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 FIFA WORLD CUP · FINAL
- 날짜
- 1958년 6월 29일
- 장소
- 솔나 로순다
- 전반
- 2-1
- 최종
- 5-2
브라질이 처음 월드컵을 들어 올린 날을 떠올리면 대개 노란 셔츠가 먼저 그려진다. 허나 1958년 6월 29일 솔나의 로순다 스타디움(Råsunda Stadion)에서 쥘리메컵을 받은 브라질은 파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노란색은 개최국 스웨덴의 차지였고, 브라질은 경기 시작 4분 만에 이 대회 들어 처음으로 끌려갔다. 마라카낭에서 우루과이에 뒤집힌 지 8년, 그 기억을 아직 털지 못한 팀이 남의 대륙에서 급히 마련한 색을 입고 한 골을 먼저 내준 채 결승을 시작한 것이다. [2][5]
그 뒤의 86분은 정반대로 흘렀다. 가린샤가 오른쪽을 두 번 열어 바바가 두 번 넣었고, 17살 펠레가 가슴과 발과 머리로 두 골을 보탰다. 5-2. 두 팀이 합쳐 넣은 일곱 골은 지금도 월드컵 결승 한 경기 최다 득점으로 남아 있다. [10]
호텔 옆 가게에서 산 파란 셔츠
두 팀의 첫 번째 유니폼은 모두 노란색이었다. 누가 색을 바꿀지는 추첨으로 정하기로 했는데 브라질 선수단은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고, 노란 셔츠는 스웨덴에 돌아갔다. 흰 셔츠를 입자는 안이 먼저 나왔으나 선수들이 1950년의 패배를 떠올리며 질색했다고 한다. 결국 선수단은 숙소 근처 옷가게에서 파란 셔츠를 사 왔고, 노란 셔츠에서 뜯어낸 문장과 등번호를 그 위에 꿰매 붙였다. [5][6] 선수단장 파울루 마샤두 지 카르발류(Paulo Machado de Carvalho; 1958년 브라질 선수단장, 1901-1992)가 결승 전날 기도를 올리다 벽에 걸린 아파레시다의 성모(Nossa Senhora Aparecida; 브라질의 수호성인)상을 보고 그 파란 망토에서 색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브라질에서는 지금까지 전해진다. 진위야 어떻든 파란 셔츠가 결승 직전에 급히 마련된 물건이었다는 점만은 기록이 일치한다. [7]
11명의 면면도 대회를 시작할 때와 달랐다. FIFA의 정리에 따르면 결승 선발 가운데 자우마 산투스(Djalma Santos, 본명 Dejalma dos Santos;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오른쪽 풀백, 1929-2013), 지투(José Ely de Miranda, Zito;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1932-2015), 가린샤(Manuel Francisco dos Santos;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오른쪽 윙어, 1933-1983), 펠레(Edson Arantes do Nascimento;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1940-2022), 바바(Edvaldo Izídio Neto;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센터 포워드, 1934-2002) 다섯 명은 대회 첫 경기의 선발이 아니었다. 그중 자우마 산투스는 이 결승이 대회 첫 출전이었다. 등번호마저 뒤죽박죽이었는데, 브라질이 번호를 제출하지 않아 FIFA가 임의로 배정한 탓에 골키퍼가 3번을 달았고 10번은 대회 전까지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7살 공격수에게 돌아갔다. [4][2]
솔나에는 전날부터 꼬박 하루 비가 내렸다. 젖어서 미끄러운 잔디는 남미보다 유럽의 축구에 맞는 바닥으로 여겨졌다. 오후 3시, 프랑스인 주심 모리스 기그(Maurice Alexandre Guigue; 프랑스 축구 심판, 1912-2011)가 공을 들고 앞장서 두 팀을 그라운드로 데리고 나왔다. 흑백 화면에서 밝게 보이는 쪽이 노란 셔츠의 스웨덴, 어둡게 보이는 쪽이 파란 셔츠의 브라질이다. [2][1]
4분, 브라질이 대회에서 처음 끌려갔다
