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LEGEND
데니스 베르흐캄프(Dennis Bergkamp)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그 시절 대장 공격수, 논 플라잉 더치맨
아약스의 3년 연속 득점왕, 인테르에서 붙은 '이번 주의 베르흐캄프', 비행기를 끊고 아스널에서 완성한 10번. 데니스 베르흐캄프의 클럽·국대 스탯과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 23개 항목을 당대 인터뷰와 기록으로 정리한다.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1990년대를 통틀어 "그 시절 대장 공격수"를 하나만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데니스 베르흐캄프다. 아약스에서 3년 연속 득점왕에 오르고, 인테르에서는 신문 조롱란에 이름이 걸렸으며, 비행기를 끊은 채 건너간 아스널에서 잉글랜드 축구의 10번을 새로 정의했다. 티에리 앙리는 그를 두고 스트라이커의 꿈이라 했다. 골을 넣는 선수와 골을 만들어 주는 선수 사이, 그 좁은 틈을 가장 우아하게 차지한 사람이다.
아약스 시절. 수비 사이로 공을 몰고 들어가 마무리한 뒤 두 팔을 들어 올린다.
- 아약스 시절. 수비 사이로 공을 몰고 들어가 마무리한 뒤 두 팔을 들어 올린다.
- 인테르 시절 산시로. 동료와 공을 주고받으며 전진한 뒤 골키퍼 옆으로 낮게 밀어 넣는다.
- 2002년 뉴캐슬 원정. 피레스의 패스를 왼발로 돌려 놓고 몸을 반대로 틀어 수비수를 지나 마무리한다.
- 19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긴 패스를 받아 수비수를 벗기고 골키퍼를 넘겨 결승골을 넣는다.
삥이FC 데니스 베르흐캄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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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공격수 계보에서 베르흐캄프의 자리는 요한 크라위프(Johan Cruijff; 아약스·바르셀로나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공격수, 1947-2016)와 마르코 판바스턴(Marco van Basten; 아약스·AC 밀란의 스트라이커, 1964-) 사이에 있다. 판바스턴처럼 골문 앞에서 끝내는 능력이 있었고, 크라위프처럼 한 칸 내려와 경기의 방향을 바꾸는 눈이 있었다. 기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분류하려 들면 설명이 자꾸 모자라는 선수다. 대표팀 79경기 37골, 파스 빌크스(Faas Wilkes; 1940~50년대 네덜란드의 공격수, 1923-2006)를 넘어선 당시의 네덜란드 최다 득점 기록이 그 이중성을 숫자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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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첫 터치다. 베르흐캄프는 공을 받기 전에 이미 다음 동작을 정해 두는 편이었다. 날아오는 공을 발등으로 죽이는 순간 수비수가 서 있던 방향과 반대로 공이 떨어지고, 그다음 터치가 곧 슈팅이나 패스가 된다. 아르센 벵거(Arsène Wenger; 아스널을 22년간 이끈 프랑스 감독, 1949-)는 그를 두고 남들이 두세 번 만져야 넣는 골을 한 번의 터치로 넣는다고 했다. 공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는데도 공을 가장 오래 지배하는 공격수, 이런 역설은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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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의 커리어가 처음부터 매끈하게 올라간 것은 아니다. 인테르에서의 두 시즌은 실패였다. 리그는 13위로 고꾸라졌고, 이듬해 UEFA컵에서는 1라운드에 광탈했다. 이탈리아 신문은 매주 최악의 선수에게 붙이던 조롱란의 이름을 아예 그의 이름으로 바꿨다. 그 실패를 지우지 않고 보아야 아스널에서의 부활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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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행기다. 월드컵과 유럽 대항전이 전부 하늘길로 이어지던 시대에, 1995년 이후 베르흐캄프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원정이 멀면 차와 기차, 배로 움직였고, 대표팀도 비행기로만 갈 수 있는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다. 이 제약을 안고도 리그 우승 세 번, FA컵 우승 네 번을 들었다는 사실을 두고 흔히 ’약점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허나 본인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비행기를 끊었기에 더 좋은 선수가 됐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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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성격. 경기장 밖의 베르흐캄프는 말수가 적고 차갑다는 평을 들었다. 인테르 동료들은 그를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으로 기억했고, 잉글랜드 언론은 아이스맨이라 불렀다. 정작 그는 그 별명을 오해라고 했다. 겉으로 차가워 보였을 뿐 속으로는 늘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선수의 골을 볼 때마다 감탄보다 먼저 묘한 친근함을 느끼는 이유도 거기 있다. 가장 화려한 장면을 가장 담담한 얼굴로 만들어 낸 사람이다.
