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 · FIFA 월드컵™
1958 FIFA 월드컵 베스트 11: 17살 펠레와 퐁텐의 13골
브라질이 처음 월드컵을 들어 올린 스웨덴 대회. 17살 펠레와 가린샤, 한 대회 13골의 쥐스트 퐁텐, 뮌헨 사고 넉 달 뒤 최우수 골키퍼가 된 해리 그레그까지 열한 명으로 기록한다.


제6회FIFA 월드컵
VM fotboll · Coupe Jules Rimet · Sverige 1958
브라질이 처음 우승한 월드컵
- 개최국
- 스웨덴
- 대회 기간
- 1958년 6월 8일-6월 29일
- 본선 참가
- 16개국
- 경기 수
- 35경기 · 126골
- 우승
- 브라질 첫 번째 우승
- 득점왕
- 쥐스트 퐁텐 · 13골
1958년 대회는 스웨덴의 열두 도시에서 열렸다. 경기당 3.6골이 나왔고,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팀은 여섯 경기에서 23골을 넣은 3위 프랑스였다.[1][2] 조별리그 순위는 승점으로만 가렸고 골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승점이 같으면 재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세 개 조에서 조 2위 결정전이 열렸다.[2]
참가국의 얼굴도 특별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모두 본선에 올랐다. 영국의 네 나라가 한 대회에 함께 나온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웨일스와 북아일랜드, 소련은 이 대회가 첫 월드컵이었다.[1]
브라질은 오스트리아를 3-0으로 꺾고 잉글랜드와 0-0으로 비긴 뒤, 소련과의 세 번째 경기에서 선발을 바꿨다. 오른쪽에 가린샤, 앞선에 펠레, 중원에 지투를 세웠고 2-0으로 이겼다. 이 셋은 결승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8강에서 웨일스를 1-0, 준결승에서 프랑스를 5-2로 넘었고, 결승에서는 개최국 스웨덴을 다시 5-2로 꺾었다.[2]
결승은 6월 29일 솔나의 로순다 스타디움(Råsunda Stadion)에서 열렸다. 4분 닐스 리드홀름이 먼저 골을 넣었지만 바바가 9분과 32분에 연달아 골을 넣어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에는 펠레가 55분과 90분, 자갈루가 68분에 골을 넣었다. 스웨덴은 80분 아그네 시몬손의 골로 한 골을 더 따라붙었다.[1][2]
최종 순위
| 순위 | 국가 | 전적 | 득실 |
|---|---|---|---|
| 우승 | 브라질 |
5승 1무 | 16득점 4실점 |
| 준우승 | 스웨덴 |
4승 1무 1패 | 12득점 7실점 |
| 3위 | 프랑스 |
4승 2패 | 23득점 15실점 |
| 4위 | 서독 |
2승 2무 2패 | 12득점 14실점 |

열한 명을 읽는 법
대회의 현재 공식 영문 표제는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1958 FIFA World Cup Sweden™)이다. 이 대회는 WM 전형과 브라질의 4-2-4가 한 무대에서 만난 대회였다. 그래서 역할어는 선수가 자기 팀에서 실제로 맡은 자리를 따랐다. GK는 골키퍼, FB는 풀백, CB는 브라질 4-2-4의 수비 넷 가운데 가운데 둘을 맡은 센터백(centre-back; 두 풀백 사이에서 중앙을 지키는 수비수), RH는 WM의 오른쪽 하프, MF는 4-2-4의 중원 두 자리를 맡은 미드필더, IR·IL은 인사이드 라이트·인사이드 레프트, CF는 센터 포워드, OR은 아웃사이드 라이트다.
아래 전술판은 다섯 나라의 선수를 세 명·네 명·세 명으로 세운 회고적 배열이다. 카드의 위치보다 이름 위의 약어를 그 선수의 역할로 읽으면 된다. 블랜치플라워는 화면 왼쪽에 놓였어도 북아일랜드의 오른쪽 하프였고, 펠레와 그렌은 각자 팀에서 인사이드 레프트 자리를 맡았다.
IL펠레브라질 · 4경기 6골
CF쥐스트 퐁텐프랑스 · 6경기 13골
OR가린샤브라질 · 4경기
RH대니 블랜치플라워북아일랜드 · 5경기
IL군나르 그렌스웨덴 · 5경기 1골
MF지지브라질 · 6경기 1골
IR레몽 코파프랑스 · 6경기 3골
FB니우통 산투스브라질 · 6경기 1골
CB벨리니브라질 · 6경기 · 주장
FB자우마 산투스브라질 · 1경기
GK해리 그레그북아일랜드 · 4경기
북아일랜드 