먼저 웃은 쪽은 스웨덴이었다. 4분, 주장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1922-2007)이 페널티 지역 앞에서 브라질 수비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낮은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찔렀다. 리드홀름과 군나르 그렌(Johan Gunnar Gren;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1920-1991)처럼 이탈리아 무대를 거친 선수들이 함께 만든 골이었고, 리드홀름은 이때 35살이었다. 브라질이 이 대회에서 먼저 실점한 것은 처음이었다. 공을 다루는 재주로 사는 남미 팀은 끌려가기 시작하면 무너진다는 것이 그 무렵 적지 않은 사람들의 예상이었으니, 로순다의 환호에는 한 골 이상의 기대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2][1]
공을 끼고 천천히 걸어 나온 지지
실점 직후의 장면은 득점 못지않게 자주 이야기된다. FIFA가 전하는 바로는 지지(Waldyr Pereira;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1928-2001)가 공을 겨드랑이에 끼고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센터서클로 걸어갔다. 마음이 급해진 왼쪽 윙어 마리우 자갈루(Mário Jorge Lobo Zagallo;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왼쪽 윙어, 훗날 1970년 우승 감독, 1931-2024)가 달려와 지고 있으니 서두르라고 소리치자 지지는 이렇게 받았다고 한다. “진정해, 자갈루. 우리가 저들보다 낫다. 골은 얼마든지 넣는다.” 기록 영상에도 공을 든 브라질 선수가 동료들 사이에 섞여 걸어 나오는 모습이 남아 있는데, 화면 안에서 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3]
기실 브라질의 초반은 말처럼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노란 셔츠에 익숙하던 선수들이 처음 몇 분 동안 동료와 스웨덴 선수를 헷갈려 패스를 잘못 보내기도 했다는 것이 EFE 통신의 전언이다. 급히 꿰매 입은 파란 셔츠는 상대만이 아니라 입은 쪽에도 낯선 색이었다. [6]
가린샤가 열고 바바가 닫았다
지지의 장담이 맞아떨어지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9분, 오른쪽 터치라인을 탄 가린샤가 마크맨을 따돌리고 골라인 근처까지 들어가 수비 뒤로 낮은 공을 깔았고, 가까운 쪽으로 달려든 바바가 그대로 밀어 넣었다. 주심이 팔을 뻗어 센터서클을 가리킬 때 스웨덴의 리드는 5분을 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져 있었다. [2][1]
동점 뒤에도 문을 두드린 쪽은 브라질이었다
동점이 된 뒤에도 공세를 쥔 쪽은 브라질이었다. 페널티 지역 앞에서 스웨덴 수비와 뒤엉킨 끝에 나온 슈팅은 골키퍼 칼레 스벤손(Karl-Oskar Svensson;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1925-2000)이 받아 냈고, 오른쪽에서 때린 또 한 번의 슈팅은 몸을 던진 스벤손을 지나 골문 앞을 가로지른 뒤 반대편 골대 바깥으로 흘러 나갔다. 하루 내내 비를 맞은 바닥 탓인지 화면에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선수도 잡힌다. 유럽 팀에 유리하다던 그 잔디 위에서도 브라질의 공격은 무뎌지지 않았다. [2]
32분, 같은 골이 한 번 더 들어갔다
역전골은 동점골을 그대로 다시 튼 것 같았다. 32분, 가린샤가 또 오른쪽을 타고 내려가 수비 뒤로 공을 보냈고 이번에도 그 끝에는 바바가 있었다. 23분 사이에 같은 길로 두 번 뚫린 스웨덴 수비는 알고도 막지 못한 꼴이 됐다. 골이 들어간 직후의 화면에는 등번호 10번이 골문 안까지 달려 들어가 골대 옆에서 동료를 끌어안는 모습이 잡힌다. 그 10번이 후반의 주인공이 된다. [2][1]
FROM 0-1 TO 2-1 IN 28 MINUTES
가슴으로 받고, 수비수 머리 위로 넘기고, 떨어지기 전에 찼다
후반은 펠레의 시간이었다. 55분, 페널티 지역 안으로 길게 넘어온 공을 그는 수비수를 곁에 둔 채 가슴으로 받았다. 공이 땅에 닿기 전에 한 번 띄워 다가온 수비수의 머리 위로 넘기고는, 돌아 들어가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때렸다. 스벤손이 몸을 던졌을 때 공은 이미 골망 안에 있었다. 이 골을 넣은 선수의 나이는 17살 249일이었고, 월드컵 결승에 나선 선수 가운데 그보다 어린 사람은 지금까지 없다. [2][4]
골 직후의 방송 화면에는 걸어 돌아가는 브라질 선수 위로 45분짜리 경기 시계가 겹쳐 뜬다. 바늘은 10분 언저리에 걸려 있다. 후반이 시작된 지 10분, 스코어는 두 골 차로 벌어졌다.