데니스 베르흐캄프 프로필
- 본명
- Dennis Nicolaas Maria Bergkamp
- 등록명
- 데니스 베르흐캄프(Dennis Bergkamp)
- 출생
- 1969년 5월 10일
- 출생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신장
- 183cm
- 포지션
- 세컨드 스트라이커 · 공격형 미드필더
- 주요 등번호
- 10번 · 8번 · 7번
- 주요 프로 경력
- 1986-2006년
- 대표팀
- 1990-2000년 · 79경기 37골
- 별명
- 논 플라잉 더치맨(Non-Flying Dutchman; 비행기를 타지 않는 네덜란드인)
데니스 로의 이름에 N 하나를 더해서
베르흐캄프의 이름은 스코틀랜드 공격수 데니스 로(Denis Law;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코틀랜드 공격수, 1940-2025)에게서 왔다. 전기 기술자이자 하부리그에서 공을 차던 아버지가 로의 팬이었다. 원래 철자는 N이 하나인 Denis였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그렇게 쓰면 발음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N을 하나 더 붙였다. 로가 세상을 떠난 2025년 1월, 베르흐캄프는 아버지가 정말 좋은 이름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하며 로의 기술과 캐릭터를 떠올렸다.

암스테르담에서 자란 소년은 열한 살에 아약스 유소년팀에 들어갔다. 크라위프가 1군 감독으로 돌아와 유소년 출신을 과감하게 끌어올리던 시기와, 베르흐캄프가 성인 무대를 두드릴 나이가 마침 맞물렸다.
크라위프가 열일곱 살을 1군에 올리다
1986년 12월 14일, 아약스 감독 크라위프는 로다 JC(Roda JC Kerkrade; 케르크라더를 연고로 한 네덜란드 구단)와의 경기 66분에 열일곱 살 베르흐캄프를 교체로 넣었다. 실력만 충분하면 나이는 상관없다는 것이 크라위프의 원칙이었다. 이듬해 2월 22일 HFC 하를럼(HFC Haarlem; 하를럼을 연고로 했던 네덜란드 구단)을 상대로 첫 골을 넣었고, 그 시즌 공식전 23경기를 뛰었다.
데뷔 시즌의 막내에게 정해진 자리는 없었다. 트랜스퍼마크트의 시즌별 기록을 보면 1986-87 시즌 그의 등번호만 14번, 15번, 7번이다. 오른쪽 측면에 서기도 하고 교체 명단 번호를 달기도 했다. 그래도 크라위프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European Cup Winners’ Cup; 각국 컵대회 우승팀이 참가하던 유럽 대항전)에서 그를 계속 썼다. 1987년 5월 13일 아테네 결승에서 아약스가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1. FC Lokomotive Leipzig; 동독 라이프치히의 구단)를 1-0으로 꺾을 때 베르흐캄프도 교체로 그라운드에 있었다. 프로 첫 시즌에 유럽 트로피를 든 셈이다.

이듬해에도 아약스는 컵위너스컵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5월 11일 스트라스부르에서 벨기에의 KV 메헬렌(KV Mechelen; 벨기에 메헬렌의 구단)에 0-1로 져 2연패를 놓쳤다. 베르흐캄프는 그 시즌 대회 6경기에서 1골을 넣으며 유럽 무대의 경험을 쌓았다.

판할의 아약스, 3년 연속 득점왕

베르흐캄프가 붙박이 공격수가 된 것은 1990년대 초다. 1989-90 시즌 에레디비시(Eredivisie; 네덜란드 최상위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1990-91 시즌 25골로 PSV의 호마리우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1991-92 시즌 24골, 1992-93 시즌 26골로 3년 연속 득점왕. 같은 기간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상도 두 번 받았다. 아약스가 1970년대 초 유러피언컵 3연패 이후 다시 유럽의 주인공으로 돌아오기까지, 그 사이를 이어 준 “아약스 제2의 전성시대”의 대장 공격수가 바로 그였다.
루이 판할(Louis van Gaal; 1991년부터 아약스를 이끈 네덜란드 감독, 1951-)이 부임한 1991-92 시즌에는 UEFA컵(UEFA Cup; 현재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11경기에서 6골을 넣었다. 그런데 정작 토리노와의 결승 2차전, 암스테르담 홈 경기에는 없었다. 경기를 앞두고 병이 났기 때문이다. 아약스는 원정 1차전 2-2, 홈 2차전 0-0으로 원정 다득점 우승을 차지했다. 판할은 훗날 ESPN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돌아봤다. 운이 좋았다고, 우리가 딱히 더 나은 팀도 아니었다고, 원정에서 2-2를 만들었으니 홈에서 이길 수도 있었는데 베르흐캄프가 없었다고.

우승 뒤 판할은 주장 대니 블린트(Danny Blind; 아약스의 주장·수비수, 1961-)와 함께 트로피를 들고 앓아누운 베르흐캄프를 찾아갔다. 판할의 설명은 짧았다. 그는 아팠고, 그럴 자격이 있었으며,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선수였다고. 가장 중요한 선수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지막 경기를 밟지 못한 공격수에게 감독이 직접 우승을 배달한 장면이다. 1992년 발롱도르 3위, 1993년 2위가 이 무렵 그의 위치를 말해 준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베르흐캄프는 1993년 여름 아약스를 떠났고, 판할의 아약스는 1994-95 시즌 리그 무패 우승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대의 전설적인 유럽 제패를 잇는 세대가 완성된 바로 그 순간, 그는 이미 밀라노에 있었다.
