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LEGEND
빔 키프트(Wim Kieft)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역대 최연소 유러피언 골든슈와 PSV 트레블 공격수
빔 키프트의 헤더와 플레이 스타일, 열아홉 살 유러피언 골든슈부터 히딩크의 PSV 트레블과 유로 1988 아일랜드전 결승골까지. 아약스·피사·토리노·보르도의 스탯, 역대 등번호, 우승과 개인 수상을 정리한다.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1980년대 네덜란드의 전성기에는 오렌지 삼총사 말고도 꺼내 볼 이름이 많다. 빔 키프트는 그중에서도 골문 앞에 세워 놓고 싶은 선수다. 열아홉 살에 유럽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이탈리아를 거쳐 돌아온 뒤에는 히딩크의 PSV가 트레블을 달성하는 데 앞장섰다. 큰 몸으로 공을 지켜 주다가도 크로스가 올라오면 어느새 수비수 앞을 차지하는 공격수. 필자에게 키프트는 네덜란드 무대를 그야말로 ‘폭격’했던, 히딩크 매직의 최정점에 놓인 이름이다.
골문 앞으로 넘어온 공에 몸을 띄운다. 수비수와 맞붙은 문전에서도 머리를 대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 골문 앞으로 넘어온 공에 몸을 띄운다. 수비수와 맞붙은 문전에서도 머리를 대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 측면에서 높이 올라온 공을 기다렸다가 헤더로 골문을 겨냥한다. 10번의 움직임을 가까운 화면과 반복 장면으로 볼 수 있다.
-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에 맞춰 문전으로 들어간다. 수비수 앞에서 머리로 방향을 바꾸며 마무리한다.
삥이FC 빔 키프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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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트의 헤더를 보면 큰 키보다 먼저 도착하는 몸이 눈에 들어온다. 크로스가 날아오는 동안 수비수와 간격을 맞추다가 마지막에 공 쪽으로 몸을 내민다. 190cm의 높이에 이 타이밍까지 얹히니 골키퍼로서는 반응할 시간이 짧았다. 장신 공격수에게 기대하는 장점을 문전에서 확실하게 꺼내 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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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현대의 공격수 가운데 떠올리는 이름은 올리비에 지루(Olivier Giroud; 프랑스 국가대표팀 출신 중앙 공격수, 1986-)다. 등을 진 채 버티고, 동료에게 공을 내준 다음 다시 골문 앞으로 들어가는 방식에 닮은 구석이 있다. 키프트는 상대 수비가 달라붙어도 공을 간수할 수 있었으며, 득점 기회가 멀어지면 주변의 공격을 이어 주는 쪽으로 발을 썼다. 큰 공격수가 앞에서 버텨 주면 동료들도 그 몸을 기준으로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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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에서 받은 골든슈만 보면 어린 나이에 득점 감각이 완성된 선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PSV에서는 득점과 연결을 함께 맡으며 전성기를 이어 갔다. 에레디비시 득점왕 두 차례에 더해, 트랜스퍼마크트의 과거 도움 집계에서도 두 시즌 1위에 올라 있다. 골을 넣는 능력과 동료를 살리는 능력이 한 선수 안에서 같이 자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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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의 경력에는 분명 굴곡이 있다. 피사에서 승격과 강등을 겪었고, 토리노에서도 한 시즌 만에 떠났다. 그렇다고 토리노의 공식전 32경기 16골과 UEFA컵 공동 득점왕까지 지울 수는 없다. 