코너킥 뒤에 다시 파고든 자갈루
13분 뒤에는 자갈루의 차례였다. 자신이 찬 코너킥을 스웨덴 수비가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자 그는 흘러나온 공을 따라 왼쪽에서 다시 파고들었고, 골문 가까이에서 네 번째 골을 밀어 넣었다. 실점 뒤의 화면에는 골문 옆에 쓰러진 선수와 그를 둘러선 주심, 양 팀 선수들이 잡힌다. 0-1에서 서두르라고 소리치던 바로 그 윙어가 4-1을 만들었으니, 지지가 걸어가며 했다는 말은 한 시간 만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2]
시몬손이 한 골을 돌려줬다
스웨덴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았다. 80분, 그렌이 만든 기회를 센터 포워드 아그네 시몬손(Tore Klas Agne Simonsson;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센터 포워드, 1935-2020)이 마무리해 4-2를 만들었다. 37살의 그렌은 월드컵 결승에 나선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기록돼 있고, 같은 경기장 안에 가장 어린 결승 출전자가 함께 뛰고 있었다. 허나 남은 시간은 10분이었고, 그 10분 동안 한 골을 더 넣은 쪽은 스웨덴이 아니었다. [2][4]
뒤꿈치로 내주고 머리로 끝낸 다섯 번째 골
마지막 골도 펠레의 것이었다. 종료 직전, 그는 뒤꿈치로 자갈루에게 공을 내주고 문전으로 뛰어 들어갔고, 자갈루가 올린 크로스를 수비수와 함께 뛰어올라 머리로 받았다. 공은 높이 떠서 스벤손의 키를 넘어 골망에 떨어졌다. RSSSF는 이 골을 90분으로 적는다. 골이 들어간 뒤의 화면에는 골문 앞에 쓰러진 브라질 선수와, 허리를 굽혀 그를 살피는 동료들이 잡힌다. [2][1]
질마르의 어깨에 기대 운 열일곱 살
종료 휘슬이 울리자 펠레는 울음을 터뜨렸다. 동료들이 그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고, 내려온 뒤에는 골키퍼 질마르(Gylmar dos Santos Neves;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1930-2013)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기록 영상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선수를 동료들이 다독이는 모습과, 가슴에 BRASIL 글자가 박힌 골키퍼 셔츠의 선수가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 곁에 있던 니우통 산투스(Nílton Santos, 본명 Nilton dos Santos;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왼쪽 풀백, 1925-2013)와 자우마 산투스, 지지는 1954년 스위스 대회에도 나섰던 선수들이다. 결승의 11명 가운데 4년 전을 겪은 사람은 그 셋뿐이었다. [2]
스웨덴 국기를 들고 돈 브라질, 머리 위로 올라간 쥘리메컵
우승팀이 그다음에 한 일이 이 결승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브라질 선수단은 커다란 스웨덴 국기를 펼쳐 들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스톡홀름시의 역사 자료관 스톡홀름셸란(Stockholmskällan; 스톡홀름시가 운영하는 역사 자료 사이트)은 대회 내내 스웨덴에서 큰 인기를 얻은 브라질이 관중의 성원에 감사하는 뜻으로 그렇게 했다고 적는다. 안방에서 결승을 내준 관중 앞을, 이긴 팀이 진 나라의 국기를 들고 달린 것이다. [8]
시상대에서는 또 하나의 처음이 나왔다. 주장 벨리니(Hilderaldo Luiz Bellini;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센터백, 1930-2014)는 훗날 브라질 축구 협회의 글에 실린 회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로피를 들어 올릴 생각은 없었다. 사실 스웨덴의 구스타브 국왕에게서 받았을 때 그걸로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시상식은 어수선했고 자리를 잡지 못한 사진기자가 많았는데, 그중 키 작은 몇몇이 “벨리니, 컵을 들어, 들어 올려!”(Belini, levanta a taça, levanta, Belini!)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 올렸다.” 벨리니가 말한 국왕은 구스타브 6세 아돌프(Gustaf VI Adolf; 스웨덴 국왕, 1882-1973)다. 우승 주장이 트로피를 머리 위로 치켜드는 익숙한 장면의 시작으로 흔히 이날이 꼽힌다. [9]
