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 · 유러피언컵
1959-60 유러피언컵 베스트 11: 푸스카스·디스테파노·헨토, 그리고 크레스와 수아레스
공식 선정이 없던 다섯 번째 유러피언컵을 52경기의 출전 명단과 등번호로 다시 읽었다. 5연패의 레알 마드리드, 결승에서 7골을 내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4강의 CF 바르셀로나에서 고른 삥이FC 회고 베스트 11.
제5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9-60
공식 베스트 11이 없던 다섯 번째 대회
- 대회 기간
- 1959년 8월 26일-1960년 5월 18일
- 참가
- 27개 구단 · 기권 1
- 경기 수
- 52경기 · 218골
- 우승
- 레알 마드리드 CF

- 준우승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4강
- CF 바르셀로나
· 레인저스 FC
- 득점왕
- 페렌츠 푸스카스
· 레알 마드리드 · 12골
- 득점 2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 레알 마드리드 · 8골
- 득점 3위
- 쿠벌러 라슬로 · CF 바르셀로나, 오베 올손 · IFK 예테보리 · 6골
- 도움 순위
- 공식 집계 없음
득점은 UEFA 경기 데이터를 RSSSF와 대조한 값이다. 쿠벌러와 올손의 골 수는 두 자료가 한 골씩 다르게 적어 UEFA 기록을 따랐다. 도움은 이 시즌은 물론 이후 수십 년 동안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전체 순위와 두 자료가 갈린 골은 1959-60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에 정리했다. [1][2]
다섯 번째 유러피언컵은 글래스고 햄든 파크의 7-3으로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일곱 골을 넣어 대회가 생긴 뒤 다섯 번의 결승을 모두 이겼다. 그해에도 대회를 대표할 11명의 명단은 누구도 발표하지 않았다. 예선부터 8강까지는 1959-60 유러피언컵 본편, 첫 유럽 클라시코와 프랑크푸르트의 12-4는 4강 편, 햄든의 결승은 결승 하이라이트에서 이어진다.
이번 시즌의 고민은 10번이었다. 득점왕 푸스카스는 레알의 일곱 경기에서 모두 10번을 달았고,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도 일곱 경기에서 모두 10번이었다. 인사이드 레프트는 한 자리뿐이다. 필자는 12골의 푸스카스를 10번 자리에 두고, 수아레스를 인사이드 라이트로 옮겼다. 그 자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코치시 샨도르가 8번을 달고 세 경기 다섯 골을 넣은 자리다. 코치시 대신 수아레스를 세운 까닭은 공격진 절에 적고, 전술판 설명과 선수 카드, 기록 기준 세 곳에 함께 밝힌다.
나머지 10자리는 원칙대로 채웠다. UEFA가 공개한 52경기의 선발 명단에서 선수마다 어떤 번호를 달았는지 모았고, 고정 등번호가 없던 시절이라 그날의 번호를 그날의 역할로 읽었다. 그다음 득점과 출전 경기의 실점을 겹쳐 누가 어느 자리에서 대회의 흐름을 틀었는지 따졌다. [1][2]
11명을 읽는 법
전형은 당시 유럽 구단들이 쓰던 WM(WM formation; 수비 3명, 하프 2명, 인사이드 2명과 전방 3명이 W와 M 모양을 이루는 전형)을 따랐다. GK는 골키퍼, FB는 풀백, CH는 센터 하프, RH·LH는 오른쪽·왼쪽 하프, OL·IL·CF·IR·OR는 아웃사이드 레프트·인사이드 레프트·센터 포워드·인사이드 라이트·아웃사이드 라이트다. 앞선 시즌들과 같이 현대의 포지션으로 바꾸지 않고 당대 역할어를 그대로 둔다.
아래 전술판은 서로 다른 세 구단의 선수를 한 화면에 세운 회고적 배열이다. 번호 체계는 나라마다 조금씩 달랐다. 스페인 두 구단은 3번이 가운데 수비, 5번과 6번이 오른쪽·왼쪽 하프였고, 프랑크푸르트는 5번이 센터 하프, 4번과 6번이 양쪽 하프였다. 그래서 레알의 3번 산타마리아가 센터 하프, 바르셀로나의 5번 세가라가 오른쪽 하프, 프랑크푸르트의 6번 슈팅카가 왼쪽 하프에 선다. 두 풀백 마르키토스와 루츠는 모두 오른쪽 풀백의 번호인 2번을 가장 많이 달았다. 2번 경기가 하나 더 많은 마르키토스를 오른쪽에, 루츠를 왼쪽에 그렸다. 수아레스의 IR은 필자 배치다. [1][2]
OL파코 헨토레알 · 6경기 2골
IL페렌츠 푸스카스레알 · 7경기 12골
CF알프레도 디스테파노레알 · 6경기 8골
IR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 · 7경기 1골
OR리하르트 크레스프랑크푸르트 · 6경기 2골
LH디터 슈팅카프랑크푸르트 · 7경기 1골
RH조안 세가라바르셀로나 · 7경기 2골
FB프리델 루츠프랑크푸르트 · 6경기
CH호세 산타마리아레알 · 6경기
FB마르키토스레알 · 6경기
GK로헬리오 도밍게스레알 · 7경기
레알 마드리드 CF · 7경기 10실점 · 무실점 2회

