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E DES CLUBS CHAMPIONS EUROPÉENS · FINAL BICAMPEÃO EUROPEU 비캄페앙 에우로페우; 포르투갈어로 ‘유럽 챔피언에 두 번 오른 팀’이라는 뜻. 포르투갈 신문 『헤코르드』가 이 결승의 벤피카를 부르는 말.

1961-62 EUROPEAN CUP · FINAL

SL 벤피카 문장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포르투갈 국기포르투갈
V90 MINUTES
UNPLAYED
S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1945년부터 사용된 스페인 국기스페인
날짜
1962년 5월 2일
장소
올림픽 경기장
관중
61,257명
주심
레오 호른

1962년 5월 2일 수요일 저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올림픽 경기장(Olympisch Stadion)에 6만 1,257명이 들어왔다. 일곱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이다. 한 해 전 베른에서 처음 우승한 SL 벤피카가 디펜딩 챔피언으로 섰고, 맞은편에는 다섯 번 우승하고 한 해 만에 결승에 돌아온 레알 마드리드 CF가 섰다. 휘슬은 개최국 네덜란드의 레오 호른(Leo Horn; 네덜란드 주심, 1916-1995)이 불었다.[1][2]

레알에게는 여섯 번째 결승이었고, 앞선 다섯 번은 모두 이겼다. 한 해 전 16강에서 FC 바르셀로나에 져 처음 트로피를 내줬는데, 그 바르셀로나를 결승에서 꺾고 우승한 팀이 벤피카였다. 그 결승은 1960-61 유러피언컵 결승전 H/L에 있다. 두 팀이 다시 결승까지 온 길은 1961-62 유러피언컵 참가팀과 본선과 1961-62 유러피언컵 4강에 있다. 벤피카는 4강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합계 4-3으로 넘었고, 레알은 스탕다르 리에주를 합계 6-0으로 눌렀다.

흰 바탕 위쪽에 OFFICIEEL PROGRAMMA, BENFICA, REAL MADRID 글자, 가운데에 FINALE EUROPA CUP 1962가 적힌 커다란 트로피 그림과 그 양옆에서 공을 다투는 붉은 상의와 흰 상의의 두 선수를 그린 결승 공식 프로그램 표지
결승 공식 프로그램 표지. 위쪽에 네덜란드어로 「Officieel Programma」(공식 프로그램), 오른쪽 위에 값 50센트와 「Woensdag 2 Mei」(5월 2일 수요일)가 적혀 있다.

벤피카의 벤치에는 구트만 벨러(Guttmann Béla; 헝가리 출신 감독, 1899-1981)가 그대로 앉았다. 앞줄은 7번 주제 아우구스투(José Augusto; 포르투갈 오른쪽 윙어), 8번 에우제비우(Eusébio da Silva Ferreir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공격수, 1942-2014), 9번 주장 주제 아구아스, 10번 마리우 콜루나(Mário Coluna; 모잠비크 태생 포르투갈 미드필더, 1935-2014), 11번 안토니우 시몽이스(António Simões; 포르투갈 왼쪽 윙어)였다. 한 해 전 결승에 없던 에우제비우는 이날 스무 살이었다. 지난 결승에서 11번을 달았던 카벵(Domiciano Cavém; 포르투갈 선수)은 5번을 달고 하프 자리로 내려왔다.[1][2]

레알의 벤치에는 미겔 무뇨스(Miguel Muñoz; 스페인 감독, 1922-1990)가 앉았다. 앞줄은 7번 후스토 테하다(Justo Tejada; 스페인 오른쪽 윙어), 8번 루이스 델 솔(Luis Del Sol; 스페인 미드필더, 1935-2021), 9번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10번 푸슈카시 페렌츠, 11번 주장 파코 헨토(Francisco Gento; 스페인 왼쪽 윙어, 1933-2022)였다. UEFA는 앞줄을 이끈 디스테파노와 푸슈카시를 「서른다섯 살의 두 사람」이라고 적는다.[1][4]

이튿날 네덜란드 신문들은 이 경기를 분 단위로 받아 적었다. 『더 테이트 더 마스보더』(De Tijd De Maasbode)에 따르면 두 팀은 저녁 7시 24분 호른과 두 부심을 따라 입장했고, 7시 29분 동전 던지기는 레알 주장 헨토가 이겼다. 킥오프는 7시 31분, 공을 처음 찬 사람은 벤피카의 센터 포워드 아구아스였다. 그 사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가에 이어 네덜란드 국가까지 울렸는데, 『레이우아르더르 쿠란트』(Leeuwarder Courant) 기자는 마지막 것을 「전혀 필요 없었던」(heel onnodige) 국가라고 적었다.[8][9]

