었다. 7-3. 10골째였다.[2][4]
THE FIFTH EUROPEAN CUP · FIVE IN A ROW
CHAMPIONREAL MADRID CF
다섯 번째 결승의 레알, 첫 결승의 프랑크푸르트
레알 마드리드 CF는 다섯 시즌 연속 결승에 올라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첫 결승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59-60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 구단 | 대표 지역 | 결승 진출 |
|---|---|---|
| 스페인 | 통산 5번째 결승 진출 | |
| 서독 | 통산 첫 결승 진출 |
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우승 |
|---|---|---|
| 스페인 | 통산 5번째 유러피언컵 우승 |
준우승
| 구단 | 대표 지역 | 대회 준우승 |
|---|---|---|
| 서독 | 통산 첫 유러피언컵 준우승 |
종료 휘슬 뒤: 다섯 번째 트로피
사진기자들 사이의 흰 유니폼
종료 휘슬 뒤 경기장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양복 차림의 사람들과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레알 선수들이 손을 들고, 그 왼쪽에 프랑크푸르트의 선수가 서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골키퍼 로이는 2002년 UEFA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골문에서 그렇게 많은 공을 꺼낸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4]
‘라 킨타’(La Quinta)는 스페인어로 ‘다섯 번째’를 뜻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다섯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부르는 이름이다. 첫 번째가 0-2에서 시작한 역전이었고, 네 번째가 처음부터 끝까지 앞선 결승이었다면, 다섯 번째는 먼저 내준 한 골 뒤에 일곱 골을 넣은 결승이었다. 레알은 대회가 열린 다섯 시즌을 모두 우승했고, 그 다섯 번의 결승에서 디스테파노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골을 넣었다.
로이는 같은 인터뷰에서 당시 독일 축구는 아직 아마추어였고 레알은 프로 팀이었다고 말했다. 서독의 전국 프로 리그 분데스리가는 세 해 뒤인 1963년에 출범했다. 그해 12월의 발롱도르에서 푸스카스는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에 이어 2위에 올랐고, 디스테파노는 4위였다.[4][6]

영상과 참고 자료
- “1959/60: Dazzling Madrid crush Frankfurt”, UEFA. 크레스의 선제골, 디스테파노의 세 골과 푸스카스의 네 골(첫 골 46분), 전반 3-1.
- “Real Madrid 7-3 Eintracht Frankfurt”, UEFA 경기 기록. 득점 시각(크레스 18, 디스테파노 27·30·73, 푸스카스 45·56PK·60·71, 슈타인 72·75), 선발 명단과 등번호, 관중 127,621명.
- “European Champions’ Cup 1959-60 - Details”, RSSSF. 주심 잭 모와트(스코틀랜드), 두 팀의 주장과 감독, 포지션 순서의 선발 명단, 관중 127,621명.
- “Vintage Madrid remembered by victims”, UEFA(2002-05-15). 에곤 로이와 에르빈 슈타인의 회고.
- “European Cup final 1960 | Real Madrid 7-3 Eintracht Frankfurt”, 레알 마드리드 CF 공식 유튜브. 본문의 19개 영상은 이 결승 기록 영상을 장면 순서대로 나눈 것이다.
-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60”, RSSSF. 『프랑스 풋볼』 1960년 12월 13일 발표, 1위 수아레스 54점, 2위 푸스카스 37점, 4위 디스테파노 3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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