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LEGEND

주제 트라바수스(José Travassos)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유럽의 제', 다섯 개의 바이올린을 움직인 인사이드 레프트

스포르팅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엔진이자 포르투갈 선수 최초로 유럽 선발팀에 뽑힌 주제 트라바수스. FC 포르투에 납치될 뻔한 입단, 데뷔 시즌 벤피카전 해트트릭, 1955년 벨파스트의 '유럽의 제', 당시 포르투갈 최다 A매치 기록까지. 클럽·대표팀 기록과 우승 경력을 정리한다.
줄무늬 스포르팅 셔츠를 입고 미소 짓는 주제 트라바수스의 세피아 사진과 포르투갈 국기, 다섯 개의 바이올린 문구
스포르팅 CP의 셔츠를 입은 주제 트라바수스.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포르투갈 국기
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UEFA 로고

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지구본 안에 방패가 든 포르투갈 축구 연맹 기관 로고
#FPF포르투갈 축구 연맹Federação Portuguesa de Futebol
다섯 방패가 든 십자 방패와 F.P.F. 글자의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POR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Seleção Nacional de Futebol | Seleção das Quinas (셀레상 다스 키나스; 다섯 방패의 대표팀)
편집자 평가

다섯 개의 바이올린에서 주제 트라바수스는 센터 포워드 페이로테우 왼쪽에 선 인사이드 레프트였다. 공을 받아 드리블로 끌고 가고, 패스로 동료를 살리고, 직접 골도 넣는 이 선수를 스포르팅 사람들은 공격진의 '엔진'이라 불렀다. 1955년에는 포르투갈 선수 최초로 유럽 선발팀에 뽑혀 '유럽의 제(Zé da Europa)'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자는 트라바수스를 포르투갈 축구가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 내놓은 얼굴로 본다.

삥이FC 주제 트라바수스 평가

  1. 트라바수스의 자리는 2-3-5 대형의 인사이드 레프트(interior esquerdo; 센터 포워드 왼쪽에서 공격을 엮는 공격수)였다. 공격수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런데도 스포르팅에서 공식전 321경기 128골을 넣었다. 패스와 드리블로 공격을 조립하면서 득점까지 해낸 숫자라는 점에서 더 무겁다.

  2.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선수였다. 늘 같은 수준을 유지했고, 거친 태클을 수없이 받아 내면서도 열세 시즌을 뛰었다. 무릎 반월판 넷 가운데 셋을 잘라 낼 만큼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견제받았는지를 보여 준다.

  3. 필자가 트라바수스를 특별하게 보는 이유는 1955년 벨파스트에 있다. 국제 대회가 드물던 시절 포르투갈 선수가 유럽 최고 선수들 사이에 이름을 올렸고, 그 경기에서 두 골에 직접 관여했다. 포르투갈 축구가 변방에서 벗어나는 데 그 하루가 남긴 의미는 작지 않다.

  4. 트라바수스와 마누엘 바스케스는 같은 날 스포르팅에 와서 같은 해에 떠났고, 은퇴 뒤에도 함께 사업을 했다. 다섯 바이올린의 두 인사이드는 경기장 밖에서도 한 쌍이었다.

주제 트라바수스 프로필

포르투갈 국기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본명
José António Barreto Travassos
등록명
주제 트라바수스(José Travassos)
출생
1926년 2월 22일
출생지
포르투갈 리스본 루미아르
사망
2002년 2월 12일 · 향년 75세
대표 국적
포르투갈
포지션
인사이드 레프트
별명
유럽의 제
선수 경력
1944-1959년
대표팀
1947-1958년 · 35경기 6골

선반공 소년과 납치 소동

트라바수스는 1926년 2월 22일 리스본 북쪽의 킨타 두 루미아르(Quinta do Lumiar; 리스본 루미아르 지역)에서 태어났다. 집 근처에 축구장 두 곳과 사격장이 있었고, 사격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평생의 두 열정인 사냥과 축구가 그렇게 시작됐다. 열세 살에 선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꿈은 스포르팅 선수였다. 입단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 몸이 너무 가냘파, 서보 요제프(Szabó József; 스포르팅을 이끈 헝가리 출신 감독) 감독은 대구와 감자를 많이 먹고 오라고 했다.

