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 · 유러피언컵
1961-62 유러피언컵 득점왕·득점 순위: 하인츠 슈트렐 8골
4강에도 오르지 못한 1. FC 뉘른베르크의 하인츠 슈트렐이 6경기 8골로 득점 1위에 올랐다. 7골씩 넣은 레알 마드리드의 푸스카스·디스테파노·테하다, 한 경기 5골의 로프크비스트, 결승 2골의 에우제비우까지 경기별 득점 기록으로 다시 읽는다.
디자인 정정 위 디자인의 로저 클라선은 로제르 클라선으로 적는다. 후스토 테하다 칸의 스페인 국기는 현재 국기이며, 당시 국기는 1945-1977년의 독수리 문장 국기다. 하인츠 슈트렐의 8골과 벤트 로프크비스트의 6골은 UEFA 기록과 같고, RSSSF 기록은 슈트렐 7골, 로프크비스트 7골이다(아래 기록 기준).
제7회유러피언컵
European Champion Clubs’ Cup 1961-62
5골 이상 넣은 10명
| 순위 | 선수 | 클럽 | 출신 | 출전 | 득점 |
|---|---|---|---|---|---|
| 1위 | 하인츠 슈트렐Heinz Strehl | 6경기 | 8골 | ||
| 공동 2위 | 푸슈카시 페렌츠Puskás Ferenc | 9경기 | 7골 | ||
| 공동 2위 | 알프레도 디스테파노Alfredo Di Stéfano | 10경기 | 7골 | ||
| 공동 2위 | 후스토 테하다Justo Tejada | 8경기 | 7골 | ||
| 공동 5위 | 주제 아구아스José Pinto Carvalho dos Santos Águas | 7경기 | 6골 | ||
| 공동 5위 | 로제르 클라선Roger Claessen | 6경기 | 6골 | ||
| 공동 5위 | 벤트 로프크비스트Bent Løfqvist | 4경기 | 6골 | ||
| 공동 5위 | 바비 스미스Bobby Smith | 6경기 | 6골 | ||
| 공동 9위 | 에우제비우Eusébio da Silva Ferreira | 6경기 | 5골 | ||
| 공동 9위 | 루돌프 쿠체라Rudolf Kučera | 5경기 | 5골 |
순위는 골 수 기준이며 같은 골 수는 공동 순위로 적었다. 출전은 UEFA가 공개한 선발 명단 기준이며, 교체 제도가 없던 시즌이라 선발 수가 곧 출전 수다. 도움은 대회 공식 기록에 없었으므로 동률을 가르는 기준으로 쓰지 않았다. 하인츠 슈트렐과 벤트 로프크비스트의 골 수는 UEFA와 RSSSF가 한 골씩 다르며, 표는 UEFA를 따랐다(아래 기록 기준).
10명이 일곱 구단에 흩어져 있다. 결승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 CF가 세 명, 우승한 SL 벤피카가 두 명이고, 나머지 다섯은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한 구단의 선수다. 1위 슈트렐의 뉘른베르크는 8강에서, 로제르 클라선의 스탕다르 리에주와 바비 스미스의 토트넘 홋스퍼는 4강에서, 루돌프 쿠체라의 FK 두클라 프라하는 8강에서, 벤트 로프크비스트의 볼드클루벤 1913은 1라운드에서 멈췄다.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팀은 10경기에서 30골을 넣은 레알이다.[1][2]
6경기 8골, 슈트렐의 기록
- FC 뉘른베르크의 하인츠 슈트렐(Heinz Strehl; 서독 공격수, 1938-1986)은 팀의 여섯 경기에 모두 나와 네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8골 가운데 6골이 드럼콘드라 FC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나왔다. 1961년 8월 23일 뉘른베르크의 1차전 5-0에서 15분과 23분에 두 골을 넣었고, 9월 13일 더블린 톨카 파크의 2차전 4-1에서는 15분, 47분, 52분, 65분에 혼자 네 골을 넣었다.[1][3]
1라운드에서는 이스탄불의 페네르바흐체 원정 2-1에서 56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마지막 골은 1962년 2월 1일 뉘른베르크에서 SL 벤피카를 3-1로 이긴 8강 1차전의 40분 골이다. 디펜딩 챔피언을 두 골 차로 이긴 그 경기 뒤, 뉘른베르크는 3주 뒤 리스본에서 0-6으로 졌다. 그 경기의 첫 골은 UEFA 기록으로 3분에 나온 주제 아구아스의 골이었다. 슈트렐의 골은 페네르바흐체와의 홈 경기 1-0과 리스본의 2차전에서만 나오지 않았다.[1]
레알의 세 사람, 7골씩
공동 2위는 레알 마드리드 CF의 세 사람이다. 셋이 넣은 21골은 레알이 10경기에서 넣은 30골의 3분의 2가 넘는다.[1]
알프레도 디스테파노는 레알의 10경기에 모두 나왔다. 바샤시 SC와의 예선 2차전 3-1에서 두 골, 볼드클루벤 1913과의 1라운드 2차전 9-0에서 세 골, 4강 1차전 스탕다르전 4-0에서 한 골을 넣었다. 남은 한 골은 1962년 2월 14일 토리노의 유벤투스 원정 8강 1차전 79분에 나온 1-0 결승골이다. 그 대진은 베르나베우의 2차전 0-1과 파리 재경기 3-1로 이어졌다.
