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LEGEND

로프 렌센브링크(Rob Rensenbrink)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네덜란드 역대 공격수 TOP 5

로프 렌센브링크의 드리블과 득점력, 브뤼허에서 얻은 뱀 인간이라는 별명, 안데를레흐트의 유럽 결승과 2차례 월드컵을 읽는다. 당대 사진과 플레이 영상, 클럽·국대 스탯,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선정 19개 항목을 정리한다.
네덜란드 유니폼을 입은 로프 렌센브링크와 네덜란드 최고 존엄 문구
네덜란드 올 타임 베스트 윙 포워드, 로프 렌센브링크.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네덜란드 국기
NEDERLAND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
UEFA 로고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왕관을 쓴 사자 머리와 KNVB 글자로 된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로고
#KNVB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Koninklijke Nederlandse Voetbalbond
오렌지 방패 안에 흰 사자가 선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NED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Nederlands voetbalelftal | Oranje (오라녀; 오렌지)
편집자 평가

네덜란드 축구계에는 ‘꽃보다 빛나는’ 윙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싶은 선수는 로프 렌센브링크다. 측면에서 수비수를 휘감아 지나가고, 골키퍼 앞에서는 놀라울 만큼 침착해지던 왼발. 안데를레흐트를 유럽 정상에 올린 결승마다 그 발이 등장했다. 월드컵 결승의 골대 하나로 기억하기에는, 이 공격수가 이미 끝내 놓은 승부가 너무 많다.

로프 렌센브링크 플레이뱀 같은 드리블과 골문 앞의 침착함1 / 5

측면에서 수비수가 발을 뻗는 순간 공을 빼낸다. 몸을 틀어 태클을 피하고 골문 쪽으로 돌파를 이어 간다.

삥이FC 로프 렌센브링크 평가

  1. 피트 카이저(Piet Keizer; 1960~70년대 아약스의 왼쪽 윙어), 요니 레프(Johnny Rep; 1974·1978 월드컵의 네덜란드 공격수), 마르크 오버르마르스(Marc Overmars; 아약스·아스널·바르셀로나에서 뛴 윙어), 아르연 로번(Arjen Robben; 바이언과 네덜란드 대표팀의 왼발 윙어). 어느 시대를 들춰도 거대한 이름이 나온다. 그 경쟁에서 렌센브링크를 단연 첫손에 꼽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드리블러의 탈출 능력과 골 게터의 마무리, 동료를 살리는 마지막 패스가 한 몸에 들어 있었다.

  2. 빠른 주력과 날렵함만으로 설명하면 그의 드리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놓친다. 상대가 발을 내밀 때까지 공을 가까이 두고, 그 발을 지나서야 다음 보폭을 늘렸다. 몸이 먼저 앞으로 나가는 듯하다가 공은 옆으로 빠지고, 수비수가 따라 돌아서는 동안 그는 이미 골문을 바라본다. ‘뱀 인간’이라는 별명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움직임이다.

  3. 침착함은 속도와 상반되는 또 하나의 무기였다. 빠르게 달려 들어온 선수가 골키퍼 앞에서도 같은 속도로 슈팅을 서두르는 법은 없다. 렌센브링크는 마지막 순간에 한 박자를 남겨 두고 상대의 자세를 읽었다. 강하게 때릴 수 있으면서도 밀어 넣을 때를 아는 공격수, 수비수를 벗긴 뒤 골키퍼까지 한 번 더 상대할 여유가 있는 선수였다.

  4. 1978년 월드컵 결승을 떠올리며 ‘막판 결정력이 아쉬웠다’고 평하기 쉽다. 하지만 1976년과 1978년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각각 두 골을 넣은 선수를 두고 큰 경기에 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이언과 리버풀을 상대한 슈퍼컵에서도 골을 남겼다. 조국에 우승을 안기지 못한 비운과, 클럽의 유럽 제패를 완성한 해결사의 이력은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5. 요한 크라위프(Johan Cruijff;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끈 공격수), 빌럼 판하네험(Willem van Hanegem; 페예노르트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중원 지휘자)의 계보에 명함을 내밀 만한 선수라는 평가도 그 연장선에 있다.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만으로 그리면 브뤼셀에서 보낸 그의 전성기가 빠진다. 렌센브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벨기에 무대가 당대 유럽 축구에서 차지했던 자리까지 다시 보인다.

