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 인터콘티넨털컵

1961 인터콘티넨털컵: CA 페냐롤 vs SL 벤피카, 1-0과 5-0 뒤의 재경기와 첫 남미 세계 챔피언

유러피언컵을 처음 든 구트만 벨러의 SL 벤피카와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2연패의 CA 페냐롤이 맞붙은 두 번째 인터콘티넨털컵. 다 루스의 1-0, 센테나리오의 5-0, 합계 5-1에도 승점이 같아 이틀 뒤 열린 재경기까지 3경기를 기록으로 읽는다.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페냐롤 선수단의 흑백 사진 위에 페냐롤 7, 벤피카 2를 얹은 삥이FC 디자인
1961 인터콘티넨털컵 세 경기 합계, CA 페냐롤 7-2 SL 벤피카. 디자인: 삥이FC.
금빛 공을 두 기둥이 받치고 받침에 두 대륙 문장을 붙인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

제2회인터콘티넨털컵

Copa Intercontinental 1961

1961년 9월 19일 밤, 몬테비데오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Estadio Centenario)에서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 선수들이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날까지 열닷새 동안 페냐롤과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는 세 경기를 치렀다. 리스본에서 벤피카가 1-0으로 이겼고, 몬테비데오에서 페냐롤이 5-0으로 이겼다. 골 합계는 이미 5-1로 기울었지만 대회 규정은 골을 세지 않고 승점을 셌다. 두 팀은 이틀 뒤 같은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다. [1][2]

1961 인터콘티넨털컵의 트로피와 결승을 주관한 유럽 축구 연맹과 남미 축구 연맹의 로고를 담은 삥이FC 디자인
대회 개요. 결승은 유럽 축구 연맹(UEFA)과 남미 축구 연맹(CONMEBOL)이 함께 주관했다.

유럽을 처음 가진 벤피카, 남미를 2번 가진 페냐롤

SL 벤피카와 클루브 아틀레티코 페냐롤의 문장, 소속 나라와 협회, 리그, 참가 자격, 주요 선수를 담은 삥이FC 디자인
참가 두 구단.

디자인 정정 위 디자인의 벤피카 소속 축구 협회는 포르투갈 축구 연맹(Federação Portuguesa de Futebol)이다. Seleção Nacional은 포르투갈 대표팀을 가리키는 말이다. 리가 포르투갈(Liga Portuguesa de Futebol Profissional)은 1978년에 생긴 단체로, 1961년의 프리메이라 디비장은 포르투갈 축구 연맹이 운영했다.

두 번째 인터콘티넨털컵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없었다. 다섯 시즌 연속 유러피언컵을 가져간 레알 마드리드는 1960-61 시즌 16강에서 CF 바르셀로나에 져 처음으로 떨어졌고, 1961년 5월 31일 베른 반크도르프에서 우승한 팀은 처음 결승에 오른 벤피카였다. 헝가리 출신 감독 구트만 벨러(Guttmann Béla; 헝가리 감독, 1899-1981)의 벤피카는 바르셀로나를 3-2로 이겼다. 그 결승은 1960-61 유러피언컵 결승 H/L에 장면별로 남겼다. 주장 주제 아구아스(José Águas; 포르투갈 공격수, 1930-2000)가 맨 앞에 섰고, 모잠비크 태생의 마리우 콜루나(Mário Colun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미드필더, 1935-2014)가 경기를 풀었다. [7]

페냐롤은 그해 6월 SE 파우메이라스를 이기고 1961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를 2연패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0-0으로 비기고 1-5로 져 돌아온 팀이다. 로베르토 스카로네(Roberto Scarone; 우루과이 감독) 감독이 그대로 벤치에 앉았고, 에콰도르의 알베르토 스펜세르(Alberto Pedro Spencer Herrera; 에콰도르 공격수, 1937-2006), 우루과이의 호세 사시아(José Francisco Sasía; 우루과이 공격수), 페루의 후안 호야(Juan Víctor Joya; 페루 공격수)가 앞줄을 이뤘다. 수비는 지난해에도 주장이던 윌리엄 마르티네스(William Martínez; 우루과이 수비수)가 이끌었다. [2][4]

