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 · 유러피언컵

1957-58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10골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의 디스테파노가 대회 첫 두 자릿수 골로 세 번째 유러피언컵 최다 득점자가 됐다. 뮌헨 사고 전날 베오그라드에서 두 골을 넣은 코스티치, 버셔시의 두 헝가리 공격수, 세 명을 올린 밀란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 1위부터 공동 6위까지 일곱 선수의 사진·클럽·국적·골 수를 정리한 삥이FC 디자인
1957-58 시즌 유러피언컵 득점 순위. 디자인: 삥이FC. 도판의 초르다스는 본문의 초르다시(Csordás), 가스톤 빈은 본문의 가스토네 베안(Gastone Bean)과 같은 인물이다.
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제3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57-58

네 골 이상 넣은 열 명

순위선수클럽출신출전득점
1위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레알 마드리드 CF아르헨티나7경기10골
2위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FK 츠르베나 즈베즈다유고슬라비아6경기9골
3위초르다시 러요시Csordás Lajos버셔시 SC헝가리8경기8골
공동 4위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버셔시 SC헝가리7경기6골
공동 4위에르네스토 그리요Ernesto GrilloAC 밀란아르헨티나8경기6골
공동 6위가스토네 베안Gastone BeanAC 밀란이탈리아5경기5골
공동 6위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AC 밀란우루과이6경기5골
공동 8위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레알 마드리드 CF아르헨티나6경기4골
공동 8위데니스 바이올렛Dennis Viollet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6경기4골
공동 8위요반 초키치Jovan CokićFK 츠르베나 즈베즈다유고슬라비아3경기4골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며, 교체 제도가 없던 시즌이라 선발 수가 곧 출전 수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이 4강에 오른 네 팀에서 나왔다. 결승에서 맞붙은 레알과 AC 밀란이 다섯 명, 4강에서 멈춘 버셔시 SC(Vasas Sport Club)가 두 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 명이다. 나머지 두 명은 8강에서 맨유에 막힌 FK 츠르베나 즈베즈다(Fudbalski klub Crvena zvezda)의 공격수다. 대회 최다 득점 팀은 재경기를 포함해 열 경기를 치른 밀란으로 28골을 넣었고, 일곱 경기를 치른 레알이 25골로 뒤를 이었다. [1], [2]

세 라운드에서 몰아친 디스테파노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Laulhé;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6-2014)는 레알이 치른 일곱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첫 골은 1957년 10월 31일 로열 앤트워프 원정에서 나왔다. 15분과 61분에 두 골을 넣어 2-1 승리를 만들었다. 안방의 16강 2차전은 엑토르 리알이 세 골을 넣은 6-0 경기였고, 디스테파노는 골이 없었다. [1]

골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은 8강 1차전이었다. 1958년 1월 23일 베르나베우에서 세비야 CF를 8-0으로 이긴 경기에서 네 골을 넣었다. 4강 1차전에서는 버셔시를 상대로 9분, 42분, 50분에 세 골을 넣어 4-0 승리를 이끌었다. 세비야 원정 2-2, 부다페스트 원정 0-2 경기에서는 골이 없었다. 원정 세 경기에서 두 골, 홈 세 경기에서 일곱 골이다. [1], [2]

마지막 한 골은 브뤼셀의 결승에서 넣었다. 0-1로 뒤진 74분의 동점골이었고, 이 골로 그는 유러피언컵 결승 세 번에서 모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한 시즌 전의 일곱 골에서 세 골이 늘었다. 결승 장면은 1957-58 유러피언컵 결승 H/L에서 볼 수 있다. [1]

뮌헨 사고 전날 두 골을 넣은 코스티치

2위 보라 코스티치(Borivoje Kostić; 유고슬라비아 왼쪽 윙어, 1930-2011)는 츠르베나 즈베즈다가 치른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서 아홉 골을 넣었다. 그중 여섯 골이 예선에서 나왔다. 1957년 9월 5일 룩셈부르크의 스타드 뒤들랑주 원정 5-0 승리에서 두 골, 10월 2일 베오그라드의 2차전 9-1 승리에서 17분부터 33분까지 16분 동안 네 골을 넣었다. [1], [2]

16강 IFK 노르셰핑 원정에서는 0-2로 뒤진 경기의 90분에 동점골을 넣어 2-2를 만들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베오그라드의 2차전을 2-1로 이겨 8강에 올랐다. 이 과정은 1957-58 유러피언컵 본선에 정리해 두었다. [1]

마지막 두 골은 1958년 2월 5일 베오그라드에서 맨유를 상대로 넣었다. 1차전을 1-2로 지고 온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전반에 0-3까지 밀렸다가 코스티치의 46분, 58분 골과 라자르 타시치(Lazar Tasić; 유고슬라비아 수비수)의 페널티킥으로 3-3까지 따라붙었다. 합계 4-5로 탈락했다. 맨유 선수단은 다음 날 돌아오던 길에 급유를 위해 내린 뮌헨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1], [3] 한 시즌 전 다섯 골로 공동 5위였던 코스티치는 두 시즌 합계 14골이 됐다.