두 팀의 모양은 비슷했다. 『니우스블라트 판 헷 노르던』(Nieuwsblad van het Noorden)은 양쪽 모두 수비 넷을 세운 듯 보였지만 자주 흐트러졌고, 넷이 섰을 때도 한 줄로 나란히 서는 바람에 에우제비우와 디스테파노가 그 줄 뒤를 파고들었다고 썼다. 디스테파노는 최전방에 서지 않았다. 앞줄 뒤로 내려와 공을 만들었고, 끝은 인사이드 레프트 푸슈카시와 왼쪽의 헨토가 맡았다.[9][10]

주제 아우구스투, 주제 아구아스, 안토니우 시몽이스, 에우제비우, 마리우 콜루나 다섯 사람의 사진을 두 줄로 모은 편집 이미지
벤피카의 공격진. 위 줄 왼쪽부터 주제 아우구스투, 주제 아구아스, 안토니우 시몽이스, 아래 줄 에우제비우와 마리우 콜루나. 디자인: 삥이FC.
파코 헨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후스토 테하다, 푸슈카시 페렌츠, 루이스 델 솔 다섯 사람의 사진을 두 줄로 모은 편집 이미지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 위 줄 왼쪽부터 파코 헨토, 알프레도 디스테파노, 후스토 테하다, 아래 줄 푸슈카시 페렌츠와 루이스 델 솔. 델 솔은 1962년 여름 옮겨 간 유벤투스 시절 사진이다. 디자인: 삥이FC.

18분과 23분: 푸슈카시의 2골

23' · REAL MADRID 0-2

5분 사이 터진 2골

어두운 상의가 레알, 밝은 상의가 벤피카다. 중원에서 공을 받은 푸슈카시가 수비수들을 뒤에 두고 혼자 달려가 넣는다. 18분, 0-1.
중원에서 공을 몰고 올라온 레알 선수가 페널티 지역 밖에서 찬 공이 골문으로 들어간다. 23분 푸슈카시, 0-2.

흑백 화면에서 벤피카의 붉은 상의는 밝은 회색으로, 레알의 파란 상의는 어둡게 보인다. 64분 페널티킥을 차는 에우제비우가 밝은 상의다. 이 글의 영상에서는 이 밝기로 두 팀을 나눈다.

먼저 앞선 쪽은 레알이었다. 18분, 중원의 디스테파노가 찔러 준 공이 푸슈카시의 발 앞에 정확히 떨어졌다. 푸슈카시는 벤피카 수비수를 모두 뒤에 두고 길게 달려가 코스타 페레이라가 손쓸 수 없는 슛을 찼다. 영상에서 혼자 공을 몰고 가는 어두운 상의가 그다. RSSSF는 이 골을 17분으로 적는다.[1][2][8]

5분 뒤 두 번째 골은 회전으로 들어갔다. 『더 테이트 더 마스보더』는 25m 거리에서 찬 공이 크게 휘어 골키퍼를 돌아 들어갔다고 적었고, 『니우스블라트 판 헷 노르던』은 디스테파노가 밀어 준 공을 푸슈카시가 곧바로 찼고 코스타 페레이라가 공의 회전에 완전히 속았다고 적었다. 디펜딩 챔피언이 25분도 지나지 않아 두 골을 뒤졌다.[8][10]

25분과 33분: 아구아스와 카벵

25' · SL BENFICA 1-2

2분 만에 따라붙은 주장

골키퍼가 몸을 던진 뒤 골대 앞으로 튄 공에 벤피카 선수들이 달려들고, 공이 골망 안으로 들어간다. 25분 아구아스, 1-2.
1-2. 벤피카 선수가 중원에서 레알 선수들 사이로 공을 몬다.

벤피카는 2분 만에 따라붙었다. 에우제비우의 돌파가 페널티 지역 가장자리에서 반칙으로 끊겼고, 에우제비우가 직접 찬 프리킥이 수비벽을 지나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먼저 달려든 사람이 주장 아구아스였다. 『더 텔레흐라프』(De Telegraaf)는 아구아스가 아무도 지키지 않는 골문에 공을 넣었다고 썼다. 1-2.[1][8][11]

이 골 뒤로 경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벤피카가 공을 잡는 시간이 길어졌고, 28분쯤에는 에우제비우의 슛이 크로스바를 스치고 나갔다.[11]

33' · SL BENFICA 2-2

하프 자리의 5번

벤피카 선수들이 공을 몰고 레알 진영으로 올라간다.
레알 페널티 지역의 혼전 뒤 공이 골문으로 들어간다. 33분 카벵, 2-2.