우승을 가리는 방식도 지난해와 같았다.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이었고, 두 경기의 승점이 같으면 골 합계와 상관없이 재경기를 치렀다. 1960년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1무 1승으로 승점 3점을 얻어 이 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1][4]

결승 1차전: 다 루스의 1-0

SL 벤피카 1, 클루브 아틀레티코 페냐롤 0의 결승 1차전 결과와 경기 전 페넌트를 주고받는 두 주장과 주심의 컬러 사진, 콜루나의 60분 골과 날짜·경기장·주심·관중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결승 1차전 결과. SL 벤피카 1-0 CA 페냐롤.

디자인 정정 위 디자인의 관중 80,451명은 RSSSF와 벤피카 경기 기록의 4만 명과 다르다. 스위스 주심의 이름은 오트마르 후버(Othmar Huber)로 적는다.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

SL 벤피카 1961년 유니폼: 흰 깃의 빨강 셔츠, 흰 바지, 흰 띠를 두른 빨강 양말

  1. 골키퍼코스타 페레이라포르투갈
  2. 수비수앙젤루 마르팅스포르투갈
  3. 수비수사라이바포르투갈
  4. 미드필더마리우 주앙포르투갈
  5. 미드필더주제 네투포르투갈
  6. 미드필더페르난두 크루스포르투갈
  7. 공격수주제 아우구스투포르투갈
  8. 공격수조아킹 산타나포르투갈
  9. 공격수주제 아구아스포르투갈
  10. 공격수마리우 콜루나포르투갈
  11. 공격수도미시아누 카벵포르투갈

감독구트만 벨러헝가리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

CA 페냐롤 1961년 유니폼: 노랑·검정 세로 줄무늬 셔츠, 검정 바지, 노란 띠를 두른 검정 양말

  1. 골키퍼루이스 마이다나우루과이
  2. 수비수윌리엄 마르티네스 (주장)우루과이
  3. 수비수누베르 카노우루과이
  4. 미드필더에드가르도 곤살레스우루과이
  5. 미드필더네스토르 곤살베스우루과이
  6. 미드필더발테르 아게레우루과이
  7. 공격수루이스 쿠비야우루과이
  8. 공격수호세 사시아우루과이
  9. 공격수앙헬 루벤 카브레라우루과이
  10. 공격수알베르토 스펜세르에콰도르
  11. 공격수후안 호야페루

감독로베르토 스카로네우루과이

9월 4일 리스본 에스타디우 다 루스(Estádio da Luz)에서 1차전이 열렸다. 주심은 스위스의 오트마르 후버(Othmar Huber)였고, 두 선심도 스위스 사람이었다. 벤피카는 유러피언컵 결승의 11명에서 수비수 제르마누(Germano de Figueiredo; 포르투갈 수비수) 한 사람만 사라이바(Saraiva; 포르투갈 수비수)로 바꿨다. 에우제비우는 명단에 없었다. 전반은 0-0이었고, 60분 콜루나가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을 넣었다. 벤피카는 홈에서 1-0으로 이겨 승점 2점을 먼저 얻었다. [1][2][3][6]

결승 2차전: 센테나리오의 5-0

클루브 아틀레티코 페냐롤 5, SL 벤피카 0의 결승 2차전 결과와 골문 앞으로 굴러가는 공을 쫓는 두 팀 선수와 사진기자들의 흑백 사진, 다섯 골의 득점자와 날짜·경기장·주심·관중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결승 2차전 결과와 득점자. CA 페냐롤 5-0 SL 벤피카.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