후스토 테하다(Justo Tejada; 스페인 공격수, 1933-2021)는 여덟 경기에서 일곱 골을 넣었다. 부다페스트의 바샤시 원정 예선 1차전 2-0에서 6분과 28분에 두 골, 2차전에서 89분에 한 골, 오덴세 원정 1라운드 1차전에서 87분에 한 골, 파리의 유벤투스 재경기 3-1에서 82분에 쐐기골, 스탕다르와의 4강 1차전에서 38분과 79분에 두 골이다. 여덟 경기 가운데 다섯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푸슈카시 페렌츠는 아홉 경기에서 일곱 골을 넣었다. 오덴세 원정 1라운드 1차전에서 15분과 83분, 2차전에서 7분, 스탕다르 원정 4강 2차전에서 50분에 골을 넣었고, 나머지 세 골은 암스테르담의 결승에서 나왔다. 18분, 23분, 39분의 해트트릭으로 레알은 3-2로 전반을 마쳤지만 후반에 세 골을 내주고 여섯 번째 우승을 놓쳤다. 그 장면은 1961-62 유러피언컵 결승전 H/L에 있다.[1]
6골의 네 사람
공동 5위는 네 사람이다. 우승한 SL 벤피카의 주장 주제 아구아스는 일곱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FK 아우스트리아 빈 원정 1라운드 1차전 1-1에서 31분, 2차전 5-1에서 36분과 44분, 뉘른베르크와의 8강 2차전 6-0에서 3분, 토트넘 원정 4강 2차전에서 16분, 레알과의 결승에서 25분이다. 한 시즌 전 득점왕이었던 아구아스는 두 해 연속 결승에서 골을 넣었다.[1]
스탕다르 리에주의 로제르 클라선(Roger Claessen; 벨기에 공격수, 1941-1982)은 여섯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프레드릭스타드 FK 원정 예선 2차전에서 68분과 79분, 발케아코스켄 하카와의 1라운드 1차전 5-1에서 33분, 61분, 75분의 해트트릭, 레인저스 FC와의 8강 1차전 4-1에서 7분 선제골이다. 스탕다르의 첫 4강이었다.
볼드클루벤 1913의 벤트 로프크비스트(Bent Løfqvist; 덴마크 공격수)는 네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그 가운데 다섯 골이 1961년 9월 13일 오덴세의 CA 스포라 룩셈부르크전 9-2 한 경기에서 나왔다. 45분, 56분, 61분, 82분, 86분이다. 한 경기 다섯 골은 이 시즌 대회 최다다. 나머지 한 골은 룩셈부르크의 1차전 6분 골이다. 볼드클루벤 1913은 1라운드에서 레알을 만나 0-3, 0-9로 졌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바비 스미스(Bobby Smith; 잉글랜드 센터포워드, 1933-2010)는 여섯 경기에서 여섯 골을 넣었다. 구르니크 자브제와의 예선 2차전 8-1에서 45분과 70분, FK 두클라 프라하와의 8강 2차전 4-1에서 11분과 53분, 벤피카와의 4강 두 경기에서 한 골씩이다. 화이트 하트 레인의 4강 2차전 34분 골로 토트넘은 합계 2-4까지 따라붙었다. 그 4강은 1961-62 유러피언컵 4강에 있다.[1]
스무 살 에우제비우의 5골
공동 9위 에우제비우(Eusébio da Silva Ferreir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공격수, 1942-2014)는 한 시즌 전 등록 분쟁으로 유러피언컵을 거의 뛰지 못했다. 이 시즌에는 1961년 10월 31일 빈의 1라운드 1차전에서 대회 첫 경기를 치렀고, 11월 8일 리스본의 2차전 5-1에서 68분에 첫 골을 넣었다. 뉘른베르크와의 8강 2차전 6-0에서는 4분과 55분에 두 골, 레알과의 결승에서는 64분 페널티킥과 69분 프리킥으로 두 골을 넣었다. 다섯 골 가운데 네 골이 8강 2차전과 결승에서 나왔다.[1]
같은 공동 9위인 FK 두클라 프라하의 루돌프 쿠체라(Rudolf Kučera; 체코슬로바키아 공격수)는 다섯 경기에서 다섯 골을 넣었다. CSKA 소피아와의 예선 두 경기에서 한 골씩, 세르베트 FC와의 1라운드 2차전 2-0에서 24분과 27분에 두 골, 토트넘과의 8강 1차전 1-0에서 59분 결승골이다.
기록 기준
골 수는 UEFA 경기 데이터의 55경기 득점 기록을 한 골씩 셌고, RSSSF의 경기별 득점자 줄과 득점 순위 요약과 대조했다. 득점자가 다른 경기는 둘이다. 1961년 9월 13일 드럼콘드라-뉘른베르크 1-4에서 UEFA는 뉘른베르크의 네 번째 골을 슈트렐의 65분 골로, RSSSF는 드럼콘드라 수비수 브렌던 힐리(Brendan Healy)의 70분 자책골로 적는다. DFB 데이터센터도 이 골을 슈트렐의 65분 골로 적어 표는 슈트렐 8골로 두었다. 9월 7일 스포라-볼드클루벤 1913 0-6에서는 UEFA가 두 번째 골을 스포라의 피에르 레미(Pierre Rémy)의 36분 자책골로, RSSSF가 로프크비스트의 36분 골로 적는다. 이 골은 세 번째 자료를 찾지 못해 표는 UEFA의 6골을 따랐다. 두 경우 모두 순위 구간은 달라지지 않는다.[1][2][3]
RSSSF의 득점 순위 요약은 바비 스미스를 레인저스 선수로 적지만, 경기별 득점자 줄의 여섯 골은 모두 토트넘 경기에서 나왔다. 득점 시각은 몇 경기에서 두 자료가 1분에서 7분 안팎으로 다르며, 본문의 분은 UEFA 경기 데이터를 따랐다. UEFA 경기 데이터는 드럼콘드라 FC를 「Dublin City」라는 이름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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