로프 렌센브링크 프로필

네덜란드 국기NEDERLAND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
본명
Pieter Robert Rensenbrink
등록명
로프 렌센브링크(Rob Rensenbrink)
출생
1947년 7월 3일
사망
2020년 1월 24일 · 향년 72세
출생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신장
178cm
주발
왼발
포지션
왼쪽 윙어 · 세컨드 스트라이커
주요 등번호
11번 · 15번 · 12번 · 19번
주요 프로 경력
1965-1982년
대표팀
1968-1979년 · 46경기 14골
별명
더 슬랑언멘스(De Slangenmens; 뱀처럼 유연하게 상대를 빠져나가는 사람)

목수 보조 일을 내려놓고, DWS의 왼쪽으로

렌센브링크가 처음부터 축구만 하며 자란 전업 프로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목수 보조로 일했다. 훗날 NH Nieuws와의 인터뷰에서는 열일곱, 열여덟 무렵 일을 그만두고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공을 잘 찬다는 평가가 실제 생업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였고, DWS가 그 길을 열어 주었다.

훈련복을 입고 축구공 위에 손을 얹은 젊은 렌센브링크
1965년 8월 3일, DWS 훈련 중의 렌센브링크. 사진: Joop van Bilsen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AFC DWS(Amsterdamsche Football Club Door Wilskracht Sterk;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한 구단)는 당시 프로 무대의 팀이었다. 오늘의 구단 위상만 보고 그의 출발점을 동네 아마추어 축구 정도로 그려 놓으면 시대가 어긋난다. 1965년 1군에 자리 잡은 렌센브링크는 에레디비시(Eredivisie; 네덜란드 최상위 리그)뿐 아니라 인터시티스 페어스컵(Inter-Cities Fairs Cup; UEFA컵 출범 이전의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도 뛰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첼시, 레인저스 같은 상대를 젊은 시절부터 만났다.

암스테르담에서 자란 재능이라면 다음 행선지로 아약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왼쪽에는 이미 카이저가 있었다. 페예노르트에도 쿤 물레인(Coen Moulijn; 페예노르트의 간판 왼쪽 윙어)이 버티고 있었다. 유명한 구단의 이름 아래 들어가는 일과 자신에게 좋은 자리를 찾는 일은 서로 다른 계산이다. 렌센브링크가 고른 길은 국경 남쪽이었다.

브뤼허에서 얻은 별명, 뱀 인간

1969년 클뤼프 브뤼허 KV(Club Brugge Koninklijke Voetbalvereniging; 벨기에 브뤼허의 구단)로 옮겼다. 그는 나중에 이적을 회고하면서 급여 조건을 숨기지 않았다. 브뤼허 생활이 마음에 들었고, 2년 뒤 안데를레흐트로 갈 때에도 더 나은 보수가 중요한 이유였다고 했다. 모든 이적에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꿈이 붙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직업 축구선수에게는 살림을 꾸릴 조건도 중요했다.

브뤼허에서는 헝가리의 우이페슈트 도저(Újpesti Dózsa; 현재 우이페슈트 FC)를 상대한 1969-70 시즌 페어스컵 경기가 별명을 남겼다. 홈에서 5-2로 이긴 날 렌센브링크가 세 골을 넣었다. 그는 상대 감독이 자신을 뱀에 빗댄 데서 별명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발을 뻗으면 이미 반대편으로 몸이 돌아가 있는 윙어를 상대했으니, 감독 입에서도 평범한 칭찬이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별명에는 승리만 들어 있지는 않다. 브뤼허는 원정에서 0-3으로 패해 탈락했다. 홈에서의 해트트릭과 유럽 대항전의 냉정한 결말이 같은 대진 안에 남았다. 이 시절 렌센브링크는 벨기에 컵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 컵위너스컵에서는 첼시와도 맞붙었다. 훗날 자신의 무대가 될 대회를 브뤼허 유니폼으로 먼저 경험한 셈이다.