버셔시의 두 헝가리 공격수

3위 초르다시 러요시(Csordás Lajos; 헝가리 공격수, 1932-1968)와 공동 4위 분자크 데죄(Bundzsák Dezső; 헝가리 미드필더, 1928-2010)가 넣은 14골은 버셔시가 여덟 경기에서 넣은 18골의 네 분의 셋이 넘는다. 초르다시는 여덟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섰다. 예선 CDNA 소피아와의 홈경기 6-1 승리에서 세 골, 16강 BSC 영 보이스 원정 1-1 경기에서 90분 동점골, 부다페스트의 2차전에서 8분과 12분에 두 골을 넣었다. 8강 아약스와의 홈경기 4-0 승리에서 한 골을 더했다. [1], [2]

분자크는 일곱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소피아 원정 1-2 패배와 부다페스트의 6-1 경기에서 한 골씩, 아약스 원정 2-2 경기에서 73분과 82분의 두 골, 부다페스트의 8강 2차전에서 7분 선제골을 넣었다. [1]

두 사람의 마지막 골은 같은 경기에서 나왔다. 1958년 4월 16일 네프슈터디온에서 열린 레알과의 4강 2차전에서 분자크가 25분, 초르다시가 53분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어 2-0으로 이겼다. 레알이 이 시즌 처음 골을 넣지 못하고 진 경기였지만, 1차전 0-4를 뒤집기에는 두 골이 모자랐다. 그 두 경기는 1957-58 유러피언컵 4강에서 이어진다. [1]

밀란의 세 사람

밀란은 열 명 가운데 세 명을 올렸다. 공동 4위 에르네스토 그리요(Ernesto Grillo;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1929-1998)는 예선, 16강, 8강,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 SK 라피트 빈과의 예선 두 경기에서 한 골씩, 11월 27일 아이브록스의 레인저스 원정 4-1 승리에서 75분과 83분에 두 골, 8강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 4-1 승리에서 한 골을 넣었고, 결승에서 77분에 밀란을 다시 앞세웠다. 라피트와의 재경기, 레인저스와의 홈경기, 도르트문트 원정에서는 골이 없었고, 맨유와의 4강 두 경기에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1], [2]

공동 6위 가스토네 베안(Gastone Bean; 이탈리아 공격수)은 다섯 경기에만 나서 다섯 골을 넣었다. 다섯 골이 모두 대회 초반에 나왔다. 라피트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한 골씩, 합계 6-6으로 열린 재경기 4-2 승리에서 두 골, 레인저스 원정에서 한 골을 넣었다. 8강부터는 선발 명단에 없었다. [1], [2]

베안이 초반을 맡았다면 후안 스키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 우루과이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5-2002)는 끝을 맡았다. 다섯 골 가운데 첫 골은 라피트와의 재경기에서 넣었고, 나머지 네 골은 모두 4강과 결승에서 나왔다. 올드 트래퍼드의 4강 1차전에서 한 골, 산 시로의 2차전 4-0 승리에서 2분과 76분에 두 골, 결승에서 59분 선제골을 넣었다. [1]

네 골의 세 사람

공동 8위 세 사람의 네 골은 모두 사정이 다르다. 엑토르 리알(José Héctor Rial Laguía; 아르헨티나 출신 인사이드 포워드, 1928-1991)은 1957년 11월 28일 앤트워프와의 16강 2차전에서 2분, 4분, 41분에 세 골을 넣었고, 결승에서 79분 동점골을 넣었다. 한 경기의 해트트릭과 결승의 한 골이 전부다. [1]

맨유의 데니스 바이올렛(Dennis Sydney Viollet; 잉글랜드 공격수, 1933-1999)은 예선 섐록 로버스와의 홈경기에서 두 골, 베오그라드의 8강 2차전에서 2분 선제골을 넣었다. 뮌헨 사고에서 살아남아 5월 8일 올드 트래퍼드의 4강 1차전에서 밀란을 상대로 한 골을 더했다. 한 시즌 전 아홉 골로 득점왕이었던 선수다. [1], [3]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요반 초키치(Jovan Cokić; 유고슬라비아 공격수)는 네 골을 한 경기에서 넣었다. 코스티치가 네 골을 넣은 스타드 뒤들랑주와의 예선 2차전 9-1 경기에서 5분, 38분, 66분, 69분에 골을 넣었다. 이 한 경기에서 두 사람이 여덟 골을 나눠 가졌다. 초키치는 이 시즌 세 경기에 나섰다. [1], [2]

기록 기준

골 수는 UEFA 경기 데이터의 48경기 득점 기록과 RSSSF의 경기별 득점자 줄을 한 골씩 맞춰 셌고, 열 명 모두 두 자료가 같다. 다만 RSSSF 페이지 맨 아래의 득점자 요약표는 그리요를 다섯 골로 적고 베안과 스키아피노를 네 골 명단에도 다섯 골 명단에도 넣지 않았다. 같은 페이지의 경기별 줄을 세면 그리요 여섯 골, 베안과 스키아피노 다섯 골로 UEFA와 같아, 표는 경기별 기록을 따랐다. 득점 시각은 몇 경기에서 두 자료가 1-2분씩 다르며, 본문은 UEFA 기록을 썼다. [1], [2]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