33분, 레알 페널티 지역으로 높이 띄운 공이 뛰어오른 에우제비우의 가슴에 맞았다. 레알 수비가 절반쯤 걷어 낸 공이 밖으로 흘렀고, 하프 자리에서 올라온 카벵이 그 공을 그대로 찼다. 『헷 파롤』(Het Parool)은 이 슛을 「태풍 같은 힘」(met de kracht van een orkaan)이라고 불렀다. 『더 텔레흐라프』는 아라키스타인이 그물에 맞고 튀어나온 공을 보고서야 골을 알았다고 적었다. 두 골을 먼저 내준 벤피카가 10분 만에 2-2를 만들었다. RSSSF는 이 골을 34분으로 적는다.[1][2][7][11]

39분: 푸슈카시의 해트트릭

AFTER 33' · REAL MADRID

다시 벤피카 진영으로

2-2. 레알 선수가 하프라인을 넘어 공을 몰고 간다.
레알 선수들이 벤피카 진영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올라간다.

동점이 되자 레알이 다시 공을 몰고 벤피카 진영으로 올라갔다. 디스테파노가 뒤에서 공을 돌리면 푸슈카시와 헨토가 끝을 맡는 모양 그대로였다. 38분에는 헨토의 크로스를 잡으려고 뛰어나온 코스타 페레이라가 페널티 지역 밖에서 손을 써 프리킥을 내줬다.[8][9]

39' · REAL MADRID 2-3

전반에 끝난 해트트릭

레알 선수가 벤피카 골문 앞에서 찬 공이 골망 안으로 들어간다. 39분 푸슈카시, 2-3.
2-3. 레알 선수가 공을 몰고 벤피카 선수와 맞선다.

39분, 레알이 오른쪽으로 공격을 펼쳤고 벤피카가 공을 제대로 걷어 내지 못했다. 공을 잡은 푸슈카시가 몇 명을 제치며 옆으로 달리다 갑자기 왼발로 강하게 찼고, 공은 포르투갈 골문의 먼 구석으로 들어갔다. 『더 텔레흐라프』는 하프 펠로(Felo; 레알 마드리드의 하프)와 발에서 발로 이어진 패스 끝에 푸슈카시가 비어 있었다고 적는다. 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해트트릭이 끝났다. RSSSF는 이 골을 38분으로 적는다.[7][8][11]

곧이어 레알은 한 골을 더 넣을 뻔했다. 헨토가 수비에 밀리면서도 코스타 페레이라 머리 위로 높이 올린 크로스를 테하다가 머리로 받았고, 공은 크로스바를 때렸다.[7][8]

푸슈카시는 1960년 글래스고 결승의 네 골에 이 세 골을 더해, 유러피언컵 결승에서만 일곱 골을 넣었다. 그 네 골은 1959-60 유러피언컵 결승전 H/L에 있다. 레알은 3-2로 전반을 마쳤다.[1][2][4]

AMSTERDAM · 2 MAY 1962THE SEVENTH EUROPEAN CUP FINAL
SL 벤피카 문장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포르투갈 국기포르투갈
2HALF
TIME
3
레알 마드리드 CF 문장레알 마드리드 CFREAL MADRID CF1945년부터 사용된 스페인 국기스페인

PUSKÁS TWICE · ÁGUAS · CAVÉM · PUSKÁS AGAIN

50분과 64분: 콜루나, 그리고 에우제비우의 페널티킥

64' · SL BENFICA 4-3

동점, 그리고 역전

2-3. 중원에서 두 팀이 공을 다툰 뒤 멀리서 날아온 공이 레알 골문으로 들어간다. 50분 콜루나, 3-3.
3-3. 레알 선수들이 페널티 지역 밖에 물러서고, 에우제비우가 페널티킥을 차 넣는다. 64분, 4-3.

『헷 파롤』의 린 발(Rien Bal) 기자는 전반이 끝났을 때 레알의 패배는 상상하기 어려워 보였다고 쓰고, 그것이 착각이었다고 이어 갔다. 벤피카에게는 후반에 쓸 「예비 연료」(reserves)가 있었고, 레알은 그런 것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후반이 시작되자 벤피카가 몰아쳤고, 레알은 푸슈카시와 헨토를 빼고 모두 자기 진영으로 물러섰다.[7]

50분, 콜루나가 30m는 족히 되는 거리에서 찬 공이 아라키스타인을 지나 골문으로 들어갔다. 『더 테이트 더 마스보더』는 「아주 세고 뜻밖의」(enorm hard en verrassend) 슛이라고 적었다. 3-3. 한 해 전 베른 결승에서도 콜루나는 55분에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다. 두 번의 결승에서 모두 먼 거리에서 넣은 셈이다.[1][2][8]