레알 마드리드 CF · 6경기 · 2번 5경기, 3번 1경기

레알 마드리드 CF · 6경기 · 3번 5경기, 결승 5번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6경기 · 2번 4경기, 5번 2경기

CF 바르셀로나
· 7경기 2골 · 주장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7경기 1골 · 전 경기 6번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 6경기 2골 · 결승 선제골

CF 바르셀로나
· 7경기 1골 · 10번 7경기 · 1960년 발롱도르

레알 마드리드 CF · 6경기 8골 · 결승 3골

레알 마드리드 CF · 7경기 12골 · 득점왕 · 결승 4골

레알 마드리드 CF · 6경기 2골
골문과 최후방
골문은 우승팀의 로헬리오 도밍게스(Rogelio Antonio Domínguez; 아르헨티나 골키퍼)에게 맡겼다. 한 시즌 전에는 후안 알론소와 골문을 나눠 4강부터 섰지만, 이번에는 레알의 일곱 경기를 모두 1번으로 지켰다. 10골을 내줬고 죄네스 에슈와의 16강 홈경기 7-0, OGC 니스와의 8강 2차전 4-0이 무실점이었다. 니스 원정에서 빅토르 누렌베르크에게 세 골을 내주고 2-3으로 진 경기가 이 시즌 레알의 유일한 패배였는데, 4주 뒤 베르나베우에서 도밍게스의 골문은 닫혀 있었다. 결승에서는 18분 크레스의 선제골과 에르빈 슈타인의 두 골, 모두 세 골을 내줬다. [1][2]
그 앞의 중앙에는 호세 산타마리아(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우루과이·스페인 수비수, 1929-2026)가 선다. 레알의 일곱 경기 가운데 여섯 경기에 나서 다섯 경기를 3번으로 뛰었다. 빠진 한 경기는 캄 노우의 4강 2차전이었고, 그날은 마르키토스가 3번을 달고 가운데로 들어갔다. 결승에서는 왼쪽 풀백 파친이 3번, 산타마리아가 5번을 달았지만 자리는 그대로 한가운데였다. 1957-58 편에 이어 두 번째로 이 명단의 가운데에 선다. [1]
오른쪽 풀백은 마르키토스(Marcos Alonso Imaz; 스페인 수비수, 1933-2012)다. 레알의 여섯 경기에 나서 다섯 경기를 2번으로 뛰었고, 산타마리아가 빠진 캄 노우에서는 3번으로 가운데를 맡았다. 그가 선 여섯 경기에서 레알은 여덟 골을 내줬다. 1956-57 편에서는 센터 하프로, 1958-59 편에서는 오른쪽 풀백으로 이 명단에 들었고, 이번이 세 번째다. [1]
왼쪽에 그린 풀백은 프랑크푸르트의 프리델 루츠(Friedel Lutz; 서독 수비수)다. 1939년 1월생으로 결승 당시 스물한 살이었고, 햄든의 선발 22명 가운데 그보다 어린 선수는 팀 동료 디터 린트너 하나였다. 프랑크푸르트의 일곱 경기 가운데 빈 원정 하나를 빼고 여섯 경기에 나섰다. 영 보이스와의 16강 두 경기는 센터 하프의 5번, 8강 홈경기부터 결승까지 네 경기는 오른쪽 풀백의 2번이었다. 대회 도중 수비 한가운데에서 측면으로 옮겨 레인저스와의 4강 두 경기를 12-4로 마쳤다. 결승의 일곱 골까지 그가 선 경기에서 프랑크푸르트는 14골을 내줬다. [1]
두 하프
오른쪽 하프는 바르셀로나의 주장 조안 세가라(Joan Segarra; 스페인 수비수, 1927-2008)다. 바르셀로나의 여덟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에 나서 여섯 경기를 5번, 소피아 원정 한 경기를 6번으로 뛰었다. 바르셀로나가 처음 나선 유러피언컵 경기였던 CDNA 소피아 원정에서 30분 동점골을 넣었다. 구단이 이 대회에서 넣은 첫 골이다. AC 밀란과의 16강 홈경기 5-1에서도 19분 골을 넣었다. 레알에 1-3으로 진 캄 노우의 4강 2차전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1][2]
왼쪽 하프는 프랑크푸르트의 디터 슈팅카(Dieter Stinka; 서독 하프백)다. 프랑크푸르트의 일곱 경기에 모두 6번으로 나섰다. 결승까지 일곱 경기를 한 번호로 뛴 선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와 골키퍼 에곤 로이, 풀백 헤르만 회퍼, 공격의 린트너와 알프레트 파프뿐이다. 발트슈타디온의 4강 1차전에서 29분 첫 골을 넣어 6-1의 문을 열었다. [1][2]