열여섯 살에는 축구 선수를 우대하던 화학 회사 CUF에 취직해 유소년 팀에서 뛰었고, 1년 만에 1군의 인사이드 포워드가 됐다. 큰 구단들이 그를 노리기 시작했다.

1946년의 입단 과정은 소설 같았다. 먼저 FC 포르투의 사람이 찾아와 원칙적인 합의까지 이뤘다. 이를 안 스포르팅은 CUF와 협상하는 동안 그를 토헤스 베드라스(Torres Vedras; 리스본 북쪽의 도시)에 숨겨 두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포르투 쪽이 그를 북쪽으로 데려가 버렸다. 트라바수스는 자기 마음을 따라 스포르팅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렸다. 며칠 뒤 그에게 징병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보가 왔다. 실은 그를 리스본으로 불러들이려는 스포르팅의 꾀였고, 그는 군대 대신 스포르팅으로 갔다. 계약금은 20콘투, 월급은 700이스쿠두였다.

데뷔 시즌의 벤피카전 해트트릭

스포르팅 축구팀에 합류하기 전, 트라바수스는 스포르팅 육상팀으로 먼저 뛰었다. 1946년 200m와 4x100m 계주에 나서 스포르팅의 전국 육상 선수권 우승에 힘을 보탰다. 몇 주 뒤 축구팀에 합류했고, 첫 시즌부터 벤피카와의 리그 경기에서 세 골을 넣으며 6-1 대승을 이끌었다.

초록과 흰색 가로 줄무늬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선수 다섯 명이 잔디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나란히 앉은 흑백 사진
스포르팅 CP의 '다섯 개의 바이올린'. 트라바수스는 센터 포워드 페이로테우의 왼쪽, 인사이드 레프트 자리에서 공격을 엮었다.

그해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 완성됐다. 오른쪽부터 제주스 코헤이아, 바스케스, 페르난두 페이로테우, 트라바수스, 알바누 순서였다. 트라바수스는 이 공격진의 엔진이었다. 1948-49 시즌에는 리그 16골로 개인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3연패에 힘을 보탰다. 1950년 무렵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원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스포르팅은 그가 바스케스와 함께 차린 냉장 설비 회사에 돈을 대며 두 사람을 붙잡았다.

1955년 벨파스트, ‘유럽의 제’

줄무늬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트라바수스가 웃으며 커다란 은빛 우승컵을 들어 보이는 흑백 사진
우승컵을 든 트라바수스. 스포르팅에서 리그 우승 여덟 번을 함께했다.

트라바수스는 1947년 1월 5일 리스본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2-2)에서 대표로 데뷔했고, 21일 뒤 스페인을 4-1로 꺾은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곧 대표팀의 붙박이가 됐다. 1954년 12월 19일 26번째 A매치에 나서며 포르투갈 역대 최다 출전 선수가 됐고, 1958년까지 35경기 6골을 남겼다.

1955년 8월 13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아일랜드 축구 협회 창립 75주년 기념 경기가 열렸다. 영국 연합팀에 맞설 유럽 선발팀 명단에 트라바수스의 이름이 있었다. 포르투갈 선수가 유럽 선발팀에 뽑힌 것은 처음이었다. 소집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코스타 다 카파리카(Costa da Caparica; 리스본 남쪽의 해변)에서 휴가 중이었는데, 혼자 훈련을 다시 시작하며 이 경기를 준비했다. 유럽 선발팀은 4-1로 이겼고, 트라바수스는 그중 두 골에 직접 관여하며 경기 최우수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UEFA가 포르투갈 축구 연맹에 따로 감사를 전했고, 이날부터 그는 ’유럽의 제(Zé da Europa; ’제’는 주제의 애칭)’로 불렸다. 그해 10월에는 포르투갈 대통령에게서 체육 공로 훈장을 받았다고 전한다.