60분쯤 레알의 오른쪽 수비 페드로 카사도(Pedro Casado; 스페인 수비수)가 다쳤다. 교체가 없던 시절이라 카사도는 오른쪽 윙 자리로 옮겨 다리를 절며 뛰었다. UEFA도 이 대목을 카사도가 심하게 다리를 절었고 벤피카가 상대보다 훨씬 생생해 보였다고 적는다. 수비 하나를 잃은 레알 앞에서 『헷 파롤』은 벤피카의 센터백 제르마누마저 푸슈카시를 혼자 둘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썼다. 62분쯤에는 벤피카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취소됐다.[4][7]

64분, 에우제비우가 몇 번의 태클을 뿌리치고 페널티 지역으로 들어가다 쓰러졌다. 네덜란드 신문들은 대부분 산타마리아의 반칙으로 적는다. 레알이 항의했지만 호른은 물러서지 않았고, 치료를 받고 일어난 에우제비우가 직접 낮고 강하게 차 넣었다. 4-3. 벤피카가 이날 처음 앞섰다. RSSSF는 이 골을 63분으로 적는다.[1][2][7][9]

69분: 에우제비우의 두 번째 골

69' · SL BENFICA 5-3

콜루나가 밀어 주고 8번이 찼다

4-3. 레알 선수들이 수비벽을 세운 프리킥. 벤피카 선수가 찬 공이 레알 골문으로 들어간다. 69분 에우제비우, 5-3.
벤피카 선수들이 한데 모여 서로 끌어안는다.

레알에게도 다시 따라갈 기회가 있었다. 66분, 푸슈카시가 밀어 준 공을 받은 디스테파노 앞에 골문까지 길이 열렸지만, 슛은 코스타 페레이라의 몸에 맞았다. 『헷 파롤』은 열 살 젊은 디스테파노였다면 틀림없이 넣었을 것이라고 적었다.[7][9]

3분 뒤 산타마리아가 페널티 지역 바로 밖에서 공에 손을 댔다. 레알이 수비벽을 세우자 콜루나가 공을 옆으로 살짝 밀었고, 에우제비우가 무릎 높이로 강하게 찬 공이 그물을 흔들었다. 짤 13에서 어두운 상의의 레알 선수들이 벽을 선 모습이 보인다. UEFA는 이 골을 먼 거리에서 찬 멋진 슛으로 적고, RSSSF는 68분으로 적는다. 5-3. 전반을 2-3으로 마친 벤피카가 후반에만 세 골을 넣었다.[1][2][4][9]

그 뒤 벤피카는 공을 돌리며 시간을 썼다. 레알의 마지막 기회는 막판에 혼자 골문으로 달려가던 디스테파노였다. 벤피카 수비 서넛에 둘러싸여 넘어진 그를 두고 레알 선수들이 페널티킥을 요구하며 호른에게 몰려갔지만, 호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사도는 끝내 탈의실로 들어갔고 레알은 10명으로 경기를 마쳤다. 종료 휘슬을 분 호른은 공을 겨드랑이에 끼었다. 벤피카 선수들은 웃통을 벗은 채 서포터들의 어깨에 실려 탈의실로 갔고, 『레이우아르더르 쿠란트』의 사진 설명에 따르면 에우제비우는 서포터들에게 셔츠를 빼앗겼다.[7][9]

레알이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진 것은 여섯 번째 결승에서 처음이었다. 푸슈카시는 전반에 해트트릭을 하고도 졌다.[4]

FULL TIME · AMSTERDAMSL BENFICA 5-3 REAL MADRID CF
2 MAY 1962두 번째 유럽 챔피언

THE SEVENTH EUROPEAN CUP · BENFICA RETAIN THE CUP

포르투갈 국기CHAMPION
SL BENFICA

두 번째 우승의 벤피카, 첫 준우승의 레알

SL 벤피카는 두 번째 결승에서 두 번째 우승을 했고, 레알 마드리드 CF는 여섯 번째 결승에서 처음 준우승했다. 아래 횟수는 이후의 성적을 더하지 않은 1961-62 시즌 종료 시점의 통산 기록이다.