네덜란드에서만큼 길고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낯선 무대에서도 남긴 득점은 함께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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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Guus Hiddink; 1987-88 시즌 PSV의 트레블을 이끈 네덜란드 감독) 아래에서 키프트는 리그 29골을 넣었다.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는 120분을 뛰고 승부차기도 성공했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리그 경기와 한 골이 절실한 유럽 토너먼트를 모두 소화한 셈이다. 필자의 표현으로 네덜란드 무대에서는 ‘SS급’이라 부르고 싶은 공격수다. 그 평가에는 골든슈의 반짝임과 PSV에서 쌓은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빔 키프트 프로필
- 본명
- Willem Cornelis Nicolaas Kieft
- 등록명
- 빔 키프트(Wim Kieft)
- 출생
- 1962년 11월 12일
- 출생지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신장
- 190cm
- 대표 국적
- 네덜란드
- 포지션
- 중앙 공격수
- 주요 등번호
- 9번 · 10번 · 12번 · 14번
- 선수 경력
- 1979-1994년
- 대표팀
- 1981-1993년 · 43경기 11골
아약스의 열아홉 살 골든슈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키프트는 AFC 아약스(Amsterdamsche Football Club Ajax)에서 성장했다. 1979-80 시즌 1군에 데뷔한 뒤, 1981-82 시즌에는 리그 32경기에서 32골을 넣었다. 시즌 도중 열아홉 살 생일을 맞았던 공격수가 경기당 한 골을 기록한 것이다. 아약스는 리그 정상에 올랐고 키프트에게는 유러피언 골든슈(European Golden Shoe; 유럽 최상위 리그의 시즌 득점 성적을 비교해 주는 상)가 돌아갔다.
당시 아약스에는 세대가 겹쳐 있었다. 요한 크라위프(Johan Cruijff; 1981년 말 아약스로 복귀한 네덜란드 공격수)가 돌아와 뛰었고, 키프트 곁에서는 헤랄트 파넨뷔르흐(Gerald Vanenburg; 아약스와 PSV에서 함께 뛴 네덜란드 공격수·미드필더)와 프랑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 훗날 AC 밀란에서 활약한 네덜란드 수비수·미드필더)가 성장하고 있었다. 마르코 판바스턴(Marco van Basten; 아약스와 AC 밀란의 네덜란드 중앙 공격수)도 이 시기에 1군으로 올라왔다. 나중에 역사를 알고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지만, 그 한가운데서 먼저 유럽 득점왕에 오른 소년이 키프트였다.
이듬해에는 리그와 KNVB 베이커(KNVB Beker; 네덜란드 축구 협회 컵)를 함께 차지했다. 키프트는 아약스 1군에서 공식전 117경기 78골, 리그 우승 세 번을 남기고 1983년 이탈리아로 떠났다. 열아홉 살 골든슈라는 출발점은 워낙 높았다. 이후 어느 팀에서 뛰든 그 황금 축구화가 기대의 크기를 먼저 정해 놓았을 법하다.
피사의 승격과 토리노의 UEFA컵 득점왕
이탈리아의 첫 팀은 피사 SC(Pisa Sporting Club)였다. 네덜란드의 우승 후보에서 세리에 A 잔류를 다투는 팀으로 옮겼으니, 문전에서 받는 공의 양과 경기의 형편부터 달랐다. 피사는 1983-84 시즌 강등됐지만 이듬해 세리에 B 정상에 오르며 곧바로 돌아왔다. 키프트도 그 승격을 함께했다.
1985-86 시즌에는 미트로파컵(Mitropa Cup; 중부 유럽에서 시작된 국제 클럽 대회) 우승이 더해졌다. 대회명은 1985-86 시즌이지만 준결승과 결승은 1985년 11월에 열렸다. 키프트는 데브레첸과의 결승에서 득점했고 피사는 2-0으로 이겼다. 다만 세리에 A에서는 다시 강등됐다. 트로피를 들어 올린 기억과 리그의 좌절이 같은 시즌에 남은 셈이다.
1986년에는 토리노 FC(Torino Football Club; 당시 명칭 Torino Calcio)로 옮겼다. 한 시즌의 합계는 공식전 32경기 16골. 특히 UEFA컵에서는 5골을 넣어 공동 득점왕이 됐다. 오래 정착하지 못한 이탈리아 시절을 돌아볼 때도 이 수치는 제법 묵직하다. 리그를 지배하던 아약스의 득점왕과는 다른 조건에서 남긴 성적이기 때문이다.
