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LEGEND

마누엘 바스케스(Manuel Vasques) 프로필·스탯·역대 등번호: 스포르팅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말료아

1940-50년대 스포르팅 CP의 전설적 공격진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인사이드 라이트 마누엘 바스케스. 삼촌 소에이루의 손에 이끌린 입단, 1950-51 시즌 리그 득점왕, 리그 우승 8회와 '말료아'라는 별명, 포르투갈 대표 26경기까지. 클럽·대표팀 기록과 우승 경력을 정리한다.
가로 줄무늬 초록·흰색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마누엘 바스케스의 채색 초상과 포르투갈 국기, 다섯 개의 바이올린 문구
스포르팅 CP의 가로 줄무늬 셔츠를 입은 마누엘 바스케스.
FIFA 로고

국제축구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포르투갈 국기
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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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연맹Union des Associations Européennes de Football

지구본 안에 방패가 든 포르투갈 축구 연맹 기관 로고
#FPF포르투갈 축구 연맹Federação Portuguesa de Futebol
다섯 방패가 든 십자 방패와 F.P.F. 글자의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
#POR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Seleção Nacional de Futebol | Seleção das Quinas (셀레상 다스 키나스; 다섯 방패의 대표팀)
편집자 평가

1940년대 후반 스포르팅 CP의 공격진은 다섯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고 해서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 불렸다. 마누엘 바스케스는 그 가운데 오른쪽 인사이드를 맡은, 다섯 중 가장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였다. 열세 시즌 동안 스포르팅에서 리그 우승 여덟 번을 경험했고, 1950-51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공을 다루는 솜씨가 그림 같다는 찬사와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의 조롱이 '말료아'라는 한 별명에 함께 담겨 있었다. 필자에게 바스케스는 에우제비우 이전 포르투갈 축구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장면의 한가운데에 있는 선수다.

삥이FC 마누엘 바스케스 평가

  1. 다섯 개의 바이올린을 오른쪽부터 읽으면 제주스 코헤이아, 바스케스, 페르난두 페이로테우, 주제 트라바수스, 알바누 순서다. 바스케스의 자리는 오른쪽 날개와 센터 포워드 사이, 2-3-5 대형의 인사이드 라이트(interior direito; 센터 포워드 오른쪽에 서서 공격을 엮는 공격수)였다. 측면에서 들어온 공을 받아 페이로테우에게 이어 주고, 틈이 보이면 직접 골문을 노렸다. 필자는 이 다섯 사람이 하나의 악단처럼 들렸다면, 그 화음을 맞춘 쪽이 바스케스와 트라바수스 두 인사이드였다고 본다.

  2. 바스케스는 공격진의 어느 자리에서도 뛸 수 있었다. 그러나 큰 충돌이나 쓸데없는 질주를 즐기지 않았고, 그래서 어떤 날은 경기에서 사라진 듯 보이기도 했다. 화려한 날과 조용한 날의 차이가 큰 선수였기에 상대 팀 팬들에게는 늘 논쟁거리였다. 필자는 이 기복까지 그의 일부로 읽는다. 기교로 경기를 바꾸는 선수에게는 그 기교가 통하지 않는 날도 함께 따라온다.

  3. 1950-51 시즌의 리그 득점왕은 페이로테우가 은퇴한 직후에 나왔다. 동료 센터 포워드가 떠난 자리에서 인사이드 라이트가 리그 최다 득점자가 됐다는 것은, 바스케스가 단순한 연결 고리가 아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스포르팅에서 공식전 348경기 227골이라는 기록은 구단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숫자다.

  4. 삼촌 마누엘 소에이루는 1930년대 스포르팅의 골잡이였고, 조카를 스포르팅으로 이끈 사람도 그였다. 한 집안의 두 공격수가 다섯 개의 바이올린 이전과 이후의 스포르팅 공격을 이어 맡은 셈이다. 필자는 바스케스의 경력을 이 계보 안에서 읽을 때 그의 자리가 더 선명해진다고 생각한다.