유로 1992, 득점왕을 하고도 승부차기에 울다
대표팀 데뷔는 1990년 9월 26일 이탈리아전이었다. 유로 1992에서는 스코틀랜드전 결승골, 독일전 쐐기골, 덴마크와의 준결승 동점골까지 세 골을 넣어 공동 득점왕이 됐다. 대회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992년 6월 22일 예테보리 준결승은 2-2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갔다. 두 번째 키커 판바스턴의 슈팅을 페테르 슈마이켈(Peter Schmeichel; 덴마크의 골키퍼, 1963-)이 막았다. 세 번째 키커 베르흐캄프는 성공했고, 네덜란드의 나머지 키커도 모두 넣었다. 덴마크가 다섯 번을 모두 성공시키면서 네덜란드는 탈락했다.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중 한 명이 자기 몫을 다하고도 결승에 가지 못한 첫 번째 여름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6년 뒤 한 번 더 반복된다.
빔 용크와 함께 고른 인테르
1993년 2월 15일, 인테르 회장 에르네스토 펠레그리니(Ernesto Pellegrini; 1984-1995년 인테르 회장)는 아약스의 네덜란드인 두 명, 베르흐캄프와 빔 용크(Wim Jonk; 아약스·인테르의 미드필더, 1966-)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베르흐캄프에게는 유벤투스도 관심을 보였지만, 그는 아약스에서 함께 뛴 용크를 같이 받아 준 인테르를 골랐다. 입단 당시 그는 인테르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1993년 7월 1일, “꿈의 무대 이탈리아”에 도착한 베르흐캄프는 네라주리(Nerazzurri; 검정과 파랑, 인테르의 별칭) 유니폼을 입었다. 로타어 마테우스, 안드레아스 브레메, 위르겐 클린스만의 “게르만 삼총사”가 떠난 공격을 다시 세울 스타로 기대받았다. 네덜란드 매체 VICE의 회고에 따르면 인테르 수뇌부는 두 네덜란드인에게 공격 축구를 약속했다. 그러나 오스발도 바뇰리(Osvaldo Bagnoli; 1992-1994년 인테르 감독, 1935-) 감독은 수비적인 5-3-2로 돌아갔고, 바뇰리 본인도 두 선수 영입을 자신이 요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베르흐캄프가 나중에 설명한 문제는 거리였다. 최전방에 루벤 소사(Rubén Sosa; 우루과이의 공격수, 1966-)와 둘이 서면 매 경기 수비수 다섯 명과 마주했다. 미드필더 두 명이 따라 올라와도 뒤를 돌아보면 수비진과 나머지 미드필더는 여전히 자기 진영 깊숙이 있었다. 아약스에서는 경기마다 기회가 다섯 번은 났는데 인테르에서는 운이 좋아야 한 번이었다는 말도 남겼다. 아약스식 축구에서 자란 공격수가 가장 이탈리아다운 축구 한가운데 떨어진 셈이다.
리그 13위의 UEFA컵 챔피언, 이번 주의 베르흐캄프
1993-94 시즌 베르흐캄프는 세리에 A 31경기에서 8골을 넣었다. 그중 상당수가 페널티킥이었다. 파트너 소사는 리그 16골을 넣으며 팀 내 리그 최다 득점자가 됐지만, 두 사람의 호흡은 좋지 않았다. 소사는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협력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불평했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수줍음 많은 베르흐캄프를 여자 이름으로 비꼰 라 데니세(La Denise)라는 별명까지 돌았다. 리카르도 페리는 모두가 다가가려 했지만 그가 꽤 차가웠다고 했고, 주세페 베르고미는 조금 더 이탈리아 사람이 되려 노력할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 시즌 인테르는 리그 13위로 고꾸라졌다. 강등권과 불과 1점 차였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 로마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일간지)는 매주 최악의 선수에게 붙이던 이번 주의 당나귀(L’asino della settimana)를 아예 이번 주의 베르흐캄프(Bergkamp della settimana)로 바꿔 불렀다. 한 선수의 이름이 곧 조롱의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즌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선수였다. 라피드 부쿠레슈티(FC Rapid București;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구단)를 상대로 한 1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넣었고, 노리치 시티와의 16강, 칼리아리와의 준결승에서도 골과 도움을 보탰다. 결승에서는 오스트리아의 SV 카지노 잘츠부르크(SV Casino Salzburg; 현재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원정과 홈에서 모두 1-0으로 꺾었다. 베르흐캄프는 UEFA컵 11경기 8골로 공동 득점왕. 리그에서는 조롱받고 유럽에서는 우승한, 이보다 모순적인 시즌도 드물다.