CA 페냐롤 1961년 유니폼: 노랑·검정 세로 줄무늬 셔츠, 검정 바지, 노란 띠를 두른 검정 양말

  1. 골키퍼루이스 마이다나우루과이
  2. 수비수윌리엄 마르티네스 (주장)우루과이
  3. 수비수누베르 카노우루과이
  4. 미드필더에드가르도 곤살레스우루과이
  5. 미드필더네스토르 곤살베스우루과이
  6. 미드필더발테르 아게레우루과이
  7. 공격수루이스 쿠비야우루과이
  8. 공격수에르네스토 레데스마우루과이
  9. 공격수호세 사시아우루과이
  10. 공격수알베르토 스펜세르에콰도르
  11. 공격수후안 호야페루

감독로베르토 스카로네우루과이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

SL 벤피카 1961년 유니폼: 흰 깃의 빨강 셔츠, 흰 바지, 흰 띠를 두른 빨강 양말

  1. 골키퍼코스타 페레이라포르투갈
  2. 수비수앙젤루 마르팅스포르투갈
  3. 수비수사라이바포르투갈
  4. 미드필더마리우 주앙포르투갈
  5. 미드필더주제 네투포르투갈
  6. 미드필더페르난두 크루스포르투갈
  7. 공격수주제 아우구스투포르투갈
  8. 공격수조아킹 산타나포르투갈
  9. 공격수안토니우 멘드스포르투갈
  10. 공격수마리우 콜루나포르투갈
  11. 공격수도미시아누 카벵포르투갈

감독구트만 벨러헝가리

열사흘 뒤인 9월 17일, 2차전이 센테나리오에서 열렸다. 5만 6,358명이 들어왔고 주심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나이 포이노(Carlos Nai Foino)였다. 지난해 센테나리오의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선심을 본 사람이다. 스카로네 감독은 한 자리를 바꿨다. 앙헬 루벤 카브레라(Ángel Rubén Cabrera)를 빼고 에르네스토 레데스마(Ernesto Ledesma; 우루과이 공격수, 1930-2011)를 8번 자리에 넣어 콜루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했고, 호야를 왼쪽 윙으로 옮겼다. 벤피카는 아구아스 대신 안토니우 멘드스(António Mendes)를 세웠다. [2][3][4]

경기는 전반에 끝났다. 10분 사시아가 페널티킥으로 첫 골을 넣었고, 호야가 18분과 28분에 두 골을 더했다. 42분 스펜세르의 골로 전반은 4-0이었다. 스펜세르는 58분에 다섯 번째 골을 넣었다. 사시아와 쿠비야는 그 뒤로도 골문 앞에서 기회를 놓쳤다. 몬테비데오 일간지 《라 마냐나》(La Mañana)는 다음 날 스펜세르와 호야를 가장 높이 쳤다. [2][4]

5-0은 한 경기의 승리일 뿐이었다. 두 팀은 1승 1패, 승점 2-2가 됐다. 골 합계 5-1은 우승을 가리는 데 쓰이지 않았다. [1][5]

재경기: 이틀 뒤 다시 센테나리오

클루브 아틀레티코 페냐롤 2, SL 벤피카 1의 재경기 결과와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와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트로피를 함께 든 페냐롤 선수단의 컬러 사진, 세 골의 득점자와 날짜·경기장·주심·관중을 담은 삥이FC 디자인
재경기 결과와 득점자. CA 페냐롤 2-1 SL 벤피카.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

CA 페냐롤 1961년 유니폼: 노랑·검정 세로 줄무늬 셔츠, 검정 바지, 노란 띠를 두른 검정 양말

  1. 골키퍼루이스 마이다나우루과이
  2. 수비수윌리엄 마르티네스 (주장)우루과이
  3. 수비수누베르 카노우루과이
  4. 미드필더에드가르도 곤살레스우루과이
  5. 미드필더네스토르 곤살베스우루과이
  6. 미드필더발테르 아게레우루과이
  7. 공격수루이스 쿠비야우루과이
  8. 공격수에르네스토 레데스마우루과이
  9. 공격수호세 사시아우루과이
  10. 공격수알베르토 스펜세르에콰도르
  11. 공격수후안 호야페루