안데를레흐트, 골대 위에 올라간 에이스

1971년 RSC 안데를레흐트(Royal Sporting Club Anderlecht; 브뤼셀의 안데를레흐트를 연고로 한 구단)에 들어간 뒤에는 첫 시즌부터 리그와 벨기에 컵을 함께 차지했다. 대표팀에서 그를 발탁했던 게오르크 케슬러(Georg Kessler; 네덜란드 대표팀과 안데를레흐트를 지휘한 독일 감독)와의 재회이기도 했다. 공과 훈련장의 선까지 빈틈없이 관리하려던 감독 아래에서, 자유로운 왼발은 우승팀의 공격을 맡았다.

렌센브링크의 조용한 성격을 순종적인 선수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안데를레흐트 팬 매체에 남긴 회고에는 한스 크론(Hans Croon; 안데를레흐트의 1975-76 시즌 감독)과 충돌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인 방어를 맡으라는 지시에 항의하며 훈련용 골대 위에 올라앉았고, 감독과 석 달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격수의 발을 묶어 놓는다고 느끼면, 말수가 적던 사람도 꽤 눈에 띄는 방식으로 반발했다.

흰색 안데를레흐트 유니폼을 입고 공을 모는 렌센브링크
《옹즈》 1977년 12월호에 실린 안데를레흐트 시절의 렌센브링크. 왼쪽 팔에는 주장 완장이 보인다.

흥미롭게도 그 크론과 함께 구단 최초의 유럽 우승을 이뤘다. 사제 사이의 다툼을 곧바로 경기력 붕괴로 연결할 수 없는 사례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에는 충돌도 있었고, 정작 가장 중요한 밤에 서로의 일이 맞아떨어진 순간도 있었다.

1976년 웨스트햄전, 결승에서 2번 꺼낸 왼발

1976년 컵위너스컵(European Cup Winners’ Cup; 유럽 각국 컵대회 우승팀들이 참가하던 대회) 결승은 브뤼셀에서 열렸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선제골을 내준 안데를레흐트는 전반 막판 렌센브링크의 동점골로 균형을 되찾았다. 후반에는 서로 골을 주고받아 2-2, 렌센브링크가 페널티킥으로 다시 앞서 나가는 골을 넣었다.

최종 점수는 4-2였다. 프랑수아 판데르엘스트(François Van der Elst; 안데를레흐트의 벨기에 공격수)도 두 골을 넣었다. 왼쪽에서 상대를 흔드는 렌센브링크와 그 옆에서 골문을 파고드는 공격수가 함께 결승을 끝냈다. 렌센브링크의 그 시즌 대회 성적은 9경기 8골, 득점왕이었다. 유연한 드리블을 보고 감탄하다가 기록표를 펴면, 그 화려함이 얼마나 자주 실제 득점으로 이어졌는지도 보인다.

같은 해 슈퍼컵 상대는 유러피언컵 3연패의 바이언이었다. 뮌헨 원정에서 1-2로 졌지만 홈에서는 4-1로 뒤집었고, 렌센브링크가 두 골을 보탰다. 벨기에의 컵 챔피언이 유럽 챔피언을 합계 5-3으로 이겼다. 벨기에 리그에서 뛴다는 이유로 그의 기량에 먼저 상한선을 그어 버리기 어려운 결과다.

그해 발롱도르에서는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바이언과 서독의 리베로)에 이어 2위에 올랐고, 프랑스 축구지 《옹즈》의 첫 옹즈도르를 받았다. 유럽의 독자와 투표자들이 그를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줄에 놓고 보던 해였다.