두 번째 시즌은 더 나빠졌다. 1994-95 시즌 인테르는 전 시즌 우승팀 자격으로 나선 UEFA컵 1라운드에서 애스턴 빌라에 승부차기로 져 광탈했다. 1차전 홈에서 베르흐캄프가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었는데도 원정에서 뒤집혔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리그 21경기 3골에 그쳤고, 새 감독 오타비오 비안키(Ottavio Bianchi; 나폴리에서 마라도나와 우승한 이탈리아 감독, 1943-)와의 관계도 틀어졌다. 베르흐캄프는 자서전에서 비안키가 휴대전화 하나만 들고 테니스장으로 걸어가고, 나이 든 코치가 라켓 두 개와 물병 네 개, 가방까지 들고 뒤따르는 모습을 본 순간 감독에 대한 존경을 잃었다고 적었다. 비안키가 틈만 나면 마라도나와의 인연을 꺼내는 것도 지금 뛰는 선수들을 무시하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1995년 6월, 새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Massimo Moratti; 1995년 인테르를 인수한 이탈리아 기업가, 1945-)에게 베르흐캄프는 조건을 걸었다. 감독을 바꾸고 선수를 보강하든지, 아니면 떠나겠다고. 모라티는 비안키를 남겼다. 베르흐캄프는 당시 자신이 꽤 망가져 있었고 은퇴까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공식전 74경기 22골. 인테르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이 되겠다던 스물네 살의 목표는 그렇게 끝났다.
하늘이 무서워진 공격수, 논 플라잉 더치맨
비행 공포증도 이 무렵 시작됐다. 2013년 자서전 발표 자리에서 베르흐캄프는 1994년 미국 월드컵 기간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컨디션이 나빠졌으며, 귀국 비행을 끔찍할 만큼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5년 6월, 더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 순간을 그는 이상하게도 자유를 되찾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 전해지는 썰
- 1994년 월드컵 때 한 기자가 기내에서 폭탄 농담을 했고, 그 충격으로 베르흐캄프가 비행 공포증에 걸렸다.
-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
- 사건은 실제로 있었다. 1994년 7월 6일 올랜도 공항에서 《알헤메인 다흐블라트》(Algemeen Dagblad; 네덜란드 일간지)의 렉스 뮐러 기자가 가방을 두고 한 농담이 FBI 조사와 대피로 번졌고, 뮐러는 결국 신문사를 떠났다(《NRC》 회고).
- 본인의 설명
- 베르흐캄프는 비행 자체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심리적인 문제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한 번의 사건으로 생긴 병이 아니었다. 떨림과 불면이 조금씩 쌓인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판정: 사건은 사실, 원인은 과장. 농담 한 번이 모든 것을 만든 것처럼 줄이면 본인이 말한 경과가 사라진다.
증상은 구체적이었다. 아스널 시절 옛 동료 마틴 키언(Martin Keown; 아스널의 잉글랜드 수비수, 1966-)과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원정을 앞두면 잠을 잘 수 없었고, 경기 중에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씨를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원정 경기가 비행기 이동이면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끊은 뒤 뉴캐슬 같은 먼 원정에는 장비 담당 빅 에이커스와 미니버스를 타고 따로 이동했다.

대가도 분명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원정 일부를 건너뛰어야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은 2000년 대표팀 은퇴의 한 이유가 됐다. 그럼에도 베르흐캄프는 비행기를 끊는 선택 덕분에 더 좋은 선수가 됐다고 믿었다. 불안을 안고 뛰던 경기가 사라지자 남은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약점을 가리는 대신 그 약점에 맞춰 삶의 동선을 다시 짠 사람. 논 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에는 조롱보다 그런 고집이 더 많이 들어 있다.
리오크의 러브콜, 리그 일곱 번째 경기에서 터진 첫 골
이때 개혁을 꿈꾸던 아스널이 러브콜을 보냈다. 1995년 6월, 브루스 리오크(Bruce Rioch; 1995-96 시즌 아스널 감독, 1947-) 감독은 750만 파운드라는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로 베르흐캄프를 데려왔다. 조지 그레이엄 시절의 단단하지만 투박한 팀에 기술을 입히려는 영입이었다.

출발은 느렸다. 개막 후 리그 여섯 경기 동안 골이 없었고,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쓴 공격수를 향한 시선도 점점 싸늘해졌다. 1995년 9월 23일 하이버리에서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마침내 두 골을 넣었다. 그 뒤로는 의심이 사라졌다. 첫 시즌 공식전 41경기 16골. 인테르에서 망가졌다던 공격수가 잉글랜드에서는 적응에 한 달이면 충분했다.
벵거가 온 뒤, 필버트 스트리트의 해트트릭
1996년 9월 벵거가 부임하면서 베르흐캄프는 제 자리를 찾았다. 벵거는 그를 최전방 아래, 공격과 중원 사이에 두고 공격의 출발점으로 썼다. 이언 라이트, 뒤이어 니콜라 아넬카와 티에리 앙리가 그 앞에서 뛰었고, 누구와 서든 호흡이 척척 맞았다.