감독로베르토 스카로네우루과이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

SL 벤피카 1961년 유니폼: 흰 깃의 빨강 셔츠, 흰 바지, 흰 띠를 두른 빨강 양말

  1. 골키퍼코스타 페레이라포르투갈
  2. 수비수앙젤루 마르팅스포르투갈
  3. 수비수움베르투 페르난드스포르투갈
  4. 미드필더페르난두 크루스포르투갈
  5. 미드필더주제 네투포르투갈
  6. 미드필더도미시아누 카벵포르투갈
  7. 공격수주제 아우구스투포르투갈
  8. 공격수에우제비우포르투갈
  9. 공격수주제 아구아스포르투갈
  10. 공격수마리우 콜루나포르투갈
  11. 공격수안토니우 시몽이스포르투갈

감독구트만 벨러헝가리

재경기는 2차전 이틀 뒤인 9월 19일, 다시 센테나리오에서 열렸다. 6만 241명이 들어왔다. 주심은 아르헨티나의 호세 루이스 프라다우데(José Luis Praddaude)였다. 지난해 센테나리오에서 레알 마드리드와의 0-0을 맡았고, 그해 6월 코파 데 캄페오네스 데 아메리카 결승 두 경기를 맡은 주심이다. 2차전 주심 나이 포이노는 이날 선심으로 섰다. [2]

구트만 감독은 11명 가운데 넷을 바꿨다. 아구아스가 돌아왔고, 수비에는 움베르투 페르난드스(Humberto Fernandes; 포르투갈 수비수)가 들어왔다. 공격에는 열아홉 살의 에우제비우(Eusébio da Silva Ferreir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공격수, 1942-2014)와 열일곱 살의 안토니우 시몽이스(António Simões; 포르투갈 윙어, 1943-)를 세웠다. 모잠비크에서 온 에우제비우는 스포르팅과의 등록 분쟁이 정리되는 동안 벤피카의 1960-61 시즌을 거의 뛰지 못했고, 유러피언컵 결승에도 나서지 못했다. 공식 데뷔는 그 결승 다음 날인 6월 1일이었다. 인터콘티넨털컵에서는 1차전과 2차전 명단에 없다가 재경기에 처음 나왔다. [1][6][8]

5분, 아게레가 올린 크로스를 사시아가 머리로 넣었다. 35분 에우제비우가 마르티네스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마이다나의 왼쪽 위 구석으로 동점골을 찼다. 1-1은 5분을 가지 못했다. 40분 사시아가 페널티킥을 넣어 2-1을 만들었고, 후반에는 골이 나오지 않았다. [1][3]

결승1961 인터콘티넨털컵

SL 벤피카 vs CA 페냐롤

SL 벤피카 로고
SL 벤피카SL BENFICA포르투갈 국기포르투갈
승점2:2재경기로 결정
CA 페냐롤 로고
CA 페냐롤CLUB ATLÉTICO PEÑAROL우루과이 국기우루과이
결승 1차전
1 : 0
결승 2차전
0 : 5
재경기
1 : 2
우승
CA 페냐롤

SL 벤피카콜루나 60분

결승 1차전

CA 페냐롤득점 없음

SL 벤피카득점 없음

결승 2차전

CA 페냐롤사시아 10분(PK), 호야 18분 28분, 스펜세르 42분 58분

SL 벤피카에우제비우 35분

재경기

CA 페냐롤사시아 5분 40분(PK)

다 루스의 1-0, 센테나리오의 5-0. 합계는 1-5였지만 1승 1패로 승점이 같아 이틀 뒤 센테나리오에서 재경기를 치렀다.