히딩크의 PSV, 29골과 트레블
1987년, 키프트가 돌아온 곳은 PSV 에인트호번(Philips Sport Vereniging)이었다. 히딩크의 팀에는 아약스 시절 함께 뛰던 파넨뷔르흐가 있었고, 후방에서는 로날트 쿠만(Ronald Koeman; PSV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수비수)이 공격의 출발점을 맡았다. 크로스를 받아 줄 키프트와 공을 운반하고 배급할 동료들의 조합이 갖춰졌다.

복귀 첫 시즌부터 에레디비시(Eredivisie; 네덜란드 최상위 리그) 득점왕이었다. 32경기 29골, 여섯 해 전 아약스에서 받은 왕관을 이번에는 PSV 유니폼으로 되찾았다. PSV는 리그와 국내 컵을 차지했고 유러피언컵에서도 결승에 올랐다. 파넨뷔르흐 편을 먼저 읽었다면 익숙한 그 1988년이다. 오른쪽에서 공격을 풀던 파넨뷔르흐와 문전에서 마무리하던 키프트를 나란히 보면, 같은 트레블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보인다.
벤피카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은 120분 동안 득점 없이 흘렀다. 키프트는 선발로 끝까지 뛰었고, 승부차기에서는 PSV의 두 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했다. 마지막에 골키퍼 한스 판브뢰켈런(Hans van Breukelen; PSV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골키퍼)이 벤피카의 여섯 번째 킥을 막으면서 트레블이 완성됐다. 리그에서 상대 골문을 두드리던 공격수가 유럽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킥도 자기 몫만큼 보탰다.
PSV에서 보낸 첫 세 시즌에는 국내 컵을 매년 들었다. 1989-90 시즌에는 리그 21골과 함께 트랜스퍼마크트 집계 13도움을 기록했다. 득점왕이었던 공격수가 동료의 득점까지 부지런히 만들어 주고 있었다. 키프트의 경력을 헤더 골 모음으로만 기억하면 이 시간이 조금 가려진다.
유로 1988, 아일랜드를 돌려보낸 14번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판바스턴과 뤼트 휠릿(Ruud Gullit; 당시 AC 밀란 소속의 네덜란드 공격수·미드필더)이 공격의 중심이었다. 키프트는 UEFA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UE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UEFA 유로) 1988에서 14번을 달고 세 차례 교체 출전했다. 선발의 화려함과 별개로, 네덜란드가 대회에 남는 데 꼭 필요했던 골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1988년 6월 18일 아일랜드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네덜란드는 이겨야 준결승에 갈 수 있었으나 후반 막판까지 0-0이었다. 후반에 투입된 키프트는 82분, 쿠만의 슈팅이 튀어 오른 공에 머리를 댔다. 골문을 벗어나는 듯하던 공이 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정석 헤더와는 거리가 있는 묘한 궤적이었지만, 그 한 골로 대회에 남은 쪽은 네덜란드였다.
이어 서독을 꺾고 결승에 오른 네덜란드는 소련까지 이겨 유럽 챔피언이 됐다. 키프트는 결승에 출전하지 않았다. 대신 결승까지 갈 길이 끊길 뻔했던 순간의 득점을 갖고 있다. 한 달 사이 PSV와 대표팀에서 모두 유럽 정상에 오른 선수의 기억 속에서, 아일랜드전의 그 공은 얼마나 자주 다시 굴렀을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네 경기에 출전해 이집트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고, 유로 1992에서는 덴마크와의 준결승에 교체로 나왔다. 1981년 스위스전에서 시작한 A매치 경력은 1993년 산마리노전까지 43경기 11골이다.