1997년 8월 27일 수요일 밤, 레스터 시티 원정에서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경기는 3-3으로 끝났지만, 레스터 감독 마틴 오닐은 자신이 본 최고의 해트트릭이라고 했다. 세 번째 골은 데이비드 플랫의 긴 패스를 발끝으로 받아 올려 수비수 맷 엘리엇을 넘기고 골키퍼 케이시 켈러를 지나 꽂은 장면이었다. 베르흐캄프는 이 골을 아스널에서 넣은 가장 좋아하는 골로 꼽으며, 머릿속에 그린 대로 2초 전에 계획한 그대로 되었다고 말했다. BBC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 BBC의 잉글랜드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는 그달의 골 1위부터 3위를 이 경기의 세 골로 채웠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이달의 골 순위를 통째로 가져간 것은 프로그램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시즌 아스널은 리그와 FA컵 더블을 차지했다. 베르흐캄프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PFA)와 축구기자협회(FWA)의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다만 4월 말 더비 카운티전에서 햄스트링을 다쳐 1998년 5월 16일 FA컵 결승에는 나서지 못했다. 1992년 UEFA컵 결승 2차전에 이어, 자신이 이끈 팀의 결승을 또 한 번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1998년 7월 4일 마르세유, 3번의 터치
햄스트링 부상으로 7주를 쉰 채 들어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베르흐캄프는 대회를 바꿔 놓았다. 6월 29일 툴루즈의 유고슬라비아전에서 골을 넣어 파스 빌크스의 대표팀 최다 35골과 나란히 섰고, 닷새 뒤 마르세유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아르헨티나와 8강을 치렀다.
1-1로 맞선 90분, 두 팀 모두 한 명씩 퇴장당해 10명이 뛰던 순간이었다. 주장 프랑크 더부르(Frank de Boer; 아약스·바르셀로나의 네덜란드 수비수, 1970-)가 자기 진영에서 긴 패스를 띄웠다. 베르흐캄프는 오른발로 공을 잡아 세웠고, 두 번째 터치로 로베르토 아얄라(Roberto Ayala;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1973-)를 안쪽으로 따돌렸다. 세 번째 터치는 오른발 바깥쪽으로 골키퍼 카를로스 로아(Carlos Roa;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1969-)를 넘기는 슈팅이었다. 2-1. 대표팀 36호 골로 네덜란드 단독 최다 득점 기록도 함께 세웠다.
본인의 기억은 이렇다. 먼저 프랑크 더부르와 눈이 맞았고, 그가 공을 줄 것을 알았다. 수비수에게서 몇 걸음 떨어지도록 달리고, 어깨 너머로 오는 공을 향해 뛰어올라 공을 죽였다. 그리고 첫 두 번의 터치 뒤의 그 순간, 인생 전체가 그 순간을 위해 이어져 온 것 같았다고 했다. 네덜란드 라디오의 잭 판헬더르(Jack van Gelder; 네덜란드 스포츠 중계 캐스터, 1950-)는 이름만 네 번 연달아 외쳤다.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니스 베르흐캄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이 골은 영상보다 이 목소리로 먼저 기억된다.

7월 7일 브라질과의 준결승은 또 승부차기였다. 베르흐캄프는 두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했지만, 필립 코퀴와 로날트 더부르의 슈팅이 막히며 네덜란드는 2-4로 탈락했다. 유로 1992에 이어 두 번째로, 자기 킥을 넣고도 결승 문턱에서 멈췄다. 이 대회 3골 3도움으로 공동 도움 1위,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됐다.
2002년 3월 2일 뉴캐슬, 돌아서며 넘긴 공
2002년 3월 2일 세인트 제임스 파크. 전반 11분, 왼쪽의 로베르 피레스(Robert Pirès; 아스널의 프랑스 미드필더, 1973-)가 낮은 패스를 보냈다. 페널티 박스 바로 앞에서 등을 진 베르흐캄프는 왼발 안쪽으로 공을 수비수 니코스 다비자스(Nikos Dabizas; 뉴캐슬의 그리스 수비수, 1973-)의 반대편으로 흘려 놓고, 자신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다비자스를 지나갔다. 그리고 셰이 기븐의 옆으로 침착하게 밀어 넣었다.
이 골에는 오랫동안 따라붙은 의심이 있다. 정말 의도한 것이냐는 질문이다. 베르흐캄프의 설명은 명확하다. 피레스의 패스가 발밑이 아니라 몸 뒤쪽으로 왔고, 예상과 달랐기 때문에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공이 도착하기 10야드 전에 이미 수비수를 돌려 세우기로 정했다고 했다. 수비수가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공의 속도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남들 눈에는 특이하고 멋있어 보였겠지만 자신에게는 공과 골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벵거는 경기 뒤 이런 골은 많이 볼 수 없다고 했다.
아스널은 이 시즌에도 리그와 FA컵 더블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3-04 시즌, 리그 38경기를 한 번도 지지 않은 무패 우승 멤버에 서른네 살의 베르흐캄프가 있었다.

오렌지색 하이버리, 마지막 골과 첫 경기
2005년 9월 14일 UEFA 챔피언스 리그 FC 툰(FC Thun; 스위스 툰의 구단)전에서 서른여섯의 베르흐캄프는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넣었다. 로빈 판페르시가 퇴장당해 10명으로 버틴 경기였다. 벵거는 투지와 결단력, 그리고 클래스로 가득한 경기였다고 평했다.
2006년 4월 15일은 서포터스가 정한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이였다. 하이버리의 관중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옷을 입고 모였다. 교체로 들어간 베르흐캄프는 89분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3-1.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넣은 마지막 골이었다.

