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LEGEND

알바누 페레이라(Albano)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왼쪽 날개, 세이샬의 작은 드리블러

스포르팅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왼쪽 윙어 알바누. 작은 몸으로 거구의 수비수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던 드리블러, 1943년 입단부터 리그 우승 여덟 번과 포르투갈컵 네 번, 비 오던 1947년 대표 데뷔전의 농담, 1957년 고별 경기까지. 클럽·대표팀 기록과 우승 경력을 정리한다.
흰 깃의 셔츠를 입은 알바누 페레이라의 흑백 초상과 포르투갈 국기, 다섯 개의 바이올린 문구
스포르팅 CP의 왼쪽 날개 알바누 페레이라.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포르투갈 국기
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UEFA 로고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지구본 안에 방패가 든 포르투갈 축구 연맹 기관 로고
#FPF포르투갈 축구 연맹Federação Portuguesa de Futebol
다섯 방패가 든 십자 방패와 F.P.F. 글자의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POR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Seleção Nacional de Futebol | Seleção das Quinas (셀레상 다스 키나스; 다섯 방패의 대표팀)
편집자 평가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왼쪽 끝에는 알바누가 있었다. 작은 몸이었지만 빠르고 공을 잘 다뤘고, 무엇보다 드리블이 뛰어났다. 열네 시즌 동안 스포르팅에서 리그 우승 여덟 번과 포르투갈컵 우승 네 번을 함께했고, 공식전 334경기에서 162골을 넣었다. 덩치 큰 수비수를 골탕 먹이는 장면과 넉살 좋은 농담으로 팬들이 유난히 아낀 선수였다. 필자는 다섯 바이올린 가운데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선수로 알바누를 꼽는다.

삥이FC 알바누 페레이라 평가

  1. 알바누는 2-3-5 대형의 왼쪽 윙어(extremo-esquerdo; 공격 대형의 왼쪽 끝을 맡는 윙어)였다. 작은 몸을 오히려 무기로 썼다. 무게중심이 낮아 방향을 바꾸는 속도가 빨랐고, 공을 발에 붙이고 수비수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번은 거구의 스코틀랜드 수비수 다리 사이로 공을 빼서 빠져나갔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2. 몸집 차이를 이용한 거친 반칙도 그만큼 많이 받았다. 팬들은 그런 장면을 참지 못했고,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드리블하는 알바누를 더 좋아했다. 필자는 알바누가 사랑받은 이유를 기술과 함께 그 태도에서 찾는다.

  3. 그는 1943년 스포르팅에 와서 서보 감독의 1940년대 초 팀에서 바이올린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1952-53 시즌에는 ‘황금 머리’ 주제 아구아스의 벤피카를 제치고 우승하는 과정에서 리그 19골로 개인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서른 살이 넘어서도 전성기를 이어 간 셈이다.

  4. 은퇴할 때도 그는 겸손했다. 마지막 시즌을 예비 팀에서만 뛰었는데도 스포르팅이 내보낼 때까지 2군이든 어디서든 뛰겠다고 했고, 고별 경기 수익의 10%를 구단 선수 영입 기금에 내놓았다. 필자는 이 장면이 알바누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알바누 페레이라 프로필

포르투갈 국기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본명
Albano Narciso Pereira
등록명
알바누(Albano)
출생
1922년 12월 21일
출생지
포르투갈 세이샬
사망
1990년 3월 5일 · 향년 67세
대표 국적
포르투갈
포지션
왼쪽 윙어
대표팀
1947-1954년 · 15경기 3골
선수 경력
1941-1957년
소속
스포르팅 CP 14시즌

세이샬에서 온 20콘투의 사나이

알바누는 1922년 12월 21일 리스본 남쪽 테주강 건너편의 세이샬(Seixal)에서 태어났다. 동네 클럽 세이샬 FC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고, 이웃 도시 바헤이루의 바헤이렌스(Futebol Clube Barreirense; 바헤이루의 구단) 유소년 팀을 거쳐 세이샬로 돌아와 성인 선수가 됐다.

키는 작았지만 빠르고 기술이 좋았고, 드리블 실력이 눈에 띄었다. 1943년 스포르팅은 그의 이적료로 20콘투를 냈다. 당시로서는 드문 금액이라, 재정이 어렵던 구단 안에서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이 투자는 성공이었다. 1930년대 공격진의 일부가 은퇴를 앞둔 때였고, 알바누는 스포르팅의 전설적인 왼쪽 날개 주앙 크루스(João Cruz; 1930-40년대 스포르팅의 왼쪽 윙어)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입단 첫 시즌인 1943-44 시즌에 스포르팅은 리그 정상에 올랐고, 1944년 리스본 국립경기장 개장 경기에서 벤피카를 꺾고 타사 임페리우도 차지했다. 1940년대 초 서보 요제프(Szabó József; 스포르팅을 이끈 헝가리 출신 감독) 감독의 팀에서 다섯 바이올린의 황금기로 넘어가는 길목에 알바누가 있었다.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왼쪽 끝

스포르팅 줄무늬 셔츠 차림의 선수 셋이 벤치에 나란히 앉은 흑백 사진, 가운데 선수는 상의를 벗었다
왼쪽부터 알바누, 주제 트라바수스, 제주스 코헤이아. 다섯 개의 바이올린 가운데 세 사람이다.