브라질 · 6경기 1골

브라질 · 6경기 · 주장

브라질 · 1경기(결승)

북아일랜드 

브라질 · 6경기 1골 · 대회 최우수 선수

스웨덴 · 5경기 1골

프랑스 · 6경기 3골

브라질 · 4경기 6골 · 최우수 신인

프랑스 · 6경기 13골 · 득점왕

브라질 · 4경기
골문과 수비
골문은 북아일랜드의 해리 그레그(Henry Gregg; 북아일랜드 골키퍼, 1932-2020)다. 넉 달 전인 2월 6일 뮌헨 공항 사고에서 불타는 비행기에서 바비 찰턴과 데니스 바이올렛, 그리고 대니 블랜치플라워의 동생 재키 블랜치플라워를 끌어낸 골키퍼다. 스웨덴에서는 네 경기에 나서 체코슬로바키아전 1-0 무실점을 만들었고, 북아일랜드는 첫 월드컵에서 8강까지 올랐다. 대회가 끝난 뒤 그는 최우수 골키퍼로 뽑혔다.[2][3]
수비 셋은 모두 우승팀 브라질의 선수다. 주장 벨리니(Hilderaldo Luiz Bellini; 브라질 수비수, 1930-2014)는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서 오를란두와 함께 가운데를 지켰다. 브라질은 여섯 경기에서 네 골만 내줬고, 준결승 전까지 네 경기는 모두 무실점이었다. 결승이 끝난 뒤 그는 사진기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트로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드는 세리머니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붙는 장면이다.[2][4]
왼쪽 풀백 니우통 산투스(Nilton dos Santos; 브라질 수비수, 1925-2013)는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섰고, 첫 경기 오스트리아전에서 직접 골까지 넣었다. 오른쪽 풀백 자우마 산투스(Djalma Santos, 본명 Dejalma dos Santos; 브라질 수비수, 1929-2013)는 앞선 다섯 경기에서 다른 선수에게 자리를 내주고 결승 한 경기에만 나섰다. 한 경기만 뛴 선수를 명단에 넣은 것은 삥이의 선택이다. 4년 전 스위스 대회에서도 이 명단에 들어간 풀백이다. 1954년의 기록은 1954 FIFA 월드컵 베스트 11에 있다.[2]
중원의 네 사람
대니 블랜치플라워(Robert Dennis Blanchflower; 북아일랜드 하프백, 1926-1993)는 북아일랜드의 주장이자 오른쪽 하프로 다섯 경기를 모두 뛰었다. 같은 해 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2][5]
지지(Waldyr Pereira; 브라질 미드필더, 1928-2001)는 브라질의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섰다. 4-2-4의 중원 두 자리 가운데 하나에서 공을 받아 가린샤와 펠레에게 나눠 주던 사람이다. 준결승 프랑스전에서는 1-1 동점 상황의 39분에 직접 골을 넣었다. 떨어지면서 휘어 들어가는 ‘폴랴 세카’(folha seca; ‘마른 잎’이라는 뜻의 프리킥)로 이름난 선수이며,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2][6]
군나르 그렌(Johan Gunnar Gren; 스웨덴 공격수, 1920-1991)은 서른일곱 살이었다. 한때 AC 밀란에서 노르달, 리드홀름과 ‘그레놀리’로 불린 그 인사이드 레프트가 자기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다섯 경기에 나섰다. 서독과의 준결승에서 50분에 결승골을 넣어 스웨덴을 결승으로 보냈다. 서른일곱 살 236일로 이 대회 최고령 득점자다.[2]
레몽 코파(Raymond Kopaszewski; 프랑스 공격수, 1931-2017)는 프랑스의 여섯 경기에 모두 나서 세 골을 넣었다. 파라과이전 7-3에서 한 골, 스코틀랜드전 2-1에서 선제골, 서독과의 3위 결정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었다. 브뤼셀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세 번째 유러피언컵을 이끈 지 열하루 만에 스웨덴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그 결승은 1957-58 유러피언컵 결승 H/L에 정리했다.[2]
세 공격수