승점 2 대 2, 재경기로 정한 첫 남미 세계 챔피언

페냐롤은 1패 1승 뒤의 재경기를 이겨 인터콘티넨털컵을 들었다. 남미 구단으로는 처음이다.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에 진 바로 그 대회를, 같은 감독과 같은 주장, 같은 스펜세르로 다시 이겼다. 세 경기의 골은 7-2였고, 그 가운데 사시아가 세 골, 호야와 스펜세르가 두 골씩을 넣었다. [2][5]

벤피카는 이 대회에 다시 돌아온다. 이듬해 레알 마드리드를 5-3으로 이기고 유러피언컵을 지킨 벤피카는 1962년 인터콘티넨털컵에서 펠레의 산투스 FC를 만났다. 페냐롤도 1966년 레알 마드리드를 센테나리오와 베르나베우에서 모두 2-0으로 이기고 두 번째 우승을 했다. 2017년 10월 FIFA 평의회가 1960년부터 2004년까지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팀을 클럽 세계 챔피언으로 인정하면서, 1961년의 페냐롤은 기록상 남미의 첫 클럽 세계 챔피언이 됐다. [2][9]

인터콘티넨털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페냐롤 선수단의 흑백 사진 위에 페냐롤 7, 벤피카 2를 얹은 삥이FC 디자인
세 경기 합계 CA 페냐롤 7-2 SL 벤피카. 디자인: 삥이FC.

참고 자료

  1. 「Intercontinental Club Cup 1961」, RSSSF. 세 경기의 날짜·경기장·주심, 전반 스코어, 득점 시각, 2차전과 재경기의 선발 명단, 승점이 같아 재경기를 치른 규정.
  2. 「Peñarol in Intercontinental Cup」, RSSSF. 세 경기의 관중과 심판진, 두 팀 감독, 1차전 선발 명단, 세 경기 합계 7-2, 1966년 레알 마드리드와의 두 경기.
  3. 「Copa Intercontinental 1961」, Padre y Decano. 2차전의 레데스마·호야 기용, 《라 마냐나》의 경기 평, 재경기 세 골의 장면.
  4. 「Copa Intercontinental de 1961」, 우루과이 축구 협회(AUF). 골득실을 세지 않아 치른 세 번째 경기, 1차전과 재경기의 페냐롤 명단.
  5. 「Peñarol conmemoró un nuevo aniversario de la Copa Intercontinental de 1961」, ESPN Deportes. 세 경기의 결과와 득점자, 남미 구단의 첫 우승.
  6. 「SL Benfica 1-0 CA Peñarol」·「CA Peñarol 5-0 SL Benfica」·「CA Peñarol 2-1 SL Benfica」, Ser Benfiquista. 세 경기의 벤피카 명단과 선수 나이, 1차전 관중.
  7. 「1960-61 유러피언컵 결승전 H/L: SL 벤피카 vs CF 바르셀로나」, 삥이FC. 베른 결승의 벤피카 명단과 세 골.
  8. 「Eusébio da Silva Ferreira (1942-2014)」, UEFA. 등록 분쟁과 1960-61 시즌, 1961년 6월 1일의 공식 데뷔.
  9. 「FIFA may replace Confederations Cup with new club competition」, Reuters(SBS 게재), 2017년 10월 28일. 인터콘티넨털컵 우승팀의 클럽 세계 챔피언 인정.

1차전 날짜는 RSSSF와 삥이FC 도판을 따랐다(9월 4일). 벤피카 경기 기록은 1차전을 9월 6일, 재경기를 리스본 날짜인 9월 20일로 적는다. 1차전 페냐롤 명단은 RSSSF 페냐롤 페이지와 AUF를 따랐다. RSSSF 대회 페이지는 호야 대신 레데스마를 적는다. 호야의 첫 골은 RSSSF 페냐롤 페이지와 도판의 18분을 따랐다(RSSSF 대회 페이지 19분). 선발 명단의 포지션 묶음은 RSSSF 명단의 2-3-5 표기 순서다. 재경기 관중은 《라 마냐나》가 6만 5,000명으로 적었다. 구단 문장은 1961년 무렵의 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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