1946년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 완성되면서 알바누는 그 왼쪽 끝에 섰다. 오른쪽부터 제주스 코헤이아, 마누엘 바스케스, 페르난두 페이로테우, 주제 트라바수스, 그리고 알바누였다. 바로 안쪽의 트라바수스와 짝을 이뤄 왼쪽을 무너뜨렸고, 측면을 파고든 뒤 중앙의 페이로테우에게 공을 보냈다. 1948년 마드리드에서 코헤이아가 여섯 골을 넣은 날, 그중 네 번째 골을 만든 패스도 알바누의 발에서 나왔다.

다섯 바이올린이 함께한 세 시즌 동안 스포르팅은 리그 3연패를 이뤘고, 1947-48 시즌에는 포르투갈컵까지 들어 올렸다. 이후 스포르팅은 1950-51 시즌부터 리그 4연패를 이어 갔다. 알바누는 그 우승을 모두 함께했다. 1952-53 시즌에는 리그 19골로 개인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벤피카를 따돌린 우승에 힘을 보탰다.

비 오던 날의 대표 데뷔전

알바누는 1947년 1월 5일 리스본 자모르(Jamor; 리스본 국립경기장이 있는 곳)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로 데뷔했다. 경기는 2-2로 끝났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엄청나게 쏟아진 비였다. 훗날 알바누는 이 경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 포르투갈-스위스전에 비가 어찌나 많이 왔는지, 키가 2cm 더 줄었어요.

Choveu tanto naquele Portugal-Suíça que eu encolhi mais dois centímetros.

- 알바누가 1947년 대표 데뷔전을 떠올리며

작은 키를 스스로 농담 삼아 꺼낸 이 말에는 그의 유쾌한 성격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1954년까지 대표팀에서 15경기 3골을 넣었다.

고별 경기 수익의 10%

SCP 문장이 달린 줄무늬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알바누의 흑백 상반신 초상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알바누. 열네 시즌 동안 스포르팅의 왼쪽 날개를 지켰다.

1957년 6월 29일, 알바누는 스포르팅에서 고별 경기를 치렀다. 이미 그를 노장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았고, 마지막 시즌은 예비 팀에서만 뛰었다. 그는 스포르팅이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2군이든 어디든 뛰겠다고 겸손하게 말했고, 고별 경기 수익의 10%를 구단의 선수 영입 기금에 내놓았다.

은퇴 뒤 그는 고향 세이샬로 돌아가 그곳에서 잠시 더 뛰고 지도자도 했다. 축구로 번 돈으로 카페를 열었지만, 사람 좋은 성격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 장사는 잘되지 않았다. 결국 코르크 공장에 취직해 일했지만, 유쾌한 성격은 끝까지 그대로였다. 1967년 6월 29일에는 축구 공로 금메달을 받았다. 1990년 3월 5일 세상을 떠났고, 8년 뒤인 1998년 스포르팅은 그에게 구단 공로상인 스트롬프상(Prémio Stromp; 스포르팅 CP가 해마다 시상하는 공로상)을 ‘사우다드’ 부문에서 줬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1945-2001년 스포르팅 CP 문장스포르팅 CP1943-1957334경기 · 162골
1935-1960년 포르투갈 대표팀 다섯 방패 문장포르투갈 대표팀1947-195415경기 · 3골

스포르팅은 리스본 선수권 등 지역 공식전을 포함한 합계이며, 리그만 세면 242경기 117골이다. 자료에 따라 공식전 득점을 160골로 적는다. 입단 전 세이샬 FC(1941-1943)는 지역 리그 시절이라 카드에서 뺐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며 자료에 따라 13경기로 세기도 한다. 문장은 알바누가 뛰던 시기에 스포르팅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스포르팅 CP1943-44~1956-57 시즌11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포르투갈1947-1954년 A매치11

2-3-5 대형의 포지션 번호로, 왼쪽 윙어는 11번이다. 경기마다 포지션에 따라 번호를 받던 시대라 고정 등번호는 없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프리메이라 디비장Primeira Divisão · 현재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8회: 1943-44, 1946-47, 1947-48, 1948-49, 1950-51, 1951-52, 1952-53, 1953-54

타사 드 포르투갈Taça de Portugal

우승 4회: 1944-45, 1945-46, 1947-48, 1953-54

타사 임페리우Taça Império · 현재의 수페르타사 칸디두 드 올리베이라

우승: 1944년

알바누 페레이라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스포르팅 CP 스트롬프상1998년 · 사우다드 부문 (구단을 빛낸 이에게 주는 스포르팅 공로상)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