후탈스의 유럽 원정, 함부르크를 지나 리버풀까지

레이몽 후탈스(Raymond Goethals; 벨기에 대표팀과 안데를레흐트 등을 이끈 감독)가 부임한 뒤에도 유럽 결승행은 이어졌다. 그는 렌센브링크에게 공을 공급하는 일을 팀 공격의 중심에 두었다. 유럽 경기를 앞둔 에이스를 턱시도 차림에 비유한 회고도 남아 있다. 큰 무대에서 한껏 솜씨를 꺼내 보이던 선수를 감독은 그렇게 기억했다.

그렇다고 늘 이긴 것은 아니다. 1977년 결승에서는 함부르크 SV에 0-2로 패했다. 이듬해 안데를레흐트는 바로 그 함부르크를 대회 초반에 다시 만나 넘어섰고, 포르투와 트벤터를 지나 또 결승에 도착했다. 세 시즌 연속 결승, 그 마지막 상대는 FK 아우스트리아 빈(Fußballklub Austria Wien; 오스트리아 빈의 구단)이었다.

1978년 결승에서 렌센브링크는 전반에만 두 골을 넣었다. 힐버르트 판빈스트(Gilbert Van Binst; 안데를레흐트의 벨기에 수비수)도 두 골을 보태 4-0. 1976년 결승과 달리 쫓고 쫓기는 승부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두 차례 우승 결승에서 각각 두 골씩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경력을 월드컵의 불운으로만 요약하는 데에는 꽤 큰 빈칸이 생긴다.

안데를레흐트의 렌센브링크와 아약스의 뤼트 크롤이 심판 앞에서 악수하는 모습
1978년 8월 20일 암스테르담 대회. 안데를레흐트의 렌센브링크가 아약스의 뤼트 크롤과 악수한다. 사진: Hans Peters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그해 말 슈퍼컵에서는 리버풀을 만났다. 리버풀은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렌센브링크의 옛 팀 브뤼허를 꺾은 챔피언이었다. 안데를레흐트는 홈에서 3-1로 이겼고, 안필드에서는 1-2로 졌지만 합계 4-3으로 트로피를 가져왔다. 렌센브링크는 두 경기 모두 득점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의 달력에도, 그의 왼발이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남긴 골이 있었다.

렌센브링크를 공격진에 배치한 1978년 월드 사커 세계 베스트 11 도판
《World Soccer》의 에릭 배티가 선정한 1978년 세계 베스트 11. 렌센브링크의 이름 아래 안데를레흐트와 네덜란드가 함께 적혀 있다. 도판: Beyond The Last Man 전재.

이 도판은 당시의 평가를 눈앞에 남겨 놓는다. 영국 축구지 《World Soccer》의 에릭 배티(Eric Batty; 매년 자신이 선정한 세계 베스트 11을 발표한 축구 필자)는 1977년에 이어 1978년에도 렌센브링크를 공격진에 넣었다. 월드컵의 마지막 슈팅이 실패한 해에도, 한 해의 축구를 돌아본 선정표에는 그의 이름이 남았다.

1974년 월드컵, 결승을 앞두고 다친 왼쪽 날개

리뉘스 미헐스(Rinus Michels; 1974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의 팀에서 렌센브링크는 왼쪽 공격을 맡았다. 가운데를 비우고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크라위프, 반대편의 레프, 중원에서 전진하는 동료들과 함께 상대의 수비 기준을 흔들었다. 벨기에에서 뛰던 공격수가 아약스·페예노르트 선수들이 주축인 대표팀에 합류해 공격의 한쪽을 담당한 것이다.

토탈 풋볼(totaalvoetbal; 위치 교환과 유기적인 공간 활용을 특징으로 하는 축구)이라는 큰 이름 속에서도 렌센브링크의 일은 구체적이었다. 바깥에서 공을 받을 때는 일대일을 풀어야 했고, 크라위프가 이동하면 그가 남긴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했다. 측면 돌파와 골문 앞 마무리를 함께 갖춘 재능이 대표팀에서도 쓸모를 얻었다.