다섯 공격
오른쪽 끝은 프랑크푸르트의 리하르트 크레스(Richard Kreß; 서독 오른쪽 윙어)다. 1925년 3월생으로 결승 당시 서른다섯 살, 햄든의 선발 22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다. 베른 원정 하나를 빼고 여섯 경기에 모두 7번으로 나서 두 골을 넣었다. 아이브록스의 4강 2차전 28분 골, 그리고 결승 18분의 선제골이다. 레알이 다섯 번의 결승에서 먼저 골을 내준 것은 1956년 파리, 1958년 브뤼셀에 이어 세 번째였고, 그 골을 넣은 사람이 서른다섯 살의 오른쪽 윙어였다. [1][3]
그 안쪽 인사이드 라이트에 필자는 루이스 수아레스(Luis Suárez Miramontes; 스페인 축구선수, 1935-2023)를 세웠다. 바르셀로나의 여덟 경기 가운데 일곱 경기에 모두 10번으로 나섰다. 골은 산 시로의 16강 1차전 2-0에서 넣은 16분 골 하나다. 같은 자리의 후보는 코치시였다. 코치시는 몰리뉴의 8강 2차전부터 세 경기를 8번으로 뛰며 다섯 골을 넣었고, 수아레스는 예선 첫 경기부터 4강 두 경기까지 바르셀로나가 치른 경기를 하나만 빼고 모두 뛰었다. 바르셀로나는 그가 선 일곱 경기에서 21골을 넣었다. 그해 12월 13일 『프랑스 풋볼』은 수아레스에게 발롱도르를 줬다. 2위가 푸스카스, 4위가 디스테파노였다. 대회의 11명에 그해 유럽 최고의 선수를 넣고, 그 아래 순위의 두 사람과 한 줄에 세웠다. 수아레스의 축구 인생은 루이스 수아레스 편에서 이어진다. [1][4]
한가운데는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다. 니스 원정 하나를 빼고 레알의 여섯 경기에 모두 9번으로 나서 여덟 골을 넣었다.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 17분과 84분, 결승에서 27분과 30분, 73분에 골을 넣었다. 결승 해트트릭으로 1956년부터 다섯 번의 결승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그의 레알 시절은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편에 정리했다. [1][3]
인사이드 레프트는 득점왕 페렌츠 푸스카스(Puskás Ferenc; 헝가리 출신 공격수, 1927-2006)다. 레알의 일곱 경기에 모두 10번으로 나서 12골을 넣었다. 1957-58 디스테파노와 1958-59 쥐스트 퐁텐의 10골을 넘는 대회 한 시즌 최다다. 죄네스 에슈와의 16강 홈경기에서 세 골, 캄 노우의 4강 2차전에서 두 골, 결승에서 45분과 56분 페널티킥, 60분과 71분까지 네 골을 넣었다. 한 시즌 전 다섯 경기에 나서고 결승 명단에 없었던 선수가 이 시즌에는 한 경기도 빠지지 않았다. 헝가리를 떠난 뒤의 이야기는 페렌츠 푸스카스 편에서 이어진다. [1][3]
마지막 자리, 왼쪽 끝은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López;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다. 에슈 원정 하나를 빼고 레알의 여섯 경기에 모두 11번으로 나서 두 골을 넣었다. 니스와의 8강 2차전 40분 골, 캄 노우의 4강 2차전 68분 골이다. 결승에서는 골이 없었지만, 푸스카스의 페널티킥 4분 뒤 왼쪽 터치라인을 따라 수비수를 앞에 두고 달린 헨토의 돌파 끝에 푸스카스의 60분 골이 나왔다. [1][3]
명단 밖에 남은 이름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코치시 샨도르(Kocsis Sándor; 헝가리 공격수, 1929-1979)다. 세 경기에 8번으로 나서 다섯 골을 넣었고, 그중 네 골이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몰리뉴에서 나온 8강 2차전 5-2에서 나왔다. 경기당 골은 이 대회의 누구보다 많았다. 인사이드 라이트에 수아레스를 세우면서 남겼다. 