결승 진출

구단대표 지역결승 진출
SL 벤피카포르투갈통산 2번째 결승 진출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6번째 결승 진출

우승

구단대표 지역대회 우승
SL 벤피카포르투갈통산 2번째 유러피언컵 우승

준우승

구단대표 지역대회 준우승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통산 첫 유러피언컵 준우승

암스테르담 다음의 구트만과 에우제비우

구트만은 이 결승을 끝으로 벤피카를 떠났다. 이듬해 벤피카는 칠레 출신 페르난도 리에라(Fernando Riera; 칠레 감독, 1920-2010) 아래서 다시 결승에 올랐지만, 1963년 5월 22일 웸블리에서 AC 밀란에 1-2로 졌다. 그 시즌 이야기는 인물관의 주제 아구아스 편에 있다.

에우제비우에게 암스테르담은 시작이었다. 그해 12월 18일 『프랑스 풋볼』이 발표한 196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에우제비우는 53점으로 2위에 올랐다. 1위는 65점의 요세프 마소푸스트(Josef Masopust; 체코슬로바키아 미드필더, 1931-2015)였다. 에우제비우가 세상을 떠난 2014년 1월 5일, 『헤코르드』는 이 결승을 돌아보며 그날의 에우제비우를 「스무 살 소년」(um menino com 20 anos)이라고 불렀다.[5][6]

관중석을 뒤로하고 붉은 벤피카 유니폼을 입은 에우제비우가 공을 바라보는 컬러 사진과 왼쪽의 두 구단 문장, 5-3 스코어를 넣은 편집 이미지
1961-62 유러피언컵 결승전, SL 벤피카 5-3 레알 마드리드 CF. 두 골을 넣은 에우제비우. 디자인: 삥이FC.

영상과 참고 자료

  1. “Benfica 5-3 Real Madrid”, UEFA 경기 기록. 득점 시각(푸슈카시 18·23·39, 아구아스 25, 카벵 33, 콜루나 50, 에우제비우 64 페널티킥·69), 선발 명단과 등번호, 관중 61,257명.
  2. “European Champions’ Cup 1961-62 - Details”, RSSSF. 주심 레오 호른(네덜란드), 두 팀의 주장과 감독, 관중 61,257명. 득점 시각은 푸슈카시 17·23·38, 아구아스 25, 카벵 34, 콜루나 51, 에우제비우 63 페널티킥·68로 적는다.
  3. “1961/62: Eusébio strikes gold for Benfica”, UEFA. 전반 3-2, 에우제비우의 두 골로 지킨 트로피.
  4. “Eusébio stars in Benfica’s second triumph”, UEFA. 서른다섯 살의 디스테파노와 푸슈카시, 푸슈카시의 결승 통산 일곱 골, 후반의 카사도와 벤피카의 체력, 먼 거리에서 찬 에우제비우의 두 번째 골, 여섯 번째 결승의 첫 패배.
  5. “Eusébio nunca esqueceu o dia em que a Europa se rendeu ao Benfica”, 『헤코르드』(2014년 1월 5일). 「bicampeão europeu」, 스무 살의 에우제비우.
  6.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Ballon d’Or) 1962”, RSSSF. 『프랑스 풋볼』 1962년 12월 18일 발표, 마소푸스트 65점, 에우제비우 53점.
  7. 린 발, “Real Madrid (2-0 voor) met 3-5 verslagen”와 “Momenten”, 『헷 파롤』(1962년 5월 3일, Delpher). 카벵의 슛, 후반의 「예비 연료」, 카사도의 부상과 오른쪽 윙 이동, 66분 디스테파노의 기회, 막판 페널티킥 항의, 82분 카사도 퇴장, 종료 뒤 장면.
  8. “Bekerfinale minutieus genoteerd”, 『더 테이트 더 마스보더』(1962년 5월 3일, Delpher). 입장·동전 던지기·킥오프 시각, 분 단위 경기 기록.
  9. “Prachtige finale om Europese beker”와 “Strafschop”, 『레이우아르더르 쿠란트』(1962년 5월 3일, Delpher). 세 나라 국가, 디스테파노의 위치, 페널티킥, 콜루나가 밀어 준 프리킥, 셔츠를 빼앗긴 에우제비우.
  10. “Acht doelpunten”, 『니우스블라트 판 헷 노르던』(1962년 5월 3일, Delpher). 두 팀의 수비 넷과 한 줄 수비, 푸슈카시의 두 골.
  11. “Voortreffelijk”, 『더 텔레흐라프』(1962년 5월 3일, Delpher). 골대를 맞은 에우제비우의 프리킥과 아구아스, 카벵의 슛, 펠로와 푸슈카시의 세 번째 골.
  12. “1962 Euro Champ Clubs’ Cup Benfica v Real Madrid”, ESPN 클래식 방송분. 본문의 14개 영상은 이 결승 방송분의 장면을 경기 순서대로 나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