훈련장에서 의사 옆에 앉아 있는 렌센브링크
1974년 7월 4일 힐트루프. 브라질전 다음 날, 대표팀 의사와 함께 있는 렌센브링크. 사진: Rob Mieremet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그러나 브라질전에서 입은 부상이 결승까지 따라왔다. 미헐스는 서독과의 결승에 그를 선발로 내보냈지만, 렌센브링크는 전반만 뛰고 교체됐다. 대표팀이 최고의 공격을 펼치던 대회에서 정작 마지막 경기를 온전한 몸으로 치르지 못했다. 1974년의 아쉬움은 1978년 골대 장면보다 덜 반복되지만, 본인에게는 두 번의 결승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어긋난 셈이다.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국가 연주를 기다리는 네덜란드 선수들
1974년 7월 7일 뮌헨, 결승전을 앞둔 네덜란드 선수들. 렌센브링크는 이날 전반 종료 뒤 교체됐다. 사진: Bert Verhoeff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벨기에를 상대로 3골, 크라위프 없이 맞은 월드컵

1976년 4월 25일, 렌센브링크는 유로 8강 1차전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네덜란드는 5-0으로 이겼다. 평소 자신이 뛰는 리그의 대표 선수들과 맞선 경기에서, 그 리그의 수비수들이 잘 아는 왼발로 세 골을 넣었다. 낯설어서 당한 공격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벨기에 골키퍼를 제치며 골문으로 향하는 렌센브링크
1976년 4월 25일 벨기에전. 골키퍼를 제치며 3-0을 만드는 렌센브링크. 사진: Bert Verhoeff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네덜란드는 그 대회를 3위로 마쳤다. 2년 뒤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에른스트 하펠(Ernst Happel; 1978 네덜란드 대표팀을 지휘한 오스트리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크라위프가 빠진 공격에서 렌센브링크가 맡을 몫은 더 커졌다. 이란과의 첫 경기부터 세 골을 넣었고, 스코틀랜드전의 페널티킥은 월드컵 통산 1,000번째 골로 남았다.

그의 대회 기록은 5골이었다. 도움 집계를 제공하는 Planet World Cup에서는 3도움으로 공동 1위에 놓는다. 직접 끝내는 공격수와 동료에게 마지막 공을 건네는 공격수가 같은 선수였다는 점을 숫자에서도 읽을 수 있다. 크라위프라는 거대한 이름이 빠진 자리에 모든 역할을 한 사람이 그대로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렌센브링크는 자기 방식으로 팀이 결승까지 가는 데 힘을 보탰다.

골대에 맞은 공, 그 공을 찬 사람의 기억

아르헨티나와 1-1로 맞선 결승 막판, 뤼트 크롤(Ruud Krol;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장·수비수)의 긴 공이 렌센브링크에게 향했다. 골키퍼가 나오는 상황에서 좁은 각도로 건드린 공이 골대를 때렸다. 우승과 득점왕이 함께 바뀔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네덜란드는 연장에서 두 골을 내주고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장면을 선수의 평생 악몽처럼 서술하고 싶어질 수 있다. 정작 렌센브링크가 NH Nieuws 인터뷰에서 내놓은 반응은 조금 달랐다. 쉬운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었으며, 페널티킥을 실축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 슈팅 때문에 잠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는 취지였다. 화면을 수없이 돌려 본 사람들의 감정과 실제로 공을 찬 사람의 판단 사이에 간격이 있다.

그를 기억하는 레프 역시 말수가 적고 다소 수줍은 동료였다고 회상했다. 크롤은 그 골대 장면보다 더 많은 것으로 렌센브링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뛰었던 사람들에게는 그 한 번의 슈팅 앞뒤로 수많은 훈련과 경기, 패스와 돌파가 남아 있었다. 필자가 유럽 결승들을 길게 돌아온 이유도 그 선수의 경기력을 그만큼 넓게 보려는 데 있다.