마누엘 바스케스 프로필

포르투갈 국기PORTUGAL포르투갈 공화국República Portuguesa
본명
Manuel Soeiro Vasques
등록명
마누엘 바스케스(Manuel Vasques)
출생
1926년 7월 29일
출생지
포르투갈 바헤이루
사망
2003년 7월 10일 · 향년 76세
대표 국적
포르투갈
포지션
인사이드 라이트
별명
말료아 · 순종 그레이하운드
선수 경력
1943-1960년
대표팀
1948-1957년 · 26경기 8골

바헤이루의 목공 견습생과 삼촌 소에이루

바스케스는 1926년 7월 29일 리스본 남쪽 테주강 건너편의 공업 도시 바헤이루(Barreiro)에서 태어났다. 이 도시를 먹여 살린 것은 화학 공업 회사 CUF(Companhia União Fabril; 바헤이루에 대규모 공장을 둔 포르투갈의 화학 공업 회사)였고, 소년 바스케스도 아주 어린 나이에 그 공장의 목공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회사 축구팀 CUF에서 열일곱 살에 1군으로 뛰기 시작했고, 골을 많이 넣자 회사는 그를 공장에서 사무실로 옮겨 주었다. 그의 득점은 곧 리스본 큰 구단들의 눈길을 끌었다.

바스케스에게는 우상이 집안에 있었다. 삼촌 마누엘 소에이루(Manuel Soeiro; 1930년대 스포르팅의 골잡이, 1909-1977)는 스포르팅에서 공식전 219경기 205골을 넣었고, 1934-35 시즌 포르투갈 리그가 처음 열렸을 때 초대 득점왕에 오른 공격수였다. 삼촌은 조카에게 자기와 상의하기 전에는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그래서 벤피카가 바스케스를 불러 훈련을 시켰을 때도 그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서명은 하지 않았다. 그 뒤 삼촌이 조카를 스포르팅으로 데려갔고, 스포르팅이 CUF와 합의하면서 이적이 성사됐다.

입단할 때 받은 계약금 18콘투(conto; 1,000이스쿠두를 이르던 말)를 바스케스는 은행에 넣어 두고 끝내 찾지 않았다고 전한다. 처음 월급은 600이스쿠두였다. 1946년 9월 8일, 그는 스포르팅의 초록·흰 줄무늬 셔츠를 입고 데뷔했다.

다섯 개의 바이올린

초록과 흰색 가로 줄무늬 스포르팅 셔츠를 입은 선수 다섯 명이 잔디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나란히 앉은 흑백 사진
스포르팅 CP의 '다섯 개의 바이올린'. 제주스 코헤이아, 바스케스, 페이로테우, 트라바수스, 알바누가 1946년부터 세 시즌 동안 함께 공격진을 이뤘다.

바스케스가 입단한 1946년, 스포르팅의 공격진은 다섯 사람으로 완성됐다. 오른쪽 날개 제주스 코헤이아(António Jesus Correia; 스포르팅의 오른쪽 윙어), 인사이드 라이트 바스케스, 센터 포워드 페르난두 페이로테우(Fernando Peyroteo; 스포르팅의 전설적인 센터 포워드), 인사이드 레프트 주제 트라바수스(José Travassos; 스포르팅의 인사이드 레프트), 왼쪽 날개 알바누 페레이라(Albano Pereira; 스포르팅의 왼쪽 윙어). 이들이 함께 뛴 1946-47 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스포르팅은 리그 3연패를 이뤘고, 1947-48 시즌에는 포르투갈컵까지 더해 더블을 달성했다. 다섯 명 모두 스포르팅 유니폼을 입고 100골 넘게 넣었다.

’다섯 개의 바이올린(Cinco Violinos)’이라는 이름은 기자이자 훗날 감독이 된 주앙 조아킹 타바르스 다 실바(João Joaquim Tavares da Silva; 포르투갈의 축구 기자·감독)가 붙였다. 다섯 명의 패스와 움직임이 현악 합주처럼 맞아떨어진다는 뜻이었다. 바스케스와 트라바수스는 같은 날 스포르팅에 도착했고 같은 시기에 떠났다. 두 사람은 선수 시절부터 함께 냉장 설비 회사를 꾸릴 만큼 가까웠다.

’말료아’라는 별명

줄무늬 셔츠를 입은 선수가 공을 차는 사진 위에 VASQUES O MALHOA DO FUTEBOL PORTUGUÊS라고 적힌 옛 책자 표지
스포츠 스타 책자 「이돌루스 두 데스포르투(Ídolos do Desporto)」 8호 표지. 바스케스를 '포르투갈 축구의 말료아'라고 소개했다.