보르도를 거쳐 다시 에인트호번으로
1990년에는 FC 지롱댕 드 보르도(Football Club des Girondins de Bordeaux)로 옮겼다. 프랑스에서 보낸 한 시즌의 성적은 공식전 31경기 3골. PSV에서 보여 준 득점력을 이어 가지 못했고, 1991년 다시 에인트호번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PSV 시절의 첫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19골, 트랜스퍼마크트 집계 11도움을 남겼다. 같은 선수에게도 익숙한 동료와 경기 방식이 주는 힘은 꽤 컸던 모양이다.
1992년 네덜란드 슈퍼컵 우승을 더한 뒤 1994년에 선수 생활을 마쳤다. 두 차례에 걸친 PSV 통산 기록은 공식전 219경기 103골이다. 아약스에서 유럽 득점왕으로 출발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왔으되, 가장 길게 자기 축구를 펼친 곳은 에인트호번이었다.
키프트의 이름을 꺼내면 열아홉 살의 황금 축구화와 아일랜드전의 기묘한 헤더가 먼저 따라온다. 그 사이에는 크로스를 기다리고, 수비수와 부딪치고, 동료에게 공을 내주던 수백 경기가 있다. 필자가 이 공격수를 다시 보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 번 일찍 빛난 재능이 여러 팀을 돌아, 히딩크의 가장 빛나는 시즌을 앞에서 완성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AFC 아약스1979-1983117경기 · 78골
피사 SC1983-1986110경기 · 37골
토리노 FC1986-198732경기 · 16골
PSV 에인트호번1987-1990 · 1991-1994219경기 · 103골59도움
FC 지롱댕 드 보르도1990-199131경기 · 3골
네덜란드 대표팀1981-199343경기 · 11골클럽은 공식전,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아약스는 구단 집계, 피사는 트랜스퍼마크트, PSV는 PSVWeb, 토리노·보르도는 구단별 경력 회고를 따른다. 과거 도움 기록은 자료별 수록 범위와 판정 기준에 차이가 있으며, PSV의 통산 도움과 아래 시즌별 도움 순위는 서로 다른 집계다. 문장은 키프트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대회별 스탯
| 대회 | 경기 | 골 | 도움 |
|---|---|---|---|
| 에레디비시 | 266 | 158 | 53 |
| 세리에 A | 72 | 18 | 1 |
| 프랑스 1부 리그 | 26 | 3 | 0 |
| KNVB 베이커르 | 35 | 19 | 4 |
| 코파 이탈리아 | 24 | 14 | 0 |
| 유러피언컵 | 22 | 3 | 2 |
| UEFA 챔피언스 리그 | 8 | 1 | 2 |
| UEFA컵 | 12 | 5 | 0 |
| FIFA 월드컵 | 4 | 1 | 1 |
| UEFA 유로 | 4 | 1 | 1 |
주요 대회만 추린 트랜스퍼마크트 경기별 기록의 집계다. 1990년대 이전과 유럽 밖 리그의 도움은 자료마다 수록 범위가 달라 실제보다 적게 잡혔을 수 있다. 이 밖의 기록은 세리에 B 38경기 15골, 친선 경기 23경기 6골, FIFA 월드컵 예선 9경기 5골 1도움, UEFA 유로 예선 5경기, 연령별 대표 대회 5경기 2골, 미트로파컵 2경기 1골, 요한 크라위프 스할 1경기, 쿠프 드 프랑스 1경기, 인터콘티넨털컵 1경기, FIFA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 1경기,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경기다. 대회별 합계는 클럽 기록 카드의 공식전 총계와 집계 범위가 달라 그대로 더해지지 않는다.