공항의 작별과 물가로 돌아간 스타

공항에서 어린 딸을 안고 있는 렌센브링크
1978년 6월 27일, 월드컵을 마치고 스히폴 공항에 돌아온 렌센브링크와 딸. 사진: Bert Verhoeff / Anefo ·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안데를레흐트에서의 마지막은 우승 사진처럼 매끈하지 않았다. 렌센브링크는 훗날 아리 한(Arie Haan; 아약스·안데를레흐트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미드필더)과의 갈등을 떠난 이유로 들었다. 그의 회고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공항이었다. 미국으로 출국하며 뒤를 돌아봤을 때, 구단 마사지사 페르낭 베이크만(Fernand Beeckman)만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기억이다. 구단을 대표하던 스타도 작별하는 순간에는 서운함을 품은 한 사람으로 남았다.

1980년 포틀랜드 팀버스(Portland Timbers; 당시 북미축구리그 NASL에 참가한 구단)에서는 정규리그 18경기 6골을 기록했다. 이후 툴루즈 FC(Toulouse Football Club)로 향했지만 부상으로 오래 뛰지 못했다. 툴루즈 구단의 시즌 회고는 1981-82 시즌 겨울에 그가 은퇴했다고 기록한다. 팀이 그해 2부 우승과 승격을 완성할 때까지 주역으로 뛰었다고 그릴 수는 없는 경력이다.

프로 무대를 떠난 뒤에는 어린 시절의 OSV(Oostzaanse Sport-Vereniging; 오스트잔의 아마추어 구단)에서도 공을 찼다. 대중의 관심을 좇기보다는 조용한 생활과 낚시를 즐겼다. 선수 시절부터 자신만의 팬클럽을 원하지 않았다는 회고를 읽고 나면, 은퇴 뒤 물가로 향한 선택도 낯설지 않다.

시간이 지난 뒤 벨기에 축구는 그를 다시 불러냈다. 2007년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2008년 안데를레흐트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고, 2025년에는 벨기에 프로 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해 행사에는 아내 코리가 참석했다. 골대가 그를 세계 챔피언으로 남겨 주지는 않았지만, 브뤼셀의 기억에서 렌센브링크의 자리를 지워 버리지도 못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AFC DWS 문장AFC DWS1965-1969120경기 · 32골
리그 · NFT 집계
1972년 이전 클뤼프 브뤼허 문장클뤼프 브뤼허 KV1969-197155경기 · 23골
리그 · NFT 집계
1933-1981년 RSC 안데를레흐트 문장RSC 안데를레흐트1971-1980349경기 · 199골
구단 통산 집계
NASL 시절 포틀랜드 팀버스 문장포틀랜드 팀버스198018경기 · 6골 · 1도움
NASL 정규리그
1979-1984년 툴루즈 FC 문장툴루즈 FC1981-198212경기 · 1골
프랑스 디비지옹 2
1973-1979년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 문장네덜란드 대표팀1968-197946경기 · 14골
성인 A매치

주요 프로 클럽과 성인 대표팀 기록. DWS·브뤼허·툴루즈는 National Football Teams의 시즌별 리그 기록, 안데를레흐트는 구단 통산 발표, 포틀랜드는 NASL 기록을 따른다. 집계 범위가 달라 카드 수치를 하나의 통산 합계로 더하지 않는다. OSV의 아마추어 출전·득점은 확인된 합계가 없다. 구단 문장은 소속 식별용이며 포틀랜드는 NASL 당시 문장이다. 문장은 렌센브링크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며, DWS와 포틀랜드 팀버스의 칸은 현재 문장이다.