그리고 2006년 7월 22일, 아스널의 새 경기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문을 열었다. 개장 경기는 베르흐캄프의 은퇴 경기였고, 상대는 그가 자란 아약스였다. 벵거는 새 역사의 첫 장을 진정한 아스널 레전드를 기리며 여는 것이 걸맞다고 했다. 한 선수의 마지막 경기로 한 경기장의 첫 경기를 연 셈이다.

청동으로 선 10번, 그리고 아약스로 돌아간 코치

2014년 2월 22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 베르흐캄프의 동상이 섰다. 허버트 채프먼, 토니 애덤스, 앙리에 이은 네 번째 동상이다. 같은 뉴캐슬을 상대한 2002년 원정 골과 헷갈리기 쉽지만, 아스널 구단의 설명에 따르면 동상의 자세는 2003년 2월 9일 뉴캐슬전에서 공을 공중에서 받아 세우던 순간이다. 골 장면 하나 없이 터치만 청동으로 남긴 동상이다.
두 번째 동상은 고향에 섰다. 창립 125주년을 맞은 네덜란드 왕립 축구 협회(KNVB)가 지난 25년 최고의 대표 선수를 뽑는 투표를 열었고, 프랑크 더부르, 로날트 쿠만, 필립 코퀴, 조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를 제치고 베르흐캄프가 선정됐다. 2017년 12월 14일 자이스트 KNVB 캠퍼스의 오라녀 명예 전시관에 조각가 리아 크롤(Lia Krol; 네덜란드 조각가)이 만든 동상이 공개됐다. 이번에는 1998년 아르헨티나전, 프랑크 더부르의 긴 패스를 받아 세우던 순간이다. 런던은 뉴캐슬전의 트래핑을, 자이스트는 마르세유의 트래핑을 골랐다. 두 나라가 모두 그의 첫 터치를 기억하기로 한 셈이다. 제막식에서 베르흐캄프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랐다며 한마디를 보탰다. 자세도 그렇고, 머리도 그럭저럭 잘 나왔다고.

은퇴 뒤 그는 코치의 길을 택했다. 2011년 프랑크 더부르 감독의 아약스에 코치로 합류해 페터르 보스 시절까지 유소년 육성과 공격 지도를 맡았고, 2017년 12월 팀을 떠났다. 2013년 자서전 발표 자리에서 그는 스트라이커가 더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가르칠 만큼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자신은 앞에 나서기를 원하지 않기에 감독이 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2017년 아약스 인터뷰에서는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에 대해 한마디를 보탰다. 오해라고, 사람들에게 늘 차갑게 보였겠지만 그건 순전히 겉모습이었다고. 처음엔 작은 담이던 것이 이제는 요새가 됐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만이 자신의 건조한 유머를 안다고 했다. 한 번의 터치로 수비를 지우던 공격수는 사람 사이에서도 필요한 만큼만 문을 열었다.
2025년 1월 19일, 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FWA)는 잉글랜드 축구에 남긴 공헌을 기려 그에게 공로상을 줬다. 런던 시상식장에는 벵거와 앙리, 이언 라이트, 그의 아스널 시절 부회장이던 데이비드 딘이 모였다. 베르흐캄프는 처음에는 이 상이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역대 수상자 명단을 찾아보고 정말 특별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11년을 뛰었고, 돌아보면 그 모든 게 그저 미소를 짓게 한다고 덧붙였다. 차갑다는 오해를 평생 들은 사람의 마지막 인사치고는 꽤 따뜻한 문장이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AFC 아약스1986-1993239경기 · 122골공식전 전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93-199574경기 · 22골공식전 전체
아스널 FC1995-2006423경기 · 120골공식전 전체
네덜란드 대표팀1990-200079경기 · 37골성인 A매치
리그·국내 컵·유럽 대항전·슈퍼컵을 합산한 공식전 기록. 아약스 리그 185경기 103골, 인테르 세리에 A 52경기 11골, 아스널 프리미어 리그 315경기 87골이 포함된다. 인테르는 코파 이탈리아 집계에 따라 72경기로 적는 자료도 있다. 클럽 카드 수치를 하나의 통산 합계로 더하지 않으며, 구단 문장은 소속 식별용이다. 문장은 베르흐캄프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대회별 스탯
| 대회 | 경기 | 골 | 도움 |
|---|---|---|---|
| 프리미어 리그 | 315 | 87 | 96 |
| 에레디비시 | 185 | 103 | 19 |
| 세리에 A | 52 | 11 | 9 |
| FA컵 | 38 | 14 | 7 |
| KNVB 베이커르 | 23 | 11 | 1 |
| 풋볼 리그컵 | 16 | 8 | 4 |
| UEFA 챔피언스 리그 | 40 | 7 | 8 |
| UEFA컵 | 42 | 22 | 7 |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 10 | 1 | 0 |
| FIFA 월드컵 | 12 | 6 | 4 |
| UEFA 유로 | 13 | 4 | 4 |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집계다. 1990년대 이전과 유럽 밖 리그의 도움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이 밖의 기록은 친선 경기 29경기 10골 9도움, FIFA 월드컵 예선 14경기 12골 5도움, UEFA 유로 예선 11경기 5골, 코파 이탈리아 7경기 2골, FA 채리티 실드 5경기 1도움, UEFA 슈퍼컵 2경기, UEFA 유로 예선 플레이오프 1경기, 연령별 대표 대회 1경기다. 대회별 합계는 클럽 기록 카드의 공식전 총계와 집계 범위가 달라 그대로 더해지지 않는다.