다섯 바이올린 가운데 가장 기교가 뛰어난 선수로는 흔히 바스케스가 꼽힌다. 그림을 그리듯 공격을 풀어 가는 모습에 타바르스 다 실바는 그에게 ’말료아’라는 별명을 붙였다. 자연주의 화풍으로 이름난 화가 주제 말료아(José Malhoa; 포르투갈의 화가, 1855-1933)에서 따온 말이다. 다른 별명은 ’순종 그레이하운드(Galgo de Raça)’였다.

그러나 바스케스 자신은 이 별명을 반기지 않았다.

경기가 잘 안 풀리는 날이면 그렇게들 불렀어요. 놀리려고요.

Diziam isso quando os jogos não me corriam tão bem, a troçar.

- 마누엘 바스케스가 '말료아'라는 별명을 두고

찬사로 붙은 이름이 그의 기복을 비꼬는 말로도 쓰였다는 뜻이다. 힘들게 뛰어다니지 않고 기교로 경기를 바꾸던 선수는 좋은 날에는 예술가였고, 안 풀리는 날에는 게으른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필자는 이 별명 하나가 바스케스라는 선수를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다고 본다.

1950-51 시즌 득점왕과 스포르팅의 열세 시즌

초록·흰색 가로 줄무늬 셔츠와 검은 바지, 줄무늬 양말 차림으로 경기장에 선 마누엘 바스케스
스포르팅의 가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바스케스. 열세 시즌 동안 리그 우승 여덟 번을 경험했다.

다섯 바이올린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바스케스는 스포르팅의 공격을 이끌었다. 1949년 페이로테우가 은퇴하자 득점의 무게는 바스케스 쪽으로 옮겨 왔다. 1950-51 시즌 그는 리그 23경기에서 29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고, 스포르팅은 2위 포르투를 승점 11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스포르팅은 이 시즌부터 1953-54 시즌까지 리그 4연패를 이뤘다.

1950년 바스케스는 축구와 CUF 사무실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마침 벤피카가 좋은 조건을 내밀었다. 그는 이 제안서를 스포르팅 회장 히베이루 페헤이라(Ribeiro Ferreira; 당시 스포르팅 CP 회장)에게 가져갔고, 회장은 그 자리에서 그의 월급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 트라바수스와 함께 차린 냉장 설비 회사에도 구단이 돈을 댔다고 전한다.

스포르팅에서 바스케스는 공식전 348경기에서 227골을 넣었다. 리그 우승 여덟 번, 포르투갈컵 우승 두 번을 함께했다. 1959년 서른셋의 나이로 스포르팅을 떠난 그는 아틀레티쿠 CP(Atlético Clube de Portugal; 리스본의 구단)에서 몇 달을 더 뛰고 1960년 초 은퇴를 선언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26경기

바스케스는 1948년 3월 21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에서 포르투갈 대표로 데뷔했다. 1957년까지 아홉 해 동안 26경기에 나서 8골을 넣었다. 다섯 바이올린의 동료들과 함께 대표팀 공격을 맡은 날도 많았다.

대표팀에서도 기복에 대한 평가는 그를 따라다녔다. 클럽에서 보여 준 기교에 비해 대표팀 기록이 많지 않은 이유를 두고, 포르투갈 언론과 상대 팀 팬들은 그의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자주 입에 올렸다. 당시 포르투갈은 아직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팀이었다. 바스케스 세대의 기량이 세계 무대에서 시험받을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은퇴 뒤의 알발라드

은퇴한 뒤에도 바스케스는 스포르팅 곁을 떠나지 않았다. 홈구장의 담배 가게를 운영했고, 구단 상점에서도 일했다. 1992년에는 스포르팅이 구단을 빛낸 사람에게 주는 스트롬프상(Prémio Stromp; 스포르팅 CP가 해마다 시상하는 공로상)을 ‘사우다드’ 부문에서 받았다. 말년에는 구단 박물관을 찾아 영광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2003년 7월 10일 바스케스는 세상을 떠났다. 다섯 개의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스포르팅이 해마다 여는 프리시즌 친선 대회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역대 클럽·국대 기록