대회별 스탯

대회경기골
벨기에 1부 리그316165
에레디비시12034
벨기에컵4225
유러피언컵107
유러피언 컵위너스컵3525
UEFA컵30
FIFA 월드컵136
UEFA 유로20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집계다. 이 시대 경기는 도움 기록이 거의 남지 않아 도움 칸을 두지 않았다. 이 밖의 기록은 친선 경기 24경기 6골, 기타 국제 클럽 대회 13경기 5골, KNVB 베이커르 13경기 6골, 프랑스 2부 리그 12경기 1골, FIFA 월드컵 예선 8경기, UEFA 유로 예선 6경기 2골, 벨기에 리그컵 6경기 3골, 인터시티스 페어스컵 6경기 2골, UEFA 슈퍼컵 4경기 3골, UEFA 유로 예선 플레이오프 2경기 3골이다. 대회별 합계는 클럽 기록 카드의 공식전 총계와 집계 범위가 달라 그대로 더해지지 않는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AFC DWS1965-66~1968-69 시즌11 · 10
클뤼프 브뤼허 KV1969-1971년시즌별 이력 미확인
RSC 안데를레흐트1971-72 · 1974-75~1979-80 시즌11 · 9
포틀랜드 팀버스1980년 NASL19
툴루즈 FC1981-82 시즌시즌별 이력 미확인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등번호
네덜란드1974 FIFA 월드컵15
네덜란드UEFA 유로 197611
네덜란드1978 FIFA 월드컵12

트랜스퍼마크트의 시즌별 이력과 대회 등록 번호, NASL 당시 자료 기준. 클럽의 복수 번호는 확인된 착용 이력이며 전 경기에 고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Belgian First Division

우승 2회: 1971-72, 1973-74 · RSC 안데를레흐트

벨기에 컵Beker van België

우승 5회: 1969-70 · 클뤼프 브뤼허 / 1971-72, 1972-73, 1974-75, 1975-76 · RSC 안데를레흐트

유러피언 컵위너스컵European Cup Winners' Cup

우승 2회: 1975-76, 1977-78

준우승: 1976-77 · RSC 안데를레흐트

UEFA 슈퍼컵UEFA Super Cup

우승 2회: 1976년, 1978년 · RSC 안데를레흐트

프랑스 디비지옹 2Division 2

우승 시즌 소속: 1981-82 · 툴루즈 FC (시즌 도중 겨울에 은퇴)

FIFA 월드컵FIFA World Cup

준우승 2회: 1974년, 1978년 · 네덜란드

UEFA 유로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3위: 1976년 · 네덜란드

로프 렌센브링크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발롱도르1976년 2위 · 1977년 7위 · 1978년 3위
  • 옹즈도르프랑스 축구지 《옹즈》 독자 선정 유럽 무대 올해의 선수1976년
  • 옹즈 드 브롱즈《옹즈》 독자 선정 유럽 무대 올해의 선수 3위1978년 · 1979년
  • 옹즈 드 옹즈《옹즈》 독자 선정 베스트 111976년 · 1977년 · 1978년 · 1979년
  • 월드 사커 선정 세계 베스트 11《World Soccer》의 에릭 배티 선정1977년 · 1978년
  • 《Sport》 선정 유럽 베스트 11유고슬라비아 스포츠지의 유럽 베스트 11 선정1976년 · 1977년 · 1978년
  • FIFA 월드컵 브론즈부트1978년 · 5골
  • FIFA 월드컵 공동 도움왕1978년 · 3도움 (Planet World Cup 집계)
  • 월드컵 베스트 11후대 매체의 대회별 올스타 명단 수록1974년 · 1978년
  • 벨기에 골든슈벨기에 리그 올해의 최우수 선수1976년
  • 벨기에 퍼스트 디비전 공동 득점왕1972-73 시즌 · 16골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득점왕1975-76 시즌 · 8골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역대 최다 득점통산 25골
  • FIFA 100FIFA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펠레가 선정한 125인의 축구선수2004년
  • 플라네트 풋 선정 세계 최고의 선수 50인프랑스 축구지 《Planète Foot》 선정1996년
  • 플라카르 선정 월드컵 스타 100인브라질 축구지 《Placar》 선정2005년 · 42위
  • RSC 안데를레흐트 역대 최고의 선수2008년 · 구단 창립 100주년 팬 투표
  • 벨기에 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Sport/Voetbalmagazine》 선정2007년
  • 벨기에 프로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2025년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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