역대 등번호
클럽
| 소속팀 | 확인 기간 | 등번호 |
|---|---|---|
| AFC 아약스 | 1986-87~1988-89 · 1990-91~1992-93 시즌 | 10 · 7 · 8 · 9 · 14 · 15 · 16 · 6 |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1993-94~1994-95 시즌 | 10 |
| 아스널 FC | 1995-96~2005-06 시즌 | 10 |
국가대표팀
| 대표팀 | 확인 대회 | 등번호 |
|---|---|---|
| 네덜란드 | UEFA 유로 1992 | 7 |
| 네덜란드 | 1994 FIFA 월드컵 | 10 |
| 네덜란드 | UEFA 유로 1996 | 10 |
| 네덜란드 | 1998 FIFA 월드컵 | 8 |
| 네덜란드 | UEFA 유로 2000 | 10 |
트랜스퍼마크트의 시즌별 이력 기준이며, 대표팀 번호는 각 대회 공식 선수단 명단과 대조했다. 아약스는 1986-87 시즌 14·15·7번, 1987-88 시즌 16·7번, 1988-89 시즌 15·7·6번, 1990-91 시즌 9·8번, 1991-92 시즌 10·7번을 거쳐 1992-93 시즌 10번을 달았다. 1989-90 시즌 번호는 확인된 이력이 없다. 클럽의 복수 번호는 확인된 착용 이력이며 전 경기에 고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우승 1회: 1989-90 · AFC 아약스
우승 2회: 1986-87, 1992-93 · AFC 아약스
우승: 1986-87 · AFC 아약스
준우승: 1987-88 · AFC 아약스
우승 2회: 1991-92 · AFC 아약스 / 1993-94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준우승: 1999-2000 · 아스널 FC
우승 3회: 1997-98, 2001-02, 2003-04(무패 우승) · 아스널 FC
준우승 5회: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4-05
우승 4회: 1997-98, 2001-02, 2002-03, 2004-05 · 아스널 FC
준우승: 2000-01
우승 3회: 1998년, 2002년, 2004년 · 아스널 FC
준우승: 2005-06 · 아스널 FC
4위: 1998년 · 8강: 1994년 · 네덜란드
4강: 1992년, 2000년 · 8강: 1996년 · 네덜란드
데니스 베르흐캄프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1991년 · 1992년
-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 재능네덜란드 리그의 떠오르는 유망주 선정1990년
- 발롱도르1992년 3위 · 1993년 2위 · 1997년 4위 · 1998년 공동 8위 · 1999년·2000년 후보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2007년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2021년
- AFC 아약스 올해의 선수아약스 서포터스 협회 선정1993년
- 아스널 올해의 선수1996-97 시즌
- FIFA 100FIFA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펠레가 선정한 125인의 축구선수2004년
- FIFA 올해의 선수1992년 7위 · 1993년 3위 · 1994년 7위 · 1997년 3위 · 1998년 7위
- FIFA 월드컵 공동 도움왕1998년 · 3도움 (Planet World Cup 집계)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대회 베스트 111998년
- UEFA 유로 공동 득점왕1992년 · 3골
- UEFA 유로 대회 베스트 111992년
- FWA 올해의 선수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 선정1997-98 시즌
- PFA 올해의 선수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선수 투표1997-98 시즌
- PFA 올해의 팀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선정 프리미어 리그 베스트 111997-98 시즌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1997년 8월 · 1997년 9월 · 2002년 3월 · 2004년 2월
- UEFA컵 공동 득점왕1993-94 시즌 · 8골
- 에레디비시 득점왕1990-91 시즌 25골(공동) · 1991-92 시즌 24골 · 1992-93 시즌 26골
- 프리미어 리그 공동 도움왕1998-99 시즌 · 13도움
- BBC 시즌 최고의 골《Match of the Day》 선정1997-98 시즌 · 2001-02 시즌
- IFFHS 세계 최고의 국제경기 득점자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 A매치와 대륙 대항전 득점 기준1992년 · 12골
- FWA 공로상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가 잉글랜드 축구 공헌에 수여2025년
참고 자료
- Ajax Showtime: 판할의 1992 UEFA컵 회고: ESPN 다큐멘터리 《De eerste van Louis》 속 결승 결장과 트로피 방문 발언.
- Goal Italia: 인테르의 역설, UEFA컵 득점왕 베르흐캄프: 1993년 2월 15일 영입 발표, 입단 발언, 라 데니세 별명, 경기당 기회 발언, UEFA컵 여정과 이적.