주장, 그리고 알발라드의 거리

관중석을 배경으로 줄무늬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의 트라바수스가 경기장 위에서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흑백 사진
경기장에서 관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트라바수스. 스포르팅에서 주장을 맡았다.

마누엘 파수스(Manuel Passos; 마데이라 출신 스포르팅 수비수)가 그만둔 뒤 트라바수스는 스포르팅의 주장을 맡았다. 1959년, 열세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스포르팅 유소년 팀을 가르쳤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또 하나의 열정인 사냥에 전념하려고 지도자 일을 그만뒀다.

1986년 구단 공로상인 스트롬프상(Prémio Stromp; 스포르팅 CP가 해마다 시상하는 공로상)을 ‘사우다드’ 부문에서 받았다. 2002년 2월 12일, 일흔여섯 번째 생일을 열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2015년 3월 27일 스포르팅이 주앙 로샤 체육관의 첫 삽을 뜬 날, 경기장 옆에 ’주제 트라바수스 거리’가 생겼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1944-1977년 CUF 바헤이루 문장GD CUF (현 GD 파브릴)1944-1946공식 기록 없음
1945-2001년 스포르팅 CP 문장스포르팅 CP1946-1959321경기 · 128골
1935-1960년 포르투갈 대표팀 다섯 방패 문장포르투갈 대표팀1947-195835경기 · 6골

스포르팅은 리스본 선수권 등 지역 공식전을 포함한 합계이며, 리그만 세면 248경기 105골이다. 자료에 따라 공식전 득점을 126골 또는 129골로 적는다. CUF 시절은 지역 리그 기록만 남아 있어 경기 수를 적지 않았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다. 문장은 트라바수스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스포르팅 CP1946-47~1958-59 시즌10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포르투갈1947-1958년 A매치10

2-3-5 대형의 포지션 번호로, 인사이드 레프트는 10번이다. 경기마다 포지션에 따라 번호를 받던 시대라 고정 등번호는 없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프리메이라 디비장Primeira Divisão · 현재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8회: 1946-47, 1947-48, 1948-49, 1950-51, 1951-52, 1952-53, 1953-54, 1957-58

타사 드 포르투갈Taça de Portugal

우승 2회: 1947-48, 1953-54

주제 트라바수스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유럽 선발팀 선정1955년 · 포르투갈 선수 최초 (아일랜드 축구 협회 창립 75주년 기념 경기)
  • 스포르팅 CP 스트롬프상1986년 · 사우다드 부문 (구단을 빛낸 이에게 주는 스포르팅 공로상)

참고 자료

  • 위키스포르팅: José Travassos: 루미아르 출생과 선반공 시절, 서보 감독의 일화, CUF 입단, FC 포르투와의 영입 소동과 징병 전보, 계약 조건, 스포르팅 육상팀, 데뷔 시즌 벤피카전 세 골, 1954년 12월 19일 최다 A매치 기록, 반월판 부상, 1955년 벨파스트와 '유럽의 제', 1955년 10월 체육 공로 훈장, 주장과 유소년 지도, 1986년 스트롬프상, 2015년 거리 이름, 공식전 321경기 126골.
  • 영어 위키백과: José Travassos: 출생과 사망, 리그 248경기 105골, 공식전 321경기 128골, 1948-49 시즌 16골, A매치 35경기 6골과 1947년 데뷔, 스페인전 두 골, 1955년 벨파스트 4-1.
  • 옵세르바도르: Quem eram os Cinco Violinos: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오른쪽부터 왼쪽 배치.
  • 본문 사진: 경기장에서 인사하는 사진은 위키스포르팅 게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