쥐스트 퐁텐(Just Louis Fontaine; 프랑스 공격수, 1933-2023)은 프랑스의 여섯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파라과이전 세 골, 유고슬라비아전 두 골, 스코틀랜드전 한 골, 북아일랜드와의 8강 두 골, 브라질과의 준결승 한 골, 그리고 서독과의 3위 결정전 네 골까지 13골이다. 4년 전 코치시 샨도르가 세운 한 대회 11골을 넘었고,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코파와 함께 스타드 드 랭스의 공격을 이끌던 선수다.[1][2]
가린샤(Manuel Francisco dos Santos; 브라질 오른쪽 윙어, 1933-1983)는 소련전부터 오른쪽 끝에 서서 결승까지 네 경기를 뛰었다. 골은 없었다. 그가 선발로 나선 네 경기에서 브라질은 모두 이겼고 13골을 넣었다.[2]
17살 펠레

펠레(Edson Arantes do Nascimento; 브라질 공격수, 1940-2022)는 첫 두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소련과의 세 번째 경기에서 처음 선발로 나섰고, 웨일스와의 8강에서 73분에 유일한 골을 넣었다.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는 53분, 64분, 76분에 세 골을 넣었다. 결승에서는 55분에 골을 넣었고, 90분에는 헤더로 마지막 골을 넣었다. 네 경기 여섯 골이다.[2]
그는 결승에서 17살 249일이었다. 월드컵 결승에서 뛰고, 골을 넣고, 우승한 가장 어린 선수다. 대회 최우수 신인도 그의 몫이었다. 레오니다스와 지지뉴의 세대가 넘지 못한 월드컵을 브라질은 이 17살과 함께 넘었다.[1][2]
명단 밖의 이름들
준우승팀 스웨덴의 주장 닐스 리드홀름(Nils Liedholm; 스웨덴 미드필더, 1922-2007)은 결승에서 먼저 골을 넣었고, 쿠르트 함린(Kurt Hamrin; 스웨덴 오른쪽 윙어)과 아그네 시몬손(Agne Simonsson; 스웨덴 공격수)은 네 골씩 넣었다. 서독의 헬무트 란(Helmut Rahn; 서독 오른쪽 윙어, 1929-2003)은 여섯 골로 펠레와 함께 득점 공동 2위에 올랐고, 그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코파에 이어 2위가 됐다. 브라질에서는 다섯 골의 바바와 모든 경기를 뛴 지우마르 골키퍼, 중원의 지투도 끝까지 남았다.[2]
그렇게 추리고 나니 브라질에서 여섯 명, 프랑스와 북아일랜드에서 두 명씩, 스웨덴에서 한 명이 남았다. 우승팀의 뼈대 위에 득점왕과 그를 도운 코파, 첫 월드컵의 북아일랜드를 8강까지 이끈 두 사람, 그리고 개최국의 서른일곱 살 인사이드 레프트를 얹은 명단이다.
출처와 기록 기준
- 「1958 FIFA World Cup」, Wikipedia. 대회 기간·개최 도시, 영국 네 나라의 동시 본선, 첫 출전국, 결승, 퐁텐의 기록과 개인상.
- 「World Cup 1958 finals」, RSSSF. 경기별 명단·득점·순위, 득점자 목록, 최연소·최고령 기록.
- 「Harry Gregg」, Wikipedia. 뮌헨 사고의 구조와 1958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
- 「Hilderaldo Bellini」, Wikipedia. 주장 경력과 트로피를 머리 위로 든 세리머니.
- 「Danny Blanchflower」, Wikipedia. 1958 월드컵 주장과 1958년 잉글랜드 축구기자협회 올해의 선수.
- 「Didi」, Wikipedia. 1958 월드컵 최우수 선수와 폴랴 세카 프리킥.
- 머리 그림: 1958년 대회 공식 엠블럼. 당대 사용 확인: «2 5 dl beer glasses from 1958 FIFA football world cup Sweden», R. Henrik Nilsson,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4.0.
1958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공식 베스트 11 시상이 없었다. 열한 명은 삥이가 2024년 선정한 명단이며, 경기 수와 득점은 RSSSF의 경기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 당시 대회를 포괄하는 공식 도움 통계는 확인되지 않아 기록표에 넣지 않았다. 역할어는 선수가 자기 팀에서 맡은 자리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