- VICE Nederland: 베르흐캄프·용크 조합은 왜 인테르에서 실패했나: 유벤투스 거절, 바뇰리의 5-3-2, 소사의 불평, 《라 레푸블리카》 조롱란.
- World Soccer: 이탈리아에서 문화 충돌에 갇힌 베르흐캄프: 수비수 다섯 명 발언, 페리·베르고미 회고, 비안키 일화와 모라티에게 건 조건(자서전 인용).
- NOS: 베르흐캄프, 조용한 남자가 말하다: 2013년 자서전 발표 자리의 비행 공포증 시작·중단 발언과 지도자관.
- Ajax Showtime: 비행보다 심리적인 문제: 마틴 키언과의 인터뷰 속 불면, 날씨 확인, 미니버스 이동, 더 좋은 선수가 됐다는 발언.
- NRC(Headliner 전재): 1994 월드컵 네덜란드 대표팀의 사건들: 7월 6일 올랜도 공항의 렉스 뮐러 사건과 그 여파.
- Voetbalzone: 아이스맨 베르흐캄프 인터뷰: 2017년 아약스 공식 인터뷰의 별명 발언.
- The Ringer: 논 플라잉 더치맨과 1998년의 골: 아르헨티나전 세 번의 터치와 비행 공포증의 배경.
- ESPN: 월드컵 최고의 골, 베르흐캄프 1998: 프랑크 더부르와의 눈맞춤부터 슈팅까지 본인 설명(FourFourTwo 인터뷰 인용).
- Mee met Oranje: 아르헨티나전의 전설적인 골: 7월 4일 스타드 벨로드롬, 판헬더르 중계 원문.
- Sky Sports: 베르흐캄프는 뉴캐슬 원정 골을 어떻게 넣었나: 피레스의 패스, 10야드 전의 결정, 벵거의 반응.
- Arsenal.com: 베르흐캄프 기록 총정리: 공식전 423경기 120골, 1995년 8월 20일 데뷔, 리그 3회·FA컵 4회·채리티 실드 3회 우승과 시즌 최고의 골 2회.
- Wikipedia: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 · IFFHS 국제경기 득점자: 1991·1992년 올해의 선수와 1990년 재능상, 1992년 국제경기 12골.
- Arsenal.com: 1997 레스터전 해트트릭: 세 번째 골의 전개와 가장 좋아하는 골 발언.
- Planet Football: 레스터전 해트트릭 회고: 리오크의 영입, 초반 여섯 경기 무득점과 사우샘프턴전, 1997년 8월 27일 경기와 이달의 골 1~3위, 오닐의 평가.
- UEFA: 벵거가 반한 베르흐캄프의 클래스 · 베르흐캄프의 작별: 2005년 툰전 결승골과 은퇴 경기에 대한 벵거의 발언.
- Arsenal.com: 2006년 4월 15일 마지막 골 · 아스널 동상: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이와 동상이 본뜬 2003년 뉴캐슬전 장면.
- Voetbalprimeur: KNVB, 베르흐캄프 동상 제막 · NOS: 오라녀 명예 전시관의 동상: 지난 25년 최고의 대표 선수 선정, 리아 크롤의 1998년 트래핑 동상과 제막식 발언.
- Football Writers' Association: FWA 공로상 수상: 2025년 1월 19일 시상식과 수상 소감.
- The Irish Times: 베르흐캄프, FA컵 결승 결장: 1998년 결승 전 햄스트링 부상.
- UEFA: 유로 1992 준결승 덴마크전: 베르흐캄프의 동점골과 승부차기 순서.
- Planet World Cup: 1998 준결승 브라질전 · 1998 대회 통계: 승부차기 키커, 3골 3도움과 공동 도움 1위.
- RSSSF: 베르흐캄프의 A매치 득점 기록: 79경기 37골과 1998년 6월 29일부터의 대표팀 최다 득점 기록.
- RSSSF: 에레디비시 역대 득점왕: 1990-91 시즌 공동 25골, 24골, 26골.
- RSSSF: 1992 · 1993 · 1997 · 1998 · 1999 · 2000 발롱도르: 3위·2위·4위·공동 8위와 무득표 후보.
- RSSSF: FIFA 올해의 선수 투표: 1992·1994·1998년 7위, 1993·1997년 3위.
- Wikipedia: Dennis Bergkamp: 시즌별 공식전 출전·득점 표와 수상 목록 교차 확인.
- Miguel Delaney(X): 데니스 로 별세 뒤 베르흐캄프 발언 인용: 아버지가 붙인 이름과 N 두 개의 사연.
- 트랜스퍼마크트: 등번호 이력: 클럽과 대표팀의 시즌별 번호.
- Wikimedia Commons: 데니스 베르흐캄프 사진: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Anefo 사진(1963 맨유 로테르담 원정, 1987 아테네행 서포터스, 1988 스히폴 귀국, 1988 판할, 1989 베르흐캄프·용크 초상), 인테르 UEFA컵 우승, 유로 96, 하이버리·필버트 스트리트·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벵거·판헬더르, 아스널 시절과 에미레이츠·자이스트 동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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