17살 펠레의 결승
CAMPEÃO DO MUNDO · SUÉCIA 1958
BRASIL
로순다에 겹쳐 있던 처음들
이 90분에는 처음이 여럿 겹쳐 있다. 브라질의 첫 우승이었고, 자기 대륙 밖에서 열린 월드컵을 가져간 첫 팀이었다. 일곱 골은 지금도 결승 한 경기 최다 득점이며, 펠레는 결승에 나선 가장 어린 선수로 남아 있다. [2][10][4]
진 쪽의 기록도 적어 둘 만하다. 선제골의 리드홀름은 35살, 만회골을 만든 그렌은 37살이었다. 스웨덴은 자국에서 연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랐고, 그 결승에서 진 뒤 상대가 자기네 국기를 들고 도는 모습을 지켜봤다. 월드컵 기록 사이트 플래닛 월드컵은 1958년 대회를 그때까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우호적인 월드컵이었다고 적으며 그 한 바퀴를 대회의 상징으로 꼽는다. [2]
필자가 이 경기에서 가장 오래 붙드는 장면은 일곱 골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닌, 0-1 직후의 걸음이다. 1950년의 브라질은 먼저 넣고도 뒤집혔고, 1958년의 브라질은 먼저 맞고도 걸어서 돌아갔다. 흰 셔츠라는 말에 질색하던 선수들이 급히 꿰맨 파란 셔츠를 입고 남의 대륙에서 끌려가던 그 순간, 공을 낀 채 서두르지 않던 걸음만큼 8년 사이에 달라진 것을 잘 보여 주는 화면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 11명과 대회 전체의 기록은 1958 FIFA 월드컵 베스트 11에, 결승의 두 풀백은 니우통 산투스와 자우마 산투스 편에 따로 남겨 두었다.
영상과 기록 출처
- 결승 명단·주심·킥오프 시각·득점 시각: RSSSF, World Cup 1958 finals.
- 일곱 골의 전개, 하루 동안 내린 비와 미끄러운 잔디, 1954년 대회 경험자 세 명, 대륙 밖 첫 우승: Planet World Cup, World Cup 1958 Final.
- 실점 뒤 지지의 걸음과 자갈루와 나눈 말: FIFA, Brazil’s prince and king of ’58.
- 대회 첫 경기와 달라진 결승 선발 다섯 명, 임의로 배정된 등번호, 펠레 17살 249일과 그렌의 최고령 기록: FIFA, La double épopée brésilienne 1958-1962 en chiffres.
- 유니폼 추첨과 브라질의 불참, 흰 셔츠 안이 물러난 경위: Wikipedia, 1958 FIFA World Cup final.
- 숙소 근처 가게에서 산 셔츠, 뜯어 붙인 문장과 등번호, 경기 초반의 혼동: EFE(Exame 게재), Brasil foi campeão mundial pela 1ª vez com camisas fabricadas na Suécia.
- 파울루 마샤두 지 카르발류와 아파레시다 성모의 파란 망토 이야기: Trivela, Seleção brasileira e a Nossa Senhora: a influência da Santa na Copa de 58.
- 스웨덴 국기를 든 브라질의 한 바퀴: Stockholmskällan, VM-finalen i fotboll 1958: film 13 i Folke Wännströms samling.
-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경위에 대한 벨리니의 회고: NetVasco, Primeiro brasileiro a levantar a taça de campeão do mundo foi o vascaíno Bellini(브라질 축구 협회 글 전재).
- 월드컵 결승 한 경기 최다 득점 일곱 골: Guinness World Records.
- 본문의 28개 영상은 1958 FIFA 월드컵 결승 기록 영상을 경기 흐름 순서로 나눈 장면이다. 화면 오른쪽 위의 표시와 영어 자막은 원본 기록 영상에 포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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