같은 바르셀로나의 쿠벌러 라슬로(Kubala László; 헝가리 출신 공격수, 1927-2002)도 세 경기 여섯 골(RSSSF 기준 다섯 골)을 넣었지만 4강 두 경기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1][2]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주장 알프레트 파프(Alfred Pfaff; 서독 축구선수, 1926-2008)가 끝까지 남았다. 일곱 경기에 모두 10번으로 나서 네 골을 넣었는데, 네 골 모두 레인저스와의 4강 두 경기에서 나왔다. 10번 자리에는 12골의 푸스카스가 있었다. 일곱 경기에 모두 3번으로 나선 헤르만 회퍼(Hermann Höfer; 서독 수비수)도 왼쪽 풀백 자리를 두고 저울질했지만, 센터 하프와 오른쪽 풀백을 오간 루츠 쪽으로 기울었다. [1]
두 사람은 한 경기로 이름을 남겼다. IFK 예테보리의 오베 올손(Ove Ohlsson; 스웨덴 공격수)은 린필드 FC와의 예선 2차전 6-1에서 혼자 다섯 골을 넣었다. 이 시즌 한 경기 최다 골이다. OGC 니스의 빅토르 누렌베르크(Victor Nurenberg; 룩셈부르크 공격수)는 8강 1차전에서 레알을 상대로 세 골을 넣어 3-2 승리를 만들었다. 이 시즌 레알을 이긴 팀은 니스 하나였다. 두 사람 모두 팀이 8강을 넘지 못해 네 경기와 여섯 경기에 그쳤다. [1][2]
그렇게 추리고 나니 레알에서 여섯 명, 프랑크푸르트에서 세 명, 바르셀로나에서 두 명이 남았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이 아홉 명을 냈고, 4강에서 레알과 맞붙은 바르셀로나가 두 명을 더했다. 다섯 번째 유러피언컵은 레알의 5연패로 끝났다. 햄든에서 일곱 골을 내준 프랑크푸르트는 결승의 선제골과 4강의 첫 골, 그리고 그 길을 함께 지킨 스물한 살의 풀백을 이 명단에 남겼다.
출처와 기록 기준
-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9/60 matches and line-ups」, UEFA 경기 데이터. 52경기의 선발 명단, 선수별 등번호와 생년월일, 득점과 실점.
- 「European Champions’ Cup 1959-60 - Details」, RSSSF. 경기별 득점자, 결승 명단과 주장.
- 「1959/60: Dazzling Madrid crush Frankfurt」, UEFA. 결승의 크레스 선제골, 디스테파노의 세 골과 푸스카스의 네 골.
-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60」, RSSSF. 『프랑스 풋볼』 1960년 12월 13일 발표, 1위 수아레스, 2위 푸스카스, 4위 디스테파노.
1959-60 시즌에는 공식 대회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11명은 삥이FC가 2026년 선정한 회고 명단이다. 출전 경기와 실점·무실점은 UEFA 경기 데이터의 선발 명단과 경기 결과, 득점은 UEFA와 RSSSF로 맞춘 기록을 기준으로 하며 공식 도움 통계는 없어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역할어는 선수가 가장 많이 단 등번호와 당시 구단의 번호 체계를 따랐다. 예외는 루이스 수아레스 한 사람으로, 일곱 경기 모두 10번을 달았는데 10번 자리에 푸스카스를 두면서 필자가 인사이드 라이트에 세웠다. 두 풀백은 모두 2번을 가장 많이 달아, 2번 경기가 적은 루츠를 전술판의 왼쪽에 그렸다. 사진: 로헬리오 도밍게스 《엘 그라피코》 1956년 2월 3일 자 1902호 표지(퍼블릭 도메인), 조안 세가라 선수 시절 초상(작자 미상, CC0, 이상 Wikimedia Commons), 루이스 수아레스 인물관 루이스 수아레스 편, 페렌츠 푸스카스 1954 FIFA 월드컵 베스트 11 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파코 헨토·마르키토스 1956-57 편, 호세 산타마리아 1957-58 편, 프리델 루츠·디터 슈팅카·리하르트 크레스 worldfootball.net. 표지 사진: Anefo(Herbert Behrens, CC0,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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