1944-1977년 CUF 바헤이루 문장GD CUF (현 GD 파브릴)1943-1946공식 기록 없음
1945-2001년 스포르팅 CP 문장스포르팅 CP1946-1959348경기 · 227골
1942년부터 쓰는 아틀레티쿠 CP 문장아틀레티쿠 CP1959-19604경기 · 1골
1935-1960년 포르투갈 대표팀 다섯 방패 문장포르투갈 대표팀1948-195726경기 · 8골

스포르팅은 위키스포르팅의 시즌별 공식전 합계이며, 리그만 따로 세면 278경기 190골(자료에 따라 189골)이다. 다른 집계는 공식전 349경기 225골로 적는다. 아틀레티쿠는 리그 기준이다. CUF 시절은 지역 리그 기록만 남아 있어 경기 수를 적지 않았다. 대표팀은 성인 A매치 기준이며 자료에 따라 7골로 세기도 한다. 문장은 바스케스가 뛰던 시기에 각 구단과 대표팀이 쓰던 것이다.

역대 등번호

클럽

소속팀확인 기간등번호
스포르팅 CP1946-47~1958-59 시즌8 · 9
아틀레티쿠 CP1959-60 시즌확인되지 않음

국가대표팀

대표팀확인 대회·기간등번호
포르투갈1948-1957년 A매치8

2-3-5 대형의 포지션 번호다. 인사이드 라이트는 8번, 센터 포워드는 9번이며, 공격진의 여러 자리를 오간 바스케스는 주로 8번 자리에서 뛰었다. 경기마다 포지션에 따라 번호를 받던 시대라 고정 등번호는 없었다.

대표 우승·준우승 경력

프리메이라 디비장Primeira Divisão · 현재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8회: 1946-47, 1947-48, 1948-49, 1950-51, 1951-52, 1952-53, 1953-54, 1957-58

타사 드 포르투갈Taça de Portugal

우승 2회: 1947-48, 1953-54

마누엘 바스케스의 개인 커리어 수상 경력

  • 볼라 드 프라타 (프리메이라 디비장 득점왕)1950-51 시즌 · 29골 (자료에 따라 28골)
  • 스포르팅 CP 스트롬프상1992년 · 사우다드 부문 (구단을 빛낸 이에게 주는 스포르팅 공로상)

참고 자료

  • 위키스포르팅: Manuel Vasques: CUF 목공 견습생 시절, 삼촌의 조언과 벤피카 입단 시험, 계약금 18콘투와 첫 월급, 인사이드 라이트 기용과 기복, 1950년 월급 인상과 냉장 설비 회사, 시즌별 공식전 기록(348경기 227골), 은퇴 뒤의 일과 1992년 스트롬프상. 함께 실린 다섯 개의 바이올린 사진과 바스케스 사진.
  • 위키스포르팅: Manuel Soeiro Vasques: 삼촌 마누엘 소에이루의 공식전 219경기 205골, 1934-35 시즌 초대 리그 득점왕, 조카를 스포르팅으로 이끈 일.
  • 포르투갈어 위키백과: Manuel Vasques · Cinco Violinos: 출생과 사망, '말료아'와 '순종 그레이하운드' 별명, 타바르스 다 실바가 붙인 두 이름, 1946년 9월 8일 데뷔,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구성과 리그 3연패·더블.
  • 영어 위키백과: Manuel Vasques: 리그 278경기 190골, 1950-51 시즌 29골 득점왕과 포르투와의 승점 차, A매치 26경기 8골과 1948년 3월 21일 마드리드 데뷔.
  • 영어 위키백과: Bola de Prata (Portugal): 1950-51 시즌 볼라 드 프라타 23경기 29골.
  • 옵세르바도르: Quem eram os Cinco Violinos: 다섯 개의 바이올린의 오른쪽부터 왼쪽 배치, 벤피카가 놓친 바스케스, '말료아' 별명에 대한 바스케스 본인의 말, 트라바수스와의 냉장 설비 사업.
  • 본문 사진: 「이돌루스 두 데스포르투」 8호 표지와 스포르팅 유니폼 사진은 스포르팅 팬 블로그 Armazém Leonino 게재본.