역대 등번호
클럽
| 소속팀 | 확인 기간 | 등번호 |
|---|---|---|
| AFC 아약스 | 1980-81~1982-83 시즌 | 10 · 9 · 14 · 15 · 19 |
| 피사 SC | 1983-84 · 1985-86 시즌 | 9 · 16 |
| 토리노 FC | 1986-87 시즌 | 9 |
| PSV 에인트호번 | 1987-88~1989-90 · 1991-92~1993-94 시즌 | 10 · 9 · 11 · 12 · 16 |
| FC 지롱댕 드 보르도 | 1990-91 시즌 | 9 · 10 · 11 |
국가대표팀
| 대표팀 | 확인 대회·기간 | 등번호 |
|---|---|---|
| 네덜란드 | UEFA 유로 1988 | 14 |
| 네덜란드 | 1990 FIFA 월드컵 | 12 |
| 네덜란드 | UEFA 유로 1992 | 12 |
| 네덜란드 | 1982-83~1992-93 시즌 자료 | 9 · 10 · 12 · 14 · 15 |
시즌별 등번호 이력과 대회 등록 번호 기준. 경기마다 번호를 배정하던 시기의 복수 번호가 포함되며, 피사의 1984-85 시즌처럼 이력이 비어 있는 기간은 확인 기간에서 제외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우승 6회: 1979-80, 1981-82, 1982-83, 1987-88, 1988-89, 1991-92
우승 4회: 1982-83, 1987-88, 1988-89, 1989-90
준우승: 1979-80, 1980-81
우승: 1992년
준우승: 1991년
우승: 1984-85
우승: 1985-86 · 결승 1985년 11월
우승: 1987-88
우승: 1988년
빔 키프트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유러피언 골든슈1981-82 시즌 · 32골
- 에레디비시 득점왕1981-82 시즌 · 32골 / 1987-88 시즌 · 29골
- 에레디비시 도움왕1989-90 시즌 · 13도움 / 1991-92 시즌 · 11도움 (트랜스퍼마크트 집계)
- KNVB 베이커 득점왕1980-81 시즌 · 9골
- UEFA컵 공동 득점왕1986-87 시즌 · 5골
참고 자료
- PSV 에인트호번 공식 유튜브: PSV TV: 빔 키프트의 PSV 시절 경기 영상과 하이라이트.
- AFC 아약스: Top 10 Goals — Wim Kieft: 공식전 117경기 78골과 아약스 시절 우승.
- 트랜스퍼마크트: 아약스의 1981-82 시즌 기록 복원: 19세 키프트의 32골, 골든슈와 당시 선수 구성.
- BDFutbol: Wim Kieft: 시즌별 리그 출전과 득점.
- 트랜스퍼마크트: 피사 역대 득점 기록: 키프트 110경기 37골.
- RSSSF: Mitropa Cup 1985/86: 1985년 11월 결승과 키프트의 득점.
- Toro News: 토리노의 네덜란드 선수들: 키프트의 1986-87 시즌 32경기 16골.
- RSSSF: UEFA컵 역대 득점왕: 1986-87 시즌 5골 공동 득점왕.
- PSVWeb: Wim Kieft: PSV 통산·시즌별 공식전 출전, 득점과 도움.
- PSV: 구단 역사: 히딩크가 이끈 1987-88 시즌의 트레블.
- UEFA: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기록: 1988년 결승 선발 명단과 키프트의 두 번째 승부차기.
- UEFA: 키프트의 헤더와 아일랜드의 유로 1988: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의 교체 투입과 82분 결승골.
- RSSSF: Wim Kieft — International Appearances: A매치 43경기 11골과 세 차례 메이저 대회 출전.
- Girondins4Ever: 보르도를 거친 선수들의 생일: 키프트의 보르도 31경기 3골.
- 트랜스퍼마크트: Wim Kieft 등번호 이력: 클럽·국가대표팀의 시즌별 번호.
- RSSSF: 네덜란드 리그 역대 득점왕: 1981-82 시즌 32골, 1987-88 시즌 29골.
- 트랜스퍼마크트: 에레디비시 1989-90 도움 순위 · 1991-92 도움 순위: 해당 데이터베이스에서 각각 13도움·11도움으로 1위.
- 트랜스퍼마크트: KNVB 베이커 역대 득점왕: 1980-81 시즌 9골.
- 트랜스퍼마크트: Wim Kieft 우승 이력: 리그·국내 컵·유럽 대회의 우승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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